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R·2023》후기
베를린 필에 여성 상임지휘자는 1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영화는 현실에 근거를 둔 가상의 세계지만 본질은 불변이다. 아마도, 카라얀, 래틀, 푸르트벵글러, 번스타인 같은 실존 인물이 언급되긴 한다.
어쨌든 토드 필립의 구상은 '취소 문화(cancel culture)'의 도래 앞에서 권력관계를 탐구하는 것이다. 취소 문화란 #Me Too 같이 저명인을 대상으로 과거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언행을 고발하고 거기에 비판이 쇄도함으로써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잃게 만드는 소셜 미디어 상의 현상이나 운동이다.
남성이었다면 전형적인 스토리라고 비판받겠지만, 여성 주인공을 내세움으로써 여성이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권력구조로 바뀐다. 아담 고프닉(Adam Gopnik)과 인터뷰에서 그녀의 위대함을 강제로 주입시킨다. 전반부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어 선뜻 몰입하지 못하도록 구성해 놓았다. 이것은 독재를 공공이 하는 과정과 일치한다.
첫째, 뉴요커와의 독점 인터뷰는 프로파간다로 자신을 우상화시킨다. 둘째, 줄리아드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개최할 때 맥스라는 학생에게 바흐를 들어야 한다고 강의할 때는 그녀의 독재관이 명확히 드러난다. 타르는 작품과 작곡가의 삶을 동일시해서는 창작의 폭을 넓힐 수 없다고 주장한다. 편견 없이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그녀의 궤변은 일견 합당해 보이지만 그녀의 태도는 강압적이고 독선적이다. 이때 보인 언행의 불일치, 불손하고 모욕적인 태도는 후반부에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맥스는 정치적 올바름을 명분 삼아 바흐를 배척하는 예외를 인정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그녀는 단칼에 거절하고 그의 인격을 조롱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개별성을 파괴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어떤 이름으로 불릴지라도 독재다.”라는 명제에 딱 들어맞는다. 타르의 독선적인 성격은 딸을 괴롭히는 반 친구를 협박하는 장면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음을 보여준다.
셋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단속하는 부분에서 그녀가 타인을 계산적으로 다루고 자기 뜻을 폭압적으로 관철시키려는 것이 드러난다. 동성연인이자 제1 바이올린리스트 ‘샤론(니나 호스)을 통해 오케스트라 현악 파트를 장악하며 밀정으로 단원들의 동향을 살핀다. 2인자이자 클라리넷 연주자 세바스찬(앨런 코듀너)은 전임 지휘자 안드리스 때부터 근무해 온 베테랑이라 무시하기 힘들다. 타르의 지휘에 대해 참견하자 고령의 나이를 들어 은퇴를 권고한다. 악단장을 따로 불러 넌지시 뜻을 알리고, 단원들의 투표 대신에 상임지휘자라는 절대 권력을 이용해 그를 축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지휘자에 측근을 임명할 수 있고, 관악 파트마저 장악하게 된다.
넷째, 후계자나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제거한다. 비서이자 제자 격인 프란체스카(노에미 메를랑)에게 의존하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중히 쓰지도 않고 다른 곳으로 이적하지 못하도록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졸렬한 행태를 보인다 또 몸이 성치 않는 그녀가 대신 지휘를 맡은 ‘엘리엇 캐플란(마크 스트롱)’을 밀치는 장면에서 그녀의 권력욕을 상징적으로 묘사된다.
그녀의 제자이자 재능 있는 지휘자였던 크리스타(실비아 플로트)를 부당한 방법으로 쫓아낸 것으로 추측된다. 크리스타 사건이 언론에 대서특필되자 그녀의 권좌라 통째로 흔들린다.
타르는 재능 있는 유망주를 발견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곁에 두려고 한다. 연주회 때 엘가의 첼로 협주곡의 독주 기회를 수석 첼리스트에게 주지 않고 오디션을 빌미로 자기 마음에 드는 신예 ‘올가 멧키나(소피 카우어)’를 고른다. 지휘에 간섭한다고 정적을 탄압한 타르는 올가가 작곡에 관여하는 것을 묵인한다. 이러한 불공정한 처사는 타르가 올가에게 마음이 기울었다는 반증이다.
