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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Jun 27. 2022

헤어질 결심*불륜과 살인, 이중의 안개

줄거리는 2%도 햠유되어 있지 않습니다.

불륜과 살인, 이중의 안개

가상의 도시, 이포

안개뿐이라는 ‘이포’에서는 그렇게 누군가의 향수(鄕愁)도, 의문의 추락사도 흔적 없이 자욱하게 묻힌다. 송창식과 정훈희가 부른 "안개"가 울려 퍼진다. 우아한 도시 남성 해준(박해일)과 의문의 중국인 여성 서래(탕웨이)사이의 묘한 심리적 긴장감을 중심으로 인간의 억압된 욕망을 다룬 스릴러다. 그 긴장을 통해 중산층의 억압된 이면과 위선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들여다보기

빗속의 방문객(1970)

영화는 2부 구성이다. 1부는 <빗속의 방문자(1970)>처럼 형사인 해준이 수사하면 할수록 서래의 알리바이가 드러나는 구조다. 용의자를 의심해야 하는 형사와 알리바이로 혐의를 벗어야 하는 피의자의 신분이 족쇄처럼 서로에 대한 이끌림을 막아선다.


본다는 행위가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 증거다.

영화에서 보는 행위 즉 ‘눈’이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보이지 않는 감정'을 엿보려고 노력하는 이야기다. 시장 노점 위의 물고기 눈알을 통해 두 남녀의 감추어진 욕망을 은근슬쩍 엿본다. 보았다고 해도 사건을 다 알게 되는 아닌 미궁을 더듬어야만 삶을 버틸 수 있는 남성을 통해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을 노출한다. 우리는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고,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것만 알려고 든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것이 자기 관심의 결과물이다. 신념이나 직관이라는 것도 사실은 자신이 관심을 둔 것에 결과물일 뿐이다. 즉 사람들은 항상 자기가 보고 있으면 다 보고 있다고 착각을 하지만 실제 눈뜨고 보고 있어도 다 보고 있는 게 아니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 볼 뿐이다.


언어장벽

그러나 중국인이 내뱉는 어색한 한국말은 미제 사건이 사실과 어긋날 수밖에 없음을 예언한다. 그렇기 때문에 탕웨이의 얼굴 클로즈업에 담긴 표정은 극적인 ‘연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으로 불안함과 두려움, 묘한 쾌감과 슬픔이 뒤섞여있다.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는 서래의 알리바이에서 긴장이 발생한다. 혐의자 서래는 용의자와 피해자, 선인과 악인으로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헤어질 결심>은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인물들의 상태를 모호하게 남겨두고 답을 내리지 않는 것이다. 그 모호함으로 영화 전반에 불길한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즉, 해준이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의 태도에서 그녀가 범인일지 모른다고 의심하도록 부추긴다.


모바일 기술의 천재적 활용

관찰

의심에서 출발했다가 관심으로 전환되고, 그 관심이 이내 불편을 가져온다. 그 불편조차 감내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도구는 독특한 형식에 있다.


그 형식은 비대면 시대의 단상을 적극 반영했다. 코로나 이후 인간관계가 변했다. 오프라인 만남보다 재택근무, 키오스크, 스마트폰, SNS, 온라인 교육시스템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이 줄었다. 영화는 거울, 창문, 모니터, 스마트폰의 액정화면 등에 반사된 풍경을 통해 두 사람의 심리적 거리를 표현한다.


단절

그 단절 속에서 아이폰과 유튜브 브이로그, 병원의 모니터 등을 통해 서래의 1인칭 시점이 전달한다. 즉 서로 마주할 때조차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지만, SNS와 디지털 기기를 통해서만 서로의 속내와 알리바이를 확인한다. 디지털 대전환이 가져온 대면 사회적 기술의 감소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서래의 진심

IT기기를 통해 2부에서 <밀회(1945)>처럼 해준을 향한 서래의 숨겨왔던 속내가 밝혀진다. 서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될지 번뇌한다. 왜냐하면 서래는 해준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죽은 남편과의) 결혼반지를 빼며, 자신의 진심을 IT 기기를 통해 전달하거나 기록한다. 애초에 박해일은 손이 이뻐서 캐스팅되었다.


박찬욱 감독은 여성의 사적 감정을 최초로 담은 <밀회(1945)>을 도치시킨다. <헤어질 결심>은 가정을 가진 중산층의 정숙한(?) 남성이 다른 여성 그것도 피해자에게 이끌리는 도덕성을 겨냥한다. 영화는 해준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서래의 심리를 적극적으로 그림으로써 역설적이게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해준의 도덕적 관념을 뒤흔든다. 안개가 시야를 흐리게 하는 것처럼, (서래로 인해) 형사인 주인공이 어떤 형상과 사건들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자를 들여다보다

그럴수록 해준은 사랑과 살인의 그 불가해한 진실을 들여다보려고 애쓴다. '대면 관계'에서는 뚜렷한 감정선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비대면'으로 사건과 사랑의 단서들을 추적한다. 해준이 메시지를 읽을 때 아이폰 화면 속 글자들이 얼굴에 드리운다. 여러 사물들이 주인공의 행적을 엿보는 음침한 기분도 든다. 심지어 <복수의 나의 것>처럼 시체를 통해서 지켜보게 한다. 피해자가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본다는 측면은 여러 사물의 시점 쇼트으로 확장된다.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생선도 죽었다. 아니면 무생물이다.


