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3 00:46
이름: Steve Paul Jobs
출생: 1955년 2월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학력: 리드대학 중퇴
소속: 애플 CEO
스티브 잡스
세상이 주목하는 그는 누구인가.
세계적인 기업 애플의 CEO?
창의경영의 대명사?
모두 정답이다.
때문에 모두가 그처럼 되고싶어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 진정으로 아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성공하기까지 그의 성공과 실패,
변화해온 모습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반드시 느껴야 할 것들.
모두가 두루뭉실하게 알고있을 이 부분들에 대해
내가 알고있는 지식과 읽었던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해볼까 한다.
위인전을 읽는 다는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내용이 다소 깁니다.
하지만 한 위인의 실패와 성공 과정 중 중요한 부분을 빠짐없이 적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도 좋지만 그를 확실히 분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간 내셔서 꼭 다 읽으신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스무살의 CEO, 혁명을 일으키다.
요즘 세상에도 젊은이들이 사업을 해서 성공했다면
의심과 걱정이 앞서는데
원조 젊은 CEO는 스티브 잡스였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가 바로 PC(Personal Computer)의 개념을 최초로 선보인 사람이다.
1975년 스티브 잡스는 HP에 근무하던 자신의 친구 스티브 위즈니악이 개발한 인쇄회로기판에 감명받았다.
그는 작으면서도 컴퓨터 기능을 지닌 이것을 보고 PC의 개념을 구상한 것이다.
결국 스티브 잡스의 권유로 그들은 '애플컴퓨터(Apple Computer)'를 출범시킨다.
그리고 향후 세계최초의 PC '애플2'가 1977년 최고의 반응을 보이며
회사는 10년 만에 매출이 20억 달러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때까지의 스티브 잡스에게는 이건희와 같은 장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미래에 가치가 있을 소재를 캐취해내고 확실하게 밀어부칠 수 있는 추진력.
애플이 PC였다면 삼성에게는 반도체와 휴대폰.
실패, 실패, 또 실패
회사는 크게 성장하였지만 위즈니악이 개발한 '애플2'로 인한 성장이었기에
자존심 강한 스티브 잡스의 입장에서는 껄끄러웠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주도로 컴퓨터를 개발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첫번째는 '리사(Lisa) 프로젝트'.
3년 동안 5천만 달러가 투자되어 완성된 리사는
데스크탑의 형식을 갖추었고 독립적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컴퓨터였다.
애플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만 사용해야 하는 단점이 있으나 작지만 훌륭한 하드웨어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가격도 9,995달러에 달했으나 잡스는 최고의 하드웨어 기술이라는 것에 주목해 성공을 확신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목표 매출의 10분의 1정도만 달성하게 된 것이다.
이유는
높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그만큼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고객들의 지적,
주고객층이 기업체인데 방문판매 준비 미미,
더 싸고 호환성이 강한 IBM PC출시 등이 있었다.
두번째는 '매킨토시 프로젝트'.
잡스는 리사 프로젝트의 실패 후 매킨토시 개발팀에 주목하였다.
결국 그는 그 팀의 리더가 되어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그는 개발팀을 새로운 건물로 이사시키고
그들을 '해적(Pirates)'이라고 불렀으며 Pirates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입혔다.
그리고 주 90시간 작업을 즐기자며 개발팀을 독려하였다.
(스티브 잡스를 소재로 한 단편 영화에서는 이 때 개발팀이 엄청난 노동량에 지쳐
잡스와 주먹다짐까지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힘들었다는 증거)
이 엄청난 노력끝에 획기적인 매킨토시가 개발되었다.
당시로서는 최초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채택했고 아이콘(Icon)이 사용되었으며
화면에 여러개의 창을 띄울 수 있는 윈도우(Window) 기능도 사용되었다.
때문에 조작이 어려워 접근성이 낮았던 기존의 컴퓨터와는 달리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하드웨어상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작은 데스크탑을 장점으로 다시 한번 내세우기 위해
화면은 9인치였고 흑백이었다. 또, 너무 작아 확장 슬롯을 만들 수도 없었다.
더욱이 매킨토시용 운영체제(OS)는 너무 뛰어나서(?)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와의 호환성이 없었다.
결국 또한번 하드웨어의 기술력에만 치중한 채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 가를 간과하게 된 것이다.
역시 이번에도 매출 실적은 암울했다.
