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존재를 남긴 당신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정세랑 신작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를 읽고

by 다른
자연광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표지. 타이틀 글자 위엔 글리터를 입혀서 정말로 반짝반짝한다.




책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읽기 전이나 읽는 도중에나 얼마나 한참을 쳐다보고 쓸어보고 사진을 찍어댔는지 모르겠다. 틀림없이 이 커버만큼 예쁜 이야기로 책 속이 가득 차있을 거라 다시금 확신하게 만드는 외관이었다.


소설은 멋진 여성 '시선'으로부터 도착한 20세기의 이야기들과, 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온 가족들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심시선, 부드러운 시옷 발음이 세 번 반복되는 그의 이름은, 어찌나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 부드럽고 공평한 시선들을 보내줄 것만 같은 멋진 이름인지. 실로 이 책은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간절히 바라는 모든 올바른 시선들을 담은 책이었다. 나는 에코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정세랑의 소설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에코페미니즘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의 책이 에코페미니즘의 정의나 역사 등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마음의 정수랄까, 자연과 여성의 해방을 바라는 사람들이 꾸는 꿈이 어떤 것인지는 어디에서보다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아름다운 꿈으로 부풀어 오르지 않는 게 가능할까. 우선 여행은커녕 생활에 필수적인 반경을 약간 벗어나는 일조차 금기시되고 있는 요즘, 하와이의 아름답고 여유로운 풍경을 마음껏 상상하며 누릴 수 있는 탁 트인 시원함이 이 책에 있다. 하와이에는 가본 적도 없고 지식도 전무해서 책을 읽는 동안 하와이에 관한 들어본 적 없는 단어들이 등장할 때마다 검색을 해야 했는데, 네이버에 단어를 검색하면 곧바로 뜨는 설명과 사진들을 보면서 작가가 따로 각주를 달지 않은 것은 분명한 의도에 의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검색한 단어들은 주로 먹을 것들이었다. 하와이의 유명한 어떤 디저트, 그것을 파는 유명한 현지 가게 등. 내가 검색을 통해 알 수 있던 것은 단지 '그것이 무엇인지'만이 아니라, 실제로 하와이에서 그것을 먹어본 사람이 블로그에 포스팅한 생생한 체험과 소감들이었다. 이렇게 생긴 사람이, 몇 년도 몇 월 며칠에 하와이 어디어디에서 이것을 먹었고, 이 가게와 음식의 생김새는 이러이러하며, 어떠어떠한 맛이 나고, 이때 이 사람은 이런 기분이었구나. 그렇게 서치를 마치고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내가 지금 당장 하와이에 있거나 언젠가 다녀온 경험이 있지 않아도 훨씬 풍성한 책 읽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이런 게 바로 21세기의 책 읽기렷다.


