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4m: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Chapter 2.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가라앉기 시작 2014-2019

by Luci

그래도 어찌저찌 첫 학교에서 4년을 보내고 지역과 학교를 옮기며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다.

내가 갈 지역은 교육대학원을 다니는 것을 고려해 그곳과 가까운 곳으로 정했다.

내가 선생으로 일할 학교도 나쁘지 않은 학교인 것 같았다.

나에게도 운이라는 것이 이제 따르는 것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대한 착각이었다.


2014. 5. 14.

오월이다. 날씨도 세상을 눈부시게 만들어주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유난스럽게 가라앉는 기분이다. 딱히 슬픈 일이 있는 것도, 마음이 무거워질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마음이 허하다. 세상에 이 시대에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허망하게 일어나 많은 목숨들이 사라져 갔기 때문인지, 아니면 보다 앞서 일어났던 많은 비극적인 면면이 새삼 내 머릿속에 새겨졌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어제는 유난히 푸르고 맑기만 하던 날씨가 오늘은 비바람 부는 날씨로 바뀐 까닭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아직도 크고 작은 실랑이를 이어가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것이 지루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이런 기분은 혼자이기 때문인 것 같다. 아니 혼자이기 때문이다. 오롯이 혼자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스스로 깨달으며 살자고 생각했는데 이런 고독감이 낯설고 익숙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아직 내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고, 경험할 수 있는 것도 많고, 배울 수 있는 것들도 많다. 어제 우연히 봤던 별들이 떠오른다. 그 별들은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물렀다. 그러다 언젠가는 사위어져 가겠지만 그곳에서 빛나는 동안은 계속 세상을 지켜볼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었고 이름 붙여졌듯이 사람의 면면도 다른 사람에 의해 새롭게 부각되고 인식될 것이다.
사람의 향기도 만나는 대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대상과 만났을 때만 발현된다. 일방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이든 상호적이다. 그러니 남 탓할 것도 없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다른 어떤 누구와 만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는 비 오는 밤이다.


2014년은 처음 6학년을 맡아 가르쳤던 해이다. 그 아이들은 전부터 안 좋은 소문이 자자했다고 들었는데 특히 5학년 때 여러 사건 사고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5개 반 중에서 4개 반의 담임이 전입 교사들로 꾸려졌고 그중에 한 명이 나였다.

6학년이라 사춘기도 한창이고 원래도 기 센 아이들과 유약하기 짝이 없는 담임이 만났으니 그야말로 환장할 조합이었는데,

겨우겨우 1학기는 버텼지만 2학기부터는 여지없이 곪았던 문제들이 밖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5학년 때부터 심각한 왕따 문제를 겪었던 아이가 우리 반이었는데,

그 아이의 학부모님이 ‘올해도 반 아이들이 우리 아이를 따돌린다’는 민원을 심각하게 제기하셨다.

이 일기는 아마 그때쯤 쓴 것 같다.


2014년 10월 9일과 10일 사이

나는 지금 와인을 마시고 있다. 혼자서 간단히 몇 가지 채소로 샐러드도 만들어 안주로 먹으면서 생각한다. 오늘 했던 일과 내일 할, 하고 싶은 일들을.
무료함과 허무함, 무기력함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며 보낸 나에게 00 어머니와 ***부장님이 하신 이야기는 마치 권투에서 KO 시킬 수 있는 강펀치를 연달아 날리는 상대의 매서운 공격같이 느껴졌다. 나 스스로도 죄의식을 느끼고, ‘이건 아니지.’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걸...’ 하며 넘겨왔던 것들... 그것들이 주는 마음의 중압감.
나는 어떤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봉착하면 그것을 해결한답시고, 혹은 나를 구제한답시고 번데기 마냥 나의 좁은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알면서도 마치 그것만이 유일한 방책인 것처럼 숨고 무엇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현재를 살아가지만 과거에 발목이 잡힌 채 미래를 하염없이 걱정만 하는 딱한 꼴이란. 내 얼굴에 침을 얼마나 뱉어왔던가.
하나씩, 그리고 게을리했던 것부터 다시 잡자. 쉴 때는 충분히 쉬되 걱정만 계속하지 말고 실천하자. 저지르자. 무모하고 헛된 일이 될 거라 섣불리 생각하지 말고.
2014년 10월 24일과 25일 사이

