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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Aug 13. 2023

크리스토퍼 놀런 영화 추천 TOP 12

Christopher Nolan Films Ranked

지난 20여 년간 크리스토퍼 놀란의 등장은 매혹적인 사건이었다. 관객에게는 대중성을, 평론가들에겐 예술성을 안겨주는 작가주의 상업감독이기 때문이다. 그가 주로 다루는 주제는 가족주의(휴머니즘)이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플롯)은 참신하다. 참신한 자신의 세계관을 관객에게 이성적으로 차분히 설득한다. 동시에 누아르, SF, 슈퍼히어로물, 전쟁영화, 첩보물, 전기드라마로 장르 도장 깨기를 해나간다.


시간의 마술사로 불리는 놀란의 연출적 지향점은 제임스 카메론과 대척점에 서있다. 디지털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제임스 카메론은 테크놀로지를 경고하지만, 아날로그 효과를 고집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은 지적 호기심을 적극 장려한다.

12편의 영화를 연출한 놀란은 머나먼 우주를 탐색하고, 금지된 정신의 깊이를 탐험하며 그 누와도 다른 방식으로 배트맨을 소개했다. 응용물리학을 동반한 시간의 예술을 도전하고, 비할 데 없는 지적 스릴을 선사하며, 대담한 상상력으로 종종 위험을 감수한다. 차기작 <오펜하이머>를 준비하면서 CGI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세계 최초의 원자 폭발을 재현하는 등 감독 스스로 한계를 뛰어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12 : 테넷 (Tenet, 2020)

시간의 마술사인 놀란답게 시제가 미스터리가 되고, 시차가 스토리가 되는 복잡한 플롯을 시각적이고 지적인 쾌감으로 전달한다.      


테넷은 기존 시간여행 영화의 메타를 혁신시킨다. 놀란은 '시간역설(타임 패러독스)'를 피하기 위해 3가지 아이디어를 건의한다. 첫째, 인버전 기술로 시간의 방향을 되돌리는 방법이고, 둘째, 같은 시간대에 다른 시간대의 여러 인물들을 동시에 존재하는 방식이며, 셋째, 자유의지와 결정론을 공존시킨 것이다.



#11 : 미행 (Following, 1998)

69분짜리 첫 장편영화는 여전히 그의 필모그래피에 대한 입문서다. 6000달러 (600만 원) 짜리 저예산 필름 누아르는 Arri BL과 Bolex(둘 다 16MM)로 촬영되었으며 장비는 택시 트렁크 반도 못 채웠다고 한다. 


빠듯한 예산 하에서 주말마다 15분씩 촬영을 1년 동안 진행해서 완성시켰다. 놀란이 항상 미로 같은 플롯을 구상하고 거대한 세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후기작품보다 덜 야심적이기 때문에 히치콕적 테마를 매우 효율적으로 탐구했다. 인서트 샷의 익스트림 클로즈업, 교차 편집 장면, 비선형적인 스토리 구조 등 놀란 특유의 작가주의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10 : 다크 나이트 라이즈 (Dark Knight Rises, 2012)

3편은 1편의 이야기를 2편의 어법으로 풀어낸 영화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는 트라우마를 똑바로 응시했다면, <다크 나이트>에서 숙적과 격돌했다. 그리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브루스의 노화, 금욕, 유산을 탐구한다. 놀란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와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을 참조해 개인의 도덕률을 넘어 비리와 부패로 취약해진 시스템을 개혁하려는 야심에 불탄다. 


브루스 웨인은 평생 스스로를 옥죄던 자아의 감옥으로 끝내 탈옥한다. 토마스 웨인은 평생 동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지만, 가난을 이기지 못한 범죄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 문제의 근원을 파헤치겠다고 포부를 밝혔으나 다수의 등장인물, 복잡한 설정, 플롯의 허점, 영화의 결말은 관객이 기대했던 바와 달랐다. 


