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이념‘을 중시하는 외교로 나토에 참석하고, 우-러 전쟁에 지원했다. 그 결과, 한·미·일-북·중·러 대결 구도만 강화되고, 강대국의 대리전에 국민들을 몰아넣었다. 윤석열의 ‘이념 외교’는 우리의 전통적인 ‘국익 외교’ 노선에서 크게 이탈한 것이다. 족보에 없는 것이다. 이승만·박정희 등 역대 대통령들은 대한민국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익 외교’를 대외 관계의 중심 가치로 삼아왔다.
잘 알다시피 이승만·박정희는 유명한 반공주의자다. 그런 대통령마저 외교에 `이념‘을 내밀지 않았다. 여기에 한국 보수가 외면하는 진실이 있다. 한중 수교를 한 1992년 8월이래 대중국 무역은 우리 성장의 동력이었다. 지난 30년간 무역흑자의 90% 이상이 중국, 러시아, 베트남, 동유럽 같은 구공산권 국가로부터 벌어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인도처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당히 국익을 챙기면 된다. 아직은 미중 패권 경쟁이 어느 한쪽으로 결정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이념‘에 집착할까? 정답은 이념이 불분명해서다. 윤석열, 이준석, 홍준표가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외치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이러한 한국 보수의 이념 부재는 대선후보를 외부에서 영입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사실 국민의 힘은 내부적으로 정치지도자를 성장시켜 본 경험이 없다. 정당정치를 경험하지 못한 윤석열은 정치도 행정도 경험한 바 없이, 검찰에서 하던 하다가 탄핵됐다. ‘윤석열 사단’의 특징은 수사 대상자를 최대한 압박하고, 증거 수집을 위해선 위법도 불사했다. 그렇게 해서 일부 성과를 거두기도 했고, 나중에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더라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국민에 대해서도 그렇겠지만, 국민의 힘에게도 그럴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 왜 국힘은 퇴보했을까? 유능한 보수가 그나마 먹히던 마지막 시기가 MB의 “부자 되세요”였다. 747 공약에서 무려 매년 7% 성장을 약속하고, 4만 불 국민소득과 세계 7위권 국가를 약속했다. 거기에 뉴타운 공약으로 국민의 욕망을 자극했다. 2010년, 2월 18일 청와대는 747 공약을 폐기했다. 2009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0.3% 성장률로 곤두박칠치더니, 강만수의 고환율 정책으로 2만 달러로 내려앉았다. ‘부동산 부양’에도 불구하고 전국 미분양주택 수는 이명박 정부 때(2011년 2월) 8만 588 가구로 역대 정권 중에 가장 많았다. 부동산 가격 상승률도 노무현 정부 때 12.28%보다 현저히 낮은 1.68%에 그쳤다.
이명박 때부터 국민들은 ‘유능한 보수’ 이미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2016년 5월 5일에 박명림 교수가 쓴 [중앙시평] 한국 보수는 왜 이리 무능한가 | 중앙일보에 따르면 `보수정부 둘(김영삼·이명박)과 진보정부 둘(김대중·노무현)의 평균을 비교하건 보수가 앞선 경제 지표는 없다. 보수가 주력하는 성장·수출·외환·주가 부문조차 진보정부가 훨씬 유능하다.’ 외환위기도 보수정부 때였다.
그 원인으로 든 것이 안보상업주의(반공팔이)를 꼽았다, “민주·진보·개혁세력을 좌경·용공·종북·좌파로 낙인찍는 허위의 이념 공세만 성공할 수 있다면, 그로 인한 이념 동원과 지지 결집 덕분에 보수는 굳이 능력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보수정부들은 집권 시 경제공약을 달성한 적이 없었다. 무능을 이념으로 가렸던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조중동이 김대중·노무현이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비판했지만, 이명박 또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 ’ 시장보수‘라고 선전했다. 두 정당의 이념 차이가 별로 없었기에 역설적으로 더욱 매카시즘에 더 매달렸다.
