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잠시만요, 제가 좀 우울해서요 2006-2013
2010년,
운이 좋게 임용시험을 통과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렇게 선생이 되어있었다.
2010. 4. 2.
머릿속에서 그려보기만 한 일이 현실로 실현되는 경우 예상대로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다.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단지 시험을 통과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 구체적으로 선생님의 조건을 따져 본 것은 아니었다. 막연하게나마 - 거의 흐릿한 이미지들에 불과하겠지만 - 그려왔던 그런 교사로서의 내 모습이 가끔은 현실 속에서 뒤틀리는 것을 느낀다.
생각은 현실 속에서 행동과 실천을 통해 구체화된다. 가르치는 일도 그렇다.
첫해에는 운이 좋게도 담임을 맡지 않아서 학교의 쓴맛과 매운맛을 잘 모르고 살다가, 다음 해에 담임을 맡으면서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그 작은 아이들을 어찌할 줄 몰라 가볍게는 한숨을, 대체로는 소리를 지르기 바빴고, 가끔은 숨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내가 못난 사람 같아서 울고, 애들한테 미안해서 울고,
어떤 아이 때문에 열받아서 울고, 꼬맹이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울고,
학부모에게 시달리다 울고...
한참 울다가 부은 눈을 보고 짜증 나서 또 눈물을 글썽이던 시절이 있었다.
2011. 5. 11.
요즘 나는 힘들다. 모든 것에 지쳤다. 기운 없이 늘어져 축 처져있다.
내일이면 다시 학교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끔찍하게도 싫다. 정말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수면제라도 먹을까?
다리라도 부러진다면? 불치병은? 에라, 확 죽어버릴까?
언제부터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되었는지. 끔찍하다.
어디 가서 말하기도 부끄럽고. 아 - 나오는 건 한숨뿐.
2011. 12. 14.
12월이 반이나 지나갔다. 한 해가 또 갔다.
지난해 적었던 짤막한 나의 푸념을 다시 보니 그때는 무엇이 그렇게 힘들어서 허덕댔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긋지긋한 학교. 한 학기 동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그나마 정도는 조금 나아졌으니 다행이다) 우리 반 몇몇 꾸러기들. 갈수록 아이들은 개념과 싸가지와 그 밖의 좋은 것들을 잃어가고 있다. 물론 몇몇 미꾸라지들 때문에 물이 흐려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애는 썼지만 너무나도 부족했던 나였기에 평가 결과1)를 보며 뭐라 변명하기도 구차하긴 하다. 미쳐 날뛰는 녀석과 씨름하고,
학부모에게는 죄송하다는 말로 굽신굽신. 부족한 일 처리 능력 덕분에 항상 여유도 없고, 수업은 대충. 난 올해 대체 뭘 한 거지?
한없이 초라해지고 작아지는 내 꼴이 너무도 우습고 비참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고인 실타래를 잘 풀어가기보다는 그냥 던져버리고 싶은 생각만 떠오른다는 것이 더 처참하다.
분명 3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 모양 이 꼴은 아니었을 텐데.
찌질 찌질 나는 찌질하다.
1) 이때 아마도 교원능력개발평가 결과를 보고 적잖이 실망한 것 같다.
학교에서 이리저리 치여서 속상하고 서러울 때 비빌 언덕은 엄마뿐이라 내 딴에는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보통은 힘들어서 얼굴이 죽상이어도 방에 숨어 눈물 콧물 흘리다 잠들거나 가끔 일기장에 힘든 일을 끄적이는 게 전부였는데
어떤 날은 어디다 하소연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날이 있었다.
나: 나는 선생이랑 안 맞는 것 같아.
엄마: 왜?
나: 출근해서 너무 힘들어. 애들은 말도 안 듣고, 수업은 엉망이고... 선생 괜히 했어.
엄마: 다른 일도 다 힘들어. (엄마가 아는 힘든 일 하는 사람 이야기 수만 가지를 나에게 주입식으로 교육한다.
이쯤이면 내 머릿속에 ‘교사 이외의 직업 노동 강도 > 교사의 노동강도’가 기본값으로 입력되었다는 판단이 들 때까지)
은행도 영업실적 같은 걸 쌓아야 해서 남한테 아쉬운 소리도 얼마나 많이 하는데. 그래도 학교는 애들 대하는 일이잖아.
애들은 어른들 같지 않아서 그래도 잘 타이르면 알아듣기도 하고. 게다가 방학 있잖아. 놀면서 돈 주는 데가 어디 있는 줄 아니?
