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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싸우는 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2010.04.01 15:41

by 최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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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정치란 무엇인가?
우선 '정치'를 떠올리면 '국회에서 싸우는 파이터'들이 떠오를 것이다.
선거철이 돌아오면 어른들이 술먹으면서 하는 이야기는 항상
'그 놈이 그놈이다. 국회에 가봤자 싸움박질밖에 더해?'이다.
초등학생부터 할머니 할어버지까지 모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국회에서 싸움이 일어날때마다 너무나도 기분이 좋다.
왜일까?
내가 싸움 구경을 하는 것을 좋아해서?
절대 아니다.
지금부터 나의 생각이 황당한 것인지 올바른 것인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국회에서 갈등은 왜 발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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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자세한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국회에 대해 간단히 짚어보자.
국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국회의원들이 모여서 '입법'을 하는 곳이다.
국가의 행정 중 거의 모든 것이 법으로 행해지기에 '입법'은 국민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국회에는 각 지역에서 국민들에게 선출된 의원들이 모이게 된다.
즉, 다양한 정당의 의원이 모여서 토의함으로써
그들은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대표하여 그들의 권익을 위해 입법을 추진한다.
그렇다면 싸움은 왜 일어날까?
모든 싸움의 근원은 당연히 '갈등'이다.
그리고 국회안에서의 갈등은 '입법'에 대한 갈등일 것이다.
즉, A라는 법안을 발안했는데
(가)정당의 국회의원들은 찬성하지만 (나)정당의 국회의원들이 반대하면 갈등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양쪽 국회의원들 모두 자신과 자신의 정당의 뜻을 지지하여 뽑아준 국민들의 권익을 위해

이 법안 통과의 찬/반을 각각 주장하며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과정이 대화와 합의로 아름답게 진행되면 참 좋겠지만
국회의원들 중 (가)정당과 (나)정당, 여당과 야당의 숫자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수결의 원칙'으로 인해 머릿수가 상당히 많은 정당이 있다면 그 정당의 뜻대로 휘둘리게 된다.
머릿수가 밀리는 반대파 의원들은 이를 두고만 볼 수 없어서
어떻게 해서든 막아보려는 갈등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왜 그 갈등이 '폭력'으로 표출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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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도 의문이 가시질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의견이 충돌하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도대체 왜 폭력적으로 해결하려 하느냐'라는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다수당이 자기들 마음대로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때 이에 반대하는 소수당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
투표가 진행되어 패배하게 되면 그 법안을 막을 방법이 없어지게된다.
때문에 그들은 '의장석을 점거'하거나 '출입문을 봉쇄'함으로써 투표의 진행을 막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입이아닌 몸이 할 수 있기 때문에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하고 결국 격한 '폭력'으로까지 번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수당은 이러한 소수당의 격렬한 반대에 대해
직접 몸으로 부딪혀 억지로 투표를 진행시켜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하지만
언론을 통해 소수당이 비도덕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고
민주주의를 해치고 있다면서 이미지를 깎아내린다.
즉, 어느당이 다수당이고 소수당인지는 상관없이
항상 서로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기에 바쁘고
이에 따라 국민들에겐 '국회=싸움터, 국회의원=파이터'라는 인식이 생기게 된 것이다.
폭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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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회를 한번 떠올려보자.
미국의 상원의원, 하원의원들이 서로 주먹다짐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것이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모습인데
우리나라의 국민성이 미국의 국민성보다 떨어져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일까?
절대 아니다.
다만, 미국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바로 이번 논의의 해결점이자 가장 중요한 핵심인

'필리버스터(Filibuster)제도'

이다.
한글로 해석하면 '합법적인 의사진행방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여러분들은 이 필리버스터에 대해서 처음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필리버스터는 사실 한국 국회에도 존재했던 제도이다.
도대체 필리버스터가 무엇일까?
필리버스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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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란 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뜻한다.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뜻이 잘 이해가 안갈 것이다.
지금부터 쉽게 풀어서 설명해보겠다.
국회의 의결과정을 간단하게 말해보자면
안건이 상정되면
토의를 거친 후 투표하여 통과되거나 기각된다.
토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의원들의 발언시간을 15분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그러하였고 미국과 같은 경우에는 발언시간 규정이 없다.
즉, 나가서 10시간을 말하든, 24시간을 말하든, 100시간을 말하든
개인의 자유라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반대하는 법안이 있는데 다수당에 의해 통과되려한다면
나가서 엄청나게 오랫동안 설득해서 마음을 바꾸게 해도 되고
아니면 '니들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식으로
그들이 배고프고 졸리고 힘이들때까지 지치도록 오래 발언하여 그 법안통과를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필리버스터'이다.
단, 발언자는 계속 말을 해야하며 화장실을 갈 수도 없고 밥을 먹을 수도 없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필리버스터는 여러번 행해졌다.
헌법책을 1쪽부터 천천히 읽어내려가는 사람이 있기도 하였다.
세계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은
1957년에 미국에서 민권법에 반대했던 스트롬 서몬드 의원의 24시간 18분 연설이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필리버스터 사례는
박정희 정권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행했던 5시간 19분 간의 연설이었다.
이때 국회의장은 강제로 국회를 폐회시켰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막으려던 법안은 결국 상정되지 못한 성공적인 필리버스터였다.
이후에 의원 발언 시간을 제한하는 규정이 생겼으며
한국에서 필리버스터는 사라지게 되었다.
즉, 국회 폭력도 어찌보면 독재의 잔재 중 하나인 것이다.

