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파트2》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영화는 묻는다. 프레멘의 구세주 ‘무앗딥’이자 베네 게세리트이 기다리던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내다보는 전지적 예언자 ‘퀴사츠 해더락’의 등장을 매우 회의적으로 추적한다. 폴(티모시 살로메)은 메시아인가 아니면 자기충족적 예언인가? ‘인류에게 (종교의) 초월적 존재가 왜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도달한다.
《듄파트2》에서 폴의 복수를 보는 것은 즐겁지만, 각성 이후 ‘난 괴물이 됐어’라고 깨어난 '예지력'에 대해 자학한다. 2부는 백인 구세주 서사를 따라가는 것 같지만, 소설의 주제가 담긴 3부〈듄의 메시아〉를 위한 빌드업이다. (3부에서 대활약할) 뱃속의 여동생 엘리야(안야 테일러 조이)가 수시로 등장한다. 원작은 느릿느릿하게 생태계를 설명하고 음모를 진행시키며, 최종장에 다다라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구조를 취한다. 그 영화를 찬찬히 뜯어보자!
㉡나는 반지의 제왕 외에는 듄에게 필적할 만한 SF물이나 판타지물을 알지 못한다 -아서 C. 클라크
지도자로 등극한 폴 프랭크 허버트는 J.R.R.돌킨의 〈반지의 제왕〉처럼 인류의 역사, 철학, 사상을 포괄한 대하소설 《듄》을 내놓았다. 〈스타워즈〉가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원질 신화(monomyth)'을 세계관의 원리를 정해듯이 허버트는 카를 융의 '집단 무의식(인류 전체가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무의식의 특징)'에 근거한다. 인류는 정신적인 가치에 의해 통합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앗딥 신앙(리산 알 가입)과 퀴사츠 해더락의 도래를 다루는 이유는 종교가 발명된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유발 하라리는 “오늘날 종교는 차별과 의견 충돌,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가장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다. 모든 사회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기 마련이다. 종교는 이렇게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다. 종교란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 정의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다니는 회사는 인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법률적으로 ‘법인격’을 부여한다. 국가는 역시 그러하지만, 헌법의 사회계약설로 그 허구성을 가린다. 민족 또한 단군신화 같은 건국 신화를 통해 한민족이라는 허구의 공동체를 형성된다. 인류가 허구의 실체(이야기)를 믿기 때문에 종교를 발명하고, 국가와 민족, 주식회사, 법률, 자본주의를 믿게 된 것이다. 이런 배경을 반영한 소설을 어떻게 스크린에 옮겨야 할까? 영화에서 익스트림 와이드 샷으로 수많은 민중과 군대를 포착하며 폴을 중심으로 뭉치는 모습이 등장한다.
클로즈업으로 폴의 표정을 살핀다. 그는 무앗딥으로 등극하지만 폴은 광신적인 프레멘을 경계했다. ‘퀴사츠 해더락’로 모든 미래를 알게 된 것은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확한 미래를 예지했다는 건 그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종교가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자신이 아끼는 이들이 고통받는 미래를 내다봤지만 이를 피하려고 애쓸수록 자기 자신조차 구원할 수 없게 예지력에 속박된다. 자세한 것은 3부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이븐 할둔의 〈무카디마(Muqaddimah, 성찰의 서)〉
영화에서 비중이 큰 '폴과 차니(젠데이아)의 러브스토리'에 답할 때가 됐다. 폴은 새로운 세력을 얻기 위해 프레멘을 포섭해야 한다. 폴의 진심이 어쨌던 간에 이들의 사랑을 정략과 델레야 뗄 수 없다. 어머니 제시카(레베카 페르구손)와 가신, 거니 할렉(조쉬 브롤린), 여동생 엘리야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폴은 프레멘의 무앗딥 신앙으로 개종한다. 이 과정에서 폴은 자신의 가치관과 프레멘의 무앗딥 신앙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것을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원작자 허버트는 ‘왕조에도 자연 수명이 있다’는 이븐 할둔의 역사관을 따랐다. 영화에서 폴의 아스트레이드 가문 그리고 코리노 황실과 하코넨 가문의 흥망성쇠는 〈무카디마〉의 가르침대로다. 복수심에 불타는 아스트레이드 가문, 군중심리를 조작하는 엘리트 계급, 메시아 신앙에 광신하는 프레멘, 배후에서 이들을 조종하려드는 초인집단 베네 게세리트의 흉계가 바로 그러하다.
