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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 Aug 04. 2020

011 축하해 스물여덟은 스물여섯보다 나아

아마두


  개인차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물여덟의 멘탈 관리는 스물여섯의 그것보다는 제법 낫다는 기쁜 소식을 우선 전하며 글을 시작할게. 나는 결코 2년 전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된 것도 아니고, 지금 내가 ‘관리’라고 생각하는 게 사실은 그냥 착각에 불과하단 걸 또 다른 2년이 지난 후에 깨달아버릴 수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 스물여덟의 내가 아는 한에서는, 그래, 그런 것 같아.


  익숙해지는 순간 잃어버리는 것들도 있지만, 익숙해져서 이로운 일들도 있는 것 같아. 예를 들면 우울이나 억울함, 거절감과 낙담 같은 감정들. 감정이 감정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어른이 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해. 물론 그 어른은 ‘성숙한’이란 형용사를 숨기고 있을 수도, ‘지루한’이란 형용사를 숨기고 있을 수도 있고 말이야.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은 언제나 불쑥 불쑥 나를 찾아와. 다만 이젠 그 감정을 조금은 똑바로 응시할 수 있게 됐어. 여전히 날 휘감는 감정의 파도에 사지의 힘을 풀고 온 몸을 맡겨버리고 싶을 때가 많지만, 예전보단 훨씬 더 자주, 그러지 않는 쪽을 선택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오로지, 나를 위해서.


  ‘나를 위한다’는 말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했었어. ‘이기적이다’와 동의어라고 생각했으니까. 지금도 너무나 자주 그 둘을 헷갈려하지만 이제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아. 내 몸과 마음에 좋은 거라고는 단 한 가지도 해주고 싶지 않게 기분이 다운되고 감정이 격해지는 날, 배가 아플 때까지 온갖 음식을 닥치는 대로 입에 쑤셔넣고 싶지만 잠시 멈춰서는 일. 아직 오늘을 보낼 준비가 다 안 된 밤이면 한없이 새벽을 늘여 내일을 유예하고 싶지만 우선 불을 끄고 누워보는 일. 그냥 참고 넘어가려다가 그 사람에 대한 미움과 내 억울함만 커지는 걸 느끼면 최대한 말을 고르고 골라 가능한 솔직하게 내 생각과 감정을 말해내는 일... 나를 위하면서 타인도 해치지 않는 길은 생각만큼 그렇게 좁지 않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어리석고, 어리고, 게으르고, 한심하지만, 항상 그런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결국 완벽할 순 없어도 온전할 수 있게 되더라. 사실 특별히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지 않은 일상이기도 해. 그래서 내가 실은 작년보다 한 살, 재작년보다 두 살 먹으면서 뭔가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게 아니라 단지 요즘이 많은 걸 컨트롤할 수 있는 우연한 어떤 시기일 뿐인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이런 환경을 만든 것도 어쩌면 내 선택들이 이끌어낸 결과일 수 있잖아.


  그래서 결국 언제나 중요한 건 겸손과 감사. 내가 선택해서 내게 돌아온 결과가 백 퍼센트 내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때는, 그 결과가 좋으면 교만, 나쁘면 자책밖에 되지 않으니까. 내 공이 아니라는 겸손과, 내 공이 아님에도 내게 들어온 복들에 대한 감사만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떤 형태의 삶이든 그게 최고의 인생이겠구나 싶어. 이렇게 뻔한 말만 잔뜩 늘어놓다니, 역시 지루한 어른이 되어가는 게 확실하지. 라떼는 말이야...



  대학원 졸업 후부터 책은 다시 내 마음의 고향이 됐어. 어때, 부럽지? 내 왓챠 기록 보면 알겠지만 그래서 요즘은 예전만큼 영화를 많이 안 봐. 책 읽는 게 제일 행복하니까. 참고로 나 너한테 했던 숱한 말들 거의 대부분 까먹은 채로 살지만 책에서 영화로 피한다고 했던 얘기는 잘 기억 나. 어째선지 너가 유독 그 말에 공감을 많이 해서 나한테 그 말을 몇 번이고 다시 되돌려주는 바람에 잊어버릴 수 없게 된 거 같기도 하고... 이제 너가 그냥 아무 말이나 지어내서 언니 언니가 그때 나한테 이렇게 말했잖아요 그러면 나 그냥 믿어버릴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러지 말아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망각은 내 해방구야. 나 좋은 것만 기억하고 안 좋은 기억은 빨리빨리 잊어버리는 게 내가 가진 재주 중 하나거든. 물론 그렇게 칼 같이 좋은 기억만 남기고 안 좋은 기억만 내다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유독 심한 편이었던 건망증 때문에 집에서 자주 야단을 맞았고, 덕분에 꼼꼼한 성격이 되지는 못했지만 기록이 습관이 됐어. 그리고 살다보니 나처럼 어떤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 글을 쓰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걸 깨달았고, 그 사람들은 주로 ‘작가’라고 불리더군.


  

  내가 올랐던 건 인왕산이고, 청계산보다 훨씬 쉬운 산이야. 그 낮은 산을 한번 오르고 그 뒤로 꼬박 이틀을 기어다녔지만 난 도전정신 하나는 좋은 편이니까 너랑 청계산 오를 날만을 열심히 기다리고 있을게. 그새 주변 사람들한테 운동 좀 하라고 잔소리하는 이상한 사람이 됐지 뭐야. 나 최근에 플랭크하면서 노래 부르기라는 개인기가 하나 생겼는데 대단한 건 아니지만 언젠가 보여줄 기회가 있길. 플랭크하면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서 지루해서 그냥 버티는 동안 노래를 흥얼거리게 됐는데, 어떤 놈이 오늘 그럼 한 곡 완곡 가능하냐고 해서 이제 한번 도전해볼까 싶... 아니야 바로 저런 말을 감쪽같이 잊어버려야 돼.


  너의 녹록지 않은 일상을 공유받으니까 참 좋다. 물론 니가 녹록지 않아서 기쁘다는 말은 아니고, 그, 무슨 말인지 알지? 까지 쓰고 무슨 힘이 나는 좋은 말을 써줄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그냥, 이 글을 주고받는 것만으로 나한테 힐링이 되는 것처럼 너한테도 그렇겠거니 믿으면서 별 말 없이 마칠래. 미친 듯이 비는 쏟아져도 쏟아져버리지 않는 너의 마음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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