그럼에도 브루스 웨인의 결연한 의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스크린에 펼쳐진다. 우리는 그가 아버지가 항상 말했던 대로 자신을 추스르고, 사랑하는 도시를 구하기 위해 살신성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9 : 인썸니아 (Insomnia, 2002)  

1997년 에리크 숄비에르그 감독의 <인썸니아>을 리메이크했다. 불면증으로 거의 일주일 가까이 잠을 못 잔 형사가 어린 소녀의 살인사건을 파헤친다는 누아르의 영역에 속하지만, 의도적으로 많은 문체적 관습을 뒤집었다. 해가 지지 않는 알래스카의 작은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놀란식 누아르는 그림자를 피하고 눈부신 빛으로 가득하다.


슈퍼 파워나, SF적 요소, 우주여행도 없고 그저 졸린 형사가 등장할 뿐이다. 알 파치노는 불면증과 싸우면서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사건을 수사해 나간다. 로빈 윌리암스는 친근한 이미지와 상반되는 범인을 연기한다. 힐러리 스웽크는 지역 경찰 역으로 등장해 분량 그 이상의 매력을 더한다.


놀란은 막대한 예산을 가지고 만든 시각적 스펙터클과 복잡한 플롯을 결합하려고 시도하는데, 이는 때때로 자신이 정성스럽게 구축한 내러티브를 배반할 수 있다. <인썸니아> 전체에 끊임없는 논리적 서스펜스와 드라마로 정면 승부를 벌인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더 함축적이며, 더 인간적이며, 더욱 공감하기 쉽다.



#8 :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놀란 형제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을 뛰어넘을 야망에 불탔다. 동생인 조나단 놀란은 각본을 쓰기 위해 칼텍(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물리학 공부에 매달렸다. 웜홀을 이용해 인류가 정착할 새로운 행성을 찾는 이야기는 고증이 완벽한 블랙홀을 묘사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트와 소품을 실제로 제작되었다. 덕분에 배우들은 그린 스크린에 서지 않을 수 있었다.


'쿠퍼(매튜 매커너헤이);가 블랙홀에서 만난 ‘무한 도서관’ 장면은 이론 물리학과 연기법의 인연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서 이미지 원형이 왔으나, 연기법 즉 원인과 결과의 상호작용을 뜻하는 정확히는 ‘인드라의 그물’을 형상화했다. ‘나는 현재의 무수한 존재들뿐만 아니라 내 선조인 과거의 무수한 존재들과 내 후손을 비롯한 미래의 무수한 존재들과도 똑같이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법을 가시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장면은 통해) 종교적·문화적·과학적 융합이 행해지고 3차원의 이미지와 5차원의 시공간이 연결되고, 부녀간의 사랑이 하나로 이어진다. 이 장면이 의미하는 바는 ‘과거가 현재의 원인이며 미래는 현재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를 양자역학으로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3차원의 공간과 1차원의 시간이 합쳐져 4차원 시공간을 이룬다는 것이다. 시공간이 휘게 만드는 것은 질량과 에너지를 가진 물체의 분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분포를 결정하는 것은 ‘시공간의 모양’이다. 이미지는 시각예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이다. 결국 시공간과 물체의 분포는 어느 쪽이 먼저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결정한다. 불교로 말하면 ‘연기법’이고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면 ‘슈뢰딩거의 고양이’ 즉 관찰대상과 관찰자의 상호관계(사물의 실재성)를 통해 설명한다. 우주 만물은 유기적으로 이어져있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모양만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많은 SF영화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반복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은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데 반해 놀란은 너무 많은 것을 대사로 설명한다. 신비로움을 설명하지 말라는 H.P. 러브크래프트의 조언을 무시한다. 그리고 인물의 감정선을 다루는 것이 투박해서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7 : 배트맨 비긴즈 (Batman Begins, 2005)