반쯤 남긴 와인을 다 마셨다. 취기가 돈다. 정신은 몽롱하고 기분은 가라앉았는데 술기운에 들떠있다. 취한 채로 글을 쓴다. 나라는 우습고 초라한 존재에 대한 자각은 때때로 돌이키고 싶지 않은 객기를 가능케 하는데 오늘이 그날 중에 하나다.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고 그냥 기운이 없다. 외로워서인지, 마음이 닫혀서인지, 우울해서인지, 답답해서인지. 점점 나 자신에 대해서 확신이 없어진다.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그러면서 점점 말을 잃어간다. 말은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에서 발현되는 것일 텐데 점점 말을 잃어간다는 것은 새로울 것도, 궁금할 것도 없다는 말이니... ‘인생에 있어 무엇을 따르고 지키며 살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 (좋은) 글귀라도 빌려와 스스로 다짐하도록 채근해야 하는지.


왕따 문제는 슬프게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학부모님과 상담을 버거워하는 나에게 학년 부장님이 도움도 주시고 했지만 매일 제자리걸음이었다.

오히려(어쩌면 당연히)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고, 결국 그 아이는 전학을 갔다. 지금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때는 내 딴에는 최선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어딘가 부족했을 부분 때문에 상처받았을 여린 영혼에게 용서를 구한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부디 자기 삶을 즐기며 씩씩하고 멋진 모습으로 살고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그 아이의 전학으로 마음이 좀 편해졌냐면, 당연히 그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했다. 담임을 개무시하기 시작한 남자아이들 몇몇이 수업 시간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열받으면 눈에 흰자위를 드러내 보이며 담임 따위가 뭘 아냐며 대들었던 K,

피아노를 잘 치고 예술적 감각이 남달랐지만, 평소에 욕도 찰지게 하면서 갑자기 화가 나면 주체를 못 하며 급발진(?)도 잘했던 Y는

어느 날 화가 난다며 의자를 집어던져 교실 문에 부착된 유리를 와장창 깨뜨렸다.

나는 날아온 유리 파편에 얼굴을 긁혀 패닉에 빠진 채 그 아수라장 속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고,

큰 소리에 놀라 달려오신 옆 반 부장님께 붙들려가 보건실 신세를 졌다.

나중에 Y의 어머니께서 학교에 오셔서 미안하다는 말씀은 하셨던 것 같은데,

‘그래도 담임이 아이 마음을 좀 헤아렸어야 하지 않나’라는 식의 이야기도 덧붙였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지옥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무슨 생각이었는지 병가는 내지 않았던 것 같다.

대신 사직서를 썼다.

인터넷에 사직서를 검색해서 대충 어떤 내용이 들어가는지 보고, 수기로 썼다.

지금이라면 궁서체로 한껏 진지하게 썼을 텐데.

사직 사유에는 뭐라고 써야 멋있을지 몰라서 비워둔 채로.

(‘애들 때문에 X 쳐서요’라고 쓰기엔 차마 부끄러웠다.)

애초에 내 적성이 아니었던 선생질을 과감하게 때려치우리라,

나는 멋있게 사직서를 내고 당당하게 내 발로 걸어 나가리라 마음먹고 수업 시작 전 교무실로 당차게 들어갔다.

(물론 ‘당당하게’는 지금의 시점에서 있어 보이게 포장한 것이고 실제로는 아마 한없이 남루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교감: 어머, 선생님! 어쩐 일이야? (눈으로 지금 이 시각에 얘가 여기 왜 왔을까를 생각하며 전체적으로 나를 스캔한다. 딱 보니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가지고 온 건 뭐야?

