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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Dec 18. 2024

2024 올해의 앨범 TOP 50

Best Albums Of 2024

'앨범이란 무엇인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K팝 노래의 수준은 세계적이지만, 그 수록곡을 모아놓은 음반은 팬덤의 굿즈 혹은 싱글 모음집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K팝의 음반들은 차트에 오르기 위해 외부로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행에 쉽게 휩쓸리며 모두가 그 트렌드에 동참해야지만 살아남는 사회니까 그러하다.  

    

외국 음반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장르의 선구자들은 그 앨범이 어떻게 들리건 간에 동시대성을 기술적으로 담는다. 현생 인류의 삶과 사회의 변화상을 아티스트가 느끼고 기록하고 연구한 일종의 논문을 남겨놓는다. 그 개척자가 빛을 보지 못하지만, 그 음반을 들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음악적 돌파구를 제공한다. 멜론 시상식에서 에스파가 대상을 받았는데, ‘supernova’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장르를 정립한 사람들이 남긴 설계도에서 온 것이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시장은 재편되었다. 남보다 뒤처지길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알려고 노력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뜻에서 몇 자 남긴다. 



#50 : 조용필, 20

역대 최고령의 나이(75세)에 최다 정규 앨범(20집)을 발표한 가왕의 신작은 프로모션 싱글〈찰나〉을 공개한 지 2년 만에 내놨다. 신스팝 ”Feeling Of You ",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라" 등 트렌드를 배우겠다는 학구열을 체감할 수 있다. “왜”  정도를 제외하면 최근의 BGM화된 음악계의 지형을 수용한다. 전체적으로 모나지 않게 감성을 자극하지 않는 후렴의 강약 조절은 편안하게 들리도록 조율되어 있다. 그리고 정답이 정해진 한국 사회에서 오답을 적을지 모르는 한국인에게 ”그래도 돼"라고 다독인다.        



#49 : 블랙스완, Roll Up EP

한국인이 없는 K팝 아이돌은 가능할까? 가비(브라질), 파투(벨기에), 스리야(인도), 엔비(미국)를 모집한 DR뮤직의 윤등룡 대표는 각멤버들의 나라 이미지와 분위기를 블랙스완의 노래에 순차적으로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고 그 결과물이 이번 EP이다. K팝 아이돌 시스템의 최종 목표는 팝 시장이다. 어차피 국제적인 성공을 목표로 한다면 이러한 접근을 문화적 전유라고 비난해서는 안 될 것 같다. K팝은 더 이상 한민족만의 것이 아닌 인류사적 문화양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SM의 영국 보이그룹 '디어 앨리스(DEAR ALICE)‘도 어떤 성과를 낼지 궁금하다.     

     


#48 : 김뜻돌, 천사인터뷰

‘돌 하나에도 뜻이 있다’라는 뜻을 가진 싱어송라이터다. 김지선은 나노 사회성을 반영한 음악을 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대화를 위해 평소 어떤 유튜브 콘텐츠를 즐겨보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내 취향을 ‘나의 트렌드를 당신이 모르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다’는 나노 사회를 가장 잘 나타내는 문장이다. 〈손님별〉, 〈미카엘〉, 〈속세탈출〉에서 내면세계의 깊은 곳까지 침투해 솔직한 감정들을 포착했다. 파편화된 개인성을 찬미하며 세상의 모든 외톨이들에게 ‘천사`를 보낸다. 그 몽환적인 슈게이징/드림 팝으로 형상화된 ‘천사`는 헤비 메탈로 뻗어가기도 하고 일렉트로닉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록, 포크, 팝 등 틀에 박히지 않고 넓은 스펙트럼의 사운드를 한 데 모으는 것이 나노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 것처럼 들린다.



#47 : 피프티 피프티. Love Tune EP

전홍준 대표와 키나가 1년 7개월 동안 준비한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었다. 동정도 연민이랄 것도 없이 그냥 귀에 착착 꽂힌다. 스트리밍 시대에 모든 대중음악은 일상에서 BGM으로 전락했다. 왜냐하면, 분업이 철저하고, 퍼포먼스가 강조된 아이돌 노래들은 청자(팬)들이 청취할 수 있지만 따라 부르기가 어려워졌다. 스트리밍 시장에서 10초 내에 강한 인상을 남기 위해 선율의 자연스러운 진행 따위는 자극적인 음향 배치에 밀려난 지 오래다. 그런데 《Love Tune》는 누구나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음반을 들고 나왔다. 그 역발상이 요란한 K팝 추세를 부정한다. 그룹의 사연과 자연히 맞물려 대중에게 성공적으로 어필한다.    



#46 : 이승윤, 역성      

숏폼의 시대에 롱폼 콘텐츠를 내놓고, 미니멀리즘이 대세인데, 그 맥시멀리즘 미학을 담은 정규작을 내놓았다. 이승윤은 ”《역성》은 거스르는 것에 관한 앨범입니다. 거스를 수 없는 자명한 것들을 이번 한 번만큼은 거슬러 보겠다는 마음가짐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라고 포부를 밝힌다. 역성이라는 말은 맹자에 의해 구체화되는 개념이다. 왕조란 '천명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 했으니, 천명(命)이 바뀌는(革) 것은 곧 혁명이고, 대개의 경우 임금의 가문이 바뀌기 때문에 새 왕조는 전 왕조와 다른 성(姓)을 갖게 되어 역성혁명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역성을 가져온 이승윤은 ’시절을 무한히 연장하는 낡은 이야기들‘라며 주류를 점거한 지독한 빨대들과 비주류를 독차지한 개구리들, 그 외에 어디에나 기생하는 모조 왕관들을 비판한다. 펑키(Funky)한 그루브와 펑크(Punk)한 폭발력을 한껏 터트리는 ’폭죽타임`, 구체제를 뒤엎자는 ‘역성`, 달달한 브릿팝 ’28k LOVE!!‘, 하드록 혁명가 ’폭포`까지 시대를 훔쳐 쓰는 허울뿐인 슬로건을 타파하자고 노래한다. 



#45 : 존박, Psst! 