<배트맨 비긴즈>는 정말 독립적인 영화다. DCEU와 마블이 놀란의 성취를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유는 슈퍼 히어로 영화가 진정한 몰입형 경험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1막에서 훈련 몽타주를 사용하여 웨인의 기원담을 설득한다. 브루스 웨인은 결점이 많은 인물이다.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분노와 복수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성급한 성격에 자신의 두려움으로 타락했다. 브루스는 자신을 공포에 몰아넣은 박쥐를 표식으로 삼는다. 억압기제를 범죄자에게 공포를 심어준다는 발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내적인 두려움 또는 억압을 해처 나가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브루스는 또 다른 '나'를 창조한다. 새로운 나를 만들어냄으로써 과거의 나와 단절을 도모하게 되고, 그러한 단절을 통해 과거의 억압들로부터 해방된다. 여기에 착안한 할리우드는 한물간 프랜차이즈를 리부트와 비긴스 신드롬으로 되살리기 시작했다.


놀란은 조셉 캠밸의 비교신화학을 활용하되 자신만의 개성을 가미해 브루스의 성장과정을 오밀조밀하게 담는다. 히말라야 산속의 수도원, 향정신성 파란 꽃, 빙판 위에서의 검술 훈련 장면, 악명 높은 그림자 무사까지 기억에 남을 순간들을 줄줄이 생산해냈다.


      

#6 : 프레스티지 (Prestige, 2006) 

놀란 영화 중 최고의 극본을 갖고 있다. 놀란은 <메멘토>의 구성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영화는 마술사을 다루지만 그 자체로도 영화적 마법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마술의 3막 구조를 빼닮았으며 편집증을 동력원으로 삼아 전개해나가고 있다.


영화는 몇 개의 시간대를 번갈아 오가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보든이 앤지어 살인사건의 피고가 되어 재판을 받는 현재를 기반으로 삼고, 앤지어가 읽는 보든의 일기와 보든이 읽는 앤지어의 일기를 번갈아 보여준다. 서술 방식 자체가 두 라이벌의 경쟁이며, 고백이며 도전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긴장감을 자극한다. 종국에 철학적인 황폐함을 자주하게 된다. 삶과 죽음, 직업윤리, 시간, 이중성, 마법, 기억, 헌신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타인, 친구, 가족에 대한 헌신뿐 아니라 자신의 기술에 대한 헌신마저도 말이다. 



#5 : 오펜하이머 (Oppenheimer, 2023) 

아카데미 작품·감독·남우주연·남우조연·편집·촬영·음악상

중성자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핵분열을 일으키는 동안 이 원자폭탄을 기폭제로 2차 폭약(스트로스 제독)이 핵융합 반응으로 이어진다. 천재 과학자가 한낱 권력의 도구였다는 진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원자폭탄을 개발하는데는 찬성했으나 수소폭탄에 반대한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모순을 영화의 뼈대로 삼은 셈이다. 그는 정치가와 군인의 꼭두각시였을지언정 폭군 제우스에 당당히 맞선 지식인이었던 프로메테우스처럼 자신의 신념을 꺽지 않았다.



#4 : 인셉션 (Inception, 2010)

아카데미 촬영·음향·음향편집·시각효과상

아트버스터의 정점, 오슨 웰스 이후로 그 어떤 필름 메이커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오인'을 잘 다룬다. 어떤 음모를 종이접기 해서 복잡한 조각으로 접었다가 다시 펼쳐서 관객을 이성적으로 설득한다. 


놀란은 시간의 축을 횡(메멘토)으로 놓으냐 종(인셉션)으로 놓느냐를 두고 두 번의 극한의 실험을 했다. <인셉션>은 이야기의 흐름(X축)이 아닌 이야기의 폭(Y축)에서 서로 다른 층위 속에서 시공간(꿈)을 실험한다. 영화는 단순한 SF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 꿈을 훔치는 케이퍼 영화이기도 하고 본드 영화이기도 하며, 정신을 탐험하는 아방가르드 영화이기도 하다.  


