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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올해의 노래 TOP 100

Best Songs Of 2024

by TERU

올해 가장 핫한 음악계 뉴스는 ‘민희진-하이브 어도어 경영권 분쟁’이다. 작년 피프티 피프티 사태도 그렇고 K팝이 벌어들이는 수입의 크기가 커지면서 이런 일이 빈번해진 느낌이다. 사실 우리나라 엔터사들은 덩치만 커졌을 뿐 주먹구구식 경영방식을 갖고 있다. 회사가 가진 모든 자원과 역량을 연습생을 키우는 데 소모하고, 성공할지 안 할지도 불투명한데, 투자금은 한참 뒤에 회수하는 방식은 회계사의 의견을 빌리지 않아도 재무구조가 취약해지기 쉽다. 너무 급격한 성장세에 가려져 있지만 팝 음악계가 수십 년 전에 겪었던 여러 문제에 시달릴 것이 자명하다.


어쨌거나 민희진의 어도어 경영권 사태로 뉴진스 계약 해지로 이어지며 새로운 법적 분쟁을 예고하고 있다. 누가 옳은지는 재판정에서 판가름 날 일이고 우리 음악산업을 냉정하게 되돌아볼 때가 되었다. 우리 기획사 중에 매번 아이돌을 성공시킬 수 있는 회사는 하이브, JYP, SM 정도다. YG도 블랙 핑크와 빅뱅의 공백을 아직 메우지 못하고 있다. 그 아래의 중소기획사들은 그보다 기업의 역량과 자원이 부족하기에 연속적으로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줄어든다.


이런 후진적 아이돌 시스템 아래에서 뉴진스나 Ablume (煎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이 기획사의 역할은 미미한 것이고, 자신이 신뢰하는 프로듀서를 쫓는 일이 2년 동안 연달아 일어났다는 점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우려스러운 점은 이 사태로 인해 국제적으로 K팝 아이돌보다 그들을 육성하는 소속사가 히트 여부를 결정짓는 구조라는 세간의 인식을 줄 수 있다. 연습생에게 연습생의 트레이닝 비용 및 숙소 계약, 차량 운행, 물품 구매, 음반이나 영상물 같은 자체 제작 홍보물 등의 편의를 제공하는 기획사가 선투자하는 개념이고, 인기를 얻은 이후에 연예인의 수익에서 일정 비율 이상 회수하는 ‘전속계약’을 만약에 법원이 민법상 '위임계약'으로 판단한다면, 우리 음악산업은 붕괴될 것이다. 판사가 민법상 '위임계약'이라고 보면, 연예인이나 기획사가 마음대로 전속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면 누가 연습생을 육성하겠는가?


또 아이돌 스스로 A&R(Artists and Repertoire)를 담당하는 프로듀서가 성공의 열쇠라고 여기는 인식도 문제다. 꼭두각시에게 누가 따뜻한 시선을 보내겠는가? 미국처럼 음반사가 실력 있는 인디 뮤지션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업모델로 다각화하던가 아니면 일본식 지하 아이돌 형식으로 공연을 통해 조금씩 수익을 얻으면서 활동하는 방향을 택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연습생이 받는 대우는 기획사별로 천차만별이며, 미성년자 노동착취로 볼 구석도 제법 있다. 올해 기준으로 국제노총(ITUC)에서 대한민국을 5등급 즉 법·제도적으로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수준으로 평가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노동에 있어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있다. 머지않아 아이돌 육성 시스템은 어떤 식으로든 개편되어야 할 것이다.




■번외■ ASMRZ, 잘자요 아가씨

류헤이와 다나카의 협업 싱글은 한국에서는 J-POP이라 손사래 치고, 일본에서는 K-POP이라고 떠넘기고 있다. 한일 양국에서 부정당하는 후크송은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올해 가장 충격적인 노래 중 하나였다.


#100 : 이영지 Small Girl (feat. 도경수(D.O.)

이영지는 데프콘처럼 힙합 너머로 영역을 확장한 몇 안 되는 래퍼다. 그 인기에 힘입어 키 큰 여자와 키 작은 남자가 상대의 콤플렉스를 배려하는 모습을 예쁘게 노래한다. 더욱이 두 사람이 실제 나눈 SNS 대화를 가사에 병치하여 진정성을 획득한다.


#99 : 라이즈(RIIZE), Boom Boom Bass

'Get A Guitar'의 속편은 베이스의 가치를 재발견한다. 〈Thriller〉, 〈Billie Jean〉을 닮은 베이스 리프로 중심을 잡고, 그 주위를 여러 악기와 맴버들의 화음으로 감싸는 구조다. 펑키(Funky)한 질감에 K팝의 랩과 퍼포먼스 파트를 줄여서 경쾌함이 맑고 순수한 이미지를 추출한다.


#98 : ≒JOY, 初恋シンデレラ

사시하라 리노가 관리하는 ≒JOY는 얼핏 양산형 아이돌 같았다. 2번째 싱글 「첫사랑 신데렐라」는 멜로디 스피드 메탈을 밑바탕에 두고 있다. 잉베이 말름스틴이 활약하던 그 시절의 속주 기타는 판박이다. 그때처럼 중량감 있게 베이스와 드럼을 강조하지 않아 사운드는 경량화되었고 애교 가득한 비음 코러스가 오글거리지만 말이다.


#97 : 마일스 스미스, Stargazing

올해의 포크 영웅을 만나보자! 두 번째 EP 《A Minute...》에 수록된 노래 덕분에 틱톡에서 스타로 등극했다. 친구들과 말리부에서 일몰을 보는 순간에 영감을 받아 썼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후렴구가 즉각 떠올랐다고 한다. 그 즉흥성이 별빛의 따스한 온기로 온누리에 발산된다.


#96 : 린킨 파크, Heavy Is The Crown

만약 T1이 우승하지 않았다면 이곡을 소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2024 월드 챔피언십 결승 개막식에서 공연으로 라이엇 게임즈의 부주의한 뮤직비디오의 오명을 말끔히 씻어냈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에서 인용한 ‘왕관`의 무게라는 서사는 이 대회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음악적으로는 초기 1·2집의 감성을 팬들에게 선물한다.


#95 :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Deja vu

제목처럼 재회의 순간은 기시감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한다. 너와 나는 반드시 다시 만난다는 과거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소년들의 다짐처럼 들린다. 레이지(Rage)로 진행하다 ‘약속’과 ‘기억’ 같은 단어를 강조할 때 이모 코어를 섞는다. 기존 발표곡 '투모로우'의 속편임을 숨기지 않으며 기타 연주로 그 꿈을 이룰 것을 팬들에게 다짐한다.


#94 : 엔하이픈(ENHYPEN), ‘XO (Only if You Say Yes)’

하이브는 작년부터 가장 서구적인 K팝을 제작해 왔다. 엔하이픈 역시 JVKE가 프로듀싱한 신스팝과 R&B을 내세웠다. 몽환적인 신시사이저와 유쾌한 펑크 기타가 정원, 희승, 제이, 제이크, 성훈, 선우, 니키의 보컬 하모니를 부드럽게 감싼다. 특별한 네가 원한다면 불구덩이라도 들어가는 사나이의 순정을 ‘순한 맛`으로 전달한다.


