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단편집 <옥상에서 만나요>를 읽고
눈썹을 찡그리며 웃게 만드는 기발한 상상력과, 그 웃음을 긴 미소로 간직하게 해주는 인류애적 따뜻함. 때로 이런 것들이 그리워지면, 정세랑의 소설을 읽으면 된다. 장편 6권을 낸 뒤에야 처음으로 낸 단편집이라니. 역시 독특한 사람. 사실 그렇잖아도 그의 장편은 워낙 이리저리 통통 튀어서 마치 단편을 여러 개 기워놓은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굳이 <피프티 피플> 같은 독특한 형식이 아니더라도). 뒤집어 말하자면, 이 단편집 역시 다 읽고 나니 묘하게 장편 한 권을 읽은 느낌이 든다. 저마다 아주 다른데, 실은 하나다. 역시 '정세랑 월드'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 이상하고 따뜻한 세계. 아직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얼른 소개해주고만 싶은 곳.
언제나 친절한 손편지를 받아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의 책 맨 마지막 ‘작가의 말’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각 단편들을 읽는 동안 작가가 얼마나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끼는지, 또 얼마나 그들 역시 그를 생각하는지, 얼마나 그 서로의 함께함이 모두의 삶의 원동력인지를 함뿍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자주 주변 지인들의 실제 이름을 작품 속 인물의 이름으로 빌려오며, 이름을 빌려준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작가 본인과 어떤 관계인지를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감사를 표한다. 그 마음이 꼭 그의 이야기들만큼 푸근하고 따사롭다. 맨 처음 소설이란 것은 '바라는 마음'에서 탄생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억압당하는 이들이 자유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 잃어버린 사람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기를 바라는 마음. 정세랑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의 소설 속 인물들처럼 개성 있는 모습으로 사랑스럽게 연대하며 어려움을 헤쳐나가기를, 때로 믿을 수 없이 삶이 어려워도 마법처럼 또 살아내어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소설들을 쓴 것 같다.
작년이나 재작년쯤, 소설의 쓸모에 대한 고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살면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빠지게 되는 질문일 거라 생각한다. 소설은 무얼 할 수 있는가. 나는, 우리는, 소설을 왜 읽는가. 소설은 필요한가. (이 글을 발행하는 카테고리의 이름이 '책의 이유'인 것과, 거기에 되도 않는 '~ 위하여' 타이틀들을 적어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쓸모와는 사실 상관없이 이미 사랑에 빠져버린 이가 던지게 된 질문은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좋은 소설책을 한 권 읽고 나면 그저 절로 해결되곤 한다. 사람에게는 여러 세계가 필요하다. 회사라는 세계에서 지칠 때 몸을 누일 가족이라는 세계, 가족이라는 세계에서 견딜 수 없을 때 가서 안길 친구라는 세계, 관계가 가장 날카로운 칼날일 때 피할 만한 혼자라는 세계 등.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결국은 현실이라는 하나의 세계로서 나를 사방에서 짓누를 때, 이제는 아예 다른 차원의 세계가 필요해지게 된다. 우리는 소설책이라는 종이 묶음을 펼치면서 그 세계로 입장한다. 하지만 이것을 결코 비겁한 도피라고 할 수는 없다. 실은 그 세계야말로 가장 피할 수 없이 날이 선 현실의 엑기스들을 모아놓은 곳이므로.
정세랑을 이름만 알고 있던 때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겨우 두어 달 새 '정세랑은 언제나~' 운운하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제법 뿌듯한 기분이다. 그리고 '아직 안 본 뇌 삽니다' 느낌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그의 작품 목록을 헤아려보는 중이다.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책이 책장에 꽂혀있는데, 아주 아껴서 읽도록 애써봐야겠다. 오늘 밤엔 <옥상에서 만나요>의 모든 인물들이 와글와글 등장하는 멋진 꿈을 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