타르(케이트 블란쳇)가 말러 교향곡 5번을 해석하는 대목에 다다르면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를 전복할 의도임이 드러난다. 구스타프 말러의 5번 교향곡 4악장은 아내이자 뮤즈인 알마에게 바친 곡으로 유명하다. 이 곡을 사용하면서 타르를 레즈비언으로 설정함으로써 뮤즈 신화를 산뜻하게 전복시킨다. 남성 예술가와 여성 뮤즈와의 관계를 쿼어식으로 재정립한 셈이다.
전임자가 기껏 일궈놓은 관례를 깨자 첼리스트는 물론 오케스트라 모든 연주자들이 동요한다.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 정도면 다들 단독 앨범을 발매할 실력자들이다. 단원들은 지휘자의 음악 해석에 동의하지 않으면 "Pause"를 외치고 일종의 사보타주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콧대가 높은 양반들이다. 그런데, 새파란 애송이에게 특혜를 부여한 것은 단원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을 사게 된다. 최측근이자 배우자인 샤론부터가 이 결정을 반기지 않았다. 심복들이 배신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이권을 퍼주지 않으면 권력이 불안정해진다.
이쯤 해서 의미심장한 복선이 등장한다. 올가를 집에 데려다주고 그녀가 차에 남겨준 인형을 건네주려다가 지하로 내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검은 개가 등장하는 것으로부터 그녀의 추락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영화에서 리디아가 소리에 민감도가 높아지고, 악몽을 꾼다거나 낮에 환각을 본다거나 크리스타가 한때 그린 것과 비슷한 낙서에 시달린다. 딸 페트라를 위한 곡을 쓰면서 이웃의 시한부를 돌보고 있는 딸의 의료기기 소리에 방해를 받는다. 또 리디아의 줄리아드 강의를 조작한 유튜브 영상이 퍼지고, 크리스타를 성폭행했다는 기사가 뉴욕 포스트에 실린다. 또 그녀의 책을 홍보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했을 때 시위대를 만난다. 한편 리디아는 올가와 함께 크리스타의 부모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증언하러 참석한다. 원고 측에서 리디아에게 프란체스카와 크리스타 사이의 이메일 내용을 증거 삼아 유죄를 주장한다.
줄거리만 살펴봐도 추상과 리얼이 교차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작곡 중에 옆집 소음에 반응할 때 현실과 환각의 경계선은 붕괴한다. 이 장면이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보통의 작곡가는 머릿속으로 음악을 재생할 수 있다. 상임지휘자라면 두말할 나위 없다. 그리고 층간 소음이 심각한 대한민국에서 그럴 법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카메라 움직임도 그렇다. 타르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갑자기 그녀를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은 시점 쇼트나 뒷모습을 좇는 설정 숏이 등장한다. 이런 소격효과는 주인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필리핀 마사지숍에서 안마사를 고르는 장면이 오케스트라 편성을 닮은 점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음악을 들을 때 청중은 템포, 화성 같은 음악 용어를 몰라도 감동받는다."라는 레너드 번스타인의 비디오를 보는 대목에서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고 자 하는 바를 일깨워줬다. '음악은 음표(노트)들과의 관계와 그 진행 방향으로 정의되는 것'이라는 번스타인의 일침처럼 영화는 타르가 가졌던 권위주의, 독재 성향으로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마스터 클래스에서 타르는 바흐의 인생과 그 음악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했지만 영화는 그 반대쪽의 손을 들어줬다.
결말에서 그녀는 편견 없이 음악을 대하는 대목이나 허름한 식당에서 악보를 보는 장면에서 타르에 대한 과도한 비난은 경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음악에 우열은 없다는 메시지를 정통 클래식 이외의 지휘를 하는 그녀를 통해 전달한다. 또 예술가의 사생활과 예술 그 자체를 분리해서 판단해야 하는가를 되묻고 있다.
★★★★☆ (4.5/5.0)
Good : 예술과 예술가를 분리할 수 있는가? 예술에 우열이 있는가?
Caution : 클래식에 빗댄 미투 (취소 문화)
●권위에서 해방되는 것이 캔슬 컬처의 본의라는 것을 말이다. 동양인 연주자에 대한 유럽 클래식계의 위기의식도 지나가는 말로 나오고, 클래식에 정통한 극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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