#93 : 아일릿(ILLIT), Magnetic

이 곡의 포인트는 좋아하는 상대를 향한 마음을 ‘자기장`에 비유했다는 점이다. 이를 청각화(淸覺化) 하기 위해 게임 효과음과 R&B 화음을 쌓는 식으로 귀엽게 표현했다. 플러그앤비(PluggnB)로 홍보했지만, 이 노래의 근간은 하우스다. 신시사이저와 탄탄한 베이스라인이 앞서 말한 즉흥성을 충분히 발휘될 활기참을 제공한다.


#92 : 아이브(IVE), 해야

아이브가 해왔던 전략을 고수한다. 웅장함을 강조한 사운드, 우리 전통문화, 파격적인 장르 넘나들기를 그대로 들고 나왔다.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고 했던가 그처럼 그룹의 정체성을 지키며 인기를 연장하는 것은 생각보다 난도가 높다.


#91 : 뷔 박효신, Winter Ahead

K팝에서 이렇게 고풍스러운 Jazz 넘버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세계 최정상의 아이돌이 국내 최고의 보컬리스트를 섭외했음에도 주인공 자리를 꿰차지 않는다. 놀랍게도 두 싱어는 색소폰과 트럼펫, 프리페어드 피아노, 베이스, 드럼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했다.


#90 : 테디 스윔스(Teddy Swims), "Lose Control"

록인가? 팝인가? R&B인가? 장르를 초월한 노래는 작년 6월에 발표되어 틱톡과 유튜브를 통해 널리 퍼져갔다. 32주 연속 순위 상승은 빌보드 역사상 최장 연속 상승 기록으로 바이럴 마케팅을 통해 정상에 올랐다.


#89 : 제이홉(J-Hope), Neuron (With 개코, 윤미래)

자전적 다큐멘터리 〈Hope On The Street〉에 발맞춰 발매한 음반의 타이틀이다. 정호석이 ‘춤’에 빠졌던 2000년대 국힙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곡이다. 처음 들을 때, 박자를 쪼개는 방식부터 그 당시의 랩 전설들을 초빙해 자신의 음악적 뿌리에 대한 경외감을 더한다.


#88 : 캣츠아이(Katseye), ‘Touch’

하이브와 게펜 레코드가 함께 론칭한 6인조 걸그룹은 K팝이 해외에서 먹히는 공식을 재탕한다. 해외 언론에서 100만 명이 시위를 해도 자동차와 상점이 멀쩡한 우리나라를 보고 느끼는 놀람과 신기함을 음악에도 똑같이 보여준다. 욕설과 섹스가 없이도 들을 수 있는 안전함이 품질을 보증한다. 덤으로 동작이 딱딱 구분되며 영역이 겹치지 않는 안무는 K팝을 인증하는 마크다.


#87 : 맨스티어(Men's Tear), AK47

정치인들(내란 수괴는 제외)은 정치 비평에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유명 래퍼 말대로 ‘일개 개그맨 유튜버“가 만든 이 ’긁‘가불기에 반응해서는 안 되었다. 대중들이 이렇게 호응한다는 건 그동안 국힙 시장에 크게 왜곡되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겸허하게 국힙이 나아가야 할 해법을 다 함께 고민해 보는 것이 더 현명할 듯싶다.


#86 : 카디(KARDI), Havin' A Good Time

최근 국내 가요 경향은 기타의 비중을 줄이는 데 반해, 이 팀은 아무래도 밴드라서 그런지 기타 리프를 전면에 내세웠다. 애초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받은 따스함, 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쓴 곡이라 그런지 마냥 방방 뛰어노는 천진난만함이나 청량한 여름 노래의 클리셰를 답습하지 않아 더욱 와닿았다.


#85 : 지지 페레즈(Gigi Perez), "Sailor Song"

영국 1위 곡은 어느 날 샤워하다가 악상이 떠올라 침실에서 즉석에서 썼다고 한다. ”Oh, won't you kiss me on the mouth and love me like a sailor? 내 입술에 키스해 줄 수 있어? 뱃사람처럼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어? “라며 신화적인 로맨스를 생생하게 그리며 틱톡 리스너 사이에 퍼져나갔다. 왜냐하면 ”I don't believe in God, but I believe that you're my savior (나는 신은 믿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의 구세주라는 건 믿어)“이라는 절절한 그리움에 누구나 공감했기 때문이다.


#84 : Robbie Williams, Forbidden Road

본인의 전기 영화를 제작하면서 참회의 노래를 주제가로 앞세운다. 영화는 풍자적인 뮤지컬로 테이크 댓으로 데뷔해서 솔로로 성공한 지난 30년간의 음악 생활을 되돌아본다. 그는 영국식 코미디처럼 자기 비하로 서두를 연다. 중반부부터 가스펠 합창이 더해지며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반성하며 후회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83 : 글로릴라(GloRilla), ‘TGIF’

위협적인 신시사이저로 가득 찬 트랩 비트는 빠르게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장악한다. 〈TGIF〉로 지난 10년 동안 집과 자녀, 두 마리의 골든 레트리버를 공유한 결혼 생활을 청산한다고 발표한다. 또한 더운 날씨에 돌싱녀가 혼자 밤을 보낼 수 있는 완벽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82 : 메간 디 스탤리온(Megan Thee Stallion), ‘Hiss’

스탤리온의 세 번째 넘버원 싱글은 피처링 아티스트 없이 단독으로 달성한 위업이다. 많은 법적 문제를 뒤로하고 창작권을 획득하며 마음껏 의지를 표출한다. UGK식 랩플로우로 외부의 적들 드레이크, 토리 레인즈, 다베이비, 니키 미나즈를 처단한다. 참고로 최근 트와이스의 신곡에 참여했다.


#81 : 이날치, 봐봐요 봐봐요

국악 K팝을 유행시켰던 이날치는 돌아왔다. 3년 만의 복귀. 2020년 ‘범 내려온다’로 K팝의 판을 뒤집었던 밴드가 새로운 음악 한 마당을 펼치기 시작한다. OST 등 간간이 작업물이 나오기도 했지만 멤버 교체를 겪으며 컴백 시기가 길어졌으리라. 그럼에도 베이시스트가 2명이라는 점과 요즘 보기 힘든 남녀 혼성 보컬(소리꾼)이라는 부분은 변하지 않았다.


유일한 연주 악기인 베이스와 드럼이 리듬을 잡으면 보컬은 사운드를 채운다. 고수와 단둘이 장단을 맞추는 판소리에 비하면 화려하지만 가요의 기준에서는 단출한 이 개성적인 구성을 효과적으로 살렸다. 의성어, 의태어 가득한 가사, 어구와 음절이 반복하는 후렴, 해금인지 목소리인지 분간이 안 가는 사운드 등이 신시사이저와 함께 오밀조밀하게 섞여 들어간다. 국악의 대중화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릴지 몰라도 이날치의 소리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80 : Green Day, Goodnight Adeline

14집〈Saviors〉는 트럼프 재집권을 우려하는 애국심에서 출발했다. 분열과 혐오의 시대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을 진지하되 심각하지 않게 표현한다. 빌리 조 암스트롱은 어쿠스틱에 실려온 서정성을 세월의 무게만큼 진중하고 깊이 있게 전달한다. 그 무르익은 울림이 음악적으로 크게 새로울 것이 없는 클리세를 벗겨낸다.