이 시점 쇼트들은 살인과 사랑의 정황이 미결과 오역으로 지연될 것임을 예언한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려할수록 멀어지는 운명을 시각화한 것이다. 그러나 남녀 간의 정분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막아지는 것이 아니기에, 관객으로 하여금 더 적극적으로 그 속내를 염탐하도록 이끈다.


감독은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을 쓰기 위해 루키노 비스콘티를 오마주했다고 한다.

박찬욱은 수많은 질문의 연쇄 속에 관객을 던져두지만, 답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국적, 출신, 삶의 조건이 다른 서래와 해준이 공유하고 있는 억압된 무의식이나 추악한 본능을 끄집어내려고 한다. 영화 속 수많은 공란(빈 칸)은 현실의 사랑과도 맞닿아있다. 우리는 애인이나 배우자의 마음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래 사랑은 이처럼 불확실한 것이다.



오역과 미결의 시청각적 장치

영화 속 사랑의 언어들은 구글번역기로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살인 사건은 명확히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사실관계가 밝혀졌어도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두 인물의 심리는 여전히 명확하게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은 "사람이 살면서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에 오는 인내심의 어려움을 잘 묘사하고자 그랬다고 한다.


그러한 불분명함이 의혹과 애틋함을 계속 생산한다. 영화는 수직(산)과 수평(바다)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대칭시켜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산해경>을 모티브로 한 류성희 미술감독의 미장센은 영화 곳곳에 오역과 미결의 이미지를 덧씌운다. 더욱이 르네 클레망처럼 현재에서 아무런 예고 없이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고, 또 현재로 되돌아온다. 이것을 박지용 촬영 감독은 그 의심과 불안을 광각 렌즈를 통해 증폭시키고 왜곡한다. 개인적으로 계단 장면에서 두 가지 각도로 찍었는데 진부하지 않아 놀라웠다.


<헤어진 결심>은 표면적으로는 해준의 겉모습처럼 평온하지만 내적으로는 서래의 욕망처럼 들끓는 세계다. 폭력적인 장면은 물론이고 드라마틱한 사건의 형상화가 없어도 <헤어질 결심>의 긴장을 유지하게 하는데는 음악과 음향(특히 숨소리)의 역할이 크다. 


음악감독 조영욱이 강조한 퍼커션은 눈에 보이는 폭력보다 어딘가에 잠복한 폭력, 나아가 우리 내면의 폭력성이 가장 두렵고 한편으로 매혹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 음악은 서사의 감흥을 보충하는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도리어 서사에 예상치 못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방식으로 이야기와 충돌한다. 음악은 신경질적이고 불길하게 서사를 떠다니며, 그 어떤 대사나 행동보다 효과적으로 그 세계의 공기를 경험하게 한다.


이렇듯 ‘안개’로 상징되는 두 사람의 은폐된 욕망은 이포의 불안한 고요를 가로지르며, 인물의 억압된 욕망, 어두운 충동, 강박관념이 잠복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포는 가장 위험한 사건이 '자라 절도'일 정도로 조용한 장소이다. 하지만 이포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자리잡고 있다. 안전하기도 하지만, 방사능 누출의 위험성도 상존한다. 평화 속에 불확실성이 잠들어있는 것이다. 해준의 마음 속에 서래가 불쑥 방문한 것처럼 말이다.


소감

산인지 바다인지, 파랑인지 녹색인지 모호하다.

공교롭게도 박찬욱이 세운 영화사 이름이 모호 필름인데, 이 영화는 정말 모호하다. 전형적인 필름누아르이건만, 히치콕을 향한 유럽 영화적인 화법(클로드 샤브롤)과 화려하고도 서정적인 루키노 비스콘티의 유미주의(唯美主義)가 더해진다. 더글러스 셔크의 로맨스를 통해 사회 모순을 짚는 연출,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떠오르는 캐릭터, 스토리까지 시네필다운 박찬욱의 왕성한 소화력이다. 김수용 감독의 <안개(1967)>에 대한 존경심까지 표하다니 실로 놀랍다. <헤어진 결심>은 이제껏 한국 영화가 가보지 못한 길을 개척한다.



★★★★★ (5.0/5.0) 


Good : 내년 아카데미에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Caution : 모호하고 뚜렷하지 않은 감정선이 낯설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은 "우리가 젊을 땐 자기감정을 다 드러내고 표현해 가면서 살지만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면에서 솔직해지기 어려워진다고 볼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 자기의 처지에 따라서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게 많고 참아야 할 것도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라며 "그런 형편에 놓인 두 사람이 어떻게 하면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기감정을 전달할까. 참기가 힘든데 이 감정을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들키지 않고 감출까를 고민하는 이야기"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은 3~4년 전에 읽은 스웨덴 추리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 속 형사, 경찰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읽은 뒤 '여기 나오는 형사처럼 속이 깊고 상대방을 배려해 주는 신사적인 형사가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생각했다고. 딱 이 아이디어 하나만을 두고 오랜 파트너인 정서경 작가를 만나 구상했다. 그리고 데이비드 린의 <밀회>를 정 작가에게 추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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