이런 맥락을 알고 감상한다면 작품이 새롭게 보일 것 같아 짧게 소개하겠다. 왕조를 세운 1세대 집단은 억척스럽고 야만스럽다. 이걸 다르게 보면 적극적이고 용맹하고 소박하다고도 할 수 있다. 창업은 고통스럽지만, 그 영광은 창업 공신들과 나누며 서로 강력한 ‘연대의식’을 가진다. 이런 집단적 특성과 공통의 경험이 신왕조 건설의 힘이다. 2세대는 풍요롭고 안정된 왕조 생활에 젖어 든다. 1세대가 경험했던 곤궁함은 사치로 전환되고, 모두가 영광을 공유했던 상태에서 황제와 그를 둘러싼 극소수만 영광을 독차지한다. 그 결과 연대의식은 상당 부분 옅어진다. 하지만 2세대는 아버지 세대의 모습을 직접 보고 자랐기에 건국의 기풍을 기억한다. 3세대는 건국의 경험도 없고, 전부 전해 들었다. 그들은 번영과 안일한 생활에 대한 탐닉 속에 사치가 절정에 이른다. 3세대 사이에 연대 의식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공적 의식이 소멸되면 기득권의 사적 욕망을 잠재울 수 없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며 민중의 불만이 쌓여간다.
㉣덕후들의 진심
14살 때 소설에 반해버린 드니 빌뇌브와 ‘인생 소설’이라고 소개한 한스 짐머처럼 제작진은 진성 덕후들로 이뤄져 있다. 원작을 경애하고 이를 온전히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로 똘똘 뭉쳐 있다. 기체의 디자인은 곤충을 본뜨고, 세트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을 참조하고고, 복식은 시대극 전문가에 맡겨서 리얼리티를 확보한다. 흔히 SF영화는 상상력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원작자 허버트부터가 역사와 철학, 심리학을 근거해 소설을 썼다. 이러한 사실감이 SF영화를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한다.
각색은 어떠한가? 드니 빌뇌브 이하 제작진은 원작의 주제에 깊이 고민했다. 폴과 챠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통폐합했다. 그리고 챠니 등 캐릭터와 설정을 바꿔 원작의 본질을 선명하게 했다. 즉 영웅신화나 메시아주의를 경계했다. 이데올로기이든 종교 교리이든 무조건적으로 맹신하는 것을 경고한다. 그러나 적대자로 또다른 ‘퀴사츠 해더락’ 후보인 '페이드 로타(오스틴 버틀러)'에 집중함으로써 하코넨 남작, 황제 샤담 4세와의 대립구도가 약해졌다. 황제의 개입이 다소 뜬금없는 것 같지만. 원작과 2부 곳곳에 아슬란 공주(플로렌스 퓨)가 무앗딥을 기록한 것 이 내레이션으로 다뤄진다. 1부에서 아라키스 행성을 통해 하코넨 가문과 아트레이데스 가문 간의 분쟁을 조장한 것은 황제였고,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도륙할때 황제군이 출동했었다. 후반의 전개가 빠르기 때문에 캐릭터들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하지만 촬영감독 그레이그 프레이저는 촬영의 만신전에 들어갈 만하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처럼 유람하는 방식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관객을 아라키스 행성이라는 가혹한 환경을 관광하듯 즐기도록 비슷한 패턴으로 화면의 파고를 줄였다. 편집은 단조롭고 음악만 요란하다. 감정적 고조나 극적인 순간마저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지 않는다. 우리 눈앞에서 지켜보는 살육과 음모를 온전히 전달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 전부 보는 이에게 맡긴다.
★★★★ (4.2/5.0)
Good : 압도·장엄·웅장한 장인 정신
Caution : 3부 〈듄의 메시아〉 빨리 내놓길
■이번 별점은 잠정적이다. 이 시리즈는 3부를 다 봐야지만, 온전한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프랭크 허버트는 ‘초인은 인류에게 재앙이다’며, "지도자들의 실수는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자들에 의해 극대화된다"라고 했다. 허버트는 1권을 읽은 독자들이 '영웅신화'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2권 〈듄의 메시아〉을 집필해야 했다. 영화가 선악 구조를 뚜렷하게 하고 치열하게 대립하지 않는 까닭이다. 이번 각색이 폴을 비롯한 인물들의 각기 다른 꿍꿍이에 투자한 것이다. 듄 시리즈의 본질을 관통하는 사건 하나 소개하며 끝마치겠다.
1572년 8월 24일 프랑스 천주교 신자들이 프랑스 개신교들을 공격했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로 불리는 이 사건은 하루 동안 학살된 기독교도가 다신교를 믿던 로마제국이 제국의 존속 기간을 통틀어 박해한 기독교인의 숫자보다 많다.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나 모두 하느님을 믿고, 성경을 읽음에도 유일신교의 배타성이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눈 셈이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서양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가 역사학을 창시했다면, 이븐 할둔은 역사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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