그런데 세상은 많이 변했다. 첫째, 신자유주의는 미국 정치권조차 이제 언급하지 않는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월스트리트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정도다.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경제 패러디임이 없는 틈을 타 트럼프는 `자국중심주의'를 내세운다. 리쇼어링과 관세를 통해 미국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자급자족을 추구하면서 보호무역이 대세가 되었다. 중국도 내수와 수출을 함께 증진시키는 쌍순환 전략으로 이 흐름에 올라갔다. 지난 30년간 세계화로 가장 수혜를 입었던 대한민국에 악재가 터진 것이다. 이명박·박근혜·윤석열 경제정책은 이러한 변화된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남방(동남아시아), 신북방(러시아, 중앙아시아) 지역 등 수출 시장 다변화 정책, 무역 2조 달러 시대, 4차 혁명 대응,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탈원전 정책을 시도라도 했다.
둘째,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공산국가’는 사라졌다. 헌법에 공산주의가 명시된 네 국가인 중국, 베트남, 쿠바, 라오스 모두 외국 자본 유치에 적극적이며 자본주의에 호의적이다. 우리나라는 베트남에 가장 많이 투자한 나라(2위)이기도 하다. 대중국 투자의 경우에는 작년 7위로 밀려나긴 했지만, 1992년 수교 이래로 5위권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 삼성, 롯데 같은 대기업이 공산국가에 이렇게나 많이 투자한다는 데서 반공이 얼마나 낡은 이념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문제의 북한은 헌법에 공산주의가 없는 나라지만 공산국가로 치면,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국교 정상화를 도모하며, 개혁·개방할 의지가 있어 보인다. 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 집중!”이라며 개혁·개방을 당의 노선으로 채택한 바 있다. 현존하는 공산국가 모두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기에, 윤석열은 815 경축사와 계엄령 포고문에 `종북 국가 전복세력', `공산전체주의'라는 가상의 적을 적시하기에 이르렀다.
보수는 시대 변화에 발맞춰 전통에 맞게 ‘바꾸자`는 가치이다. 과거회귀를 꿈꾸는 이명박·박근혜·윤석열은 과거를 그리워하며 무능함과 시대에 뒤떨어진 퇴행적 모습을 꾸준히 드러냈다. 이토록 무능한 업적에도 어떻게 계속 집권해 왔는가?
국민의 힘의 뿌리는 1990년 3당 합당과 민주자유당 출범에 있다. 3당 합당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보수정당이 다양한 유권자 집단을 끌어안은 캐치올파티(catch-all party·모든 연령과 계층을 포괄하는 정당)가 됐다는 점이다. 조중동은 그래서 `보수 대연합‘이라고 불렀다.두 번째는 김영삼 대통령과 통일민주당을 선호하는 온건한 중산층, 서울 화이트칼라나 부산·울산 경남 일대의 대공장 블루칼라들을 포섭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호남을 포위하는 지역 엘리트 연합의 형성이다.
이런 `대호남 포위’ 전략에 맞서 김대중은 `유신세력(김종필·박태준)'과 손을 잡아 최초로 민주진영이 정권을 잡았다. 이때 국정경험은 경험한 덕분에 민주당은 수권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다음 노무현은 지역주의 타파를 외쳤다.실제 수도권과 부울경에서 민주당 지지가 많이 올라왔다. 노무현의 기치를 이어받은 문재인 대표는 의원중심의 `원내정당'에서 당원중심의 `대중적 이념정당'으로 변모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 기간 내내 `국민의 힘'은 원내정당을 탈피하지 못하다가 검찰에게 먹힌 반면에 민주당은 제1당으로 우뚝 올라섰다.
이재명 후보는 보수를 되찾아오겠다며 `이념 타파‘를 외친다. 민주당에 고정관념(부동산 규제, 증세, 복지)에서 벗어나 상법과 상속세를 개정하고, AI, 신재생 에너지, 문화산업, 북극 항로 공약 등으로 재벌과 보수세력을 포섭해 나간다. 국민의 힘보다 더 오른쪽으로 나아간 것이다. 실제 민주당의 정책 이념은 중도 보수가 맞다. 이게 정규재, 조갑제, 윤여준 같은 옛날 `이념보수’들과 재벌들이 민주당에 호의적인 이유다.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 이후로 유럽 진보 정당들이 우클릭한 것처럼 말이다. 그 반대급부로 유럽 보수정당이 이념을 내세우기보다 `공공의 적‘을 상정하고 지지세를 끌어모으는 파시즘으로 넘어갔다. 우리나라도 성조기 부대, 서부지법 폭동, 몇몇 커뮤니티의 혐오 발언을 비춰봤을 때 극우화가 의심된다. 이점이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