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破墓·2024》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에 대한 뚝심을 인정해 줘야 했다. 〈검은 사제들〉이 가톨릭의 구마 의식을, 〈사바하〉가 티베트 밀교에 이어서 《파묘》은 풍수지리 사상을 바탕으로 1995년 2월 내무부가 시행한 'OOO 뽑기(스포일러 방지)'를 소재로 삼았다.
《파묘》은 2부 구성으로 전반부는 조상의 묫자리에 둘러싼 미스터리에 기반을 뒀다. 조상숭배는 동서양 모든 문명권에서 발견되는 인류학적 현상이다. 그런 보편성을 바탕에 두고 장재현 감독은 한국의 지역성을 통해 우리의 파묘 의식을 퇴마물의 영역에 끌어들인다. 풍수지리의 오행설을 추가하기 위해 오컬트 장르를 분해하고 일렬로 줄을 세웠다. 이야기를 간결하게 다듬으며, 소금, 찹쌀, 말피 같은 토속 신앙을 적극 첨가한다.
후반부는 원혼을 달래는 무당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과 서양 유령 영화의 관습을 적극 끌어당겼다. 주인공과 원혼의 구도가 확고하므로 오컬트보다는 유령 퇴치 같은 대중성을 갖췄다. 초자연적 현상을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대응법도 구비해 놓았다. 4명의 전문가들에게 특기가 부여되어 있으나 앙상블을 100% 활용하진 않는다.
다시 말해 《파묘》은 캐릭터 무비가 아닌 직선적인 대결 구도를 목표로 한다. 장재현 감독에 따르면 원래 공포영화로 기획되었으나 코로나를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공포영화다운 관습, 사운드 디자인, 샷들이 자꾸만 궁금증을 일으킨다. 장재현 감독이 서스펜스엔 능하나 완급조절은 서툴. 134분 내내 긴장을 고조시키니 후반으로 갈수록 지친다. 이완 장치가 없진 않다. 최민식의 리액션, 유해진의 유머, 김고은의 무속신앙 몽타주 같은 것이 있어서 관람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이쯤해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장재현 감독은 원혼의 실체와 그 대비책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을까? 이에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상처와 트라우마가 많은데, 그걸 파묘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감독은 깊은 고민 끝에 한국인이 믿는 종교와 미신을 골랐다. (영화 속) 무속신앙이나 신점, 풍수지리, 개신교 같은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일상과 밀접하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굿을 벌이고, 대선후보가 무속을 신봉한다는 조선일보 기사에서 보듯이 영화의 상상력이 그리 허무맹랑하지 않다.
《파묘》은 한국적 정서와 지리, 민족 신앙에 자리 잡은 원초적인 두려움을 쫓는다. 원혼이 품은 한은 어떻게 정할 것인가? 조상님과 우리가 관련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족보, 호적, 성씨, DNA 등이 있다. 그중에서 감독은 ‘역사’와 ‘민족성’을 골랐다. 그 조상과 후손의 연결고리를 ‘부감 숏’으로 강조한다. 지금 대한민국을 불안하게 만드는 근원은 과거의 업보로 인한 것이라고 명시한다. 이 땅에 떠도는 역사적 망령을 살풀이한다고 해야 할까? 그것이 요즘 정세와 시의적절하게 맞아떨어진다.
★★★☆ (3.6/5.0)
Good : 가슴 아픈 과거사의 살풀이
Caution : 전반과 후반의 온도차
●파묘(破墓)란 묘를 이장하거나 화장하기 위해 기존에 만든 무덤을 파는 것을 뜻한다. 조상님이 계신 산소에 탈이 나, 질병, 단명, 불운 등 자손들이 해를 입는 ‘묫바람’이 일어나면 이장을 하기도 한다.
●후반 분위기가 급작스럽게 변한다고 느껴지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영화는 오행설, 풍수지리, 무속신앙 같은 한국적인 세계관으로 100% 짜이지 않았다. 영화의 주된 논리는 ‘완전(Perfectionism)’ 성화 교리이다. 극 중 인물들이 끊임없이 죄와 싸우려 하며 경건에 힘쓰는 모습이 이 교리와 맞아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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