11년 만의 정규 앨범 《Psst!》은 맞춤 정장처럼 꼭 맞는다. 장르 음악이 발전한 미국과 달리 유행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음악이 달라지는 한국 시장에서 그는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답이 정해진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은 차트에서 히트한 최신가요를 찾아 듣는 경험만 줄곧 해왔다. 음반사와 가수도 유행을 좇을 뿐 장르 음악에 투자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적 토양 아래에서 한국인은 자신의 취향을 스스로가 골라 듣는 문화가 발전하지 못했다. 존 박 같은 장르 뮤지션에게 이런 토양은 낯설었을 것이다. 그의 고민은 깊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크러쉬의 프로듀서 홍소진을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그 결과물인 ‘꿈처럼’, ‘Vista’나 ‘같은 마음 다른 시간’에서 팝의 감성과 국내 환경 사이에서 절충점을 발견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44 :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Invincible Shield 

18집 〈Firepower〉을 선정하지 않아 이번에는 올린다. 영국 차트 2위로 데뷔하며 밴드 역사상 최고 순위를 기록했으며, 빌보드에서도 18위로 노익장을 과시했다. 앤디 스닙과 톰 알롬이 전작에 이어 2 연속 프로듀서로서 결성한 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른 50년 차 밴드의 사운드를 조율한다. 어르신들이 연주하는 파워풀한 리프와 역동적인 보컬이 깨끗하고 강력하다. '메탈의 신' 롭 헬포드의 멀티 옥타브 보컬은 그 전설적인 별명에 부합한다. "Trial By Fire"와 "Panic Attack" 같은 트랙은 대세와의 타협 없이 그저 장르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그 고집이 만들어낸 역작들이다. 메탈 장인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43 : 에스파(aespa), Armageddon 

4인조 걸그룹 에스파는 SM남돌에게 맡기던 ’전사‘의 이미지를 덧입힌다. 그 컨셉에 따라 인더스트리얼과 힙합 사운드를 자신들의 시그니처로 삼았다. 파괴적인 하이퍼팝〈Supernova〉, 준수한 선공개곡〈Armageddon〉, 의외의 팝 펑크 〈Live My Life〉까지 에스파만의 여전사 기믹을 수행하지만, 〈Bahama〉, 〈Prologue〉, 〈목소리〉에 이르면 레드 벨벳 등 SM 걸그룹의 전통에 충실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로 미루어볼 때, 상업적인 안배를 꾀하면서 SMP의 현대화가 꾀하고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42 : 바밍 타이거, January Never Dies

'얼터너티브 K팝'을 표방하는 바밍타이거는 래퍼 병언과 프로듀서 노 아이덴티티가 탈퇴했음에도 첫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이들은 Odd Future나 브룩햄튼 같은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인 예술집단으로 기성 시스템이나 사회가 강요하는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Buriburi, 'Sudden Attack', ’Trust Yourself‘ '섹시느낌' 'Kamehameha’ ‘SOS’부터 대중음악의 규칙들을 부정하며 자기 주관의 투영과 동료 예술가와의 연대라는 두 가지 상반된 방법론으로 접근한다. 낯설게 들릴 것 같지만, 예상과 달리 친숙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본인의 취향이 강하게 들어가 있으나 협업이라는 형식이 독단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제어하고 있다.    

       

 

#41 : 요네즈 켄시(米津 玄師), LOST CORNER 

6집 《LOST CORNER》은 애니메이션, 드라마, 광고에 삽입된 싱글들을 모은 모음집이지만, 작가주의로 점철된 어느 정도의 통일성을 갖고 있다. 그 응집력의 원천은 아무래도 앨범명에서 찾을 수 있다. 제목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시구로 가즈오의 소설〈나를 보내지 마〉에서 착안했다. 소설은 복제인간의 삶에서 존재론적 고민을 하는 내용이다. 그래서인지 모든 수록곡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질문으로 귀결된다. 또 전반부 9곡에 선공개곡을 몰아넣고, 후반부 11곡에 신곡 위주로 배치한 것이 앨범의 주제를 뚜렷하게 한 원인인 것 같다.     

 

노래도 듣는 순간 요네즈의 작품임을 알아챌 수 있다. 재즈와 록, 펑크, J팝의 요소를 요네즈는 해체하고 재배열하면서 자신의 작가주의를 확실히 표명한다. 요아소비, 이브, 아도 같은 보컬로이드에 기반한 일본 아티스트나 아이묭, 유리, Mrs.GREEN APPLE 같은 뮤지션과도 확실히 다르다. 무엇보다 20곡을 이렇게 방향성이 명확하게 기획하는 그의 통제력에 놀랍다.   



#40 : 엔시티 127, Walk 

엔시티 127의 6번째 앨범은 온고지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5집이 미래지향적이었다면 이번엔 고개를 뒤로 돌린 셈이다. ‘삐그덕’, ‘Gas’, ‘오렌지색 물감’ 모두 멤버들이 성장기에 들었을 법한 과거의 음악적 유산에 기반한다. 힙합이라는 핵심을 정해두고 펑크와 알앤비, 팝을 아우르며 러닝타임 내내 지루하지 않게 들린다. 난해하지도 요란스럽지도 거추장스럽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장르를 소화하며 (기존 팬층보다 더 넓은) 구매자에게 손짓한다.  

            


#39 : 사브리나 카펜터, Short N' Sweet

16살에 데뷔한 사브리나 카펜터(Sabrina Carpenter)는 6집《 Short N' Sweet》으로 주목받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틱톡 팝, 서핑 뮤직, 컨트리, R&B 및 디스코를 오가며 춤을 추며, 그녀의 욕실과 침실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공개한다. 그녀는 핀업 이미지를 판촉하면서 속물임을 감추지 않는다. 황당할 정도로 백치미를 드러내지만 프로이트식 고백 서사를 영악하게 이용한다. 음악적으로는 올리비아 뉴턴-존,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벤치마킹하며, 70년대 팝 공식을 참조한다. 이미지메이킹, 기획과 작사, 뮤직비디오에서 그녀는 수동성을 거부하는 자기주장이 섹시하지 않다는 고정관념을 추방한다.          