#79 : 샤부지(Shaboozey), “A Bar Song (Tipsy)”

J-Kwon의 2004년에 발표한 랩 송 〈Tipsy〉을 샘플링해 릴 나스 엑스의 "Old Town Road"와 19주 1위로 동률을 기록한다. 빌보드 정상에 오른 첫 번째 흑인 ‘컨트리’ 남성 가수라는 점은 스트리밍 시대는 장르를 거의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또한 나이지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남부 흑인과는 무관하다는 점이 남부 백인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았다.


#78 : Creepy Nuts, Bling-Bang-Bang-Born

DJ 마츠나가와 R-시테이로 구성된 2인조 랩 그룹이 발표한 애니메이션 주제가다. 저지 클럽 트랙인 〈Bling-Bang-Bang-Born〉은 스타카토 랩을 싱잉 랩처럼 부르는 것 같은 R 특유의 랩도 독특하다. 그리고 높은 채도의 단색 배경이 돋보이는 오프닝 영상이 맞물려 쇼츠 챌린저로 국제적인 성공을 거뒀다.


#77 : 우원재, 스물아홉 (29)

〈서른 즈음에〉의 힙합 버전, 20대의 마지막을 앞둔 음악가들은 그 소감을 오선지에 적어왔다. 고작 숫자 하나 바뀌는 것인데도, 인생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가져온다. 동년배 청춘이 느낄 법한 번뇌가 랩 구절마다 녹아있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르고 싶어지게 한다. 브릿지를 거쳐 마지막 벌스, 후렴구를 뒤로하고 ‘성숙`을 소리로만 표현하며 짙은 여운을 남긴다.


#76 : 아이들스(Idles), POP POP POP

포스트 브렉시트 뉴 웨이브(post-Brexit new wave)는 최근 몇 년간 브렉시트, 즉 영국의 EU 탈퇴로 인해 야기된 사회적 혼란은 인디 씬에 큰 자극을 주었고, 걸출한 신인 밴드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스도 정치성을 드러내길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5집 〈Tangk〉에 들어서는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주제를 그렸다. 그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곡이 바로〈POP POP POP〉이다. 이전보다 풍부하고 여유로운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다.


#75 : f5ve, ‘Underground’

일본 걸그룹 파이브는 하이퍼팝의 동시 접속성을 실체화한다. 레이브 문화, 파라파라 댄스 동작을 검색하고 사회적 압력에 벗어나자는 메시지를 포스팅한다. 조증적인 행복감은 일본적인 음침함으로 다가온다. 다섯 멤버가 합창할 때의 초현실적인 청각적 풍경 ‘메이와쿠(迷惑)’로 대표되는 일본인의 집단주의 의식을 엿보는 것 같아 소름 돋는다.


#74 : 유재하, 별 같은 그대 눈빛

1982년 겨울, 유재하의 오랜 친구였던 레모네이드의 기타리스트 유혁이 심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부른 〈별 같은 그대 눈빛〉를 카세프테이프로 녹음했다. 유혁은 2023년 초부터 이 곡을 복원하려고 시도했으며, 비틀스처럼 AI로 유재하의 목소리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고, 유재하의 어긋난 기타 조율을 제거하고 자신이 새로이 연주한 기타 반주를 입혀 발매했다. 그래서 고인의 노래를 크게 손대지 않은 데모나 다름없는 음원이다.


#73 : 아드리안 렝커(Adrianne Lenker), Free Treasure

미국 밴드 빅 시프(Big Thief)의 프런트우먼은 여섯 번째 솔로 앨범〈Bright Future〉을 발표한다. 그 음반에 수록된 ”Free Treasure “는 포크, 컨트리, 사이키델리아가 황금비율로 섞여 있다. 이 서정성은 수년 동안 인간 세상과 자연 세계를 수없이 관찰해 온 깊이 있는 가사와 독특한 핑커 픽 기타 연주가 바쁜 현대인에게 여유와 사색을 권한다.


#72 : 제임스 블레이크 (James Blake), Like The End (Live)

싱글로 발매된 버전보다 라이브 공연 클립을 보시길 권한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지 않으냐`라는 물음이 불안정한 현 정세를 대변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매드니스〉을 위해 준비한 노래로, 2024년의 전쟁과 경제, 트럼프 재선을 둘러싼 광기와 국가의 상태에 대한 일종의 코멘터리로 들린다.


#71 : Pearl Jam, Dark Matter

동명의 12번째 스튜디오 앨범의 타이틀곡은 90년대 이후 가장 만족스러운 음반이다. 수록곡인〈Wreckage〉와 〈Upper Hand〉이 더 위대한 트랙일지 날카로운 가사와 송곳 같은 리프가 격렬하고 초조하게 가슴 졸이게 하면서도 전성기가 연상되는 영광의 불꽃을 간직하고 있다.


#70 : 머니 롱 (Muni Long), Made For Me

혹시 저메인 듀프리와 브라이언 마이클 콕스를 아시나요? 머라이어 캐리의 “We Belong Together", 재기드 에지(Jagged Edge)의 "Let's Get Married", 어셔의 "Confessions Part II", 메리 J 블라이즈의 "Be Without You" 같은 명곡을 쏟아내던 왕년의 형님들이 돌아왔다. 그 당시 베이비페이스로 대표되는 선율을 앞세운 컨템퍼러리 R&B가 모바일 시대에도 사랑받고 통용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69 : 규빈, Special (With 김종완 Of 넬)

침울할 때 〈Special〉을 듣고 있을 때 우리를 특별하게 해준다. 곡은 슬픈데 가사가 희망적인 아이러니가 핵심이다. 원래 더 느리고 침울한 노래였으나 규빈이 과거의 ‘규빈’과 아직 방 안에 홀로 웅크리고 있는 친구들에게 위로가 되길 원해서 수정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68 : 진, I’ll Be There

우리 가요에 로커빌리가 흥한 건 1996년의 걸의 〈아스피린〉이후 오랜만이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돌 음악은 여유로운 편안함과 친구 같은 친근함을 잃어버렸다. 진은 그 빈 공간을 공략한다. 이 응원가는 탑라인이 간결하고 아주 직관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흥겨움, 삶이 지칠 때 곁에 있어 주겠다는 따뜻한 가사, 시원하게 막힘없이 쭉쭉 뻗는 진행은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현실도피성 도파민을 잔뜩 주입해준다. 힘을 북돋아 주려는 그 마음에 감동해서 생각보다 높은 순위에 책정했다.


#67 : 원슈타인, 안 아름답고도 안 아프구나

비투비의 〈아름답고도 아프구나〉에 대한 답가는 큰 호응을 얻었다. 원곡은 어쿠스틱 기타에 오케스트레이션을 동반한 절절한 적막함으로 눈물 젖게 했다. 반면에 원슈타인은 원곡에서 기타와 비트만 놔두고 여백을 둔다. 담담히 감정을 읊기에 역설적으로 처연한 감상을 소환한다. 파생된 작품임에도 원곡의 정서를 해치지 않고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구나’를 공감대를 형성한다.


#66 : 포스트 말론(Post Malone), I had Some Help (Feat. 모건 월렌)

한국 음식에 고추장이 반드시 들어가는 것처럼 팝 음악에는 포스트 말론이 있다. 어떤 아티스트랑 어떤 장르랑도 잘 어울리는 유연함이 돋보인다. 1990년대 루츠 록의 향수와 2000년대 오토튠 보컬의 조합이 그야말로 믹스팝의 지향성을 보여준다. 시대의 조류를 읽는 감각과 모나지 않은 둥글둥글한 캐릭터, 곡 자체의 흡인력에서 포스트 말론의 안목을 알 수 있다.


