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사유와 그 문장을 위하여

파스칼 메르시어 장편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고

by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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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철학자가, 살아가면서 떠오르는 여러 철학적인 단상들을 논문으로 발표하기까진 번거롭고 그대로 일기장에서만 썩히기는 아까울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의 주인공이 한 권의 책을 발견하고, 주인공에게는 외국어로 쓰인 그 책을 그가 천천히 읽어나감에 따라 작품 속에 책의 내용들이 줄곧 파편적으로 인용된다니, 작가에게 삶의 이런저런 순간들마다 떠올랐던 여러 생각들, 한 권의 책으로 묶기에는 너무 짤막하고 서로 관련이 없는 산발적인 인식들을 작가가 마음껏 펼쳐보일 수 있는 실로 좋은 방법 아니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소설을 써나가는 데 있어 매우 효율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음과 동시에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모든 소설은 각자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일은 어떤 면에서 매번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책장을 펼친 독자는 이 유명한 작품의 세계 속으로 1차적인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여행지인 소설 속에 도착하자마자 주인공인 그레고리우스를 따라 리스본이라는 낯선 공간으로 또다시 여행을 하게 되고, 또 그곳에서는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여러 기록과 증언들에 따라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때문에 나는 매번 이 책의 책장을 펼칠 때면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좀더 많은 층계의 계단을 밟고 깊숙이 걸어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여행지에서의 낯섦과 그곳에서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즐긴다면, 이 책을 읽는 동안 아마 충분히 즐거울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동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해서 마지막 책장을 덮은 순간까지 소설의 문장들을 실제로 읽고 있거나 그러지 않던 모든 시간, 다시 말해 이 책과 함께 보낸 시간들 동안 특유의 이지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온전히 즐겼다. 스위스도, 포르투갈도 전혀 가본 적 없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나만의 베른과 나만의 리스본을 상상하면서 그 반가운 낯섦을 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방문한 경험이 있다면, 또는 내가 나중에라도 가보게 된다면 또 그 나름의 즐거움 역시 클 거라 생각한다.


사실 수 년 전에 이 책을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소설을 읽어나가던 도중에야 내가 그 영화를 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정도로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 정도로 내게 어떤 재미도 감흥도 없는 영화였다. 다만 그레고리우스가 리스본에 막 도착해서 자전거와 부딪혀 안경이 깨지던 장면, 그리고 주앙 에사를 처음 만났을 때 손을 심하게 떠는 그를 위해 그레고리우스가 뜨거운 그의 차를 반쯤 마셔주던 장면이 어쩐지 머릿속에 남아있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분명히 알게 됐다. 이 작품은 온전히 문장들로 가득 들어차서 이루어진, 문장에 의한, 문장을 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그레고리우스와 아마데우, 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확히는 그들의 '문장'이야말로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레고리우스가 따라간 것은 아마데우의 글이었고, 그것이 이 책의 모든 여정과 장면들을 만들어냈으며, 바로 그 아마데우의 문장들이 작품 중간중간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그레고리우스를 물리적으로든 인식적으로든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가 이 작품의 서사에도 물론 관심을 기울였겠지만, 어디까지나 아마데우의 문장들이 이 작품의 시작이요 그 문장을 마주한 그레고리우스의 여정을 기록한 문장들이 그 끝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언어와 글이 주인공인 작품을 영상물인 영화로 만드니, 실패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이다. 영화는 소설과는 다른 결말로 각색되어 있고,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이미지에 기가 막힐 정도로 들어맞는, 이미 잘 알려진 뛰어난 배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소설을 먼저 읽은 다음 영화를 보는 편을 그 반대의 경우에 비해 훨씬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이 책을 읽는 데 걸린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아주 천천히 읽었다. 분위기를 음미하고 싶은 마음에 의도적으로 천천히 읽은 바도 있지만, 가벼운 문장들로 서사를 진행시키는 작품이 아니라 인식의 제고를 요하는 철학적인 문장들이 빽빽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결코 빠르게 읽어나갈 수 없었다. 아무리 읽어도 헷갈리는 길고 긴 유럽식 이름들은 덤. 이 책이 단순한 '일상을 탈피한 여행'이나 '혁명가가 되고자 했던 천재 의사 아마데우의 로맨스'와 같은 느낌으로 이미지화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크다. 특히 나중에 추가된 책 겉표지의, 아마데우와 에스테파니아가 서로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있는 영화 스틸컷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이다. '단 한번의 기적같은 여행'이라는 카피는 분명 정확하지만, 이런 사진과 함께 있으니 의미가 변질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떠남도, 만남도, 이 책에서 전부 중요하지만, 이 책은 무엇보다 사유에 관한 책이다. 사유의 화신과도 같은 한 남자가 우연히 어떤 이의 사유를 마주하게 되고, 그 사유의 주체를 만나기 위해 떠난 여정에서 오직 그의 사유와 그것을 둘러싼 기억들만을 남기고 떠난 이의 사유를 계속 추적하며 이어지는 또다른 사유들을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지금'의 소중함을 깨달아갈수록 어쩐지 점점 일상으로부터의 떠남과 새로운 만남 들이 가벼워져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 요즘이었는데, 이처럼 떠남과 만남을 심오한 층위로 끌어낸 작품을 만나니 참 반가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