#38 : 템스(Tems), 'Born In The Wild' 

오랫동안 기다려온 나이지리아 슈퍼스타의 데뷔는 광대하고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다. 아프로비츠의 흥행 속에 작가로서의 뚝심과 고집을 잃지 않았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알테(Alté, 아프로비츠에 레게홀이 결합한 나이지리아 음악)를 주류 힙합과 융합하는 독특한 시도를 펼친다. 자전적인 이야기 하면서도 감상주의(신파)에 빠지지 않는다. 명확한 비전과 장르에 대한 유려한 접근으로 아프리카 전통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음악적 다양성을 보여준다.    



#37 : 제이미 엑스엑스(Jamie xx), In Waves

제이미 엑스엑스가 〈In Colour〉를 낸 지 9년이 지났다. 트랜스, 디스코, 하우스, 브레이크 비트 등이 가리키는 방향을 쭉 따라가 보면 초기 나이트클럽 및 레이브 문화를 추억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관악기 편곡이 인상적인 가스펠 하우스 'Baddy On The Floor', 먼지가 쌓인 옛 소리를 섬세하게 재배치한 ‘All You Children’, 6분짜리 대곡임에도 탄탄한 베이스라인과 촘촘한 리듬 배치가 인상적인 레이브 ‘Breather’, R&B가수 J.J. 반스의 샘플의 피치를 조절하고 비트의 공간감에 최적화시킨 "Dafodil"까지 듣는 순간 몸을 가만히 두지 않게 한다. 이 댄스 레코드는 춤이 짝짓기와 연관된 구애나 전희(前戱) 과정에서 출발했던지 종교적으로 신을 불러내고 신에게 용서와 사랑을 구하는 동작에서 기원했든지 간에 영국의 댄스 문화를 총망라한다.     



#36 : 라스트 디너 파티(The Last Dinner Party), Prelude To Ecstasy 

영국 언론이 유난 떠는 이 데뷔 앨범은 호들갑이 아니었다. 《Prelude To Ecstasy》는 지극히 영국적인 음악적 전통을 잘 계승한 수작이다. ‘Nothing Matters`, ’Sinner`, ‘My Lady of Mercy` 모두 퀸, 케이트 부시, 더 큐어 등 선배들의 가르침을 배워 우수한 학업성적을 기록했다. 그 성적표를 부모님에게 가져다주면 무조건 칭찬받고, 동년배 친구들에게도 '영국적인 르네상스‘을 제공하니 신구세대를 잇는 훌륭한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    

       


#34 : 도이치(Doechii), Alligator Bites Never Heal

2020년대는 아티스트에게 큐레이터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시대다. 인터넷으로 어떤 시대, 어떤 사조의 음악이던 검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도자 캣, GloRilla, 섹시 레드와 경쟁하는 여성 래퍼 시장에서 업계의 정치질, 음반사의 요구가 거세졌다. 플로리다 출신의 제일라 힉먼은 믹스테이프를 준비하면서 붐뱁, EDM, R&B, 가스펠, 하우스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돋보인다. 영화 같은 스토리텔링의 "Denial Is A River"부터 "Boom Bap"의 날카로운 풍자까지 소화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최종적으로는, 그 낭만적인 팝 멜로디에서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미시 엘리엇, 니키 미나즈의 문하임이 판명된다.           



#35 : 이나래, 지금 어디

국내 힙합의 정체성을 판소리에서 찾으면 어떨까? 고수의 북 대신 트랩 비트 위에서 젊은 소리꾼이 신명 나게 운문과 산문을 토해낸다. 이날치 출신의 이나래의 데뷔작은 판소리 고유의 문학적 서사를 힙합의 방법론과 융합하려 노력하고 있다. 틀을 깨는 기발한 발상이 '물에 들라', ‘봄의 춤’, '꿈', ‘기울어진다’에서 구체화된다. 아직 작법이 완성되어 가는 중간 과정이지만, 쇼미 이후 휘청거리는 국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은 것은 분명하다.    



#33 : 솔루션스, N/A

2015년 'Love You Dear`로 상큼한 청량감을 선사하던 밴드도 어느덧 중견의 위치에 섰다. 3번째 정규작에서 안정감 있는 연주, 능숙한 프로덕션, 풍성한 텍스트를 들려준다. 1954년 초신성 폭발에도 살아남은 좀비 별의 이름을 딴 'iPTF14hls', 불꽃놀이를 형상화한 ‘Fireworxx’ 그릭 앨범 자켓에서 SF적인 상상력으로 작품의 주제를 명확히 한다.


일렉트로닉과 록의 결합을 명시적으로 설명하고 나니 중심 내용이나 방법론적 대안이 명확해진다. 록이라기 보다는 앰비언트에 가까운  ‘Annihilation’이 대표적이다. 베이스라인이 탄탄 ‘N/a’ , 강렬한 펑크 록 'Maximizer`에서 록의 운동성을 살리면서 전자적인 입체감이 정서적 입자와 감성적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32 : 더 스마일(The Smile), Wall Of Eyes 

톰 요크, 조니 그린우드, 톰 스키너 3인조 밴드는 더 이상 라디오헤드의 사이드 프로젝트에 머물 뜻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장난스럽고 섬뜩하고, 영리하게 팬들의 니즈를 충족한다. 재즈가 뜻하는 자유로움을 적극 활용해 아트록에 녹아있는 클래식 음악의 작법을 일부 무너뜨려 공간을 확보한다. 그 틈 사이를 그린우드와 요크가 스코어(영화음악) 작업하면서 익힌 내러티브와 현악 편곡 기술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남은 여백은 통화량을 증가시켜 발생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탐욕스러운 은행가와 부패한 정치인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의식의 흐름 기법에 따라 노래했다.      



#31 : 트리플에스(tripleS), Assemble24

AKB48 같은 참여형 아이돌로 총선거 시스템은 없지만, 수많은 DIMENSION 유닛을 자랑한다. 정병기 대표가 발촉한 24인조 걸그룹의 첫 번째 앨범은 일렉트로닉에서 벗어나겠다는 포부로 가득하다. 뉴메탈 ‘S’ 뉴잭스윙 ‘Dimension’, 리퀴드 DnR ‘가시권’, 아마피아노풍의 ‘White Soul Sneakers‘, 전형적인 K-POP ’Non Scale’등의 폭넓은 사운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아이돌을 우러러볼 대상에서 내려와 불안과 걱정을 공유하는 팬들이 누구라도 접속할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그러기 위해 간단명료하고 몽환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소리샘으로 진입장벽을 낮췄다. 하지만 24명의 동선을 관리하는 안무의 치밀함 같은 철저한 인력관리가 음악보다 더 돋보인다.      



