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ism Movies
우리 언론자유지수는 62위로 1년 새 15단계나 추락했다. 냄비근성을 띄고 사대주의에 능한 한국 언론이 지향하는 것은 권력이다. 독자 구독 시스템이 아닌 광고 중심의 언론구조는 권력을 감시하기는커녕 결탁하도록 부추긴다. 그 기원은 군사독재부터 출발한다. 박정희 정권이 광고 수주를 차단해 경영 압박을 가함으로써 언론사 사주를 굴복시키는 방식으로 동아일보사를 탄압한 '동아일보 기자 해직사건'이래로 전두환의 언론통폐합, 보도지침, 언론기본법 제정 등으로 통제하는 한편, 언론에 다양한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며 언론과의 유착관계를 형성한 결과이다. 광고와 협찬에 의존하는 수익구조는 독자들을 배려하지 않아도 되는 기형적인 K-저널리즘을 만들었다.
한국 언론은 그 자체가 대자본이고, 자본의 이익을 대변한다. 그 기득권을 옹호해 주는 정치세력과 유착되어 거의 한 몸이다. 자기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모든 사회적 변화에 부정적이다. 자유쥬의를 고민하고 민주주의를 확장하려는 모든 시도에 빨갱이 딱지를 붙였다. 독립성의 의미를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언론 정도로 이해하는 협소한 인식이 문제라고 본다. 취재대상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정파성을 눈치 못 채도록 취재원의 익명성을 지나치게 보장한다. “OO 씨에 따르면, 전문가에 따르면, 업계에 따르면, 해외 소식통에 따르면 (심지어 SNS/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따옴표를 따와서 스포츠 중계하듯 아무런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고 내보낸다. 평가유보적, 중립적 단어를 써서,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정부 등 국가기관 출입처와 발표 자료에 크게 의존하는 취재 관행은 불가피하게 그들의 관점이 깊게 반영된 보도를 낳는다. 무엇보다 언론사부터 민주주의가 이뤄지지 않는데, 그 보도가 민주적·자유적 지향성을 가질 수가 없다.
영화는 일본 아베 총리가 연루됐던 사학 비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내각정보조사실은 총리의 직속 조직 역할로서 여론을 조작한다. 정부가 사사건건 보도 내용을 검열하는 상황에서 이를 심층 취재하기란 쉽지 않다. 극 중 기자에게 오보’를 내보냈다는 누명을 쓰고 죽음에 이른 일이 자식 세대로 대물림되는 비극은 받아쓰기에 환장한 ‘어떤 나라` 언론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베를린 영화제 은곰(여우주연)상
레거시 미디어의 쇠퇴를 예견한 작품, 우리를 TV 뉴스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현장으로 안내한다. 방송사 PD인 제인 크레이그(홀리 헌터)는 앵커를 기자 출신의 ‘아론 앨트먼(앨버트 브룩스)’에게 맡길 예정이었다. 그러나 매력적인 스포츠 캐스터인 탐 그러닉(윌리엄 허트)에게 마음을 빼앗기며 벌어지는 로맨스 코미디 영화다. 초점은 삼각관계보다 모든 직장에서 형성될 질투와 경쟁에 관한 것이다. 감독은 TV 뉴스 제작과정을 (영화를 통해)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언론매체가 쇼비즈니스로 전락해가고 있는지에 질문을 던진다.
《시빌 워》는 트럼프주의에 내포된 파시즘이 득세하는 세계정세를 되돌아보게 한다. 도널드 트럼프를 연상시키는 독선적인 대통령에 반발해 19주가 미합중국에서 이탈하는 내전이 발발한다. 이를 취재하는 종군기자를 따라간다. 영화 속 참혹한 내전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민주사회의 생명은 언제나 '다양성'에 있다. 파시즘의 '획일성, 일방성 그리고 독재성'은 효율적일 수는 있으나, 민주주의에는 항상 치명적인 독이었다. 즉 민주주의는 자기와 견해를 달리하는 자를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1995년에서 1998년 사이 스티븐 글라스는 미국 저널리즘에 떠오르는 별이었다. 영화는 미국의 주간지 "뉴 리퍼블릭"에 기재된 수많은 허위기사들이 밝혀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사건은 2003년 뉴욕타임스의 제이슨 블레어 사태와 더불어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저널리즘 스캔들이다. 《셰터드 글라스》의 미덕은 글라스의 행동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해 그의 개인사를 들추거나, 당대의 문화적·정치적 분위기를 끌어들여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정적인 소재로 관심을 끌기보다는 진실을 추적하는 저널리즘을 진지하게 고민한 작품이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나라는 취재원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카더라"기사가 판을 치는데, 허위조작에서 자유로운지 의문스럽다.
