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처럼 참 깊은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옷장에서 가디건을 꺼내게 되고, 수도꼭지 방향을 조금 더 왼쪽으로 틀고, 가을방학이 앨범을 냈다는 것. 가을이 왔습니다
이 글을 읽는 언니에게
Sunset Rollercoaster의 [I know you know I love you]를 함께 듣는 것을 추천합니다.
갑자기 하루를 열거한 뜬금없는 언니의 17번 답장을 읽으면서 뭐지 싶어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은은한 가을 냄새에 포근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다은댁 풍경이 눈에 더 선해지고 있는데 언제 초대해주실는지.. 친구들 다 같이 모였을 때 늘 차 시간 때문에 혼자 일찍 귀가하던 광주 다은댁이 이번 글로 인해서 더 궁금해졌네요
봄이 왔을 때는 오히려 설레지 않다가 가을이 되기 시작하면 저는 왜인지 가만히 있다가 배시시 웃는 일이 잦네요. 몇 달 내내 뜨거운 열기에 익숙해 있다가 불현듯 선선한 바람이 목 뒤로 스치면, 마치 오래된 친구가 내 옆에 슬며시 다가오는 것처럼 기분 좋은 웃음이 지어져요. 그렇게 되면 다짐합니다 '이제 더 이상 어두운 감정에 오랫동안 머물지 않도록 하자. 이제는 그러지 말자.'
어제는 파스타를 먹으러 갔다가 갑자기 대화 중 빚어진 예민한 마음에 엉엉 우는 일이 있었어요. 속상한 마음은 항상 집에 귀가해 씻고 침대에 누워서까지도 내 몸에 폭 안겨 있어요. 그럴 것 없는 가벼운 마찰이었는데 그 무게에 비해 훨씬 길게 내 마음에 남아있을 때에는, 스스로 유별나다는 괜한 생각으로까지 번져 흡착력이 세집니다. 그것이야 말로 그럴 것까지 없는데 말이에요. 그러나 이제 가을이 왔으니 조금 더 일찍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보자고 다짐해봐요. 언제 여름이었는지 모르게 휘 불어오는 바람 한 톨에 기분 좋아 헤헤거려 보면 얼마나 간단하고 행복한가요. 가을은 그렇게 소박한 시작을 하기 좋은 시기임에 틀림없네요.
가을이 왔다는 것, 또 하나의 의례행사로 잠옷을 갈아입었네요. 다 늘어져 속이 훤히 비치는 얇은 반팔티셔츠가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면 춥게 느껴지더니 어제는 더 이상 추위를 참을 수 없어 귀찮음을 무릅쓰고 옷장 깊숙이 박혀 있는 긴팔 긴바지 순면 잠옷 세트를 꺼냈습니다. 살에 닿는 도톰한 면의 느낌에 또 한 번 기분이 좋아요. 지금 모두가 자고 있는 어둑한 집에서(그래 봤자 엄마만 자고 계시는 집이지만ㅋㅋ) 스탠드를 켜고 쪼그려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데, 긴 옷을 입고 있는데도 손 발 끝이 차가워요. 오늘보다 귀찮지 않다면 내일 아침의 나에게 일어나서는 더 추울 테니 수면양말을 꺼내놔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저는 지금 즈음부터는 수면양말을 신어야 하는 혈액순환이 어려운 인간입니다. 언니도 그랬었던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계절이 더 무르익으면 산의 풍경이 장관일 거 같아요. 스케줄이 다 끝나면 얼른 등산부터 하고 싶어요! 청계산 입구에서 파는 별 재료 안 들어갔는데 오지게 비싼 그 김밥과 얼음물 싸들고 영차 영차 얼마나 좋을까요
프랑스 영화는 어땠는데요? 정말 언니는 프랑스에 관한 것이라면 다 발 벗고 나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그에 비해 저는 프랑스 작품에는 아주 젬병이고요. 저번에 추천해준 [카페 벨애포크]를 봤을 때도 그랬고, 훨씬 전에 본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나 [무드 인디고] 같은 사람들 입에 오랫동안 오르내리는 작품들도 제게는 어딘가 이질감이 남아있는 채로 끝나요. 마치 딱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편안한 느낌 없이 핏이 어정쩡해서 불편한 옷을 입은 것 같달까요. 감정선이 조금 복잡하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불어의 브슈브슈 - 하는 그 우아하면서도 정신없는 발음에서 오는 미묘함 때문에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뭔가 그 특유의 배음을 유지하려고 호흡도 엄청 많이 필요해 보여요. 중간에 또 학! 학! 이러는 것 같은데, 혹시 프랑스인들은 폐활량이 좋은가요?) 요즘은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고 있는데, 작가의 특징이겠지만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희한할 만큼 논리적이어서 몇 번씩 버퍼링이 걸려 다시 돌아가서 한 번 더 읽고, 더 전으로 다시 돌아가서 읽게 돼요. 가뜩이나 머리 나빠서 어려운 문장 이해하는데 오래 걸리는데 말이에요. 그렇게 제게는 너무 어려운 프랑스지만 읽어보고 멈춰보고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유익해요. 어디선가 들었는데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를 쓴 프랑스 작가 '마르크 로제'가 서점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책을 읽으며 독서의 기쁨을 전해주며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대요. "책은 혼자서 읽는 것 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읽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책 읽어주는 일은 사람과 사람을 서로 이어주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해진 요즘, 다른 사람이 전해주는 책과 영화를 보는 일상 이야기는 더 고맙게 느껴져요. 고마워요 언니
사회적 거리두기로 당연한 것들이 많이 멈춰있어요. 오늘 립글로스를 사러 올리브영을 가서 손등에 테스트를 하고 있었는데, 직원이 와서 손등에 직접 발색하지 말아 달라고 입술이 그려진 종이를 주더라고요, 그 위에 발라보라고. 당연한 처사지만 여간 당황스럽지 않을 수는 없었어요. 립글로스를 열어서 그 종이 위에 슥슥 발라보는데 이게 골고루 발라지지도 않고, 색이 어디는 스며들어서 연한 분홍이고 어디는 뭉쳐서 빨갰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 시절 종이 인형 옷 입히기를 하는 것 같은 유치한 짓을 하는 것 같은 기분에 이상해서 그냥 나와버렸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엄청 웃겼네요. 이렇듯 많은 것들이 제한되어 멈춰져 있는 지금,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멈춤의 시간들이 줄 새로운 감사들을 느껴보려고요. 가을바람이 주는 안정감을 위로 삼아 오늘도 잘 멈추었다 다독이며 오늘 하루를 마칩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