#30 : 수민 X 슬롬, Miniseries 2

3년 만에 공개된 속편 《Miniseries 2》은 설렘을 황홀하게 그려낸 전작을 배반한다.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순응의 5단계 이론을 따르지 않더라도 이별의 여러 가지 풍경과 복잡한 속내를 하나의 서사로 편집해놨다. 슬롬의 가상악기와 수민의 보컬 연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남녀 간의 온도가 차츰 달라지며 자연스레 모양과 형태가 바뀌어간다. ‘왜, 왜, 왜`, ‘째깍째깍’, ‘텅 빈 밤` ‘신호등’을 연달아 듣다 보면 두 연인의 다툼과 멀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시티팝, 보사노바, 알앤비를 즐길 수 있다. 영어 가사가 주류가 된 현시점에서 한글 가사가 주는 비교우위 역시 놓칠 수 없다.



#29 : 엠두 목타르(Mdou Moctar), Funeral For Justice 

니제르 출신 ‘투아레그’ 기타리스트는 현재 사하라 음악씬의 가장 뜨거운 열기를 뿜고 있다. 이번 7집은 2023년 북미 투어 중에 고국의 군사 쿠데타로 인해 돌아갈 수 없어 부득이하게 미국에서 녹음했다. 이런 사연을 가진 《Funeral For Justice》은 가장 정치적인 음반으로 태어났다. 프랑스 제국주의가 아프리카 식민지에 미친 영향과 군사 독재 정부의 부패를 동시에 고발한다. ‘Oh France`와 ’Modern Slaves‘는 작품의 주제를 담은 항의서이며, 타마셰크 어를 보존해 달라는 사이키델릭 탄원서인 ‘Imouhar’는 간곡하다. 독특한 투아레그 기타 연주는 언어를 뛰어넘는 음악적 최면을 걸면서 우리의 정의감을 불타오르게 한다.     



#28 : 잉글리시 티처(English Teacher), This Could Be Texas

그레이트 브리튼 섬은 유망주들(블랙 컨트리 뉴 로드, 라스트 디너 파티, 블랙 미러)이 화수분처럼 쏟아진다. 리즈 출신 4인조 밴드는 야망이 가득한 데뷔 앨범은 매우 독창적인 진술을 들려준다. 선배들에게 배운 것(포스트 록, 포스트펑크, 포크트로니카)과 자신들이 추구하는 방향(영국 인디 록, 챔버팝) 사이에서 망설이지 않는다. 울프 앨리스(Wolf Alice), 웻 레그(Wet Leg)처럼 차세대 록의 발전 방향은 기타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라디오헤드 이후의 합의를 거부한다. 이혼과 미혼모 등 결손 가정 내의 정서적 혼란과 심리적 투쟁을 냉철히 관찰하여 그것을 표현하는 문학적 묘사로 보컬 릴리 퐁텐(Lily Fontaine)을 Z세대의 대변자로 임명한다.     



#27 : 닐뤼퍼 야냐(Nilüfer Yanya), My Method Actor

《My Method Actor》은 서른을 앞둔 불안감을 그리고 있다. 어떤 친구가 결혼하고 누구는 엄마가 되었다는 얘길 들을 때 드는 복잡다단한 심리적 굴곡을 그리고 있다. ‘나이 듦’이 앨범의 주제라면,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자아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 전제를 충족하는 의기양양한 음악적 행보가 엿보인다. "Like I Say (I runaway)"에서 한층 성숙해진 자신을 찾았고, 'Mutations'에서 차분해진 성숙함을 뽐내며, "Faith's Late"에서 그 성장통을 털어놓는다. 제시 웨어, 수단 아카이브와 작업했던 프로듀서 윌 아처와 긴밀히 협업한 그녀의 허스키한 음색과 절제된 기타 연주는 그 어느 때보다 진정성 있게 들린다.



#26 : 실리카겔, POWER ANDRE 99

‘No Pain’으로 밴드 붐을 불러일으키며 올해 이지리스닝 열풍과는 다른 추세를 만들어냈다. 2집 《POWER ANDRE 99》은 2분대로 짧아진 경향을 가볍게 무시하며 록 음반의 가치를 실천한다. 앨범의 주제는 수록곡'Ryudejakeiru’, ‘Apex’  ‘Tik tak tok’에서 발견 되듯 현실 도피 쾌락을 담고 있다. RPG게임 혹은 이세계 소설 같이 사이키델릭과 펑크 록에 기반해 새로운 차원으로 모험을 떠나자고 권유한다. 실제 삶은 팍팍하고,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청춘들에게  ‘The Rim’과 ‘Gosan’을 들려주는 순간, 젊음이 가진 해방감을 느낄 수 있게 여러 개의 소리층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25 : 마네킹 푸시(Mannequin Pussy), I Got Heaven

필라델피아 펑크 밴드의 4집《I Got Heaven》은 새로이 합류한 기타리스트 맥신 스틴과 베테랑 인디 록 프로듀서 존 콩글턴을 고용함으로써 레벨업한다. 팝 펑크의 최신 업데이트는 분노로 가득한 펑크 록과 말랑말랑한 파워 팝의 서정성 그리고 지글거리는 슈게이징 사운드가 융합되어 있다. 직관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I Got Heaven", 스타디움 록 "Loud Bark", 우유부단한 태도를 질타하는 "Softly", 섬세한 가곡"I Don't Tell You"에서 섹스와 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조사하고 풀어낸다. 특히 이 시대의 패티 스미스라 할 수 있는 마리사 다비스(Marisa Dabice)는 원초적인 연약함과 강인함을 오가는 오스카급 보컬 연기를 펼친다.   



