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재능 vs 혈통

《国宝(2025)》

by TE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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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야쿠자 아들로 태어나 국보(인간문화재)에 오르는 가부키 배우의 이야기를 그린다. 키쿠오(요시자와 료)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가부키 명문가의 당주 한지로(와타나베 켄)에게 거두어진다. 그곳에서 처음 접한 가부키에 한순간 마음을 빼앗긴 키쿠오는 가문을 이어갈 당주의 아들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와 함께 교육을 받으며 가부키 배우로 재능을 꽃피운다. 그러나, 혈통을 중시하는 가부키 세계에서 키쿠오의 출신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슌스케 또한 자신에게 없는 재능을 가진 키쿠오의 가파른 성장에 위협을 느낀다.


피가 안 섞인 남과 피가 섞인 가문의 후계자가 대립하는 구도

일본의 천만 영화 《국보》는 〈패왕별희〉, 〈왕의 남자〉처럼 예술가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키쿠오와 슌스케 두 인물의 대비를 통해 예술에 인생을 바친 이들의 삶의 궤적을 다룬다. 키쿠오는 재능을 가졌으나 혈통을 갖지 못했고, 슌스케는 혈통을 가졌으나 재능을 갖지 못한 인물이다. 이들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결핍이 열등감 혹은 성장동력으로 작용한다. 두 사람이 공연하며 우정과 갈등, 동경과 질투, 연밀과 원만 사이에서 ‘궁극의 미’를 완성하며 결국 ‘국보’라는 최고의 지위에 오르는 예술가의 일생을 그린다.


3시간 동안 일정한 리듬감이 형성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상일 감독은 본인이 일본 영화계에서 경험한 이방인의 정서를 주인공에게 심어준다. 그것이 자기 연민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는 안전장치가 되어 신파로 흐르지 않는다. 그런 객관화가 가부키의 세계를 지배하는 위계질서, 가족주의, 밀실정치, 가부장제 같은 입체적이고 다의적·다층적 텍스트를 쌓아 올리는 기반이 된다.


공허한 아름다움(美)

가부키는 17세기에 시작되었다. 에도 막부는 풍기 물란을 이유로 남자배우가 여자 배역까지 소화하라고 명한다. 여자 역할을 하는 남자 배우를 ‘온나카타’라고 불렀다. 여자가 아닌데, 완벽한 여성을 연기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키쿠오는 세습 문화로 전승되는 가부키계에서 외부에서 데려온 재능러에 불과하고, 슌스케는 가문의 정통을 체화하고 태어났다.


키쿠오와 슌스케는 여성이 될 수 없고, 타고난 재능과 혈통은 서로에게 없기에 더 탐나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갈망과 결핍에 대해 “남자배우가 여성을 연기하는 가부키 속 온나가타를 현실의 여성성과 온전히 빗대기는 힘들고, 《국보》가 통과하는 시대적 배경상 현대적 여성성과도 다르다. 한마디로 공상적 생물이 지닌 정념을 파낸다는 어려움을 느꼈다. 이는 극 중 가부키 명문가 당주인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겐)가 말하는, 사랑하는 남자와 죽고 싶은 온나가타의 마음이라는 특유의 정념과도 연결된다.”고 이상일 감독은 설명한다.


내가 되고 싶다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이것이야 말로 “일본 최고의 가부키 배우"를 쫓는 두 주인공에게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럼 영화는 그것을 어떻게 묘사했는가? 〈세키노토((関の扉))〉에서의 설경에 기쿠오가 반하는 장면, 아빠 사자가 새끼 사자를 벼랑으로 밀어 사랑을 표현한다는 내용의〈렌지시(連獅子)〉를 한지로와 슌스케와 함께 보는 장면, 여인이 질투로 뱀으로 변한 내용의 〈도죠지의 두 사람(二人道成寺)〉를 통해 여성성을 조명하는 장면, 이루지 못한 사랑을 내세에 이루자고 동반자살하는 내용의 〈소네자키 신주(曾根崎心中)〉을 통한 유미주의 까지 가부키 장면은 대사나 연기로 표현하기 힘든 예술가의 고뇌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무대 위에서 주인공이 행하는 표정과 동작은 인물의 내면을 투영하고 있다. 무대 위 허구와 무대 밖 현실을 대비하거나 두 배우가 동일한 배역을 서로 다르게 풀어내는 장면을 교차해서 보여줌으로써 두 사람의 예술관이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앞으로 그들의 삶이 엇갈리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국보》는 이야기의 갈등을 굳이 만들지 않아도 가부키를 통해 관계의 균열을 설명하고 있다. 기쿠오와 슌스케 각자의 감정의 결, 예술에 대한 입장 차이를 무대에서 분명하게 시각화한다. 무대 위의 연극성을 통해 무대 밖의 인물 묘사를 대신한다고나 할까? 요시자와 료와 요코하마 류세이의 절묘한 연기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것이긴 하다.


일종의 대하드라마 같은 느낌으로 긴 세월 동안 두 예술가의 엇갈린 길을 감상하면 좋을 듯싶다. 볼거리가 화려하고 그 의미가 깊다. 가부키 공연을 고향 잃은 소리꾼 가족의 〈서편제〉의 굴곡진 한 풀어내는 흥겨운 가락처럼 즐기면 된다. 50년 간의 경쟁과 생존을 토대로 한 문화적 연대기이지만 일본과 가부키를 보는 이상일 감독의 양가적 시선 덕분에 국수적이라던가 왜색이라던가 이런 논란 없이 관객을 보는 내내 몰입시킨다. 그러니 안심하시라!


★★★☆ (3.5/5.0)


Good : 3시간, 전혀 지루하지 않다.

Caution : 좀처럼 만나기 힘든 대하드라마


●이상일 감독은 "학생시절 천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를 본 충격에서 언젠가 이런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가부키를 테마로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라고 말했다. 주제에 관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사람에게는 헌신만큼 오만함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다. 원하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살아감에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다. 분별하고 선택하는 것 또한 용기다. 결말에 이르러 예술가의 삶에 대한 이러한 가치도 녹이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실사영화가 흥행수입 100억 엔을 돌파한 건 2003년 개봉된 〈춤추는 대수사선 더 무비 2〉 이후 무려 22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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