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참으로 민망하기 그지없다
어떤 것들에서는 내 냄새가 난다는 말, 감동이야. 난 어딜 가나 내 흔적을 남기고, 누구에게나 내 냄새를 진하게 풍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내 냄새를 기억해주고, 어느 순간 그걸 감각하면 놓치지 않고 붙잡아준다는 거, 그렇게 날 생각해준다는 거, 결국 난 그런 것들이 모여서 지금 여기 서있는 거라고 늘 생각해. 날 떠올려주는 사람들, 날 아껴주는 사람들, 날 존중해주는 사람들, 그 따뜻함으로 난 항상 존재하고 있어. 그러니 앞으로도 열심히 곳곳에 내 냄새를 풍겨야지. 이게 나예요, 날 잊지 말고 기억해줘요, 하고. 그 말을 하며 나도 너를 또 한 번 기억하고.
있잖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그리고 아마 엄청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너가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 너한테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말이겠지만, 너 정말 가사를 잘 써. 고등학교 때 쓴 노래부터 최근의 노래들까지 노랫말들이 하나같이 좋으니 이 재주는 분명 네가 타고난 것들 중 하나일 거야. 어릴 땐 노력해서 갖게 된 재주만이 진짜 멋진 건 줄 알았어.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유일한 인생의 목표이자 삶의 이유인 것처럼 배우던 중고등학교 시절엔 그런 신화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으니까. 어떤 선배가 내신이 몇 등급이었는데 어느 대학에 갔다, 모 대학 모 학과에 붙은 누구는 어떤 식으로 딱 죽지 않을 만큼만 공부해서 점수를 얼마나 올렸다, 그런 거. 그래서 나도 한번 해 봤고, 결국 내 합격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셨던 학교 선생님께서 후배들에게 내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들려주실 수 있을 만한 나름의 성공담을 가지게 됐지. 스무 살 이후 몇 년 간은 그게 스스로 그렇게나 뿌듯했나 봐. 내가 왕년에 말이야~ 하는 느낌으로 참 많이도 떠들고 다녔던 것 같아. 근데 지금은 그렇게 말하기가 참 부끄러워. 노력한다는 거, 최선을 다한다는 거, 그래서 뭔가 이뤄낸다는 거, 그런 게 다 뭘까? 물론 나는 지금도 여전히 노력의 가치를 믿고, 때로는 가혹할 정도로 나 자신 혹은 타인에게 노력을 강조하기도 해. 그치만 지금은 그냥 예전에 비해 좀 더, 꽃을 보게 됐어.
난 원래 꽃을 좋아하지 않았어. 산과 길에 피어있거나 꽃다발로 묶여있거나 화분에 심겨있는 꽃의 모습들이 예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냥 왠지, 꽃을 예뻐하면, 꽃이 그저 꽃이기에 꽃처럼 예쁘듯 자기가 단지 자기 자신이라서 자신임에도 꽃이 누리는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존재들이 슬플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삐딱하지. 세상의 모든 존재를 사랑하지 못할 바에야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이상한 마음가짐이잖아. 아무튼, 나는 어떤 '노력의 결과'라고 보기 어려운(꽃이 피는 데도 꽃 자신이 열심히 뿌리를 내리고 물을 머금고 바람을 견디는 등의 노력이 필요했을 거라는 관점으로 볼 수도 있긴 하겠지만) 꽃의 아름다움을 예뻐하는 일은 좀 뒤로 미루고 싶었어. 그러던 내가, 요즘은 꽃을 예뻐해. 원랜 꽃다발을 받으면 쓸모없고 돈만 아깝다고 생각했었는데, 언제부턴가 내가 먼저 앞서서 여기저기 꽃을 선물하기 시작했어. 사실은 나도 꽃과 같은 존재였던 거야.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뤄낸 것들이라고 해봐야 사실 별로 대단한 게 없고, 실은 내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태어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얻게 된 것들이 훨씬 더 많은 데다가, 전자와 후자를 무 자르듯 나눌 도리도 없다는 게 진실이더라고. 꽃을 예뻐하지 않으려던 내 마음은 사실, 꽃은 꽃이라서 예쁘지만 돌은 돌이라서 못나다고 누구보다 선을 긋는 시선이었거나, 내가 사랑받으려면 뭐든 남보다 잘해야만 한다는 상처 받은 어린아이 같은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었던 게지.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아무튼 너의 가사 잘 쓰는 재주의 얼만큼이 타고난 거고 얼만큼이 노력의 결실이든, 요즘 길가에 심심찮게 피어있는 코스모스들이 그냥 예쁜 것처럼 그냥 근사하다고. 다른 의견에 부딪혀 혼자 얼굴을 묻고 울어야 한대도, 무럭무럭 커서 노랫말로까지 자란 너의 주관들을 지지해.
별 거 아닌 일로 엉엉 울었다니, 위로나 걱정 같은 걸 건네야 할 것 같지만 난 뜬금없는 부러움을 보내 본다. 올해 들어서 한 번도 누구 앞에서 눈물 흘려 본 기억이 없어. 꼭 그래야 하는 건 물론 아니지만, 그냥, 그럴 만한 일도 하나 없을 만큼 내 인생이 평탄하구나, 감정이 안정적이구나, 남들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다들 죽겠다는데, 온 세상이 난리인데,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릴 일이 없구나, 싶어서. 난 요즘 이러고 살아. 나만 잘 사는 것 같아서 민망하고 죄스러워하면서. 날마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하늘을 올려다보고 아침 저녁 끝도 없이 사진을 찍어대다가도 저 파란 하늘, 저 하얀 구름, 한 번 올려다 볼 여유도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싶어서 또 민망하고. 누군가로부터 요즘 잘 지내냐는, 별 일 없냐는 의례적인 질문을 받을 때면 또 항상 난 너무 잘 지낸다고 대답하며 민망해하고. 하늘이 또렷해서, 공기가 맑아서, 날씨가 좋아서, 참으로 민망한 가을이야.
나, 프랑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프랑스 영화나 프랑스 책도 특별히 좋아하지 않아. 애증,도 아니야. 나한테 프랑스는 그 누구에게보다도 그냥 프랑스야. 아직 가 본 적도 없지만 그냥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아주 조금 더 익숙할 뿐, 그게 다야. 프랑스인들은 폐활량이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은 나도 여전히 가지고 있고, 프랑스 영화를 보고 나면 뭔가 딱 맞지 않는 것처럼 찝찝한 것 역시도 똑같아. 근데, 가끔 그런 게 필요할 때가 있잖아. 약간 불편하고, 약간 어색하고, 약간 근사한데, 약간 모르겠고, 그런 거. 그런 게 필요할 땐, 프랑스를 찾아주세요. 내가 프랑스에 갈 수 있을까. 이젠 낯선 나라에서 경험할 낯선 일들에 대한 두려움보다, 이곳에 두고 가야 할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 더 두려워진 나야. 한 살 더 먹으면 더 심해질 게 뻔해서, 그저 그러기 전에 떠나야지 싶을 뿐. 이 땅에서 계속 혼자 잘 먹고 잘 살기가 너무너무 민망할 뿐.
원래 이 글, 안 쓰려고 했어. 가을방학 얘기 자꾸 나오는 김에 우리도 가을방학 한번 가져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려고 했어. 언제나 그렇듯, 쓰지 않을 이유는 너무도 많으니까. 근데 그냥, 너의 지난 두 편의 글들을 대강 다시 넘겨보다 보니, 이 글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어. 앞으로도 내 인생에, 문득 돌아보니 이미 시작되어있는 어떤 것들이 많았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