#24 : 오코예,  Whether The Weather Changes Or Not 

퀸시 존스는 힙합을 보고 '이 시대의 재즈'라고 말한 바 있다. 재지팩트 같은 팀이 재즈 랩을 한 적이 있었지만, MC 이쿄(IKYO)와 프로듀서 오투(The o2)는 힙합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간다. 가상 악기로 처리하지 않고, 윤석철, 큐 더 트럼펫 같은 세션을 기용한 점도 '재즈`스럽다.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갱스터 같이 올드 스쿨 힙합과 똑같은 포맷에 비슷한 방법론, 고전적인 사운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쇼미더머니로 랩을 절지 않는 것이 '힙합`이라고 여기는 국내 환경에서 힙합의 전통에서 국힙을 재건하려는 것은 아닐까? 본토 랩 유행을 무작정 따르지 않고 고전에서 힌트를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23 : 브리트니 하워드, What Now

앨라배마 셰이크스(Alabama Shakes)의 프론트 우먼의 두 번째 솔로 음반은 소포모어 징크스를 씹어먹는다. 그녀는 연주자지만 믹싱과 엔지니어링까지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음향 전반을 설계했다. 사이키델릭, Funk, 팝, 소울 일렉트로의 자재를 통해 ‘흑인적인 록 음악’이라는 빌딩을 축조한다. 풍성한 레이어드 리듬과 선율을 연구하는 온고지신의 자세로 리스터들에게 함께 모험을 떠나자고 권유한다. 필라델피아 소울 "I Don't", 프린스풍 "Prove It To You" 사이키델릭 보사노바 "Every Color In Blue"를 들어보면 들수록 장르에 대한 폭넓은 식견을 바탕으로 진보적인 음악을 재창조하는 경지에 도달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여러 번 반복 청취할수록 놀라움을 선사하는, 전인미답의 진보적인 음악적 가능성에 초대한다.    



#22 :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 Only God Was Above Us 

5년 만에 오랜만에 돌아온 그들은 최고작으로 보답한다. 프로듀서 에리얼 렉트샤이드(Ariel Rechtshaid)가 복귀하며 키워드로 ‘불안’을 꺼낸다. 5집 《Only God Was Above Us》는 우리가 마주하는 사나운 세상을 희의적이거나 냉소적으로 대하지 않고 훨씬 더 낙관적인 태도로 관찰한다. 전작보다 훨씬 멜로디컬하면서 정돈된 소리샘을 들려줘서 새로운 세대의 청자들을 끌어모으는 동시에 시그니처 사운드(아프리카 리듬을 수용한 펑크 풍의 실내악)를 이스트에그로 앨범 곳곳에 새겨놓으며 길 잃은 오랜 팬들을 다시 돌려세운다.      



#21 : 클레어오(Clairo), Charm

세 번째 스튜디오 음반은 베드룸 팝의 미학으로 70년대의 음악들, 이를테면 포크, 재즈, 소울의 그루브를 재현한다. 《Charm》의 성공을 이끈 것은 프로듀서 레온 미첼과 호머 스타인바이스(에이미 와인하우스, 브루노 마스) 등을 섭외한 용인술이 결정적이었다. 그들이 함께 제작한 ”Sexy To Someone", "Juna", "Thank You"에서 포근한 선율, 아늑한 악기 소리, 유쾌한 가사로 꿀 같은 안식을 제공한다. 



#20 : 데이식스(DAY6), Fourever 

위기 뒤에 기회가 생긴다는 격언대로 데이식스는 역전에 성공했다. 4인조 개편, 팬데믹 휴식기, 군입대를 이겨낸 그들은 '예뻤어', '좋아합니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이 역주행하면서 야구장에서 떼창이 가능한 국민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아레나 록 ‘Welcome To The Show', 얼터너티브 응원가 ’HAPPY`, 신스팝 ’The Power Of Love‘, 포스트 그런지 '널 제외한 나의 뇌‘, 서정적인 '사랑하게 해 주라'와 '그게 너의 사랑인지 몰랐어'까지 서정적인 가사와 밝은 정서라는 〈The Book Of Us〉 시리즈 이후로 확립한 정체성을 자신 있게 들려준다. 데이식스의 성공은 남돌은 대중성이 없다는 편견을 깼고, 통계적으로 팬덤을 끌어모을 수 있냐는 전략과도 동떨어져 있다. 이들이 성공한 요인은, 스마트 폰이나 게임을 할 때 음악을 틀어놓는 BGM 시대에 누구나 함께 따라 부르는 싱어롱(sing along)의 옛 가치가 복원했기 때문이다. 아이돌 산업군의 비즈니스 모델에 있어서 《Fourever》은 JYP의 주력상품이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었다.   

 


#19 : Mk.gee, Two Star & The Dream Police 

마이클 고든이 만든 노래는 Z세대와 기성세대를 포괄하는 플랫폼을 마련한다. 《Two Star & The Dream Police》는 프린스와 필 콜린스, 재즈로 출발해서 존 메이어, 본 아이버, 프랭크 오션, 슈게이징, 요트 록으로 귀결된다. 28세의 뉴저지 출신의 기타리스트는 가사는 불투명하게 들리지만, 명료하면서도 복잡하고, 낯설면서도 친숙하고 혼란스러우면서 절제된 음악을 들려준다. 메인스트림 바깥에서 불어온 낯섦은 이내 80년대 라디오에 흐를법한 서정성에 그만 신구세대가 함께 얼싸안고 따라 부르게 된다.      



#18 : 막달레나 베이(Magdalena Bay), Imaginal Disk 

앨범 제목은 ‘Imaginal Disc’에서 따왔다고 한다. 번데기가 용화과정을 거쳐 성충으로 변할 때, 날개, 더듬이 같은 성충이 이루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세포 덩어리를 뜻하는 용어다. 생물학적 개념으로 가져와 실존주의 철학 구체적으로는 정체성의 가단성, 시간의 축적, 의식의 한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막달레나 베이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구조에서 박자 변환, 공간감 있는 아르페지오 브리지, 급격한 곡 구조 변화를 활용한다. 그 목표는 기존의 록 음악을 하이퍼팝의 전방위적인 방법론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옛날 음악을 신선하고 혁신적인 사운드로 재편하면서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후크를 잊지 않는다. 트럼프 2.0 시대, 즉 네오파시즘이 발흥하며 대중문화가 후퇴한 한 해에 유토피아를 꿈꾸며 청각적 행복을 선물한다.     



