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우리 모두와 이 사회를 위하여

권석천, <사람에 대한 예의>를 읽고

by 다른



이토록 치열한 고민이라면, 고민만으로도 이미 어떤 의미에서는 행동의 경지의 이른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저자는 다양한 이슈와 예술작품들, 경험과 사례들을 들어 다방면의 주제를 다루면서도 줄곧 일관된 주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주장은 필시 오랜 고민과 논의 끝에 여러 후보들을 뒤로하고 정해졌을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제목에 요약되어 있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 사람답게,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자. 나와 너, 우리 모두와 이 사회를 위해서.


저자가 오랜 경력을 가진 기자 출신임을 고려해도 읽을 때마다 놀라게 되는 문장의 유려함은 차치하고, 매 글마다 눈에 띄던 것은 그의 ‘공감능력’이었다. 내게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에피소드 중 하나도 다름아닌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과 교제하며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저자는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부조리와 부정의의 뿌리에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공감 불능이 자리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피력한다. 저자가 어떤 삶의 환경과 경험들을 지나왔는지는 그가 밝히고 있는 내용 이상으로 알 수 없지만, 내가 지금까지 지켜봐 온, 그리고 나 스스로를 관찰해 온 결과 사람은 본래 아무리 자신이 어려운 시간을 지나왔다 해도 현재의 형편에 모자람이 없으면 다른 어려운 이의 감정을 헤아리는 일에 기력을 소모하려 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 점에 있어 저자의 태도, 즉 모든 이에게 공감할 수 있을 리는 없으나 모든 이에게 공감하려는 노력을 스스로가 멈추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태도는 단연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내게는 책을 읽으면서 좋은 문장들,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들을 옮겨적어두는 오랜 습관이 있는데, 과장을 좀 보태자면 이 책은 읽는 동안 거의 책을 통째로 필사할 뻔했다. 그러면서 또 동시에 자꾸만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이 책을 정치적인 책, 좌파 인사가 과장된 음모와 망상으로 권력 가진 이들을 음해하고 시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쓴 책으로 오해하거나 오해하도록 만드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 그러나 이 책이 제기하는 대다수의 문제의식들이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과는 대치되는 것들이라고 볼 수는 있어도, 끝없이 사회의 반성을 촉구하고 또 스스로 반성을 거듭하는 저자의 태도는 그 어떤 진영논리를 벗어난, 그저 이 사회의 한 본받을 만한 어른의 모습일 따름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어른들이 참 많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내가 그런 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