주인공과 아내의 부부관계에 관련한 꿈과 현실의 개념은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탐구되지만, 각 꿈의 레이어에서 중력과 시간의 관계처럼 일부 인위적인 요소로 인해 플롯에 허점이 발생한다. 그것이 발견되기 힘들 만큼 영화 문법은 탄탄하고, 핵심 아이디어는 독창적이며, 시각적으로 혁신적이며, 결말을 내는 방식도 훌륭하다. 이러한 모든 업적이 놀란을 진정으로 독보적인 영화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해 준다.


                

#3 : 메멘토 (Memento, 2000) 

놀란은 소재나 주제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타임 점프, 인서트, 더치 앵글, 수렴적 내러티브 등 그의 시그니처 서사 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 


10분 전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선행적 기억상실증을 표현하기 위해 44개의 씬(Scene)을 이등분한다. 시간의 정순을 흑백의 22개의 씬, 시간의 역순을 컬러의 22개의 씬로 나눠 편집한다. 점선처럼 이야기를 교차시켜 망각의 역설을 전달한다. 물론 이 방식은 우리의 참여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2 : 덩케르크 (Dunkirk, 2017)

아카데미 편집·음향효과·음향편집상

놀란 스스로 '가장 도전적인 영화'라고 불렀던 <덩케르크>의 극본은 76페이지에 불과했다. 놀란은 중심이 되는 내러티브 없이, 감정이입할 중심인물 없이 시각적 '형식'에 올인한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와 매우 유사하다. 그가 좋아하는 영화적 장치인 교차편집을 사용했다. 덩케르크 철수작전의 전방위성을 ‘잔교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으로 삼등분한다. 


많은 필름메이커들이 기피하는 도전정신으로 가득 차 있다. 영화의 전체 구조는 무한히 이어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착청현상 셰퍼드 음(Shepard tone)의 영향을 받았다. 이를 통해 영화 내내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고조시킨다. 전쟁 박물관에 전시된 무기를 대여해 오고, 조명과 특수효과, 그리고 음악이 부족한 대사를 대신한다.  


놀란은 자신에 대한 비판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수정했다. <인터스텔라>, <인셉션>,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비판받던 다량의 대사와 인위적인 요소들을 과감히 쳐내고, 순수하게 전장을 체험케 하고, 병사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게 해 준다. 


           

#1 : 다크 나이트 (Dark Knight, 2008)  

아카데미 남우조연·음향편집상

<배트맨 비긴즈>의 성공 이후 할리우드는 리부트 열풍에 휩싸인다. 안타까운 히스 레저의 사망소식이 들려오며, 단숨에 최고의 기대작으로 급부상했다. 놀란은 조커를 통해 자경단이 시민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두 물체의 서로에 대한 상호작용은 언제나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이다는 뉴턴 역학을 활용한다. 영화는 모든 행동에 그 반대되는 크기의 반작용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커는 배트맨의 신념에 도전한다. 질서를 깨기 위해 혼란을 획책한다. 유람선의 시민들과 죄수들이 양자택일을 강요당했을 때, 그들은 선택을 포기함으로써 서로를 살린다. 한 명의 영웅이 우상화될 때, 권력은 독점될 것이다.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어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판한 것이다. 조커가 우상숭배와 프로파간다로 통해 하비 덴트를 타락시켰을 때 고담 시를 통제하려는 독재자가 탄생했다. 브루스는 자신이 배트맨이 활동하면서 희생해야 하는 것들을 기꺼이 감수한다. 투 페이스의 변절을 막고 그는 공공의 안녕을 위해 개인적인 명예를 포기했다. 


<다크 나이트>는 영웅과 자경단은 어떻게 구분되는가를 놓고 사상적 토론을 벌이다가 인류 전체는 선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크 나이트>의 성공을 통해 놀란은 워너로부터 감독으로서 전권을 부여받는다. 그의 최고작은 아닐지언정 그가 유명해졌기에 왕관을 씌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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