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생을 더 사랑하기 위하여

정소현 단편집 <품위 있는 삶>을 읽고

by 다른



이토록 품위 있는 소설집이라니. 시간의 경계, 기억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자아와 타아의 경계를 마음대로 넘나든다. 그렇게 삶을, 사람을, 사랑을 말한다. 어릴 때부터 나에게 소설은 '놀라운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였다.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곳으로 계속해서 독자를 이끄는 작가의 놀라운 솜씨를 말로 형용할 길이 없다. 읽는 이는 위로 솟구치는지 아래로 곤두박질 치는지 알 수 없는 롤러코스터 같은 그의 이야기에 몸을 맡기고, 그저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니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무력한 독자를 강하게 충격하는 소름끼치도록 재밌고 신선한 이야기들. 평소 스스로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 두 눈 똑바로 뜬 채 몇 번이고 한껏 즐겁게 속고야 마는 자신을 발견하길.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독자를 골려먹는 게 작가의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은 훨씬 깊은 곳에 있다. 정말이지 '소설같은' 모든 이야기들은 오로지 그 진지한 질문을 효과적으로 건네기 위한 수단일 뿐. 이 책에 관해서는 순수한 감탄만을 적고 싶다. 단편 하나하나에 전율하며 읽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완벽히 정리해내는 마지막 신샛별의 해설까지. 누군가 가장 완벽에 가까운 국내 소설집을 한 권 대라고 한다면, 이제부터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책을 고를 것이다. 더 매력있는 다른 단편 제목들이 있었는데 왜 '품위 있는 삶'이 제목이 되었을까 의문이었는데, 다 읽고난 지금은 딱 걸맞는 것 같다. 이 책에 담긴 작품들이 너무도 품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 아주아주 가까이에서, 아주아주 먼 듯한 이야기로,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게, 진창에 뒹구는 인간이라는 예쁜 품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