#17 :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 CHROMAKOPIA

무채색의 흑백화면, 조르주 프랑주의 〈얼굴 없는 눈〉, 데이비드 보위의 "Heroes"가 가리키는 것은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다. 간이 가진 사회적 지능이 페르소나를 연기하는 ‘가면’을 앨범커버에서 쓰고 있지만 음반은 역설적이게도 타일러의 내면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연예인, 연인, 팬, 아버지와의 관계를 반영하는 "Darling, I"와 "Like Him"과 같은 트랙에서 그의 마지막 두 레코드인 〈IGOR〉와 〈CALL ME IF YOU GET LOST〉에서 재즈의 영향이 드러난다. 또 "Rah Tah Tah"와 "St. Chroma"에서는 초창기 앨범〈Goblin〉, 〈Bastard〉의 방법론을 보다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아티스트 본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앨범 《CHROMAKOPIA》은 결국 만물은 유동적이고 불변하는 가치가 없음을 뜻한다. 33살이 된 캘리포니아 래퍼는 친구들이 부모가 되어 육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깨달음을 얻는다. 어머니 보니타 스미스의 목소리를 통해 어릴 적에 하신 말씀이 다 옳다는 것을 인정한다. 어른이 되어버린 피터팬은 'Take Your Mask Off'에서 자기 자신을 비판하고, 여성 혐오와 동성애 혐오로 비난받았던 과거를 반성하며, 여성 래퍼 글로리아(GloRilla)와 섹시 레드(Sexyy Red)를 초빙해 사과문을 발표한다.   



#16 : 아루즈 아프타브(Arooj Aftab), Night Reign 

그래미 수상자인 파키스탄 재즈 뮤지션은 인도계 미국인 피아니스트 비제이 아이어와 멀티 연주자 샤자드 이스마일리를 초빙한다. 세 사람은 〈Love In Exile〉에서 협업한 사이이기에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고 있어 더욱 시너지를 발휘한다. 또한 《Night Reign》의 가사는 영어와 우르두어가 혼용되었으며, 18세기 여성 시인 마 라카 바이(Mah Laqa Bai)의 시를 인용하였다.     


자신의 뿌리를 음악적 원천으로 삼은 아프타브는 일상의 언어로 현실의 미묘한 본질을 미묘하면서 낭만적으로 위트 있게 써 내려간다. 애상(哀想)과 상실감에서 오는 창작열은 거의 모든 현대인이 느끼는 혼란스러움과 실존적 두려움이 반영되어 있어 더욱 긴장감 있게 앨범에 집중하게 한다. 특히 'Autumn Leaves'과 'Bolo Na'에서 시공간을 넘나들며 대륙을 횡단하는 보편성이 발견된다. 그녀 내면의 아픔에서 태어난 서정적인 음악으로 승화되고 있기에 진실되게 들리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이 서정적인 재즈 음악에는 그녀의 상처에서 태어났기에 그 위로하는 손길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15 : 켄드릭 라마, GNX

전작 〈Mr. Morale & The Big Steppers〉에서 흑인 메시아에서 한 인간임을 선언한 라마는 드레이크와의 디스전으로 다시금 유일무이한 존재로 우뚝 선다.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GNX》는 속세의 눈총 따위를 무시하고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걸어간다. ‘Heart pt. 6’, ‘Tv off’ ‘Man at the garden`, ‘Raincarnated’, ‘Dodger blue’을 들으며 들을수록 웨스트 코스트를 부흥하는 데 전념한다. 그렇게 자신의 음악적 뿌리를 돌보고 가꾸기로 결심한 그는 수호자로서 서부 힙합을 지킬 것이라 외친다.      

   


#14 : 잭 화이트, No Name 

다수의 아티스트들이 나이를 먹으면 초심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시도는 창조의 고통보다 훨씬 더한 고난을 겪게 한다. 과거의 ‘나’는 양자역학에 따르면 되돌릴 수 없기에, 그 자연법칙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자기 자신이 아니게 되는 모순으로 되돌아온다. 그런데 《No Name》은 그런 시간여행에 성공한다. 잭 화이트는 화이트 스트라입스(White Stripes)에서부터 지금까지 만들었던 음악의 원류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본인의 음악을 분자 단위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로큰롤에 정통한 대가(마스터)만이 가능한 경지일 것이다.     



#13 :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Hit Me Hard And Soft

3집 《Hit Me Hard And Soft》에서 두드러진 것은, 순수한 음악성이다. 대중성을 담보하되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스타가 된 후유증을 기록한 2집 〈Happier Than Ever〉에서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며, 청년이 도니 자신을 인정하고, 그 복잡함을 포용하는 단계로 진입한다. 전작보다 훨씬 대중친화적인 트랙인 “Lunch”, “Wildflower", "Birds Of A Feather"에서조차 그녀만의 어법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장르 변속을 자유자재로 ”L'amour De Ma Vie"에서 그 대담한 실험성이 두드러진다.     



 #12 : 킴 고든(Kim Gordon) - The Collective  

요새 잘 나가는 릴 야티, 데스 그립스(Death Grips)나 이트(Yeat), 플레이보이 카티의 랩 신작보다 《The Collective》는 빅데이터 시대의 좌절된 남성성을 기막히게 포착한다. 70대의 노이즈 거장이 들려주는 트랩 비트와 거친 인더스트리얼 디스토션, 드릴, 808 브레이크 비트가 담긴 익스페리먼트 힙합 앨범은 새로운 창조적 지평을 열어젖힌다. 우리 모두가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랩 음악에 강렬하고 전복적인 실험이 놀라운 이유는, 트랩, 올드스쿨 힙합, 노이즈 뮤직, 콘체르테 등의 놀랍도록 광범위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활용해 힙합 음악을 탈맥락화하고 재배치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수많은 새로운 질감은 세대를 뛰어넘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11 : 블러드 인켄테이션(Blood Incantation), Absolute Elsewhere

이만큼 즐거웠던 프로그레시브 데스메탈 음반은 실로 오랜만이다. 덴버 출신 4인조 메탈 밴드는 깨끗한 보컬, 날카로운 리프, 70년대 아트록을 포괄한 음반을 들려준다. 천문학의 공간감과 심리학의 사이키델릭을 포괄한 2곡밖에 담지 않은 앨범은 장르를 초월적인 프로그레시브 록을 들려준다. 으르렁거리며 돌진하는 에너지가 불가사의한 앰비언트 웜홀이 열리고 은하계를 넘나드는 리프와 크라우트 록과 재즈 퓨전의 공허 한가운데에 청각 세포를 던져놓는다. 거칠고 복잡해 보이는 음의 배열 속에서 어떤 규칙성이 발견된다. 그것을 토대로 법칙이 정립되고, 핑크 플로이드가 주름잡던 과거와 그 너머로 데스메탈이 나아갈 웜홀을 열어젖힌 매우 희귀한 음반이다.     