이 밀실 스릴러는 1972년의 뮌헨 올림픽 참사를 생중계한 ABC 방송국의 스포츠 중계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관객을 방송 통제실로 안내하며, 저널리즘의 진실성과 보도의 도덕성을 함께 고민하게 한다. 누구나 뉴스를 실시간을 올릴 수 있게 된 SNS 시대에, 미디어의 보도 책임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시스템이 어떻게 30년 동안 성범죄를 은폐할 수 있을까? 뉴욕타임스 기자 조디 캔터(조 카잔)와 메건 투히(캐리 멀리건)가 할리우드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의 실상을 파헤치는 이야기는 애슐리 저드를 시작으로 앤젤리나 졸리, 귀네스 팰트로, 레아 세두 등 배우들의 폭로가 이어지며"Me Too" 운동으로 전개된다. 《그녀가 말했다》는 민감한 내러티브를 절제된 연기와 연출로 주도한다. 우리는 와인스틴 이야기에 익숙할지 모르지만, 마리아 슈라더 감독과 레베카 렌키에비츠 작가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의 관점과 경험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한 권의 잡지를 영화로 옮긴 《프렌치 디스패치》는 "저널리스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로 찬사를 받았다. 웨스 앤더슨 감독이 사랑하는 잡지 〈뉴요커〉의 형식을 영화적으로 옮겨왔다. 마치 제본한 듯 만든 ‘잡지사 이야기’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인쇄 매체의 매력을 스크린 위에 펼쳐놓는다. 특히 정치/시 섹션의 68 혁명에 관한 기사는 문화사적으로 활자 매체를 되짚어 보는 성찰적 의도가 엿보인다.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는 팽팽한 연기, 지능적인 각본, 절묘한 편집으로 2003년 영국 BBC가 방영한 미니시리즈를 스크린에 옮긴다. 워싱턴 글로브의 기자 칼 맥카프리(러셀 크로)는 대학시절 룸메이트이자, 국방 민영화 반대 번안을 추진하는 젊고 야심 찬 하원의원 스티븐 콜린스(벤 애플렉)의 수석보좌관의 사망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그 전날 벌어진 의문의 살인을 연결 짓자 정치인의 스캔들에서 국방 분야의 민영화를 독점하려는 방위산업체와 정계의 유착으로까지 확대된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에 사멸해 가는 신문산업에 대한 짙은 애정이 느껴진다.
〈제보자〉는 2005년 있었던 ‘황우석 스캔들’을 소재로 삼은 영화다. 제보자 즉 내부고발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기자는 진실을 밝히는 직업이라는 것을 명시한다. 우리나라는 배신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있는데, 내부 고발과 배신은 다른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밝힌다. 복잡한 줄기세포 조작 사건은 기자와 박사의 대립 구도로 단순화시켰다. 한국에서 멸종된 정의로운 언론 종사자가 진실을 쫓는 직업의식만큼은 프로페셔널하다.
