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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Jan 30. 2024

추락의 해부*가정의 해부학

《Anatomie d’Une Chute·2023》

[줄거리] 남편의 추락사로 한순간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유명 작가 ‘산드라 보이터(산드라 휠러)’. 유일한 목격자는 시각장애를 지닌 아들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너)’과 안내견뿐. 단순한 사고였을까? 아니면 우발적 자살 혹은 의도된 살인?


㉠제목의 의미

《추락의 해부》은 법정 스릴러로 할리우드 법정 영화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이 말한 대로 오토 프레밍거의 〈살인의 해부〉에서 제목과 영감을 얻었다. 〈살인의 해부〉는 직접적으로 살인을 보여주지 않고 법정 진술만으로 살인 사건을 재구성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추락의 해부》은 사건의 인과관계보다 각 등장인물의 개별적인 동기가 남편, 아내, 아들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따진다. 즉 《추락의 해부》은 장르 영화의 틀 안에서 결혼 생활을 모든 각도에서 고찰한다. 이 지점에서, 후대에 나오는 수많은 부부간의 갈등을 다룬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잉마르 베리만의 〈결혼의 풍경〉처럼 가정의 붕괴를 매우 사실적으로 다뤘다. 제목은 의문의 추락사를 가리키지만 궁극적으로 가족의 붕괴를 뜻한다.


㉡ 영리하다 못해 교활한 각본

감독에 따르면 작가이자 남편인 아르튀르 아라리와 함께 각본을 쓰면서 많이 다퉜다고 했다. 실제 부부가 써서 그런지 152분 동안 지루함 없는 대중적인 호소력을 갖고 있다.


남편 사무엘을 잃은 상흔이 아물기도 전에 추락사에 대한 조사가 진행된다. (남편이) 스스로 뛰어내린 것이냐, 누군가가 뒤에서 밀었느냐의 문제로 치닫는다. 법의학적 세부 사항을 검토했으나 점점 타살에 무게가 실린다. 아내 산드라는 목격자에서 용의자로 추락한다. 재판과정에서 그날을 포함해 결혼 생활 전반이 산드라, 사무엘, 다니엘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타인(판검사, 경찰, 증인)에 의해 면밀하게 검토된다.


빌리 와일더의 〈검찰 측 증인〉처럼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캐릭터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이야기의 역동성을 부여한다. 특히 핵심 증인인 ‘아들’이 등장할 때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아들이 ‘시각장애’라는 설정은 혈육이라고 해서 그 가족 구성원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은유이다.


㉢ “이건 진실이 아니에요.” 인식론의 함의

나를 평가하는 외부의 시선

《추락의 해부》는 추락의 모티브(공이 떨어지는 장면 등)를 통해 가족관계를 해부한다. 아웃포커스로 피사체 외의 대상을 흐릿하게 하거나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극단적으로 표정을 잡는 식으로 인식의 경계를 보여준다. 각본은 영리하고 진실과 거짓, 인식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관객이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하게 한다. 이것을 핸드헬드, 방송화면 등 미편집한 원본(푸티지)의 거친 영상으로 진실과 거짓 사이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한다. 그리고 화각을 일부러 안정되게 잡지 않는 장면 또한 “그녀가 그랬는지 아닌지”를 시각화한 것이다.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우리는 한 가정을 엿보는 관음증을 느끼게 된다. 가정 내의 수많은 비밀이 폭로되고 그것을 가지고 진위를 따지기 시작하면서 정작 피폐해지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장점이다. 산드라 휠러가 영화에 등장할 때마다 눈부시지만, 차 안에서 오열할 때가 제일 보기 안쓰러웠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무엇을 믿고 선택해야 할까? 그것이 진실한지 거짓인지는 100% 보장할 수 없기에 취사 선택되거나 편향될 위험성을 갖고 있다. 50센트의 P.I.M.P〉가 흘러나온다거나 독일인이 프랑스 법원에서 제3의 언어 ‘영어’로 진술하는 대목은 정보의 전달이 온전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왜곡된 정보를 해독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이렇게 《추락의 해부》는 진실을 향한 우리의 인식에 도전한다.



★★★★ (4.2/5.0)


Good :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Caution : 법정은 우리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


올해 아카데미 5개부분 후보에 올라서 외국어영화상에 출품하지 않은 것이 신의 한수가 되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2개 부분 받아 프랑스 영화로는 선전했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고 해서 대중적이지 않다는 선입관은 없었으면 한다.


●리뷰 제목의 '가정'은 중의적인 의미로 썼다. 첫째는 家政(가족이 사는 곳), 둘째는 假定(임시로 놓은 것, 조건.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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