#65 : 토미 리치먼(Tommy Richman), “MILLION DOLLAR BABY”

버지니아주 우드브리지 출신의 래퍼는 팝의 하위장르들을 한데 모은다. R&B 펑크, 808비트, 풍부한 베이스라인, 남부 트랩이 교묘하게 엮어 플랫폼에서 바이럴을 탔다. 리치먼은 소니 리스턴이 1964년 시합 전에 무하마드 알리에 대한 모욕으로 던진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는 문구를 통해 세상의 모든 약자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64 : 지코, Spot! (Feat. 제니)

모바일 시대에는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준비해야 한다. 지코는 좀체 종잡을 수 없는 아이디어를 구간마다 매설해 놓는다. 일렉 기타와 보코더, '땀 뺐으니 내 뒤에 딱 붙어 아이스크림 먹으러 나가자'라는 펀치 라인을 터트리는 식으로 청자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63 : 비비(BIBI), 밤양갱

장기하는 일부러 가수의 이미지에 부합되지 않는 노래를 준비했다. 마칭 스네어 드럼을 앞세운 왈츠 리듬을 앞세워 비비에게 대중적인 히트곡을 선물한다. 이런 파격적인 변신은 그동안 동떨어져 보이던 청취자의 범위를 확장하는 데 성공한다.


#62 : 투어스(TWS),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EP 〈Sparkling Blue〉에서 가장 이질적인 곡을 타이틀로 밀었다. 도입부부터 찬란한 신스 사운드에 드럼으로 귓가를 사로잡는다.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이어가지만, 후렴에서 리듬만 남겨두는 발상이 재밌다. 첫 만남의 설렘, 데이트할 때의 막연함을 대비하는 가사를 기타 연주로 표현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61 : 누비아 가르시아, "Triumphance"

재즈 그룹 에즈라 콜렉티브(Ezra Collective)가 새 앨범을 발표하기 불과 일주일 전, 런던의 색소폰 연주자 누비아 가르시아(Nubya Garcia)는 3집〈Odyssey〉를 발표했다. 그중에 한곡을 추천한다면 마지막 곡 'Triumphance'를 꼽을 수 있다. 묵직하고 촘촘한 드럼 연주와 랩과 합창단의 화음을 배경으로 하고, 색소폰 킬러 라인을 절대적으로 추앙한다.


#60 : 딘(DEAN), NASA (Ft. FKJ)

겨울이 찾아오자 딘은 프렌치 하우스 아티스트 FKJ(French Kiwi Juice)과 협업 싱글 두 곡을 공개했다. 〈Ctrl〉이 훨씬 더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데 반해 〈NASA〉는 피아노 루프에 나른한 보컬을 얹는다. SF형식을 빌린 몽환적인 컨셉의 연장, 가사에 오랜 공백에 대한 입장문을 실는 방식은 여전하다. 시종일관 편안한 무드로 음의 높낮이마저 절감한다. 중요한 점은 과잉의 반대편에 서고 싶은 미니멀니즘 미학이다. 퍼커션과 관악기로 더해지는 편곡 외에 모든 작업이 간소화하고 코러스마저 선을 넘지 않는다.


#59 : 아리아나 그란데, We Can’t Be Friends (Wait For Your Love)

7집 〈Eternal Sunshine〉 발매를 앞두고 불거진 불륜 소식에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녀는 유로팝에 눈길을 돌린다. 작곡 측면에서는 로빈의 "Dancing On My Own"를 참조했고, 가사는 로빈의 “Call Your Girlfriend”와 유사하다. 짐 캐리의 로맨스 영화를 오마주한 뮤직비디오로 인해 러브송으로 볼 수 있으나, 그란데와 미디어 및 대중 간의 인식 차이에 관한 것이 좀 더 타당해 보인다.


#58 : 사브리나 카펜터, Espresso

이 여름 노래는 도자캣의 'Say So'로 대중화한 문법을 다듬은 정도다. 금발벽안의 10년 차 싱어송라이터는 곡의 특별함보다 캐릭터로 승부한다. 나른한 디스코 위에 중독성 높은 카페인 멜로디가 더해지며 그녀는 청자를 유혹한다. 특히 "that's that me espresso"는 같은 언어적 트릭은 팬들에게 귀여운 여우짓으로 받아들여진다.


#57 : Artemas, I Like The Way You Kiss Me

남녀 관계의 진도의 개방성을 놓고 벌이는 내적 투쟁을 긴장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상대와 확신할 수 없는 성적인 긴장감을 다크 웨이브 즉 80년대 신스팝에 뿌리를 두고 요즘 유행하는 얼터너티브 팝을 쌓아 올린다. 질주감을 잃지 않으면서 여러 음악적 요소를 살짝 덜 마감함으로써 오는 미묘한 질감이 짙은 여운을 남긴다.


#56 : 유다빈밴드, 털어버리자 (Feat. 하현상)

서바이벌 방송〈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에서 3위를 차지한 유다민 밴드는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의 고민들을 다 털어버리자'라며 5세대 아이돌 사이에 불고 있는 청량한 기운을 어쿠스틱 기타와 키보드 중심으로 담백한 보컬로 신파를 배제하며 활기찬 에너지만 남긴다.


#55 : 조(Djo), End Of Beginning

〈기묘한 이야기〉로 알려진 배우 조 키어리는 2022년 〈Decide〉를 발표한 후 가수활동을 병행해왔다. 복고적인 사이키델릭 노래는 틱톡을 달구며 흥행에 성공한다. 느린 호흡, 영화적인 서사, 고풍스러운 장식음, 웅장한 후렴구에 틱톡 이용자들을 중독시키며, "날 믿어, 넌 괜찮을 거야"라는 위로의 말로 공감시킨다.


#54 : 윤종신, Urban Night Ft, 하마다 킨고

윤종신은 시티팝 장인을 찾아 열도를 방문했다. 올해 4월호 〈Urban Night〉는 벌써 2020년 7월호 〈기분〉과 8월호 〈생각〉, 2022년 5월호 〈Rainy Happy Day〉와 7월호 〈Summer Drink〉에 이은 다섯 번째 협업이다. 그러나 하마다 킨코와의 여섯 번째 콜라보는 기존의 ‘여름 풍경`에서 탈피해 도시의 밤을 초점에 맞췄다. 하마다 킨고의 지휘 아래 동경의 스튜디오 탄타에서 일본 연주자들이 ‘시부야 스크램블’로 대표되는 쏟아지는 인파 틈 아래에서 고독한 현대인의 공허함을 낭만적으로 해석한 일본식 AOR 미학을 완성했다.


#53 : 빌리 조엘, Turn The Lights Back On

17년 만에 발표한 신곡은 감동적이며 기술적으로 훌륭하다. 75세의 노장은 곡을 쓸만한 소재를 찾지 못했다며, 오랜 공백을 설명한다. 사정이야 어떠하든 우리를 그의 전성기인 1970년대 후반으로 데려간다. 서정적이며, 비장한 각오가 느껴지는 곡조에 열정적인 보컬은 칠순의 할아버지라는 물리적 한계마저 잊게 한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시티팝 정확히는 AOR의 거장의 귀환은 반갑고 만족스럽다.