1969년 8월 베이 지역 신문사들에 ‘조디악’이라 자칭하는 연쇄살인범의 편지가 배달된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상술한 그 편지는 동봉한 암호문을 신문에 싣지 않으면 추가살인을 저지르겠다는 경고를 한다. 신문에 편지와 암호문이 공개되자 샌프란시스코 일대는 패닉에 휩싸인다. 형사인 데이빗(마크 러팔로)과 빌(앤서니 에드워즈), 신문사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사건기자 폴(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은 전력을 기울여 각각 사건 해결과 추리에 나선다. 그러나 가장 끈질기게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은 경찰도 기자도 아닌, 시사만평가 로버트(제이크 질렌홀)이다.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은 장엄하지만, 때로는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앨런 J. 파쿨라의 〈편집증 3부작〉 중 두 번째 영화는 대통령 유력후보의 암살사건을 쫓는 기자 조셉 프레디(워렌 비티)의 취재를 따라간다. 로렌 싱어의 원작 소설은 케네디 형제의 암살을 둘러싼 음모론에서 느슨하게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 배후를 쫓던 주인공은 패럴랙스 회사(Parallax Corporation)이라는 비밀 조직의 암살계획을 발견한다. 편집장의 승인하에 조직에 잠입한 기자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고든 윌리스의 음울한 촬영은 정부와 기관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반영한다. 위협적인 오프닝과 클로징 법정 시퀀스는 진실이 어떻게 은폐될 수 있는지,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아카데미 각본상
선배 록 저널리스트 레스터 뱅스(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가 주인공 윌리엄 밀러(패트릭 퓨짓)에게 건네는 “그들은 당신의 친구가 아니다”라는 대사는 저널리즘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롤링 스톤지에서 소신 적에 일했던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록밴드 스틸워터(Stillwater)와 투어를 동행취재하는 10대 칼럼니스트 이야기를 꾸민다. 스타와 함께 투어를 돌면서 흥분과 실망 속에서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고충이 반영되어 있다. 비평가는 사적인 팬심을 버리고 독자들에게 당신의 생각을 말해야 한다.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화려한 연예계의 허와 실이 사실적으로 전달하면서도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 순수함을 예찬하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이 정치 스릴러는 1971년 닉슨 행정부에 맞서 용감하게 유출된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하기로 결정한 워싱턴 포스트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과 기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서류는 미국 정부(1960년대 중반부터 민주당과 공화당 행정부 모두)가 베트남에서 패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국민에게는 미국이 승리할 것이라 선전했다는 것을 폭로하는 비밀문서였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그레이엄은 큰 위험을 감수했고, 그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을 만하다. 스필버그는 언론계 내부의 민주주의와 연대의 중요한 교훈을 유쾌하게 제공한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촬영·편집상
뉴욕타임스의 해외 특파원 시드니 샌버그(샘 워터스턴)와 캄보디아 현지 통역가 디스 프란(행 S. 응고르) 사이의 긴밀한 관계는 크메르루주의 대학살에 대한 롤랑 조페의 강렬한 설명의 기반을 형성한다. 저널리즘 영화로서 취재원에 대한 기자의 책임을 강조한다. 샌버그가 귀국한 뒤 홀로 남겨진 프란을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영화의 후반부는 프란이 겪은 폴 포트의 괴상한 정책을 보여줌으로써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 중 하나를 보도한다. 대학살의 실제 생존자였던 행 S. 응고르는 오스카를 두 번째로 수상한 비전문 배우가 되었다.
시카고 모닝 포스트의 편집장이자 전 남편 월터 번즈(캐리 그랜트)는 에이스 기자이자 전 부인 힐디(로잘린드 러셀)가 재혼하지 못하도록 사형집행일이 하루 남은 사형수의 취재를 맡긴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뉴스 세계의 본질을 완벽하게 번역한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속보 경쟁과 발행 부수를 위해 기꺼이 직업윤리 의식을 저버리는 행태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힘없는 약자의 목숨은 소위 세상을 움직인다는 그들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영화는 확대·과장·왜곡된 가짜뉴스에 의한 사건 사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기자들의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태도에서 언론계 전체가 집단적 성찰이 필요하지 않냐고 반문하고 있다.
제목에서 프라이데이는 소설 로빈슨 크루소에 나왔던 충실한 심복인 프라이데이를 가리키고 있는데, 그처럼 월터 곁에서 힐디가 머물러 주기 원하는 애틋한 마음을 담고 있는 은유적인 표현이다.