초기에 엄청난 광고를 쏟아부어 판매량이 높긴 했지만
소비자들의 구매를 계속 이끌어내기에는 무리였던 것이다.
연이은 실패 때문에 애플컴퓨터의 재정상태는 악화되기만 했다.
공동창업자 위즈니악이 회사를 떠나고 CEO가 새로 부임하게 되었으며
결국 스티브 잡스는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주식을 1주 빼고 모두 처분하여 얻은 1,100만 달러였다.
스티브 잡스의 실패.
주된 원인들이 눈에 보이는가?
그의 제품들은 항상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 능력을 갖추었고 독창적이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기에 항상 큰 실패를 겪게된 것이다.
이 '고객의 입장'이라는 것은 단순히 고객들의 주머니 사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만드는. 즉, 그들의 Needs를 제대로 파악하는 능력을 뜻한다.
이때까지는 잡스에게 이러한 생각과 능력이 없었다.
뛰어난 카리스마와 아이디어는 갖추었지만 말이다.
이는 현재 국내 대기업들의 모습과 일치한다.
'상명하복'이라는 강력한 지배구조, 막노동 식의 직원 일부리기, 고객보다는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
하드웨어 기술만 고집하다가 스마트폰 시대가 열려 고객들의 Needs를 충족시켜주는 소프트웨어가 중요시되자
완전히 무너지는 삼성 모바일의 모습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픽사(Pixar), 스티브 잡스를 변화시키다.
잡스는 애플에서 추방당한 후 독립적으로 또 하나의 회사 '넥스트'를 창립하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실패한다.
(그만큼 사람은 변하기 힘든것 같다.)
그리고 결국 소프트웨어 사업 부문을 제외하고 모두 매각하게된다.
잡스는 그 회사를 경영하는 도중에 스타워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루카스필름'에 반하게된다.
선명한 사진과 3D영상물과 같은 그래픽 기술이 그를 반하게 한 것이다.
결국 그는 1000만 달러에 루카스필름을 인수하였고
픽사(Pixar)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재탄생시킨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잡스는 하드웨어에 치중하게 된다.
역시나 IBM과 같은 기업들에게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였으며
픽사를 간신히 살리는 분야는 소프트웨어쪽이였다.
(이때부터 스티브 잡스는 소프트웨어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어느날 존 래스터(John Lasseter)가 잡스에게 3D 애니메이션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잡스는 이 소재에 대한 가치를 간파하고 많은 투자를 허락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5분 단편 애니매이션 '틴 토이(Tin Toy)'이며
이는 훗날의 '토이스토리(Toy Story)'이다.
이 5분 단편 애니메이션은 아카데미상을 받는 등 극찬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디즈니가 자금을 대고 픽사가 제작을 맡아 90분짜리 '토이스토리'를 만드는 계약이 성사된다.
제작기간이 약 4년에 이르고 투입인원이 200명이 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2년 뒤 중간 리뷰에서 디즈니는 픽사에게 제작 중단 통지를 보내고 만다.
그들이 원한건 기술을 자랑하는 영화가 아니라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가족 애니메이션인데
당시의 토이스토리는 기술만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실패다.
하지만 이때부터 스티브 잡스는 드디어 '변화'하게 된다.
그는 디즈니가 원하는 것을 다시 채워보기로 하였다.
기술과 함께 '감성'을 중요시했으며
관람객의 입장에 맞추어 스토리를 재구성하였다.
그리고 그가 다시 한번 디즈니에 방문하여 새로운 토이스토리를 보여주었고
드디어 디즈니가 다시 제작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어려움끝에 개봉한 토이스토리는
개봉 첫주만에 제작비와 맞먹는 2천9백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고
총수입은 3억 5천 8백만 달러에 이르렀다.
(그리고 훗날 니모를 찾아서와 인크레더블 등의 대작이 연이어 성공을 거둔다.)
드디어 잡스가 성공한 것이다.
그는 이때부터 옛날의 스티브 잡스가 아닌 지금의 스티브 잡스로 변하게 된다.
픽사의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는가
그의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앞서
우리는 픽사가 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그 변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있다.
'창의성'
픽사는 영화 제작 업체이다.
때문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비록 컴퓨터로 그래픽 작업을 하지만 기술자가 아닌 예술가였다.
그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틀안에 갖힌 사고를 하지 않았다.
특히, 잡스는 단독적인 창의적인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지 깨달아 픽사에서는 협력 창의를 추구하였다.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피드백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것이다.