#52 : 퓨처, 메트로부민 "Like That"

이 곡은 랩으로 (1차 대전의 발단이 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를 암살한 것이나 진배없다. 드레이크(Drake)와 제이 콜(J. Cole)의 'First Person Shooter'에 대한 대응으로 힙합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메트로 부민이 로드니 오와 조 쿨리의 "Everlasting Bass"을 샘플한 하드코어 힙합곡은 켄드릭의 선전포고를 제외하고도 그 자체로도 훌륭한 파티 음악이다.


#51 : 스카이워터(skaiwater) “Rain”

영국 노팅엄 출신 타일러 브룩스의 음악은 XXXTENTACION, Juice WRLD, Lil Peep 같은 이모 랩의 연장선에서 이해된다. 릴 우지 버트의 우울한 멜로디나 플레이보이 카티의 음높이 변환의 특징도 발견할 수 있으나 예상치 못한 808의 난입이라던지 전혀 영국적이지 않은 랩 송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골치 아픈 뉴스(브렉시트)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Z세대의 현실도피 욕망을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는 표본이다.


#50 : 타일라(Tyla), “Truth Or Dare”

요하네스버그출신 22세의 가수 타일라는 아프리카 최초의 글로벌 팝스타가 되겠다는 사명을 잊지 않았다. 아마피아노(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기원한 하우스의 하위장르)를 전 세계에 유행시킨 "Water"는 데뷔 LP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미국식 R&B를 능숙하게 소화하며 하우스 리바이벌에 동참한다. 특히 "Truth Or Dare"로 하우스에 내재된 현실도피를 이국적인 관능미로 풀어냈다. 최근 팝 음악에 부는 아프리카 전통을 이으려는 경향을 반영한다.


#49 : 키스 오브 라이프(Kiss Of Life), ‘Sticky’

올해 소비된 Y2K 감성의 원류는 컨템퍼러리 R&B다. 기존 K팝과 달리 비트메이킹보다 보컬 하모니에 집중되어 있다. 벨, 하늘, 나띠, 줄리에게 고음을 주문하지 않고 음색의 조화에 신경을 많이 썼다. 또한 기존의 강렬한 힙합 사운드와 거리를 두고 청량한 기운을 강조했다. 밀레니얼 기조 아래에 담백하게 첨가된 ‘아프로비트`가 요즘 노래라고 조용히 외치고 있다.


#48 : 체이스 앤 스테이터스(Chase & Status), Stormzy – BACKBONE

체이스 앤 스테이터스는 13년 전 〈Blind Faith〉를 발표하며 성공을 거뒀다. 그러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들은 차트 정상에 다시 복귀했다. 드럼 앤 베이스(D&B) 듀오는 작년 브릿어워드에서 수상했고, 올해도 넘버원 히트곡을 발표했다. 스톰지의 랩과 으르렁거리는 베이스라인은 D&B에 그라임의 장점을 결합한 클럽 뱅어로 재탄생했다.


#47 : 호지어, "Too Sweet"

베이스라인이 너무 도드라지지 않게 절제하며 장난기 어린 복고풍 R&B 그루브를 역동적으로 배치한다. 호지어 특유의 포크 소울 기조를 지키면서 직설적인 가사로 반전 매력을 뽐낸다. 파트너와의 의견 차이를 “나는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커피는 블랙으로 하고, 새벽 3시에 자러 가”라는 후렴으로 함축한다.


#46 : 시저(SZA), "Saturn"

2집 〈SOS〉의 디럭스〈LANA〉에서 발표된 싱글은 더 나은 세상을 염원한다. “착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내가 받을 보상은 어디 있나요? 착한 사람은 일찍, 불쌍하게 죽는데”라며 미드 템포의 페이스를 유지하면 우주를 유영하는 부유감을 준다. 그녀의 목소리는 디플레이션(경기침체)에서 겪는 생활고를 위로하고 그녀 자신이 찾고 있는 바로 그런 희망을 설파한다.


#45 : 베이비 야나(BÉBE YANA), ICY ON MY NECK

비비, 수진 같은 여성 R&B 싱어들은 기존 가요와 다르며, K-테일러 스위프트로 거듭날 자질을 가진 유망주들이다. 2015년에 해체된. 걸그룹 EvoL멤버였다가 솔로로 활동 중인 김하야나도 그러하다. 전작 〈VROOM VROOM〉에서도 그렇지만, 속도감 있는 음향 편집으로 승부한다. 최예나의 〈네모네모〉도 게임 효과음을 활용했지만 2단 기어를 넣어 템포가 달라진다. 시원한 신스 패드와 피드백이 두터운 비트의 레이어의 뒷받침 끝에 질주한다.


#44 : QWER, 고민중독

더 러너웨이스 이후로 수많은 걸 밴드가 출현했다. 한반도에도 오랜만에 소녀 록커들이 상륙했다. 곡의 중심을 잡는 쵸단의 단단한 드러밍과 시연의 귀여운 보컬을 살리기 위해 드럼 앤 베이스를 채택해 히나와 마젠타의 부족함을 가린 것이 주효했다. 쑥스러움, 기대감, 망설임, 두근거림 같은 복잡한 심경을 통통 튀는 리프를 속도감 있게 빠르게 처리하면서도 다채로운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 구성이 돋보인다.


#43 : 나연, ABCD

미국 시장에서 터지기 시작한 트와이스에 발맞춰 나연의 솔로 프로젝트〈Na〉도 아메리카적이다. 2000년대 초반 Y2K 감성을 현재 시점으로 소환한다. 당시의 팝 디바와 주로 작업했던 히트곡 메이커 로드니 저킨스가 만들 법한 힙합 비트로 Z세대를 공략한다.


#42 : 엔믹스, ‘Dash’

작업 초기부터 여러 곡을 하나로 합친 것을 염두에 두고 썼다. 80년대 말의 뉴 질 스윙과 00년대의 팝 펑크가 주요 성분이다. 세기말 감성이 유행하는 것과 접점을 공유하며 신구세대를 통합한다. 밀레니얼 당시의 걸그룹 TLC나 데스티니 차일드처럼 하모니를 강조한 것도 놓칠 수 없는 키포인트다. Z세대에게 참신한 자극을, X세대에게 추억을 상기시키며 소비층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41 : 템스(Tems), “Love Me JeJe”

나이지리아에서 날아온 템스는 살랑살랑 불어오는 산들바람처럼 청세포의 휴양지로 안내한다. 프로듀서인 길티비츠(GuiltyBeatz)와 스팩스(Spax)는 멜로디보다 리듬에 중점을 둔다. 세이이 소디무(Seyi Sodimu)의 1997년 힙합곡 〈Love Me Jeje〉을 가져와 사랑을 속삭이는 귀여운 후렴구와 가벼운 기타 그루브, 날것 그대로의 아프로 드럼 연주로 R&B와 아프로비트, 붐뱁을 해체한다.


#40 : 닉 레온(Nick León), 에리카 드 카시에(Erika de Casier) – Bikini

마이애미 출신 DJ와 포르투갈-덴마크 프로듀서는 마침내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프리마베라 페스티벌에서 콜라보 트랙을 공개한다. 햇볕이 내리쬐는 해변 분위기에 Y2K 감성에 어울릴 뎀보우 그루브, 형광빛 신시디사이저 아르페지오로 구성된 레이브에 우리 모두를 열광하게 한다.