(당시 나는 6학년 담임이라 맡은 업무가 없어서 서류 결재받을 것도 없었는데 옛날 스타일로 종이 서류를 가지고 온 모양새를 보니 뭔가를 눈치챈 듯이)

일단 저기 가서 앉자.

나: 네.

교감: 요새 많이 힘들지? (교감 선생님은 그해 내가 1급 정교사 연수 대상자인 것을 모르시고 공문 안내를 건너뛰셔서 나의 진급이 1년 미뤄졌다. 괜히 그 실수 때문에 나에게 과잉 친절을 베푸신다고 생각했다. 물론 진실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자기 얘기 많이 들었어. 내가 이래저래 많이 도와주려고 했는데 나도 정신이 없었네. (이하 기억이 안 나서 생략)


잠시 짤막한 대화를 나누고 믹스 커피를 타 주셨다.

그 달달한 커피 속에는 마법의 진정제가 있었던 것인지 내가 호기롭게 가져갔던 사직서는 교감 선생님 손에 닿지 못하고 끝내 내 품으로 돌아왔다.

내가 첫 번째 바닥을 찍었던 시기는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어떻게든 방학까지는 버텨보자고 다짐하며 이를 악물었던 시간이다.

듣기 싫은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을 위해서(?) 친절하게 욕의 근원을 주르륵 설명해 주었고

(나는 끝까지 하고 싶었는데 듣던 아이들이 제발 그만 좀 하라고 해서 다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한 번은 엽기적으로 매운 떡볶이 세트를 시켜 주어

우리 반 제일 큰 덩치가 그 매운 소스 국물을 꿀꺽 잘도 먹는 광경을 신기한 눈으로 본 일도 있었다.

다행히 모든 아이들이 다 엉망은 아니었던지라 운동도 잘하고 체격도 좋고 머리도 좋았던 S, 모범생 L과 M 등등

나를 버티게 해 주었던 선한 아이들 덕분에 졸업식까지 꾸역꾸역 담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2015. 2. 13.

#장면 1
나는 여느 때처럼 아침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는데 오늘이 마침 ‘13일의 금요일’이라는 DJ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오늘이 마침 졸업식이라 내가 맡은 영상이 잘 나올지 순간 걱정되었고 그런 고민을 라디오에 적어 보내기까지 했다. 식이 시작되기 전, 급하게 6학년 아이들 명부가 필요해서 헐레벌떡 달려가 인쇄하려고 하니 잘 되던 프린터도 안 되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무 일도 없이 잘 끝날 줄 알았는데 내 노트북에 연결한 빔 프로젝터에서 화면이 나오지 않는 사고가 생겼고, 졸업식은 대충 15분쯤 지연되었다. 겨우 어떻게 수습은 했지만 계속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눈물과도 씨름하고 이것저것 신경 쓴다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며칠간 고생해서 만든 30분짜리 동영상은 다 보여 주지도 못하는 슬픈 엔딩을 맞이했고, 졸업식이 끝난 뒤 우리 반 여자 아이 중에 몇몇이 우는 바람에 덩달아 나도 울어 화장이 번지는 바람에 사진은 죄다 괴상했고... 암튼 최악은 아니지만(여러 가지로 처참했다) 어쨌든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졸업식이었다.

