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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Jun 22. 2022

태종 이방원*가(家)에서 국(國)으로

《태종 이방원 (2022)》후기

《태종 이방원》는 ‘또방원’ 이야기가 나올 만큼 식상해 보였다. 이미 여말선초(麗末鮮初, 고려 말, 조선 초)를 주제로 한 드라마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종 이방원》는 32부작으로 콤팩트하게 전주 이 씨 가문을 중심으로 빠른 전개를 선보이는 차별화 전략을 택했다.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개국 과정에서 왕위 계승을 놓고 왕자들끼리의 반목, 그리고 왕위에 오른 후에 원경왕후 민 씨와의 권력투쟁에서 절정을 이뤘다. 후계구도를 놓고 양녕대군과 충녕대군이 대립하는 구도까지 후반으로 갈수록 날림 처리하는 사극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방지했다. 이렇듯 실록을 최대한 반영한 높은 고증을 바탕으로 역사적 인물을 기존 드라마와 다르게 재해석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괴물이 된 이유

《태종 이방원》의 주제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라는 니체의 격언이 떠오른다. 괴물과 싸우려던 당초 목적을 잊지 않고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것은 어렵다.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누구라도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될 때가 있다. 자신의 삶을 가로막고 있는 괴물과는 치열하게 싸워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싸움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괴물과 싸우려던 원래 목적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이데올로기란 형성 중일 때는 자유지만, 일단 형성되고 나면 억압이다.”라고 경고한다. 조선은 태종과 세종, 문종이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세조, 성종, 연산군 때부터 체제의 모순이 점차 드러나 임진왜란 이후 그 어떤 왕도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못했다. 말기의 흥선 대원군이 삼정의 문란을 수습했지만, ‘근대화’라는 역사적 조류를 놓쳤다. 양반과 유교로 고려라는 괴물을 무너뜨렸지만, 도리어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 조선을 무너뜨렸다. 사르트르 말마따나 어떤 개혁이나 정책도 세월 앞에서 구체제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토사구팽

두 동생을 숙청당하자 혼절한 원경왕후

수많은 역사적 업적 뒤에 여성들의 숨은 조력이 있었다. 신덕왕후 강 씨는 중앙에 연고가 없던 이성계에게 연줄을 제공했고, 정계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경왕후 민 씨 역시 권문세족으로 절치부심과 어진 내조로 남편을 용상에 올렸다. 그러나 두 여인은 태종에 의해 정치적으로 숙청당했다. 원경왕후는 태종과 12명의 자식을 보아 조선왕조에서 가장 금실이 좋은 부부였다. 2위가 세종과 소헌왕후 심 씨로 10명의 자녀를 보았다.


그렇다면 왜 태종은 이렇게 가혹하게 토사구팽을 했던 것일까? 현대 민주주의 국가도 그렇지만, 모든 부조리와 비리는 측근에서 시작한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친인척 비리에 휩싸이지 않은 적이 없지 않은가? 가(家)로 시작했지만, 국(國)으로 마무리되는 이방원의 삶에서 가문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오로지 왕권을 강화하는 일에 정력을 쏟는다. 가문에 충성하던 사병을 국가에 귀속한 사병 혁파나 충신의 귀감이 될 수 있는 정몽주를 복권한 것, 편전에 사관에 들이는 문제들에서 《태종 이방원》은 ‘국왕은 공적 존재인가, 사적 존재인가?’를 묻고 있다.


많은 독재자들이 비밀경찰, 언론탄압, 정치공작, 프로파간다, 공포정치에도 불과하고 결국 무너지는 이유는 그 지배의 당위성에 국민들이 의문을 표하기 때문이다. 이방원이라는 개인은 권력욕에서 출발했을지 모르지만, 태종이라는 국왕으로써 ‘조선’을 반석에 올렸다. 그리고 세종을 후계자로 골랐기 때문에 그 모든 철혈 통치가 후세에 우리들도 납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를 이해한 두 사람

세종에게 옥새를 물려주다.

왕권 강화책을 고수한 태종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척을 쳤다. 원경왕후가 임종을 맞이할 때, 그간 사극과 달랐다. 이방원은 용서는커녕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다. 대비전 바깥에서 홀로 통곡함으로써 그녀의 장례에서 배제된다. 가장 든든한 정치적 동지이자 가장 강력한 정적이었던 왕비와는 결국 화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점찍은 세종은 장인인 심온을 사사한 것을 내심 반발한다. 아버지 태조 역시 신덕왕후 강 씨와 방석 때문에 원망하고 조사의의 난을 일으킨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는 국왕으로서의 고뇌에 공감했다. 아들인 세종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 심온을 복권시키지 않는다. 문종 대에 이르러서야 외할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켜 준다. 그리고 태조도 난이 평정되고, 새나라가 안정을 찾자 태종을 인정한다. 모든 리더가 태종처럼 자신의 혈연, 핏줄, 가족들부터 단속시켰다면 태평성대가 오래갔을 것이다. 금수저나 부모 찬스라는 신조어가 나오는 요즘 형국에 태종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것이 《태종 이방원》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이다.


★★★★ (4.2/5.0)


Good : 이방원이 어떤 심정으로 그랬는지 납득이 갔다.

Caution : 고질적인 전투 장면의 부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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