#39 : 마크 호미(Mach-Hommy), “#RICHAXXHAITIAN” (ft. Kaytranada & 03 Greedo)

아이티 래퍼는 Kaytranada의 하우스 트랙 위에 랩을 얹고 유쾌한 아프로비트를 찬양한다. 부동산과 고급차를 예찬하며 후크에 아이티계 미국인 래퍼 03 Greedo를 초대한다. 한 가지 비트에 의존하지 않는 다층적인 구조에 들쭉날쭉한 흐름에 맞춰 운율과 호흡 조절을 통해 청자를 집중하도록 이끈다. 동명의 앨범도 잘 빠졌으니 한번 감상해 보시길 추천드린다.


#38 : 크라잉 넛, 외로운 꽃잎들이 만나 나비가 되었네

29년째 기득권에 저항하는 그 외침은 지금도 여전하다. IMF때도 4분기 만에 반등했는데, 지금은 10분기 연속 경기침체에 빠져있다. 최장기간 연속 감소세에 조선 펑크(Punk)가 돌아온다. 4분 동안 기발한 아이디어로 우리의 귀가 쫑긋하게 한다. 투박한 기타와 달리 수려한 선율이 적적한 사회 분위기를 달래준다.


#37 : 티나셰(Tinashe), "Nasty"

"누군가 내 괴물과 맞을 수 있을까?"라는 가사가 밈이 되면서 틱톡에서 ‘좋아요`버튼이 쏟아졌다. R&B 고전음악처럼 정겹게 시작하지만, 후렴에 도달하면, 갑자기 AI 챗봇과 성 상담을 나누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그 순간, 티나셰의 보컬 샘플을 가공해서 고독한 밤이면 누군가를 찾게 되는 짝짓기 본능을 기계적으로 동기화한다.


#36 : 파비아나 팔라디노(Fabiana Palladino), "Forever"

전설적인 세션 베이시스트 피노 팔라디노의 딸이 음악계에 데뷔했다. 방구석에서 음반을 제작할 수 있는 요즘 시대에 접하기 원초적인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자넷 잭슨이 떠오르는 음색으로 80년대 팝 R&B의 연결점에서 자신만의 특색을 개척한다. 현악과 하모니 중심의 발라드에서 과거가 연상되면서도 현대적인 멜로디를 만나볼 수 있으며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다.


#35 : 제인 리무버(Jane Remover), “Magic I Want U”

매시업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21세의 인터넷 뮤지션을 살펴볼 가치가 있다. 휴대폰으로 전 세계 국가의 모든 시대 음악에 접속할 수 있다. 이 곡은 K팝에서 들을 수 있는 족보를 건너뛰는 동시 접속성을 자랑한다. 트랩, 이모코어, 슈게이징, 마이애미 베이스, 펑키한 기타 리프가 뒤엉키면서도 질서 정연하게 EDM의 드롭 구조로 빠져들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34 : 본 아이버(Bon Iver), S P E Y S I D E

저스틴 버논의 새 EP〈SABLE〉의 첫 싱글은 친숙하게 들리기에 번뜩임이 눈에 띄지 않는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체념하는 고백에 지금 현재 좌절과 절망에 빠진 영혼들을 위로한다. 짧고 신랄한 가사를 위해 벌스-코러스 구조를 거부함으로써 전통적인 악곡 형식을 파괴했다. 그 절제력 때문에 더 강하게 와닿고, 영혼의 치유를 돕는다.


#33 : 소피(Sophie), "Reason Why" Ft. 킴 페트라스, BC 킹덤

하이퍼팝의 선구자인 고(故) 소피의 사후 셀프 타이틀 앨범인 소피(Sophie)의 첫 번째 싱글은 이 음반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그녀의 미학은 언제나 청취자를 소리의 공간 속에 밀어 넣고 그 사운드 층위 속에서 구명줄처럼 던져진 보컬에 의해 구조되는 그림을 그려왔다.


#32 : 트웬티 원 파일럿츠, Overcompensate

전작 〈Trench〉에서 다뤘던 가상의 디스토피아 도시인 "Dema“에서 벌어진 항거를 그리고 있다. 90년대 일렉트로니카로 시작하는 노래는 매혹적인 내러티브로 리스너들의 상상력을 사로잡는다. 답답한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 부담함에 대한 저항, 과시적인 허풍, 좌절된 자기 파괴를 거치는 스토리텔링이 압도적이다.


#31 : 로제 브루노 마스, Apt

1981년 발표한 토비 자질의 〈Hey Mickey〉의 비트를 채취해 새로운 곡으로 만드는 재료로 삼은 인터폴레이션 기법이 활용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팝 펑크는 술 게임의 익살스러운 멜로디를 활용해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인터넷 밈으로 등극했다.


#30 : 캐시 크루트(Kassie Krut), “Reckless”

캐시 크루트는 최근 약혼한 커플 카스라 커트(Kasra Kurt)와 이브 알퍼트(Eve Alpert)와 그들의 친구 맷 앤더렉(Matt Anderegg)이 필라델피아를 근거로 활동하고 있다. 진짜 악기 퍼커션과 디지털 비트의 충돌, 인더스트리얼 질감, 장난 같은 알파벳 구호가 흘러나오는 나오는 가운데 알퍼트의 최면에 걸린 듯한 무심한 보컬이 이 불협화음을 매혹적으로 들리게 재편한다.


#29 : 레마(Rema), “Ozeba”

작년 그래미 후보에 올랐던 나이지리아 래퍼는 두 번째 정규 앨범 《Heis》에서 그 기세를 이어간다. 베넹어로 '말썽‘을 뜻하는 제목을 내걸며 나쁜 남자 이미지를 앞세운다. 클럽을 겨냥한 전투적인 스네어와 파괴적인 비트로 낭만적인 정복을 나선다.


#28 : 베스 기븐스(Beth Gibbons), ’Floating On A Moment`

2008년 이후 신작을 만드는 데 16년이 걸렸다. 애절한 리드 싱글의 사운드에서 그녀는 컴백에 대한 양가감정을 내 비춘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족과 친구를 잃은 그녀는 절망적인 삶을 경험했다. 비브라폰, 해먼드 오르간, 해머드 덜시머, 페달 스틸 등 대량으로 악기를 동원해 거대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축조한 다음 일렉트릭 기타로 희망적인 멜로디를 연주한다. 음악계를 떠난 것에 대한 후회와 송구함, 결국 음악밖에 할 수 없는 뮤지션의 숙명을 노래한다.


#27 : 애디슨 레이(Addison Rae), Diet Pepsi

한때 틱톡 안무가였던 애디슨 레이는 패스트푸드를 성적 은어로 쓰는 대세에 합류한다. 채플 론은 ‘파파존`처럼 뜨거워지길 원했고, 사브리나 카펜터는 "마운틴 듀 잇 포 너(Mountain Dew it for ya)"를 지향한다. 라나 델 레이가 12년 전 펩시콜라를 신체 부위에 빗댄 것을 오마주 한다. 가사에 탄산 거품이 이는 순간을 ’ 순수함을 잃는 ‘ 때라고 명시하며 비디오 게임 스타일의 애절한 사운드로 에로틱하게 묘사한다.