미국인에게 필리버스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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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에게 필리버스터는 어떠한 존재일까.
이는 미국드라마 '웨스트윙' 시즌 2 제17회<스택하우스의 저항>(The Stackhouse Filibuster)에 자세히 표현된다.
이 에피소드에서 백악관 대변인인 CJ는 스택하우스 의원의 필리버스터로 인해
아버지의 일흔 번째 생일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그 편지를 통해 미국의 필리버스터와 관련한 몇 가지 규칙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첫 필리버스터예요. 저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필리버스터의 규정은 아주 간단하죠."

발언석을 지키는 동안에는 발언권을 계속 행사해야 한다.

그건 말을 절대 멈출 수는 없다는 거죠.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어요.

그건 괜찮다 쳐도 회의장을 떠날 수 없으니 화장실도 쓸 수 없죠. 하지만 이것에 비하면 약과예요.

절대 앉을 수 없다는 것, 무엇에 기대서도 안 되고 사람에게 기대서도 안 되죠.

내일 아침 신문에서 읽게 되실 가족 복지 법안 때문에 시작된 일이에요."

그리고 그날 저녁 약속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백악관 직원에게 CJ는 이렇게 말한다.

"(금요일 저녁 개인일정에 차질을 빚은 백악관 직원과 기자에게)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지금 여러분께서는 민주주의가 뭔지 보고 계십니다. 아주 아름답죠?"

그들에게 필리버스터란 진정한 민주주의의 일부분인 것이다.
그리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자서전인 '담대한 희망'을 통해
실제 미국 정치판에서의 '필리버스터'도 알 수 있다.
이제 미국에서는 '필리버스터'를 하겠다고 위협만해도
다수당이 긴장하고 귀를 기울여준다고 한다.
한마디로 '골치아프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필리버스터를 막기위해
소수당과 의견을 조율해서 미리 합의를 보는 평화적 방식을 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토론을 통한 합의 말이다.
하지만 물론 오바마 대통령에 따르면 필리버스터는 단점도 있다.
국민 복지에 관련된 법안이 올라오면
기득권층이 필리버스터를 악용해 이를 저지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오바마 대통령이 성공시킨 '건강보험법 개정'도
반대파의 필리버스터에 의해 어려움을 겪을 뻔하였으나
끈질긴 오바마 대통령의 설득으로 필리버스터를 막아내고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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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국회에서의 폭력과 필리버스터에 대해 알아보았다.
내가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국회에서의 싸움은 절대 헛된것이 아니다.'이다.
미국과 같은 다른 나라들은
우리보다 좀 더 민주적인 방식이 도입되어
평화롭고 고귀해 보이는 것일 뿐이며
한국은 그러한 방식이 없어 보기에만 불결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사실 한국 정치에 대한 이미지의 걱정보다
국민들의 정치 무관심화에 대한 걱정이 더욱 크다.
국민들은 정치를 그저 싸움판으로 보고 정치를 관심에서 밀어내버렸다.
국민들은 더이상 싸움구경은 하지만 그 싸움이 왜 일어났고 누가 착한 편인지 구분할 능력을 잃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서로 싸우는 이유는 '법안 통과 여부'때문이다.
그리고 그 법안은 우리 국민들의 삶을 좌우한다.
어떠한 법안이 통과되냐 마냐에 따라 내 인생, 내 자식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바람직할까?
바로 내 인생, 내 자식, 내 가족의 인생에 도움이 될 법안을 위해 싸우는 파이터에게 후원을 해줘야한다.
그가 그 싸움에서 이겨야 내 권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 후원 방법은 욕하는 것도, 손가락질 하는 것도 아니다.
소중한 투표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부유층을 위한 것이든 빈곤층을 위한 것이든)
나의 권익을 위해 싸워주는 대리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가.
나는 이러한 이유에서 국회에서 싸우는 그들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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