 

#10 : 무스타파(Mustafa), Dunya

앨범명을 우리말로 하면 ‘인간의 조건’ 정도로 번역해야 할 거 같다. 수단계 캐나다인 시인 겸 R&B 아티스트는 지난해 토론토에서 총에 맞아 숨진 형의 죽음을 추모한다. 무스타파는 올해 초 NME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아무리 분노를 품고 [작곡] 과정에 접근하더라도, 그것은 항상 일종의 우아함으로 해석된다"라고 말했다. 그 슬픔과 분노에서 숭고한 미학인 탄생 한다.   

  

'Leaving Toronto'은 수단의 전통 현악기 오드(Oud)와 마센코(Masenqo), 경건한 아진(أَذَان) 창법, 아랍식 멜로디, R&B, 아메리카나 포크를 빌려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 주택 프로젝트인 토론토 리젠트 파크의 사회문제를 응시한다. "Gaza Is Calling"은 팔레스타인 친구가 연락이 끊겨 가자지구 점령이 가져온 비극을 개인화한다. 《Dunya》은 가족과 친구를 잃은 슬픔에서 영혼을 구제하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곡을 쓰고 노래하는 숙명을 담고 있다      



#9 : 김수철, 45주년 기념 앨범 너는 어디에

김수철은 과소평가된 음악인 중 하나다. ‘정신 차려’ 같은 유희정신,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제가 ‘치키치키 차카차카’, ‘젊은 그대’ 같은 응원가까지 히트곡도 쓸 줄 알지만, 지난 앨범〈기타 산조, 2002〉처럼 국내 뮤지션들이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연구한 음악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연구과제가 광범위하기에 앨범을 하나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개별곡마다 하나의 음악 논문처럼 치열한 탐구열과 실험정신,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국악의 현대화는 최근 그래미와 빌보드에서 별도의 카테고리를 제공한 ‘아프로팝(아프리카 음악)’사례처럼 반드시 도전해야 할 K팝의 미래이자 연구과제이다.      



#8 : 큐어(The Cure), Songs Of A Lost World

십 대들이 60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음악에 열광한다. 더 큐어는 45년 전에 이미 SNS에 넘쳐나는 자기혐오와 자기 비하로 점철된 음악을 시도한 선구자다. 《Songs Of A Lost World》은 로버트 스미스의 원숙함이 드러난 역작이다. 단 8곡밖에 안 되지만, 수록곡마다 몰입도가 높아 재생 시간을 순식간에 삭제시킨다. 고딕 특유의 어두움, 포스트 펑크의 야수성, 대중적인 팝 멜로디가 황금비율로 융합되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의 슬픔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작가의 비전이 웅장하면서도 퇴폐적이고, 비관적이며 암울하게 들린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우아하면서도 강력한 감정을 휘몰아치며 듣는 이로 하여금 뚜렷이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들도록 만든다. 내년에 발매할 15집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상태인 로버트 스미스는 어떤 식으로든 ‘필멸’이 예정된 동반하는 인간의 유한함을 노래해야 할 팔자다.                



#7 : 왁사해치(Waxahatchee) - Tigers Blood 

케이티 크러치필드(Katie Crutchfield)는 항상 절제된 진솔함으로 승부하는 음악인이었고, 30대가 된 지금은 더욱 무르익었다. 그녀의 현명한 혜안과 예리한 표현력으로 ‘성숙’이라는 완곡한 어법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경험이 쌓여 어렵게 얻은 인내심과 공감이 담긴 가사로 음반 곳곳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MJ 랜더맨, 브래드 쿡, 스펜서 트위디 같은 훌륭한 조력자들과 함께한 《Tigers Blood》은 감정적으로 복잡하지만, 고통마저 자신의 동반자로 여겨야 하는 불완전한 인간성을 위로하며, 이 황량한 불경기에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준다.     



#6 : 날라 시네프로 (Nala Sinephro) – Endlessness 

벨기에 출신의 재즈 음악가는 능력 있는 인재를 모집한다. 색소폰 연주자 누비아 가르시아와 제임스 몰린슨, 신시사이저에 라일 바튼, 드럼에 모건 심슨(블랙 미디), 플루겔호른 연주자 쉴라 모리스-그레이, 멀티 연주자 웡키 로직 등 쟁쟁한 음악가를 지휘하며 의도적으로 즉흥연주를 주문한다. 관현악 앙상블은 앰비언트 비트를 기준 삼아 아르페지오를 구축하다가 이내 사라진다. 10곡 모두 유동적으로 톤 앤 매너와 장르를 자유자재로 바꾼다. 앨범을 들음녀 이런 생각이 든다. 무한을 정의하는 것을 결국 만물을 다 조사할 수 없는 인간 인식능력의 유한성으로부터 온다. 앨범 제목은 마음의 유한함으로부터 (무한이) 온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래서인지 《Endlessness》는 들으면 들을수록 인간의 마음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을 비유한 것 같다.     


#5 : 알엠(RM) Right Place, Wrong Person

세계 최고의 아이돌은 홍대 인디 감성을 K팝의 카테고리에 포함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국내에서 인디 음악이 갖는 선입견, 돈이 안 되는 음악이라는 불문율에 도전한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모든 장르는 초창기에는 다들 비주류였다가 널리 퍼지면서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돌 노래에 담긴 음악적 원소들도 과거에는 독립 음악에서 출발할 경우가 많다. 그런 관점에서 이 시도는 언젠가 반드시 이뤄질 것을 조금 앞당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Right Place, Wrong Person》은 지금보다 고평가 될 소지가 있다.    