#26 : 닐뤼퍼 얀야(Nilüfer Yanya), ‘Like I Say (I Runaway)’

작곡가로서 역량을 알 수 있는 트랙이다. 어쿠스틱 기타 루프를 돌리고, 마림바로 박자를 섬세하게 조율하고, 그녀의 낮은 음역대는 무심하게 탑라인을 유영한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틈에 트립합의 유령을 만날 때 (작곡할 때 영향을 준) 벡, 라디오헤드, 포티스헤드가 떠오르지 않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그 의기양양한 태도와 훨씬 고급스러워진 감성에서 성장세가 확연히 드러난다.


#25 : 킴 고든, Bye Bye

71세 할머니가 내뱉는 랩은 유려하게 인더스트리얼 트랩 비트를 타고 흐른다. 그녀는 오늘날 스트리밍 이용자의 대부분이 태어나기 전부터 기이하고 화려한 노이즈를 만들어 왔던 장인이다. 화자가 캐리어 속 짐 목록(청바지, 카디건, 지갑, 여권)을 나열하고선 쿨하게 여행을 떠나지만, 도시인의 불안과 위협이 기저에 자리 잡고 있다. 일탈을 꿈꾸는 자에게 해방감을 안긴다.


#24 : 영파씨, ‘Ate That’

후렴의 ‘찢었다(Ate That)’를 듣는 순간 오랜만에 DSP미디어가 좋은 의미로 ‘사고’를 쳤구나 싶었다. 많은 걸그룹이 뉴진스를 뒤따라 뉴질스윙의 대세에 올라탔고, 국힙이 포스트 쇼미더머니 침체기에 들어간 그 틈새시장을 공략한다. 90년대 캘리포니아 G-Funk를 들고 나온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로 아이돌 문화에 함유된 힙합의 전통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 맥락도 들어맞는다.


#23 : (여자)아이들,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Fate)

일상에서 느꼈던 느낌을 누군가 불러준다면 그 언니들을 애정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펑크(Funk) 록 ‘아딱질’은 사실 메인타이틀이 아니었지만, 직관적인 위로를 건네는 전소연이 쓴 가사에 모두가 공감하며 차트를 질주했다. K팝에서 가장 등한시하는 ‘한국어 작사’가 이룬 기적일 것이다.


#22 : 예지, “booboo”

이예지는 저지 클럽 비트에 몸을 흔들며, “나를 찾아봐”라며 몸시위를 흔든다. 쉴 틈 없이 헤드뱅잉을 하는 와중에 2017년에 발표한 싱글 〈raingurl〉의 일부를 삽입함으로써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댄스플로어에서 신나게 즐기는 해방이 아니라 ‘자기 성찰`이라는 진짜 주제를 반전처럼 숨겨놨다.


#21 : 지드래곤, POWER

자신이 듣는 음악으로 저항하는 시대에서 저항가요가 나왔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유퀴즈에서 ‘미디어의 힘 풍자한 노래"라고 직접 설명했다. 2023년 10월 25일 권지용은 공권력에 의해 위협을 느꼈다. 생명체는 고초를 겪을 때 보금자리를 찾는 법이다. 그래서 YG 재직시절의 그가 추구하던 방법론을 고수했다. ’ 억까‘와 ’ 권력오남용‘에 함축된 그의 억울함에서 웃고 즐기자고 최종적으로 해탈한 그의 넓은 아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년쯤 후에 검찰 내란에 핍박받는 박해자 중 하나로 교과서에 실릴 것 같다. 덧붙여 내년 빅뱅 20주년에 무슨 이벤트를 벌일지 무척 궁금하다.


#20 : 선미, Balloon In Love

선미가 연애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이 거둔 승리다. 내 손아귀를 빠져나간 ’님`은 바람에 비유하며 그대로 인해 부풀어 오른 마음을 풍선에 본인을 대입한다. 사랑에 빠진 풍선은 귀여운 신시사이저와 역동적인 밴드 사운드를 의도적으로 충돌시켜서 긴장감을 조성한다.


#19 : 우즈(WOODZ ), 'Drowning

조승연은 음반 소개 글에 ‘사랑하는 이가 떠나가 슬픔이란 비에 잠겨 서서히 죽어가는 이의 감정을 그린 곡이다.`라고 낯간지럽게 설명한다. 베이스라인부터 비장하고, 조승연의 카리스마 있는 보컬과 기타가 연동하며 그 상실감을 토로하는 동안 어느새 스트링이 더해져 드라마틱해졌다.


#18 : 레이(Raye), "Genesis“

R&B, 빅밴드 재즈, 힙합, 팝, 가스펠의 모든 국룰(구조적 규칙)을 무시한 3막 구성의 야심작은 제작하는데 2년 이상이 걸렸다. 그 주제는 소셜 미디어에서 인정받으려는 과시욕, 중독과 우울증, 임금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개인적 문제를 다루는 동시에 희망이라는 주제를 전달한다. 2막에서 3막으로 전환될 때 그 대담한 실험정신과 카타르시스가 극대화된다.


#17 : FKA 트윅스(FKA Twigs), “Eusexua”

테크노에 대한 놀랍고도 섬세한 해석, 제목의 의미는 특정 유형에 방해받지 않는 행복감을 뜻하며 아티스트가 만든 신조어라고 한다. 우선 4박자 계열의 비트로 점층적으로 사운드를 쌓아 올리며 비욕(Björk)처럼 풍성한 레이어로 쾌락주의적인 소리층을 형성한다. 부유감 있는 보컬이 탑타인을 파편적으로 던지며 에로틱한 안갯속으로 청취자를 몰아넣는다. 단순한 오르가슴 이상의 전자기적 파장을 형성하며 외로움을 이탈하는 기류를 일으키며 몰입시킨다.


#16 : 폰테인 D. C. "Starburster"

〈Starburster〉는 프런트맨 그리안 채튼(Grian Chatten)의 공황 발작에서 영감을 받아 쓴 곡이다. 지하철역에서 겪은 공포스러운 경험이 랩 가사에 녹아있고, 어지러운 붐뱁 비트와 퍼지 신시사이저로 처리된 그 불안이 그를 마비시키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극한의 상황에서 긴박하게 그 들쭉날쭉한 의식의 흐름 속에 모두를 밀어 넣는다.


#15 : 제시카 프랫(Jessica Pratt), “Life Is”

위대한 노래는 언제나 일종의 타임머신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자신이 영향을 받은 고전과 나중에 후배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될 힌트를 한꺼번에 품기 때문이다. 그 맥락에서 〈Life Is〉도 우리는 팝의 전성기로 안내한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팝의 요소를 간결하게 다듬은 복고풍 사운드에 맞춰 그녀는 중음대를 중심으로 저음부와 고음부를 가끔 들린다. 아마 1967년쯤 나왔어도 어색하지 않을 그 감성을 그대로 복원한다.


#14 : 빌리 아일리시, "BIRDS OF A FEATHER“

"유유상종類類相從"을 뜻하는 영어 속담인 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깃털이 같은 새들은 서로 모인다.)에서 제목을 따왔다. 상대와 떨어지기 싫은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뉴웨이브 노래는 우리를 1980년대로 안내한다. ‘달달한 노래를 쓸 줄 몰랐지’ 하고 놀리는 것 같은 빌리는 예술가로서 가장 어려운 딜레마를 슬기롭게 헤처 나간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 대중이 원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히는가에 대한 혜안으로 들린다.