당시 19개월째 진행 중이던 미국 3대 담배회사 필립모리스 소송사건을 다뤘다. 개봉 4개월 후, 1999년 7월 7일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의 유족 등 흡연피해자 50만 명이 낸 손해배상청구에서 원고들에게 2천억 달러(약 240조 원)를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정체불명의 사람이 필립 모리스의 연구논문을 미국 CBS 방송국의 PD 로월 버그만(알 파치노)에게 전달한다. 그는 논문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의 유명 담배회사의 부사장이자 연구 개발부 책임자였던 제프리 와이갠드(러셀 크로우)를 만나지만, 말을 아끼는 그의 모습에 수상함을 감지한다. 부정부패를 고발하려는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고, 언론을 길들이고 통제하려는 대기업에 맞서는 이야기는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시의적절하다.
언론인과 제보자, 모두 양심과 진실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지만, 와이갠드의 과거가 발목을 잡는다. 정보가 주제와 저널리스트의 상호 신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생존을 위해 양측이 어떻게 신뢰를 쌓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예리한 작품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하는 사고나 범죄를 촬영한 영상을 지역 뉴스 방송사에 판매하는 비상근통신원 루이스 블룸(제이크 질렌할)의 이야기를 다룬다. 미디어 선정주의에 대한 신랄한 풍자는 빌리 와일더의 〈비장의 술수〉에 등장하는 척 테이텀(커크 더글라스)의 영화적 후예다. 저널리즘 윤리를 저버리고 속보 경쟁에 뛰어든 그의 태도는 저널리즘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잠재적으로 부도덕한 행동을 조장할 수 있는지를 실제로 깨닫게 한다. 관객은 미디어가 얼마나 무자비하고 잔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이버 렉카로 대표되는 프리랜서 저널리즘의 잔인한 탐욕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최소한의 저널리즘 윤리가 무시된 뉴스의 상품화와 무분별한 대중의 관음증적 열광을 부추겼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경고한다.
베니스영화제 인터내셔널상
〈나이트크롤러〉의 조상님, 기자 출신인 빌리 와일더가 만든 영화 중 가장 냉소적인 작품이지만,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이해하고 싶다면 입문하기 좋다. 뉴욕의 일류 기자였던 척 테이텀(커크 더글러스)은 주벽과 성추문으로 뉴멕시코의 조그만 신문사로 쫓겨 간다. 이 기회주의자는 타인의 생명을 볼모로 자신의 성공을 향해 진실을 왜곡하고 조회수를 노린다. 그 가짜뉴스에 무지한 대중은 판단할 능력이 없다. 기업가와 정치인이 가세하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러나 가짜뉴스는 스스로 걸려 넘어진다. 거짓을 거짓으로 감추려 들수록 신뢰도는 추락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1925년 퓰리처상을 받은 켄터키에서 일어났던 실화에 근거했다. 기레기는 먼 과거에도 있었고 그 역사는 오래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베를린 영화제 은곰(심사위원 특별)상
〈왝 더독〉은 정치 컨설턴트 콘래드 브린(로버트 드 니로)이 대통령의 성추행 사건을 덮어버리기 위해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스탠리 모츠(더스틴 호프만)를 데려온다. 그는 브린을 도와 국민들을 속이기 위한 가짜 전쟁을 발발시키기 위한 뉴스 조작 영상을 제작한다. 1998년 8월 클린턴-르윈스키 스캔들과 수단의 알 시파 제약공장 폭격 소식이 전해지기 한 달 전에 개봉했고, 이로 인해 언론은 이 영화와 현실을 비교했다.
언론과 정치, 서로 다른 분양인 듯 보이는 이 두 가지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오랫동안 공생해 왔다. 정치는 언론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며, 언론은 정치를 뉴스의 주된 소재로 삼아오고 있다. 우리 언론의 역사를 살펴보면, 일본 헌병대(경찰) 위주로 통제하던 일제 강점기에 정보가 경찰에 다 모이게 되고, 군사 독재 시대에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이 정보를 독점, 통제받아 사실상 정권의 기관지로 전락했다. 1963년 박정희 정부 때 효과적인 언론 통제를 위해 상주 기자실을 설치하고 출입 여부를 승인하지 않았던가? 대통령실, 검찰 기자실이 아직도 폐지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언유착은 현재진행형이다. 민주화가 이루어놓은 무수한 혜택을 누리면서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망각한 언론은 머지않아 대중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카데미 각본상
‘역사상 최고의 영화`는 혁신적인 서사구조와 촬영기법으로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느슨하게 기반한 황색 저널리즘 시대를 조명하고 있다. 관객이 케인의 유언인 "로즈버드"의 의미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기자의 시선을 따라갈 수 있도록 플래시백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한편 영화의 주인공 찰스 케인이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을 모델로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허스트그룹 쪽에서 총수의 사생활을 다룬 영화가 상영되지 못하도록 악의적인 기사를 쏟아내며 영화사와 극장에 협박을 가했다. 그 훼방에 《시민 케인》은 비평과 흥행에서 죽을 쑤고 말았다. 이것이야말로 미디어의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이다.