#장면 2
졸업식이 끝나고 동학년 선생님들과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서로 같은 학년을 가르쳤으면서도 서로 다른 운명에 놓인 상황 속에서 - 셋은 다시 동학년이지만 둘은 6학년이라는 지옥에서 해방되었으므로 - 결국은 새 학년을 맞이하고 다시 3월부터 시작될 전쟁 같은 수레바퀴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2014년 한 해 많은 일을 겪어 참으로 naive한(나태하다고 하면 부끄러워지니까), 모든 것이 약간은 회의적으로 변한 상태였다. 교실 내에서의 학급 분위기나 반을 이끌어가는 일이 엉망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는 투의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내뱉고 있었다. 그때 우리 부장님은 단호하게 그래도 교실에서 교사가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되어야 함을 설파하시기 시작했다. 나도 앉은자리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론 그 말이 뻔하고 고루하며 따분하다는 생각으로 들었던 것 같다. 단호하기보다는 분노하기에 가까운 나의 방식에 대한... 나에게 단호함이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질 수 없는 아련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사막 한가운데를 걷는 사람이 목이 타듯이 마를 때 눈앞에 오아시스가 보여 달려가면 사라지는 신기루를 마주한 듯이.
몇몇 철이 좀 든 아이들은 고맙게도 내가 그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해주었지만, 사실은 거의 방치하고 있었는데.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나의 한계가 여기까지 라는 핑계로. 어리석은 후회와 땅에 꺼질 듯이 무너진 자존감 때문에. 미안함과 증오와 화, 온갖 이해 안 되는 아이들의 정신세계, 학교 분위기가 혼재되어 끝내 카오스로,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거짓말처럼 어느 날 교실에 문제의 ‘쥐’가 나타났고, 그때부터 그 쥐를 어쩔 수 없이 치워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 한탄하다가, ‘이깟 쥐에도 벌벌 떨면서 어떻게 애들 앞에 설 수 있을까’, ‘인도 여행하면서 했던 수많은 생각들을 잊은 채 지내왔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나보다 더 끔찍한 곳에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는데 여기서 난 뭘 하고 있나’하는 생각에 빠졌다.
아마도 모든 변화의 시작은 애들이 쥐 잡는 끈끈이에 올려놓은 초콜릿을 먹겠다고 진짜 쥐가 달려들다 버둥대며 잡혔을 때, 온갖 괴성이 난무하는 그 혼돈 속에서 태연한 척(?!)하며 끈끈이를 곱게 접어 쓰레기봉투 속에 집어넣고 버려야 했던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얼마 뒤 우리 반 덩치 가 죽은 쥐의 먼 친척쯤 될 다른 쥐 한 마리를 밟아 죽였는데, 사체로 장난하는 걸 막고자 같은 방법으로 쥐를 처리하면서 새삼 다시 내 운명의 비참함을 곱씹게 되었다.)
쥐의 등장과 처리 이후로 나와 아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진 것이었을까. 쥐를 처단한 덕분에 나는 부장님 말씀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된 것일까. 무언가 달라졌다고 느낀 건 나의 착각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결국 내가 학교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을 해결할 열쇠는 ‘관계’에 있음을 절감한다. 하지만 늘 그게 뜻대로 잘 안되었고, 그때마다 끈끈이에 잡힌 쥐 마냥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온몸으로 버둥거렸으나 뭔가 깨닫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 ‘관계’는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나의 삶도 즐겁게 해 줄 특별한 것이라는 걸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좁고 답답하고 어두운 나만의 동굴 속으로만 들어가려 했다.
언젠가부터 친구 관계에 대해 고민했던 때를 대략 고등학교 때 라고 한다면, 이 단순한 생각을 떠올리는데 대략 10년은 걸린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내 삶에서 좋은 관계를 맺는 문제를 정교하게 풀어가는 일인 것 같다. ‘무엇을’ 할지는 정해졌으니 ‘어떻게’ 실현할지가 숙제로 남았다.
어렴풋한 생각으로는 즐거운 것을 찾다 보면 자연스레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조증’에 가까운 요즘 내 상태를 생각하면 좀 진정하고 깊이를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내가 좋아하는 스티브 잡스가 말했듯이 인생의 전환점(dot)을 어떻게 연결할지도 고민해야겠다.
내 평생 가장 긴 일기를 쓴 2015년 2월, 13일의 금요일이 이렇게 지나간다. 그리고 장담컨대 이 글을 아침에 보면 손발이 오글거리고, 일기장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것이다. 왜 꼭 밤에만 이런 생각들이 폭발하는지... 지극히 불완전한 인간인데, 굳이 신의 경지에 이르려고 애쓰지 말자. 그냥 허둥대는 내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해 주어야지. 그래도 X드립은 이제 좀 필터링이 필요할 것 같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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