#13 : 선우정아, What The Hell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왠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온다. 그런 울분을 〈What The Hell〉를 통해 해소되곤 한다. 피아노로 시작해서 신시사이저, 기타, 현악이 뒤따라오며 웅장하게 거대해진다. 하지만 스트리밍 시대에서 지나치게 감성적인 노래는 환영받지 못한다. 그런 한계가 곡의 중간중간마다 느껴져서 아티스트의 고민에 동시 접속하게 한다. 해방감이 휘물아치다가 멈칫멈칫하는 잔상이 남아 계속해서 플레이하게 만든다.


#12 : 비욘세, 'Ya Ya'

이 곡은 미국 음악의 백과사전처럼 느껴진다. 그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낸시 시나트라의 샘플, 80년대 후반의 힙합 정신, 제임스 브라운의 찰랑거리는 그루브, 티나 터너의 파워풀한 록 소울, 그리고 비치 보이스의 "Good Vibrations"의 구성을 빌려와 미국 사회의 인종적 위선을 고발한다.


#11 : 연경, 사랑엔 용기가 필요해

연애가 힘든 까닭은 상대의 의중이 내 마음 같지 않을까 봐 염려하기 때문이다. 황연경은 그것을 확인하고자 호랑이굴에 직접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노래한다. 쟁글거리는 기타 주법에서 조니 마가 떠오르지만, 곡조에서 ’ 세시봉`부터 내려온 ‘비틀거리는 아픔’을 간직한 청춘의 자화상이 엿보인다.


#10 : 켄드릭 라마, Meet The Grahams/Not Like Us

가족은 건드리지마라는 켄드릭이 드레이크 일가 전체에게 보낸 서간문은 역사적인 레코드다. 비교적 담담한 어조로 읽어간 쉬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위로 가족 구성원에게 드레이크가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간곡히 단속을 부탁한다. 단조 피아노 비트가 으스스한 비명소리가 마치 공포영화처럼 드레이그 가문을 엄습한다.


그 직후에 완전히 다른 종류의 디스 트랙이 나왔다. 〈Not Like Us〉은 한물간 래칫 형식을 빌려 '어떤` 아동성애자를 우리로부터 ‘격리’시키는 파티를 벌인다.


#9 : 벤슨 분, Beautiful Things

히트곡에 대한 레시피는 없지만, 벤슨 분은 역발상으로 클리셰를 이겨냈다. 〈Beautiful Things〉는 EDM에 자주 구사하던 드롭 구조를 팝 록 음악에 활용하며 국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8 : St. Vincent, Broke Man

인더스트리얼 사운드 속에서 애니 클락은 가장 연약하고 사나운 모습을 보여준다. 절규하는 기타와 팽팽한 베이스로 시종일관 긴장감을 고조시키다가 상실 혹은 죽음의 이미지로 귀결된다. 우리가 살다보면 느끼는 우울과 불안을 절박하게 독백한다.


#7 : 무스타파(Mustafa), ‘SNL’

친형의 갑작스러운 피살, 팔레스타인에서의 대량 학살을 계기로 완성된 〈Dunya〉의 하이라이트를 만나보자!"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 하지만 좋은 사람이 먼저 죽는다."라며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차분하게’ 분노를 드러낸다. 무스타파는 (이 노래가) 참회록도 아니고 추도사도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그가 잘 모르는 청취자(팬)들과 소통하는 수단도 아니다. 그러나 'SNL'은 고향 토론토에서 형과의 추억, 가족과 친구들과의 소중한 기억을 기념하고, 그들과 함께 경험한 고통스러운 현실의 냉엄함에 대한 1인 시위이다.


#6 : JADE, ‘Angel Of My Dreams’

영국의 걸그룹 리틀 믹스에서 솔로로 데뷔한 제이드 설월은 안전한 기획을 거부한다. 샌디 쇼(Sandie Shaw)의 'Puppet On A String'을 샘플링하고 머라이어 캐리식 후렴구, 으르렁거리는 하우스 벌스, 장난기 어린 피치 변환까지 전 소속사 Syco를 ‘싸이코(Psycho)’라고 비유하는 유희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다. 사이먼 코웰에게 아이돌로 발탁되어 발을 들이게 된 음악 산업에서 겪은 우여곡절을 이 한 곡에 집약해 놓았다.


#5 : MJ 렌더맨, ‘She’s Leaving You’

이미 붕괴된 권위를 수호하기 위한 불필요한 안간힘을 쓰는 바람에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진 자신을 발견하는 남성성의 비극적 아이러니를 포착한다. 인정받지 못한 남자의 절망, 불확실성, 분노, 자기 비하 등 다양한 감정이 녹아있어 들으면 들을수록 깊은 향을 우려낸다.


#4 : 찰리 XCX, “Girl, So Confusing Ft 로드(Lorde)”

친구 사이인 두 여성이 서로를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하는 기싸움과 신경전을 그리고 있다. A.G. 쿡의 글리치한 프로덕션로 묘사된 그 모든 질투의 기저에는 실존적 근심이 깔려 있다. 여성끼리 어렸을 때부터 서로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각자의 불안감에 기반해 서로를 오해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줄거리에서 몰랐던 진심이 확인된다. 이 노래의 주제를 조금 더 키우면, 혐오의 시대에 맞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3 : 채플 론(Chappell Roan), “Good Luck, Babe!”

LGBTQ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데에는 강제적인 이성애자로 성장한 채플 론이 뒤늦게 동성애자임을 깨닫는 성장사가 큰 영향을 미쳤다. 실화가 주는 힘은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부정하는 연인에게 '잘 되길 빌게'라며 결별하는 가사에 연민과 공감을 자아내게 한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우리나라 작곡가들은 이런 식으로 쓰지 않겠구나 싶었다. 이 노래가 80년대 신스팝과 90년대 소프트 록이 성공적으로 결합한 데에는 바흐 이후로 내려온 서양 음악의 전통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2 : 에스파(aespa), Supernova

SMP의 역습, NASA가 승인했는지 모르겠지만, 긴장감이 끝까지 질서 있게 유지된 통에 요란하고 불안정한 요란하고 불안정한 K팝 트렌드와 다르게 부담스럽거나 난해하게 들리지 않는다. 뉴진스로 널리 전파된 SMP 장르를 진짜가 무엇인지 원조다운 위엄을 보여줬다.


옛날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 큐베이스(작곡 프로그램)가 없던 시절에 이런 사운드를 내려면 작곡가가 어떤 장비와 악기를 썼는지 신중하게 고려해서 하나씩 구입해서 확인했다. 요즘은 그럴 필요 없이 비트 메이킹 작업부터 소스와 샘플을 손쉽게 구할 수 있어 훨씬 쉬워졌다. 그렇게 탄생한 '탄탄한` 베이스라인 위에 힙합과 인더스트리얼 소스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악기 편성을 통한 서스펜스가 히치콕 빰 친다.


#1 : 데이식스(DAY6), HAPPY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2024년 대한민국’을 요약할 수 있다. “걱정 없이 살고 싶다”는 가사에 왜 이리 마음이 움직이는지 모르겠다. ‘청량돌’과 ‘이지리스닝’ 열풍에는 내 주머니가 텅텅 비어 가고 집안 살림살이가 궁핍해지는 것이 체감되었기 때문이다.


151조 원짜리 내란 사태, 1400원 이상의 고환율, 청년 실업 400만 명, 자영업 폐업 100만 명인 무정부 상태(無政府狀態)에 이보다 더 공감할 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혹여나 한국인이라면 〈HAPPY〉가 묻고 있는 행복론을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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