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100 Drama Movies
1.①영향력 ②서사 ③작품성 순으로 높은 점수를 줬다.
2.드라마 영화는 광범위해서 여타 <TOP 100 영화 추천> 리스트와 겹치는 영화들은 제외했다. 만약 여러분이 생각하는 제목이 없는 경우에는 여타 <TOP 100 영화 추천>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3.예외적으로 한국영화의 경우에는 중복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점은 양해바란다.
시리즈가 끝났을 때 옆 좌석에 앉아있던 관객이 ‘엄지척’을 들어 보였던 기억이 난다.
밥 딜런의 노래처럼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시한부 인생을 유쾌하게 그렸다. 유머 감각이 결여된 독일 영화가 이렇게 유머로 환하게 마틴(틸 슈바이거)과 루디(얀 요세프 리퍼스)가 얼마 남지 않는 삶을 불태우며 걸어가는 길에 눈물보다 웃음을 넘치게 담을지는 몰랐다. 예고된 마지막 장면 덕분에 세계 2위의 영화 평점 사이트 키노포이스크 TOP 250에 17위에 올라있다.
사형수와 교도관의 우정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다.
불편한 주제를 탄탄한 연기와 각본을 통해 너무 무겁지 않게, 유쾌하고 훈훈하게 잘 담아냈다.
가난한 농부의 아홉 번째 딸 추알(공리)은 돈 많은 양조장 주인에게 팔려가듯 시집가면서도, 가마꾼 유이찬(강문)의 섹시한 등판을 흘끗흘끗 쳐다본다. 1930년대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고, 그녀는 젊은 일꾼과의 금지된 로맨스를 위해 함께 투쟁한다. 여기서 ‘붉은 수수’는 민중의 양식이자, 그들의 피와 노력인 동시에 생명과 영혼을 상징한다. 수수는 외세의 군홧발 아래 무수히 짓밟히지만, 꿋꿋이 일어서는 강인한 민초에 비유된다.
왜 기차역일까? 1895년 12월 28일,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이 역사상 최초의 영화다. 움직이는 활동사진에 불과했던 영화는 어떤 마술사 한명에 의해 꿈과 환상의 이미지로 바뀌게 됐다. 그의 이름은 조류주 멜리에스다. 뤼미에르의 리얼리즘과 멜리에스의 판타지즘은 영상을 이해하는 두 가지 키워드로 영화의 역사를 요약한다.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여성 욕망을 유쾌하게 그려내기로 유명한 이마무라 쇼헤이의 후기작은 오프닝부터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서에 자전거를 타고 가서 자수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며 좌중을 압도한다. 신기하게도 불쾌의 미학은 차츰 사라지고, 위로의 화법으로 관객을 다독인다. 성적 불능이 있는 주인공이 ‘뱀장어(제목의 뜻)‘를 강에 놓아줌으로써 아내에 대한 응어리를 풀고 과거의 죄를 뉘우치는 회개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이 자신을 구원해 준 여인의 모든 점을 품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에 의하면 우리 인생은 영화처럼 편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체를 롱테이크로 연결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런 관점에서 <버드맨>은 실존주의, 누군가의 삶과 세상, 이중성, 영화비평, 가족, 알코올 중독,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에 관한 거대한 조크다.
마블과 DC를 비롯한 오늘날 블록버스터는 전부 성룡이 도구와 공간을 통해 액션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을 참고한다.
<미라클>의 위대한 점은 액션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다. 이 작품에서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것이 곧 액션이자 코미디이자 드라마라는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룬다. 집단 격투 장면에서 적에게 위협을 가하고 계단 같이 공간이 좁은 곳에서 1대1을 강요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적을 피해 도망가는 동선을 통해 한명씩 상대하는 당위성을 확보한다. 그러면서 다음 상대가 이동하는 동선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상대하는 합리적인 설득이 가능하다. 돌발적인 변수를 통제하지 않고 풀어둠으로써 몸 개그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즉 움직임(액션) 그 자체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드라마)를 구성한 것이다.
〈이터널 선샤인〉과 〈존 말코비치되기〉, 〈아노말리사〉의 작가인 찰리 카우프만이 발굴할 수 있는 심리묘사는 기대만큼 기이하다. 그러나 카우프만답지 않게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그의 장기인 부조리함을 호러/스릴러에 심으며 더욱 뚜렷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주인공은 지난날의 후회와 고독을 낭독한다. 이것이 기괴하고 생경한 심리를 자아낸다. 왜냐하면 인간은 선택에 대한 불확실성에 불안을 느끼므로 지나간 결정에 대해 아쉬워하는 심리가 있다. 또한, 필멸자로서 언젠가는 끝이 있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공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대공황을 배경으로 〈페이퍼 문〉은 자신의 딸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어린 소녀를 이모댁에 데려다주는 사기꾼의 로드무비다. 역경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오스카상을 역대 최연소로 수상한 배우인 10살의 테이텀은 몸짓, 표정, 간결한 대사전달을 통해 성인 배우들을 압도하며 70년대 가장 강력한 여성 캐릭터에 도전한다. 앨빈 사르겐의 유쾌한 각본, 보그다노비치의 섬세한 연출, 라즐로 코바치스의 아름다운 흑백 촬영은 영화사에 길이 남았다.
