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파리 시간으로 9월 8일 21시 20분
저녁 9시가 조금 넘어 집에 도착했다. 옷을 갈아입고 노트북을 챙겨 테라스로 나왔다. 올해 파리에는 여름이 지각했다. 여름내 쌀쌀하다 9월이 된 이제야 더위가 시작돼버렸다. 테라스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선선히 불어오는 미풍이 쾌적하다 느끼면서 글을 막 쓰기 시작한 순간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난간 밖으로 팔을 뻗고 손바닥을 쫙 펴 본다. 손에 닿는 물방울이 느껴진다. 차분하게 만드는 비 냄새. 하늘이 두어 번 번쩍이지만 천둥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그칠 듯 잦아들었던 빗소리가 돌연 바빠진다. 하늘이 또 두어 번 번쩍거리고, 내가 있는 아파트를 둘러싼 사방의 아파트들에서 말소리들이 섞여 들려온다. 맞은편 두 층 윗집의 널찍한 TV 화면에서는 축구 경기가 중계 중이다. 테라스 정면에서 옆을 향해 앉아있는 내 시선이 닿는 옆 동 어느 집 베란다에는 흰 런닝에 트렁크 빤스를(일본식 발음이라 쓰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이 단어의 장난스러운 어감을 좋아한다) 입은 아저씨가 잠시 나와 담배도 없이 바깥 구경을 하다가는 어느새 사라진다. 난간 쪽 왼팔에 한 방울씩 튀는 빗방울의 톡톡함. 이차선 도로 위를 구르는 자동차 바퀴 소리가 드문드문 이어지고, 하늘은 또 조용히 흰 빛을 번쩍,인다. 반바지를 입은 맨 무릎에 튀는 두 알의 빗방울.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차분한 비 냄새가 향긋하다. 계속 맡고 싶은데, 숨을 들이쉰 뒤에는 곧 그만큼 내쉬어야 해서 마음이 아깝다. 여름밤은 원래 사랑스럽다. 여름밤에 내리는 비는 피부로 듣는 노래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끊겼다가 들려온다. 대화하는 이들은 아마 가족들일 것이다. 말하는 투가 어쩐지, 가족 같다. 어떤 단어도 똑바로 들려오지 않지만, 어떤 언어인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지만 무언가 일상적이고 편안한 느낌. 거의 같은 대화를 같은 사람들끼리 어제 이맘때도 나눴을 것 같은 상상. 의자를 돌려 반대쪽을 향해 앉으니 이제 차 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온다. 문득 약한 트름이 올라오고, 나는 거기서 팝콘 냄새를 맡는다. 순간 머릿속이 팝콘의 이미지로 가득 찬다. 연한 노란빛으로 뭉게뭉게한 팝콘이 어디선가 끝없이 쏟아져 나와 화면을 가득 채우고 또 채우는 영상. 그곳은 영화관이다. 영화관은 입구에서부터 팝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진한 버터와 짭조름한 소금향. 잘 감별하면 버터구이오징어 냄새도 분간해낼 수 있다. 코로나 이전의 냄새다.
맞은편 아파트 주차장 입구에 차 한 대가 와서 선다. 헤드라이트를 켠 채 정차한 차에서 양손에 짐을 든 중년 여성 한 명이 내리고, 여자가 지상 현관으로 걸어가자 남겨진 차는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오늘 저녁에는 체리를 만났다. 체리는 나만의 연예인이었다. 오랫동안 그의 미끄러우면서 다부진 글과 사랑스럽게 괴랄한 그림들을 보아왔다. 지독한 현실뿐인 그의 글보다 더 낭만적인 것은 없었다. 그 현실에 나는 오늘 삐죽 들어가버렸다.
비가 그쳤다. 땅도 공기도 아직 축축하지만, 더 이상은 비 냄새가 나지 않는다. 약간의 습도가 떠올리게 해주는 것은 몇 편의 영화, 그 영화를 보던 나, 그 영화를 보던 곳. 영화,라는 단어만 들어도 나는 늘 눈물이 날 것만 같이 된다. 울컥, 그리도 좋다. 나를 이틀 동안 묶어놓고 때린다고 해도 내가 보아 온 천 편의 영화, 그것들이 몇 년 새 내 머릿속 어딘가에 지어놓은, 적 없이 아름다운 마을을 결코 뺏을 수 없을 거란 사실이 흐뭇하다. 맞은편 아파트 현관에서 남자가 걸어나온다. 현관문이 제 힘으로 원위치하는 동안 끼이익 하는 울음소리가 난다.
춥거나 더운 어떤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과 다리에 불어닿는 살살한 바람 몇 점이 전부인 어둑한 시간. 하늘에는 구름이 많아 빈 공간이 얼마 없고, 지금 내가 바라보는 구름은 결코 희지 않지만 나는 그게 구름이니까, 희다고 생각한다. 구름은 희고, 하늘은 파랗다. 밤 열 시가 넘었지만, 구름은 하얗고, 하늘은 파랗고. 하늘은 전혀 파랗지 않다.
내가 만나 본 소설가들을 떠올린다. 내가 가지 못한 곳에 도달한 사람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모두가 알게 될 글들을 치고, 치고, 치고, 친 사람들. 실제로 본 적 없지만 그가 쓴 글을 통해서 당사자 모르게 한껏 가까워진 숱한 이들도 떠올린다. 복작복작, 내 세계는 바쁘고 시끄럽다. 그 세계에서는 매일 축제와 토론이 번갈아가며, 혹은 동시에 열린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이 이야기하고, 묻고, 묻고, 묻고, 춤추고. 그 세계의 주인은 댈러웨이 부인이다. 저녁에 있을 파티를 위해 그는 아침마다 꽃을 사러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