정세랑의 다른 많은 작품들이 그렇듯, 이 책 역시 등장하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작가는 단 한 명에게서라도 서사를 빼앗지 않기 위해 애쓴다. 내가 정세랑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인, 그의 지극히 '소설가적인' 면모이다. 이들의 엄마이거나, 할머니이거나, 아버지의 두 번째 아내이거나, 장모님이거나 한 바로 그 심시선이 죽고 난 뒤 남겨진 가족 모두는 시선에게 어울리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시선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시선이 젊은 시절을 보냈던 하와이로 향한다. 이들은 모두 시선으로부터 뻗어져 나온(직접 핏줄이 닿아있지 않다 하더라도) 가지들이기에, 제각기 시선의 성품과 영향들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삶들을 살며 저마다 다른 고민들을 안고 살아가지만 단 하나, 시선을 향한 애정만은 동일하다. 제사란 애초에 죽은 사람을 위해 하는 거라지만 산 사람들끼리 산 사람들의 세계에서 지내는 의식이다. 이들은 향을 피우고 술을 붓고 떡과 과일을 올리고 상을 향해 절하는 대신('전 부치고 생난리를 치(11)'는 대신), 시선이 고된 젊은 날을 보내며 끝내 살아남은 땅 하와이에서 제각기 흩어져 그곳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 온 뒤, 함께 모여 그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아름다웠던 시선을 추억하는 방식을 택한다. 죽은 이가 무언가를 바랄 수 있다면, 가장 바라는 것은 아마 남은 이들이 자신의 몫까지 더 행복하되, 자신을 조금은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올바르고 유쾌한 신개념 제사는 참으로 부럽고 탐이 나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 할머니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전부 다 헤아릴 수 없다. 세상의 많은 손주들이 각자의 할머니들을 사랑하겠지만, 할머니 사랑하기 대회가 있다면 반드시 출전해서 우승을 거머쥐리라 다짐할 정도로 나는 나의 할머니를 특별히 많이 사랑한다. 물론 매번 말로 강조하는 만큼 표현을 하거나 잘해드리지는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머니를 누구보다 많이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은 사실이며, 지금의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좋은 면모들이 할머니 손에서 자란 시간들 동안 형성된 것들이라는 점 역시 세상의 많은 이들이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 할머니는 심시선 여사처럼 사회적으로 명성을 쌓거나 작품 활동을 한 적은 없지만, 적당한 기회만 있었다면 분명 그 이상 멋진 업적들을 남겼으리라고 생각한다. 2020년 현재 80대 중반인 노인이 외모로만 봐도 너무나 정정하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운전 실력도 여전하고 카톡도 젊은이들과 하나 다를 것 없이 하신다. 음식 솜씨 역시 말하자면 입이 아프고, 양장점을 운영하셨고 미용 자격증도 갖고 계셨던 할머니는 어린 나의 머리를 손수 잘라주시거나 입을 옷도 직접 만들어주시곤 했다. 나의 쾌활한 성격이나 넘치는 에너지, 쩌렁쩌렁한 목소리나 어지간한 사람들한텐 눌리지 않는 타고난 기세 같은 것은 전부 할머니께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들이며, 다른 어떤 선물들도 기분 좋게 받으시지만 유독 책을 선물해드리면 대놓고 '또 달라'고 하실 만큼 소설책 읽기를 좋아하시는 걸 보면 내가 할머니의 아들의 딸이 아니라 그냥 할머니 딸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곤 한다. 그런 할머니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한 건, 내가 이십 대에 접어들고 나서부터였다. 누구나 그렇듯 어릴 땐 부모나 조부모의 존재가 마치 벽처럼, 천장처럼 느껴진다. 그분들도 나처럼 태어나고, 나처럼 자라고, 나처럼 살아오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뒤에야 처음으로 해보게 된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가끔이나마 할머니를 따로 찾아가 단 둘이 데이트하며 할머니가 기억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가령 지금 할머니가 살고 계신 곳이자 내가 태어나고 아빠가 자랐던 그 동네에 처음으로 정착하게 되신 이야기라든지, 아빠가 어릴 때 당시에는 귀했던 자전거를 사자마자 잃어버렸던 이야기 같은 것들. 워낙 말씀을 잘하는 분이시지만,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들이 숨어있었는지 몰랐기에 나는 가히 충격을 받았었다. 소설. 장편소설, 아니 대하소설 수십 권이 통째로 할머니 속에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남동생에게 진학을 양보해야 했던 할머니의 어린 시절, 국가유공자이신 할아버지와 함께 건너왔을 전쟁 때의 삶, 철모르는 어린 나를 데리고 사셨던 6년 동안의 수고로움 등 참 많은 이야기들을 할머니에게서 듣고 싶어졌다.


책 읽는 일을 거의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처럼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언젠가는 나도 한 권의 책을 쓴다는 막연한 상상을 종종 하곤 한다. 많은 이야기들을 쓸 수 있겠지만, 나는 내가 가장 먼저 써야 할 글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서 할머니께 달려가서 이야기를 보채고 싶은데, 그렇지 않아도 부쩍 예전 같지 않게 약해진 할머니를 마음껏 만나러 갈 수가 없는 요즘이라 계속 애만 태우는 중이다. 요즘 모두가 '코로나 끝나면~'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는데, 내가 '코로나 끝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조건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일이다. 우리 할머니로부터, 사랑하는 이석균 권사님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이 땅 곳곳에 남겨져있는 근사한 것들이 아주 많다는 걸 할머니께 꼭 알려드리고 싶다. 그중에는 우리 할머니로부터 지금 이곳에 와있는 '나'도 있다.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할 때면 언제나 떠올릴 수밖에 없는 분,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가르쳐준 분, 내 할머니와 같은 그런 모든 분들께 당신들이 이 세상에 남긴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이 책이 그러듯 말씀드리고만 싶다. 당신의 조각이 나의 안에 있음이 어찌나 자랑스럽고 기쁜지 모른다고, 당신 역시 당신의 조각을 품은 나의 존재가 그처럼 자랑스러웠으면 좋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