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100 Drama Movies
3.예외적으로 한국영화의 경우에는 중복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점은 양해바란다.
시리즈가 끝났을 때 옆 좌석에 앉아있던 관객이 ‘엄지척’을 들어 보였던 기억이 난다.
불편한 주제를 탄탄한 연기와 각본을 통해 너무 무겁지 않게, 유쾌하고 훈훈하게 잘 담아냈다.
사형수와 교도관의 우정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다.
미국 중산층의 붕괴와 불안을 다루면서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소박한 행복, 가족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운다.
마블과 DC를 비롯한 오늘날 블록버스터는 전부 성룡이 도구와 공간을 통해 액션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을 참고한다.
<미라클>의 위대한 점은 액션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다. 이 작품에서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것이 곧 액션이자 코미디이자 드라마라는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룬다. 집단 격투 장면에서 적에게 위협을 가하고 계단 같이 공간이 좁은 곳에서 1대1을 강요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적을 피해 도망가는 동선을 통해 한명씩 상대하는 당위성을 확보한다. 그러면서 다음 상대가 이동하는 동선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상대하는 합리적인 설득이 가능하다. 돌발적인 변수를 통제하지 않고 풀어둠으로써 몸 개그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즉 움직임(액션) 그 자체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드라마)를 구성한 것이다.
모든 등장인물에게 납득할만한 동기와 사유를 부여한다.
로드무비의 거장은 매일 되풀이 되는 한 남자의 일상을 다룬 반(反) 로드무비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벤더스는 영화를 “카메라는 불행한 일들과, 그들이 잊히는 것에 대한 무기이다. (The camera is a weapon against the tragedy of things, against their disappearing)”라고 정의했다. 이 영화는 일상의 가치를 예찬하면서 이제껏 모든 불행을 사라지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감독에 의하면 우리 인생은 영화처럼 편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체를 롱테이크로 연결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런 관점에서 <버드맨>은 실존주의, 누군가의 삶과 세상, 이중성, 영화비평, 가족, 알코올 중독,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에 관한 거대한 조크다.
카메라는 종종 인물과 풍광을 따로 구별하지 않은 채 그 자체로 하나의 자연을 이룬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의 내면엔, 절반은 천사가, 절반은 악마가 있다”는 린다의 내레이션처럼, 인간은 항상 어떤 딜레마와 갈등에 빠져 있는 양면적 존재이며, 〈천국의 나날들〉은 그런 인간 존재를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드러낸다.
왜 기차역일까? 1895년 12월 28일,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이 역사상 최초의 영화다. 움직이는 활동사진에 불과했던 영화는 어떤 마술사 한명에 의해 꿈과 환상의 이미지로 바뀌게 됐다. 그의 이름은 조류주 멜리에스다. 뤼미에르의 리얼리즘과 멜리에스의 판타지즘은 영상을 이해하는 두 가지 키워드로 영화의 역사를 요약한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아카데미 외국어영화·감독·촬영상
장면 하나하나마다 시대의 공기를 압축해서 담았다.
우디 앨런은 대상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관찰한다. 화자가 가치판단을 보류한 어떤 인물을 세워놓고, 그가 멋있어지거나 혹은 우스꽝스러워지는 순간을 팔짱끼고 지켜보는 식이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꿈꿀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적나라하게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물론, 가치판단은 관객에게 전적으로 일임한 채로 말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낙태의 밤은 1987년 루마니아의 시대의 공기를 머금고 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은 불우한 이웃을 위해 간명하고도 강렬한 목소리를 낸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노매드랜드>를 보면서 대공황의 여파를 간결하고 포괄적으로 서술한 존 스타인벡의 소설<분노의 포도(1939)>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존 포드는 영화화하면서 조드 가족이 겪는 곤경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했다. 그것은 지독한 빈곤이 아니라 자신들의 집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은 뿌리 뽑힘으로 인한 심리적 외상이었던 것이다.
남성도, 거짓이 진실을 압도하는 마녀재판에 회부될 수 있다.
파월과 프레스버거는 희극을 이야기하지만 희극 속에 비극을 담아내는 모순어법의 대가들이다. 영화는 전시 홍보용으로 제작되었지만, 영국군, 특히 지도부에 대한 풍자로 가득하다. 주인공은 19세기의 벨 에포크를 동경하지만, 1, 2차 대전으로 옛일이 되었다. 낙관적인 이상주의자의 좌절은 영국이 명예로운 전쟁에 대한 고결한 가치를 따르든지, 아니면 나치 독일과 같은 사악한 적에 맞서 ‘더럽게 싸우든지’ 선택의 기로에 섰음을 시사한다. 또 클라이브 윈-캔디(로저 리브시)가 옛 영국을 대표한다면, 테오 크레츠머르-슐도프는 옛 독일을 상징한다. 두 사람의 우정은 독일을 바라보는 유럽인의 복잡한 심경이 반영되어 있다.
제목의 블림프 대령은, 영국 만화가 데이빗 로가 창조한 우스꽝스러운 구식 군인을 캐리커처다. 처칠이 자신을 패러디한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제작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한다.
황색언론에 대한 날 선 비판의 유통기한은 무한대다.
스코틀랜드 여성이 콜롬비아를 여행하던 중, 알 수 없는 폭발음을 듣게 된다. 소리를 재현하고자 사운드 엔지니어를 찾아가고, 공사 중인 터널에서 발견된 유골을 연구하는 고고학자와 친구가 된다. 병원에서도 정확한 병명을 발견하지 못하지만,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를 만나면서 비밀이 풀리는 듯하다. 아라찻풍 영화답지 않게 SF 장르의 어휘와 어법을 적극 활용한다. 미스터리가 탄탄하지 않지만, 제법 논리적인 귀결을 내놓는다.
출생률이 0.7%로 떨어진 대한민국에서 가족의 의미를 날카롭게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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