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단 불꽃의 책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를 읽고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는, 이 책의 저자인 추적단 불꽃에게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명의 여성으로서 큰 빚을 졌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다
내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사실 텔레그램을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는 ‘n번방’만을 통해 이뤄진 것이 아니기에 ‘n번방 사건’은 편의상 통칭하는 이름일 뿐임을 밝힌다)을 국민일보 인터넷 기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건 지난 3월이었다. 따지자면 내가 직접 겪은 피해가 아니었는데도 그저 표할 길 없는 분노와 함께 눈물이 흘렀다.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을 어떻게 이 때까지 모를 수 있었는지, 사회 전체가 묵인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들투성이였다. 그만큼 믿을 수 없던 또 하나의 사실은, 이 사건을 최초로 발견한 뒤 오랜 기간 취재하고 마침내 폭로한 것이 두 명의 20대 대학생이라는 것이었다. 경찰도, 기자도 아니고 심지어 큰 규모의 단체도 아닌 두 명의 대학생에게 우리 사회 전체가 얼마나 큰 빚을 졌는지를 생각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사건에 관심을 갖는 한편으로 또한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대체, 어떻게, 이들은 이토록 현명하고 용감할 수 있었나.
내가 n번방의 존재와 관련 사건들에 관해 처음 알게 되었던 시점인 2020년 3월 이후로 마침내 사건이 크게 이슈화되면서 국민 전체의 공분을 사게 됐다. 나는 해당 사건이 흐지부지되지 않게끔 감시하고 활동하는 단체들의 sns를 팔로우하여 차례로 검거되는 가해자들의 모습과 재판 과정 등을 지켜봤다. 서명이 필요한 일에는 동참했고, 알려져야 하는 정보는 공유했으며, 게시물마다 하트를 눌렀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느덧 그와 같은 감시의 눈을 거둔 지 오래인 상태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리고 범죄자들이 피해자와 국민들과 공권력을 비웃으며 그토록 자유롭게 범행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데에 국민과 언론의 무관심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몇 달 새 물러져버린 내 감각이 수치스럽기만 하다. 나 자신이 이미 오래 전 나도 모르는 새 피해를 입었을 수도, 혹은 언젠가 피해자가 될 수도, 내지는 지금 진행 중일 수도 있는데.
아마 n번방 사건에 주목하던 대다수 국민들이 나와 비슷한 단계를 거치면서 서서히 관심을 거두어갔을 거라 생각한다. 세상에는 다른 중요한 뉴스들도 많고, 여전히 코로나19로 인해 전 인류가 생명 및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으며, 그런 걸 전부 무시한다 하더라도 하루하루 자신 몫의 삶을 살아내는 것만도 우리에겐 버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과 같은 시점에 출판된 이 책이 귀하다. 책을 통해 추적단 불꽃은 이미 텔레그램 n번방과는 차원이 다를 만큼 치밀하고 복잡하게 설계된 온라인 성범죄 유형이 새롭게 시작되었으며, 이를 취재 중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어떤 것은 단지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노력만으로도 값질 때가 있다. 물론 항상 그보다 먼 곳에 시선을 두어야 하겠지만, 스스로 그럴 여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단지 이 책을 사고, 이 책을 읽어달라.
이 책은 추적단 불꽃이 n번방 사건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취재하기 시작한 때부터 가장 최근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다루고 있음은 물론, 평범한 대학생이자 취업준비생으로서 같은 학교 같은 학과의 선후배라는 점 외에는 특별한 공통점이 없던 두 사람이 어떤 계기로 가까워졌으며 어떻게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더불어 이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겪어야 했던 부당한 일들과 이를 묵인하는 사회의 모습 또한 생생하게 그리고 있기에, 이 책은 단순히 ‘n번방 추적기’라는 단어로만 요약될 수 없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참 많은 이야기들을 언급하면서도 이들은 하나의 일관된 사실을 말한다. 서로가 있었기에 이 모든 게 가능했다고. 우리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서 참 다행이라고. 사건을 취재하고 경찰에 알리고 언론을 통해 공론화시키고 각종 인터뷰 및 강연 요청에 응하고 피해자들을 돌보기까지, 이 모든 일을 평범한 대학생 두 명이 해냈다는 것을 책을 한 줄 한 줄 읽어가면서도 믿기 어려웠지만, 아니, 이들은 평범한 대학생 ‘두 명’이었기에 그 일을 할 수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다른 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은 물론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돈을 전부 털어 이 책을 최대한 많이 사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선물해서 읽게 하고 싶다. 이 글도, 나는 오로지 이와 같은 마음 하나로 써내려가고 있다. 당신이 이 책을 사기를, 당신이 이 책을 읽기를, 당신이 이 일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마음이 저리고, 가슴이 상하면서, 화도 나고, 답답도 한 이 심정을 고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영원히 고통스럽고 싶다. 이 고통을 뒤로 하고 편할 수 있다면 그걸 편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가 한 치라도 더 예민해지길, 한 자라도 더 용감해지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책 읽기를 마친다. 오직 이 책을 읽는 일만을 마친다.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에는 끝이 없음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