그는 더이상 자신의 생각만이 최고라는 생각은 하지 않게되었다.
그는 모두가 모여 최고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완성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장 문화'
픽사와 잡스가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만큼 직장 문화도 남달랐다.
대낮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회사 내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다니는 사람도 있다.
이정도의 예만 말해주어도 분위기가 어떤지 감이 올것이다.
또, 직원들간의 친밀한 관계를 중요시하였다.
동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 자유로운 아이디어가 발표될 것이고,
피드백을 원활히 하여 최고의 아이디어로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애플에서 독단적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직원들에게 주 90시간 노동을 요구했던 그와 비교하면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창의+기술+감성'
그리고 모든 깨달음이 융합되어 스티브 잡스를 최고로 변화시켰다.
그 요소들은 바로 창의, 기술, 감성이다.
그동안 스티브 잡스는 하드웨어. 즉, 기술에만 치중해왔지만 픽사에서의 경험을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감성적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것이다.
연이은 실패를 통해 이를 깨달은 스티브 잡스는 드디어 세계 최고의 CEO로 변모하게 된다.
마왕에서 대왕으로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난 후 여러번 CEO가 교체되었지만 애플은 썩어갈 뿐이었다.
결국 애플은 새로운 운영체제를 외부에서 도입하고자 하였고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 '넥스트'의 운영체제를 들고 애플을 향한다.
최종적으로 넥스트는 MS와 선마이크로시스템스를 제치고 애플의 새 운영체제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넥스트는 애플이 인수하게 됨으로써 '특별고문'의 직책으로 다시 애플로 입성하게 된다.
썩은 사과를 황금사과로
'iPod'의 탄생
창의+기술+감성의 깨달음을 얻은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복귀하여
본격적으로 몸을 풀기 시작한다.
그는 컴퓨터 사업이 어느정도 흑자로 전환되자 음악 시장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당시는 MP3가 대유행을 마치고 MP3시장이 포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잡스는 MP3를 음악재생기기가 아닌 디지털기기로 보았기에 무수한 기회의 땅이였다.
그는 iTunes를 통해 사용자들이 쉽고 간편하게 방대한 양의 음악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으며
기존의 MP3와는 다른 가치를 내포한 제품을 만들고자하였다.
다음은 그가 당시 제시했던 컨셉과 방향이다.
- 지금까지 시장에 나와 있는 MP3는 모두 잊어라.
새롭고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 것을 요구
- 음악 애호가들이 진정으로 가지고 싶어 할 아이콘 제품을 만들자.
사용자의 마음을 읽고 제품 개발을 시작하고자 하는 의지
- 몇 백 곡의 노래를 담을 수 있는 음악의 바다를 만들자.
지금은 당연한 개념이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소리바다와 같은 P2P형식으로 MP3 파일 시장이 자리잡아
사용자들이 체계적인 보유 음악 관리가 부족하였다.
현재는 '멜론'과 같은 프로그램이 잘 자리잡아있지만
아직도 MP3 제조회사 자체의 소프트웨어 구축은 미미한 편이다.
때문에 애플 아이팟 사용자는 편리함을 느낄 뿐만아니라 애플이라는 브랜드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 두께는 얇게 하고 디스플레이 화면을 키우자.
당시 MP3는 커다랗거나 뭉툭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잡스는 얇은 두께와 커다란 디스플레이 화면을 갖춤으로써 타제품과 완전히 차별화되길 원했다.
이를 위해서 전문업체에서 알맞은 부품을 납품받아 완성품을 제조하였다.
컨셉과 디자인은 애플이 하고 기술 개발은 외주에 맞기는 방식이다.
흔히들 삼성 제품의 부품은 모두 일본 것이라고 비꼬곤 하는데
애플은 이러한 방식의 생산으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재빨리 현실화 시킬 수 있었다.
아마 애플 스스로 모든 부품을 개발해냈으면 아마 아이팟의 출생년도는 매우 늦어졌을 것이다.
- 넓은 화면에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강화하여 사용자와 화면을 통해 대화하도록 하자.
이 발상은 MP3를 단순히 음악재생기기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잡스는 사용자들이 아이팟과 의사소통하길 원했다.
즉, 음악만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향후 '앱스토어'를 일으킨 것일 것이다.
- 매킨토시 PC의 마우스 기능처럼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휠 마우스를 도입하자.