김남준은 “만약 이 길을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자기 나름의 답안지를 제출한다. 자기 성찰적인 음반으로 돌아온 그는 삶의 불완전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본능을 반영했다. 산얀(바밍 타이거)가 프로듀서로 임명하고, 밴드 실리카겔의 김한주, 미국의 재즈 듀오 도미 & JD 벡(DOMi & JD BECK), 밴드 혁오의 오혁, 대만의 5인조 밴드 선셋 롤러코스터(Sunset Rollercoaster)의 Kuo(궈궈). 영국의 래퍼 리틀 심즈(Little Simz),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모세스 섬니(Moses Sumney) 등 재능 있는 음악가들을 불러 모아 홍대 음악과 서구 팝에서 얼터너티브 K팝이 가야 할 미래를 모색한다. ‘김남준`이라는 평범한 청년에 회의적인 태도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애쓴다. 그 '내적 성찰`이라는 RM의 확고한 예술관 아래 다양한 원소를 충돌시켜 새로운 물질(LP)을 완성한다.     

   


#4 : 비욘세(Beyoncé), Cowboy Carter 

텍사스 출신인 비욘세가 이번 3부작을 기획한 까닭은 흑인 뮤지션이 이 장르에 기요한 공로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났기에 그 한을 풀기 위함이다. 고향인 남부에서 발현된 컨트리, 포크에서 블루그래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아메리카나의 뿌리를 탐험하고 기록(리코딩)한다. 흑인음악의 젖줄인 재즈와 블루스를 포용하는 동시에 R&B와 힙합을 독자적으로 접목하며 클리셰를 영리하게 회피한다. 테일러 스위프티가 컨트리에서 팝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던 방식을 거꾸로 활용한 셈이다. 그렇게 《Cowboy Carter》는 돌리 파튼 등 수많은 컨트리 아티스트를 초빙해 미국 음악의 과거를 발굴하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새싹을 묶어 세대와 인종 간의 다리를 놓았다.      



            

#3 : 폰테인(Fontaines) D.C.-Romance 

2024년에도 기타가 음향의 중심에 설 수 있을까? 이렇게 묻는다면 《Romance》에 그 정답이 실려있다. 악틱 몽키스와 블러의 음반 프로듀서 제임스 포드는 전반적으로 더 접근하기 쉬운 대중성을 주문한다. 실존적 위협을 담은 랩송 'Starburster', 현악 사운드가 일품인 'Horseness Is The Whatness' 리프, 더 스미스가 연상되는 행복하고 로맨틱한 쟁글 팝 'Favourite', 90년대 개러지 록 'Here's The Thing' 라나 델 레이가 떠오르는 발라드 ‘In The Modern World`마저 진솔하면서 진지하게 노래한다. 역동적인 기타 팝은 픽시스, 더 스미스, 콜드플레이에 이어 거의 무한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서로 대립하는 리얼리즘과 이상주의가 기꺼이 서로 사랑을 나누는 진풍경을 이룬다.      

 

         

#2 : MJ 렌더맨, Manning Fireworks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아티스트는 웬즈데이(Wednesday)와 왁사해치(Waxahatchee)와의 협업으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이미 세 장의 앨범을 발표한 중견 뮤지션이다. 닐 영, 윌코(Wilco)가 얼핏 떠오르는 렌더맨은 이 시대의 워렌 제본 혹은 제이슨 몰리나 같이 러스트 벨트 정서를 반영한 목가적인 아메리카나 음악을 들려준다. 《Manning Fireworks》은 한마디로 '좌절된 남성성‘을 반영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배워온 남성성은 무너지고 있다. 사회적 시선에 의해 강요된 남성성은 남성 개인들에게 강요와 압박이 되어왔다. 전통적인 남성상에 대한 신념이 높은 사람일수록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많이 느낀다는 최대 2.5배 더 높은 것으로 연구되었다.   

   

'Wristwatch'나 'She's Leaving You'은 자조적인 뉘앙스로 남자들의 한심한 꼴을 비꼬고 있다. ‘페미니즘’ 자체를 남성에게 변하고 있는 이 세상과 자신들의 전형적인 성역할에 대한 위기라고 여긴다. 남성 스스로 남성성에 대해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는 반증이다. 그저 변화가 두려운 것이다. 남성들에게도 이해심과 배려심이 많고 상냥한 성격을 갖는 것이 곧 남성성을 잃는 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고 ‘남성이 여성을 보호할 만큼 강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다독거리며, 새로운 성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있다.     



#1 : 찰리 XCX. Brat  

『논어』 '옹야'편에 지지자불여호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호지자불여락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라 했다. 공자님도 아는 것과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최고라 하셨다. 진정으로 즐기는 자가 모든 제약에서 해방되어 잠재력을 전부 발휘했다. 샬롯 에이치슨는 10대 중반부터 작곡가로 음악계에 입문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소피(SOPHIE)와 함께 한 EP 〈Vroom Vroom〉에서 하이퍼팝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 〈How I'm Feeling Now〉, 상업적인 팝 뱅거〈Crash〉까지 본인이 선호하던 클럽 문화와 음반사의 기대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팝스타를 강요하는 주류 음악업계의 관행에 염증을 느낀 그녀는 가장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밀고 나간다.      


《BRAT》는 여성 아티스트가 겪는 모순과 경쟁, 한계를 반영하면서도 음악적 고집을 포기하지 않았다.'360`,‘Club classics`, ’Von dutch`, ‘B2b`은 음악 시장의 흐름을 2000년대 일렉트로 팝으로 되돌려놓았다. 뇌과학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존감을 설계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자기 효능감이다. 자기 효능감이란 ‘특정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다. 자기 효능감은 심리적·물리적 요인의 복합적 상호작용 결과물로서 과제 수행과 실행을 위한 인지적 판단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감성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이 음반의 ‘과잉’의 내러티브에는 겉보기에 파티걸을 표방하고 있으나 내면의 독백을 살펴볼 가치가 있다. 연차가 쌓일수록 불안해져 가는 미래의 커리어에서 자신의 음악적 노선을 설정하는 진지한 고민이 담겨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그녀의 고통 속에서 자기 자신을 떠올려주기에 《BRAT》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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