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쩔수가없다*우리는 산업예비군

No Other Choice(2025) 후기

by TERU

1997년에 출간된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도끼(Ax)〉은 “정리해고”와 “살인”을 나란히 놓는다. 왜냐하면 90년대 미국은 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비용을 줄이려고 해외로 공장들이 옮겨갔다. 이때 맹활약한 CEO 잭 윌치는 생산시설 외에 인력은 대량으로 해고된다고 해서 잭의 별명이 “중성자탄”이라 불렀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발맞춰 미국은 빠르게 제조업을 포기하고 금융업과 서비스업을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현대사회에서 가장의 실업은 가정의 생계를 끊는 것과 마찬가지다. 2001년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라는 영화로 만들었다. 박찬욱은 리메이크를 결심하고서 20년 동안 "필생의 프로젝트"를 실현시키려고 노력했다. 그 결실이 마침내 이뤄졌다.


㉠우리는 산업예비군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제목 그대로 인간이 처한 불가피한 상황을 다룬 작품이다. 만수나 만수가 제거하고 싶은 사람들(이성민, 박희순, 차승원)도 모두 일자리를 구해서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라는 점이다.


박찬욱 감독은 노동을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보여준다. 제지와 나무, 온실과 집으로 구체적인 현실을 비유한다. 민수의 손길로 완성된 집은 만수가 “다 이뤘다”라고 할 정도 본인의 인생 전부를 대변한다. 온실을 가득 채운 굴곡진 분재들은 무한경쟁 속에서 25년간 제지업계에서 버티다가 AI와 불황 앞에 설 자리를 잃은 주인공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절망감과 절박함을 투영했다.


이것을 잘 설명해 주는 개념인 “산업예비군”은 자본주의는 항상 실업인구를 유지함으로써 노동비용(임금)을 낮게 유지한다는 설명이다. 엥겔스가 처음 주장한 것으로 노동 시장에서 어떤 일자리에든 취업 경쟁함으로써 임금을 낮게 유지한다. 현대인은 누구나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실업’은 자본주의 이전에는 일어나지 않은 현상이다. 노예와 농노는 평생 일자리를 구할 필요가 없었고, 장인이나 수공업자 같은 실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주인(귀족)을 위해 일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단순히 자급자족하려고 일하는 것이지 ‘실업’ 상태는 아니었다. 심지어 자본주의 하에서도 스스로 일하는 사람들은 “자영업자”인데, 이들은 세법상 ‘노동소득’으로 분류되지 않고 ‘사업소득’으로 과세한다.


만수와 그의 경쟁자들은 똑같은 처지임에도 만인을 위한 투쟁을 벌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본주의 하에서 실업은 ‘반드시’ 발견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정치인들은 실업자들의 백수 생활을 개인적인 실패인 것처럼 비난한다. 그러나 누구나 실업자가 되거나 어쩌면 노숙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가 노동자들이 순종하고 뭉치는 걸 두려워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어쩔수가없다》는 노동자의 존엄이 어떻게 소거되고, 한 가정을 붕괴시키고, 사회 전체에 불안을 조성하는지를 직시한다. 실제로 노동 시장에서 구직을 위해 치열한 경쟁은 노동자들이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사용자(고용주)에 맞서 노동 요건 개선을 위해 뭉칠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사용인(근로자)이 사용자(고용주)에게 맞서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일례로 대한민국 노동조합 조직률은 13.0%로 2022년 이후로 계속 하락하고 있는 추세다. 그럼 영화의 줄거리부터 살펴보자!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TERU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여러분의 생각이 바로 정답입니다.

781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3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