당시 타제품들의 컨트롤도 그리 어려운 수준은 아니었다만
디지털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에겐 나름대로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
애플은 아이팟에 휠 마우스를 탑재함으로써 조작을 쉽게 했을 뿐만 아니라
깔끔한 디자인에도 도움을 주었으며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효과(?)도 얻어냈다.
2001년 10월,
'이것은 맥(Mac)이 아닙니다.'라는 힌트만 적힌 초대장을 받은 기자들은
애플 본사 컨퍼런스룸에서 스티브 잡스의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나오는 최초의 '아이팟(iPod)'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화려한 부활의 시작이었다.
실패의 대명사였던 스티브 잡스, 이제 세상을 주도하다.
아이팟 터치
세상이 아이팟 열풍에 살짝 지루함을 느껴갈때쯤 또한번의 쇼크가 발생한다.
바로 아이팟 터치.
풀 터치 스크린에 Wi-Fi를 통해 무선인터넷까지 탑재되어 있었다.
하드웨어의 강자 삼성보다 애플이 먼저 터치스크린 열풍을 주도했다는 것은
신기하면서도 살짝 우습다.
앱스토어(App Store)
아이팟터치를 통해 무선인터넷이 가능해지고 사양이 높아짐에 따라
본격적인 앱스토어의 발전이 시작된다.
애플은 앱 개발자 : 애플의 수익 배분을 7 : 3으로 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사용자들의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이끌었다.
이를 통해 아이팟터치, 아이폰 하나로 안되는 일이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
그리고 이는 세계인이 애플의 매니아가 되는데 큰 힘이 되었다.
같은 가격이라면 무궁무진한 기능 발전이 가능한 아이팟터치, 아이폰을 사겠는가?
아니면 타회사 제품을 사겠는가?
타회사들은 이제서야 부랴부랴 빠져나가는 고객을 보고
앱스토어를 나름대로 구축해보고자 하지만
이미 따라가기 늦어도 한참 늦었다.
아이폰
아이팟터치 공개 후 항상 예상되었으나 실제로 보니 더욱더 놀란 아이폰.
애초의 컨셉은 '뮤직폰'이라고 하지만
뮤직폰이기엔 너무나도 뛰어난 존재이다.
아이폰도 앱스토어와 함께 어우러지면
무궁무진한 존재로 발전이 가능하다.
아이패드 (iPad)
얼마전에 공개 되어 세계를 시끌시끌하게 한 아이패드.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만드는 것이 가장 의미있는 작업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시장의 반응은 조금 냉소적이다.
아이폰 4개를 합쳐서 만든 것과 다를바 없다는 평이였다.
USB도 없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이 이 테블릿PC를 직접 만져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이다.
이제 이 아이패드를 통해
테블릿PC시장이 열릴테고
이에 따라 우선 전자책 시장이 대폭 커질 것이다.
어플리케이션은 테블릿PC에 맞게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될 것이고
클라우드컴퓨팅 시스템을 통해 2TB이상의 용량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클라우드컴퓨팅 기술을 사용하면 USB없어도 바로 타컴퓨터의 자료를 빼올 수 있다.)
다 나열하기 귀찮을 정도로 큰 변화를 이끌고 올것이 분명하다.
올 3월 또는 4월에 출시될 아이패드에 기대가 크다!
출시하는 제품 마다 실패를 거듭하던 스티브 잡스.
이제는 출시하는 제품 마다 성공을 거듭하고 있다.
세상이 알아서 주목해주기때문에 특별히 광고를 할 필요도 없을 정도이다.
그를 이렇게 변화시킨 요소들, 그리고 변화한 요소들.
글을 다 읽었다면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안철수 교수는 스티브 잡스의 실패를 바라보며
'한국에서도 실패에 관대한 사회문화가 잡혀야 한다.'고 충고하셨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난 실패를 했다면 그 실패를 스스로 딛고 일어나 세상에 다시한번 당당히 맞서는 문화가 잡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분위기가 문제가아니라 개인들의 가치관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실패할 뿐이다.
스티브 잡스처럼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결국 그 실패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새로운 교훈을 얻어내 다시한번 멋진 모습으로 도전한다면
실패에 대한 선입견 따위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말고 실패를 그냥 지나쳐보내지도 말자!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로 만드는 것은 바로 당신 몫일 것이다.
참고: '스티브 잡스처럼 생각하라', 김영한, 도서출판 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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