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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Mar 04. 2024

가여운것들*이드의 기행문

《Poor Things·2023》노 스포일러 후기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피그말리온 신화를 완벽히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① 벨라의 여행 = 사회화

30대 성인의 몸에 태아의 뇌를 이식하여 되살린다는 설정은 ‘벨라 백스터(엠마 스톤)’를 ‘타불라 라사(Tabula rasa, 빈 서판)’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타볼라 라사는 인간이 태어날 때는 ‘빈’ 백지와 같은 상태로 태어나며, 출생 이후에 외부 세상의 감각적인 지각 활동과 경험에 의해 서서히 마음이 형성되어 전체적인 지적 능력이 형성된다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인간이 사회화를 학습하기 전인 ‘백지설(성무선악설)’로 리셋한다는 의미다. 


벨라는 창조자의 품을 벗어나 세계를 여행한다. 벨라가 고드윈의 저택(흑백 화면)을 나서 세상(컬러 화면)으로 전환된다. 런던 타운하우스, 파리 광장, 유람선, 리스본 거리, 알렉산드리아를 유람하면서 인간 사회를 학습한다. 그녀는 성차별, 제국주의, 빈부격차, 계급사회, 공중보건, 신의 유무, 여성참정권, 노동권 등을 체득하게 된다. 지식의 습득은 피조물에서 인간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처음에 ‘고드윈 백스터 박사(윌렘 대포)’를 신으로 떠받들던 그녀는 사회화 이후 그를 아버지로 여기며 일종의 부녀관계를 이룬다.


영화는 사회화를 어떻게 그릴 것인지에 대한 문제에 봉착한다. 란티모스는 프로이트의 아동 발달 5단계를 채택한다. 벨라를 해방된 이드(원초아, id)로 묘사한다. 이드란 생물학적 본능으로 자아와 초자아가 형성되기 이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 이드는 주변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쾌락 원리(pleasure principle, 쾌락적인 욕망을 수행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최소로 하려는 원리)에 의해 활동하며 즉각적인 만족과 긴장 감소만을 목적으로 한다. 아기들이 자신의 욕구가 채워질 때까지 울고 보채고 떼를 쓰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벨라는 성적 충동이자 정신활동의 에너지인 ‘리비도’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녀는 맥스 맥캔들리스(라마 유세프)와 던컨 웨더번(마크 러팔로) 등과 관계를 가지면서 활발하게 사회화되는 것으로 극 중 묘사된다. 당연히 다양한 금기, 터부, 불문율을 깨는 상황이 등장한다. 벨라가 파리의 매음굴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산수단이다”이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②고딕과 스팀펑크의 결합

관음증

란티모스는 빅토리아 시대, 즉 벨 에포크 시대를 그리기 위해 고딕과 스팀펑크를 결합한다. 바로크적인 화려한 인공 세트와 인공조명이 고전적이며 몽환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부자연스러운 색상, 어안 렌즈, 동화적인 맥시멀리즘 같은 란티모스의 특징이 발현된다. 


벨라의 사회화 과정을 의상으로도 표현된다. 벨라는 처음에는 하녀가 골라주는 대로 입는다. 백지상태였던 그녀가 세상을 배워갈수록 스스로 옷을 골라 입는다. 헐렁하고 펑퍼짐한 실루엣에서 몸에 착 달라붙는 드레스로 변화한다. 이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벨라의 상대들(고드윈, 맥스, 던컨)은 그녀를 통제하려고 든다. 우리가 사회화될수록 도덕과 신념, 가치체계들이 욕망을 억누르는 방어기제를 은유하기도 한다. 벨라가 겪는 치욕과 신경증 역시 이런 잣대로 해석하면 풍자와 위트로 다가온다. 창조주인 고드윈 자신도 아버지의 실험 때문에 흉터가 생겼다는 것도 일맥상통한다.


⓷ 영화의 주제

가장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 두 사람

영화 속 사건은 본능적 충동을 추구하는 원초아와 이를 금지하는 초자아 간의 마음의 평정을 깨뜨린다. 이럴 때 우리는 자아가 중재 역할에 나서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이것을 불안이라고 부른다. 불안감은 자아가 초자아와 원초아의 요구를 타협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심리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벨라가 인간 세상을 학습하면서 겪는 불안을 담고 있다. 그 불안은 예의범절, 관습,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세상을 바라보는 짜릿함이기도 하다. 그 부조리함과 파격적인 설정은 우리에게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간과하기 쉬운 음악을 살펴볼 때다. 일단 란티모스가 오리지널 스코어를 사용한 첫 영화다. 저스킨 펜드릭스 역시 영화음악은 처음이었다. 그의 음악은 얼핏 맥락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로 시작하지만, 재즈, 로큰롤, 블루스가 나왔다가 왜곡된 음향과 매끄러운 선율을 불일치시키며 끝난다. 음악적 특징은 피치(음높이)를 다르게 하는 디튠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특히 바이올린 소스(음원)를 여러 번 변주 혹은 디튠하여 불안하고 기이하게 들리면서 통일성을 이룬다. 백지상태였던 벨라가 겪는 지적 성장을 (괴상한 음악과 기괴한 영상이) 훌륭하게 반영한다. 즉 우리를 통제하는 억압하는 방어기제들을 전복하는 재미가 《가여운 것들》에 가득하다. 금기에 대해 도전하는 이 섹스 코미디가 우리를 둘러싼 가치체계가 온당한가를 되묻는다.


★★★★☆ (4.5/5.0) 


Good : 폭발적인 독창성

Caution : 금기에 대한 도전


●감독은 펜드릭스의 2020년 앨범 <Winterreise>를 들었을 때 창작 소울메이트를 발견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그리고 배는 간다〉(1983), 루이스 부뉴엘의 〈세브린느〉(1967), 멜 브룩스의 〈영 프랑켄슈타인〉(1974)을 레퍼런스로 삼았다. 옛 할리우드 영화처럼 비네팅 효과가 나는 광각렌즈를 사용하고,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촬영 방식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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