로드무비의 거장은 매일 되풀이 되는 한 남자의 일상을 다룬 반(反) 로드무비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벤더스는 “카메라는 불행한 일들과, 그들이 잊히는 것에 대한 무기이다. (The camera is a weapon against the tragedy of things, against their disappearing)”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렇게 〈퍼펙트 데이즈〉는 일상의 가치를 예찬하면서 이제껏 모든 불행을 사라지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잉마르 베리만의 〈산딸기〉처럼 유명 시인이 죽기 직전 생을 기념하는 여행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초현실적인 로드무비이다. ‘언어는 그 사람의 신분증명서`라는 하이데거 철학에 근간을 둔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역사는 죽지 않는다. 단지 낮잠을 잘 뿐”라며 문학적인 상징과 은유를 통해 함축적이면서도 분명하게 자신의 역사 인식을 전달하고 있다. 또 형식적으로 주목할 점은 엘레니 카라인드루의 음악을 시제보다 선행하여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찰나의 순간과 영겁의 시간을 한데 묶는다.
파월과 프레스버거는 희극을 이야기하지만 희극 속에 비극을 담아내는 모순어법의 대가들이다. 영화는 전시 홍보용으로 제작되었지만, 영국군, 특히 지도부에 대한 풍자로 가득하다. 주인공은 19세기의 벨 에포크를 동경하지만, 1, 2차 대전으로 옛일이 되었다. 낙관적인 이상주의자의 좌절은 영국이 명예로운 전쟁에 대한 고결한 가치를 따르든지, 아니면 나치 독일과 같은 사악한 적에 맞서 ‘더럽게 싸우든지’ 선택의 기로에 섰음을 시사한다. 또 클라이브 윈-캔디(로저 리브시)가 옛 영국을 대표한다면, 테오 크레츠머르-슐도프는 옛 독일을 상징한다. 두 사람의 우정은 독일을 바라보는 유럽인의 복잡한 심경이 반영되어 있다.
제목의 블림프 대령은, 영국 만화가 데이빗 로가 창조한 우스꽝스러운 구식 군인을 캐리커처다. 처칠이 자신을 패러디한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제작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한다.
아쉬가르 파르하디의 인물들은 누구 편을 들기가 참으로 어렵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가 특히 그러하다. 아마드(알리 모사파)는 4년째 별거 중인 아내 마리(베레니스 베조)와 이혼하기 위해 파리로 온다. 마리의 집엔 마리가 전남편과 낳은 딸들뿐 아니라 마리와 결혼을 약속한 사미르(타하 라힘)와 그의 아들도 함께 살고 있다. 사미르의 아내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입원 중이다. 마리의 딸 루시는 사미르를 싫어한다. 게다가 루시는 입원 중인 사미르의 아내에게 이상한 죄책감을 갖고 있다. 아마드는 마리와 루시, 사미르 사이에서 난처한 상황에 놓인다. 모든 등장인물에게 정당한 사유와 그렇지 않은 사연을 부여했기에 더 그러하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노매드랜드>를 보면서 대공황의 여파를 간결하고 포괄적으로 서술한 존 스타인벡의 소설<분노의 포도(1939)>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존 포드는 영화화하면서 조드 가족이 겪는 곤경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했다. 그것은 지독한 빈곤이 아니라 자신들의 집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은 뿌리 뽑힘으로 인한 심리적 외상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여파는 이토록 끔찍하다.
이 미스터리 스릴러는 세상의 고통에 신은 왜 침묵하는지를 묻는다. 지구는 병들어가고 있고, 굳게 믿던 신의 목소리가 세상에 전달되지 않는 듯하다. 사회학적으로 환원하면 마르크스의 설명대로 하부구조(생산력)에 의해 상부구조(종교)가 결정된다는 입장이나 막스 베버가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신의 구원(가치 합리적 행위)은 사라지고, 이윤추구(목적 합리적 행위)만 남았다는 탄식 중에 어느 것을 택해도 슈레이더가 내리는 결론과 동일할 것 같다.
러시아의 평범한 중년이 자신의 땅을 노리는 권력자에게 맞서 싸우는 영화이다. 삶의 터전에 내몰린 약자의 고기를 사이좋게 뜯어먹는 권력의 탄생·성장·소멸을 그린다. 이 막막한 현실은그려낸 황량한 풍경화에 서민들은 죽거나 떠나거나 핍박받는다.
생지옥을 놀이터라고 둘러 대는 채플린적 유머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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