아카데미 각본·남녀주연·여우조연상
장 보드리야르가 주장한 "시뮬라시옹"이 1981년에 나왔으니 《네트워크》는 5년이나 앞서 그 개념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겠다. 가상의 방송국 UBS와 앵커 하워드 빌(피터 핀치)의 입을 빌어 미디어의 본질을 분석한다. SNS 시대에도 그 분석은 위화감 없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그 독백은 냄비 근성, 여론 조작, 언론기관의 권력화 등은 미디어와 탐욕이 만나 어떻게 세상을 장악했는지에 대한 훌륭한 해석이다. 시청률을 노린 자극적인 보도 행태와 그 미디어에 의해 퍼지는 공포심, 정치적 무관심, 혐오감 등은 《네트워크》의 통찰은 여전하다. 즉 미디어와 저널리스트가 얼마나 무자비했는지를 안다면 방송국 자신의 광기를 퍼뜨리기 위해 동일한 미디어를 이용하는 카프카적 악몽에 빠뜨린다.
정치계와 문화계를 주름잡는 거물 언론인 J. J. 헌섹커(버트 랭커스터)은 그에게 기삿거리를 제공하는 홍보 담당자 시드니 팔코(토니 커티스)를 시켜 여동생과 그녀의 애인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언론플레이를 지시한다. 이 우화는 무엇을 다룬 것일까? 《성공의 달콤한 향기》는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언론이 그 자체로 권력이 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지를 영화적으로 잘 보여준다.
보험판매원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리얼리티 쇼는 미디어를 살찌운다. 26년이 지난 현재, 우리 스스로 일상을 SNS에 공개하는 실정이다. 타인의 인생을 열람하며, 타인의 인생을 오락거리로 소비한다. 더욱이 자신의 SNS 계정에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우리의 인생을 방문자 입맛에 맞게 《트루먼 쇼》처럼 연출하기도 한다. 《트루먼 쇼》가 예견한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트루먼 쇼》와 SNS는 인류의 관음증과 뒷담화 본능을 이용한 돈벌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 영화가 경고한 미디어의 폭력적인 특성은 프라이버시 침해, 거짓 정보, 이중잣대, 혐오의 확산, 불건전한 자존감, 갈등의 극단주의 성행, 획일성, 확증편향, 삶의 만족도와 자아존중감이 떨어지는 현상을 불러왔다는 연구가 잇따라 발표되고 영미권 국가를 중심으로 청소년의 SNS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시행되고 있다.
아카데미 작품·각본상
보스턴 글로브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심층취재(spotlight) 역사를 갖고 있는 일간지다. 독자의 75%가 가톨릭교도들인데, 사제들의 성추행과 은폐를 밝히려는 용기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스포트라이트》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처럼 엄청난 외압에 시달리지만, 그 ‘시스템’이라는 괴물이 어떻게 문제를 방조하고 악화시키는가를 면밀하게 추적한다.
아카데미 남우조연·각색·음향효과상
앨런 J. 파쿨라의 편집증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은 모범적인 저널리즘 사례를 긴장감 넘치는 정치 스릴러로 탈바꿈시켰다.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같은 용감하고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힘을 보여주는 감동이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워터게이트 폭로기사가 미국 역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리는지를 소상히 보여준다. 우리가 음모론이라고 여기던 부정부패가 현실 정치에 등장했을 때, 언론이 마땅히 해야 역할(권력의 감시 기능)을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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