나: 애들이라 더 힘들어. 못 알아듣는 걸 알아듣게 설명해도 지들 멋대로야. 그리고 방학 없으면 벌써 때려치웠다.
엄마: 때려치우면 뭘 하게?
나: 뭐든 하겠지. 알바를 하든. 교대를 가는 게 아니었는데 괜히 갔어.
엄마: 그럼 네가 선생 아니면 뭘 했게?
나: 뭐든 했겠지. 이거보단 나았을 거야.
엄마: 뭐 할 것도 없었으면서. 야, 배부른 소리 하지 말고,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다녀.
나: (...)
이런 식의 대화를 꽤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내가 엄마한테 하는 넋두리도, 엄마가 나에게 하는 대답도 크게 다르지 않고 항상 비슷한 패턴의 대화.
생각해 보면 엄마는 본인이 겪은 일이나 힘든 것들을 나에게 항상 엄청나게 쏟아내듯 말하곤 했는데, 나는 그러진 못했다.
주로 엄마가 본인 이야기를 한참 하면 나는 적절히 추임새를 넣으며 듣는 자리에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내 얘길 하기보다는 들어주는 입장이라서 나는 잘 듣는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었다.
정작 내가 학교에서 느끼는 답답함(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낀 것에서 비롯된 것)을 느낄 때가 되니, 뭔가 힘든 것을 말하고 싶어졌다.
남에겐 조금 부끄럽고 약간 말하기 어려운 것도 있으니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하면 ‘차라리 말을 하지 말걸...’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다반사이니
힘든 일이 있어도 점점 말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모자란 부분을 엄마가 채워줄 수는 없었겠지만, 그냥 힘든 내 마음이라도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던 날들이 많았다.
내가 나의 마음을 도닥여주고 싶어도 내 마음이 잘 보이지 않고, 누군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도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쯤 상담을 공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가진 천성이 잘 듣는 것이라면, 상담이 잘 맞을 수 있겠다 싶었다.
‘상담가는 일단 상대방의 말을 듣고 적당히 공감해 주면서 위로 정도 해주면 되지 않겠나’ 하는 가볍고 안일한 생각으로
나도 잘할 수 있겠다며 근거 없는 자신감에 사로잡혔다.
천성에 맞지 않는 선생을 때려치우고 나면 뭘 해서 먹고살지 답이 없었는데, 상담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적어도 선생 노릇보단 덜 괴롭겠다며.
틈틈이 학교 일을 하면서 상담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다가 대학원을 알아보았고, 상담으로 유명한 대학을 찾아냈다.
그곳에 가고 싶은 꿈이 생기니 학교에서 일하는 것도 조금 숨통이 트였다.
비로소 남이 바라는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무엇’이 생겼다.
진심으로 기뻤다.
2014. 2. 28.
2월이 다 지나갔다. 학교의 시간은 해가 바뀌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 항상 3월이 되어야 모든 것이 새로이 시작된다. 올해 3월은 여느 해와는 무척 다른 느낌이다. 학교도 옮기고 생활 터전도 옮긴다.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이기에 불안하다. 한 일주일 아니 열흘쯤은 마치 머릿속 생각을 비우기라도 하듯 학교도 일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보냈다. 그래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또 거짓말처럼 3월이 다가와서 이제 사 ‘시작이구나’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4년 동안 이곳에서 얻은 것들은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도 어렵겠지만 늘 과거를 돌이키는 시점보다 현재를 살아가던 그때, 그 시간이 더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나쁜 기억, 힘들고 슬펐던 일이 먼저 떠오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일을 되풀이하지 말고 반성하자는 다짐 때문일까. 가끔 난 현재가 아닌 과거 속에서 살아간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상황을 붙잡아보려 하지만 오히려 그것들에 잠식되어 버리는 꼴로 살아간다.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는 것. 순간순간을 느끼고 생각하는 것. 올해 좀 더 노력할 일이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 덕에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 많다. 바라보며 흐뭇했던 아이들도 있었다. 좋은 기억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힘들었던 기억은 나를 더 성장시키는 거름으로 삼아야겠다. 이렇게 위안해도 아쉬움은 남는다. 그리움도 더해간다. 익숙하고 편안한 것으로부터 떠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두려움, 불안을 불러오기에 지금 느끼는 감정도 당연한 것이지만 아직은 너무도 생경하다.
이 불안을 잘 이겨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