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인생공부 후기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카를 마르크스와 더불어 가장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사상가일 것이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anism)은 크게 세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유형은, 도덕(과 종교상)의 선악과 무관하게 국가이익이 우선시하는 것으로, 가장 적절한 의미에서의 마키아벨리즘이다. 둘째 유형은, 공익을 도외시하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개인이나 파당의 이익만 추구하는 정치 관행을 지칭한다. 이른바 권모술수라는 말로 압축되는 것으로 현재 사람들이 통상 생각하는 마키아벨리즘이란 이 유형을 가리킨다. 셋째 유형은, 정치라는 범주를 떠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처세 방식으로 가장 넓은 의미의 마키아벨리즘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 본인 가장 최우선하는 가치는 국가의 존립이다.
《군주론(Il Principe)》의 본의를 알기 위해서는 저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봐야 한다. 토스카나 가문에서 자란 마키아벨리는 1498년부터 1512년까지 피렌체 공화정의 외교를 담당하는 서기장과 군사 업무를 총괄하는 10인 위원회의 서기장을 역임했다. 1512년 스페인의 침공으로 피렌체 공화정이 몰락함과 동시에 메디치 가문이 재집권하게 되면서 마키아벨리는 공직을 박탈당한다. 1513년에는 메디치 가문에 대한 반란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으나, 교황 특사로 석방되었다. 그는 다시 공직 생활을 하기 위해 메디치 가문의 새로운 군주를 알현하여 《군주론》을 헌정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지만, 끝내 외면당한다. 사후 5년 후 친구인 안토니오 블라도에 의해 로마에서 《군주론》 초판이 발간되었다.
《군주론》은 1513년에 공무원으로 재취임하기 위해 로렌초의 셋째 아들 줄리아노에게 바치려 했다가, 그가 죽자 대인 로렌초의 장손인 동명(同名)의 로렌초에게 헌정하였다. 한마디로 구직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철저히 군주의 관점에서 기술된 책으로 권력의 본질을 밝히려고 했다.
그럼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은 권력자의 의지를 타인에게 강제하는 수단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를 쓴 까닭은 권력을 이렇게 쓰라고 군주(권력자)에게 조언하기 위함이다. 그 동기는, 외적에 의해 조국이 침탈당하고, 정권 교체로 공직에서 쫓겨나도 봤기에 마키아벨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국가의 존속 여부였다. 즉 권력은 국가를 존속하기 위해서 때때로 추악하고 잔인한 행위도 용인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마키아벨리즘의 첫째 유형이 저자가 주장한 진의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군주론》의 가장 큰 업적은 정치를 도덕과 종교에서 분리한 것이다. 즉 어떤 정치세력이나 당파를 선과 악으로 규정짓는 행위를 비판한 것이다. 특정 정파가 악마화되고 신성시된다면 그 국가는 분열하고 국민끼리 갈등이 심화될 것이다. 조국을 침략당했던 경험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가 하고 싶은 말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군주(예언자이며 입법자이며 혁신가이며 구원자인)는 자신의 군대(시민군)을 조직하고, 새로운 행위 윤리(필요성의 원리)로 루크레티우스적 자유의지로 ‘포르투나(행운)`이 부여해준 적절한 기회(오카지오네)를 포착하여 이탈리아를 수호하라는 것이다. 조국의 자유와 독립이야말로 지도자가 권력을 행사해야 할 정당성이라고 명시했다.
이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기에 『군주론 인생공부』는 원문에서 42개의 명제를 엄선해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설을 더했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며 저서가 하나의 가치체계로 정리되어 있다기보다는 저자가 관찰할 인간의 본성과 권력의 현상을 사례별로 정리해놨기에 바로 읽기가 어렵다. 게다가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지라 루크레티우스의 무신론·유물론에 기반해 글을 썼기 때문에 종교적 윤리에 얽매이지 않았다.
이번 그래미 시상식에서 2개 부분을 수상한 사브리나 카펜터의 〈Short n' Sweet〉를 청취하는 것과 같이 거북할 수 있다. 이 앨범에서 사브리나 카펜터는 남자친구와의 사생활을 팔면서 연애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Bed Chem`이란 곡에서 '넌 네가 큰 사이즈를 가지고 있다는 걸 드러냈지(Manifest that you're oversized)`라는 가사가 있다. 이렇듯 체면과 예의범절에 얽매이지 않고 돌직구를 날리는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몰지각한 행동일 수 있다. 이렇듯 권력의 민낯을 전시한 《군주론》은 불편한 책으로 인식되기 쉽다.
작금의 내란 사태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언론 행태를 마키아벨리가 용인할까? 특정 정치인을 악마화하는 특정 종교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옹호할 수 있을까? 이 논리를 정당화하는 《군주론》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것이 옳을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주장한 마키아벨리는 그렇게 해서라도 시민들이 분열하지 않고 국가가 안녕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런 숭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동원할 수 있다고 봤다. 이 대목에서 이 책을 읽은 수많은 정치가들이 착각하는 것이다. 강력한 리더십은 조국의 독립과 시민의 자유를 보장할 때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 권력에의 의지가 인간 욕망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이상, 공익이란 미명 하에 사익을 추구하는 ‘부패`의 구렁텅이로 빠질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권력자 자신을 부패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권력 그 자체임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