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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ffer Jun 01. 2023

자투리는 여기 모여

Small Brand

* 더 많은 아티클은 <differ>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메브 스튜디오에는 커다란 직조기가 있다. 재료비는 한 푼도 들지 않는다. 쓰다 남은 털실과 천, 비닐봉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김수지 작가가 페달을 스르륵 밟으면, 직조기로부터 온갖 색의 천이 직조된다. 쓰레기로 만든 실을 한 올 한 올 엮어 그는 포트 클로스와 티 코스터를 만든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우리의 미래처럼,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패턴을 가진 패브릭으로.





브랜드명

메브(meb)


의미

프랑스어로 ‘바다와 숲’을 뜻한다. 어감이 좋아 선택했다.


탄생 시기

2019년


핵심 가치

모든 제품을 수작업으로 제작하고 있다. 제품 생산량에 한계가 있지만 손으로 직접 만든 물건만이 지니는 고유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길 바란다.


브랜드 준비 초기에 가장 많이 했던 질문

Q. 쓰다 남은 실로 만들기에 모든 제품의 디자인이 다르다. 제품이 이렇게 일관성이 없어도 괜찮을까?

실제로 판매를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메브의 제품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디자인’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의외의 결과였지만 이런 부분이 브랜드의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성장 포인트

내 생활이 담긴 제품.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고, 비건식을 먹고, 식물 키우기를 즐긴다. 내 가치관과 일상이 제품에 고스란히 담겨,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는 브랜드로 다가갈 수 있었다.





쓰레기도 예쁠 수 있어



섬유 디자인을 전공하고 패션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했어요. 메브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본래 저는 굉장히 느긋하고 트렌드에 관심이 없는 편이에요. 늘 빠르게 유행을 따라가야 하는 패션 디자이너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성격이었죠.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로 고향인 부산에 돌아가 직조기로 천을 짜기 시작했어요. 행복해지고 싶어 내 브랜드를 만든 거죠. 얼마 후 서울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메브를 알리려는 시점에 코로나19가 터져 다시 회사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일을 하면서도 브랜드를 놓지 않고 방향성을 재설정했어요.

재설정의 방향이 궁금해요.

2021년부터 ‘지속 가능한 작업만 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모든 제품을 자투리 천과 실로 제작하고 있어요. 대학을 다닐 때부터 휴지통을 뒤져 친구들이 실습하고 버린 재료를 모아 작품을 만들었어요. 패션 분야에서 일하면서 의류 폐기물이 엄청나다는 걸 절감했고요. 제작할 때 발생하는 폐기물도 상당하지만 한 철 지나 버려지는 옷도 많잖아요. 어차피 모든 물건은 쓰임을 다하면 쓰레기가 되는데, 처음부터 쓰레기로 제품을 만들면 환경에 도움이 될 것 같았죠. 쓰레기도 디자인을 거치면 예뻐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도 싶었고요.

자투리 실과 천은 모두 어디에서 구하나요?
학교 다닐 때 실습하면서 남은 천과 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어요. 갖고 있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 후 주변에 알리니 친구들이 자투리들을 모아 보내주었어요. 브랜드 이름을 알리고 난 후엔 손님들이 보내주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방대한 양이 모여 재료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앞으로도 공급망을 따로 찾기보단 이렇게 여러 사람이 보내주는 것을 활용할 예정이에요. 자신이 보낸 쓰레기가 인테리어 소품으로 재탄생하는 걸 보며 쓰레기의 재발견을 하기를 바라니까요.

자투리 천과 실 외에도 쓸모를 재발견한 쓰레기가 있을까요?
지난해부터 비닐봉지를 활용하고 있어요. 비닐을 가늘게 잘라 실처럼 만든 다음 실과 엮어 직물로 만드는 거죠. 글씨나 그림이 그려진 비닐봉지로 천을 만들면 예상치 못한 무늬가 생기는 게 재밌어요. 반질반질한 소재가 주는 팝한 분위기도 매력적이죠.





손맛이 주는 소중함



메브의 대표 제품은 화분을 꾸미는 ‘포트 클로스(Pot Cloth)'예요. 다양한 패브릭 소품 중 화분 옷을 만든 이유가 있을까요?
평소 식물 키우기를 좋아해 제가 사용하려고 만들었어요. 보통 식물을 구입하면 플라스틱 화분에 식재되어 있어, 미관상의 이유로 다른 화분에 옮기는 분갈이를 하잖아요. 이때 버려지는 플라스틱 화분도 사실 튼튼해서 오래 쓸 수 있거든요. 분갈이를 하기보단 화분에 옷을 입혀주면 좋겠단 생각을 했어요. 크기가 작아 제작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아 상품으로 판매하기도 용이했죠.

제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드나요?
컬러 조합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기에 받아온 자투리 실과 천을 컬러와 소재별로 분류하는 작업에 시간을 많이 써요. 이걸 어떻게 매치할지 머릿속으로 수십 번 시뮬레이션을 거친 뒤 다음 작업에 들어가요. 대부분의 제품은 직조기로 천을 직조해 제작해요. 천 위에 자투리 천을 패치워크 방식으로 붙이기도 하고, 실을 꿰매 무늬를 만들기도 해요.

제작과 디자인부터 운영, 홍보, 배송까지 다양한 일을 혼자 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수작업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사람이 한 땀 한 땀 만든 제품만이 갖는 가치가 있어요. 구입하는 사람도 이를 소중하게 여기고 오래 사용하게 되니까요. 과거 수작업 기반의 패션 브랜드에 근무하면서 그곳에는 환불, 교환이 한 건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보며 깨달았어요. 공장에서 옷을 만드는 브랜드에서는 환불, 교환이 하루에도 수천 건씩 이뤄지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었죠. 제작 과정에 따라 사람들이 물건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요.

공을 들여 만들었기에 모든 제품이 소중하게 여겨질 것 같아요.
같은 포트 클로스라도 디자인이 전부 다르기에 모두 기억에 남아요.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최근 선보인 ‘포트 스커트'를 만드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이전 제품을 만들다 남은 직물로 포트 클로스를 만들려는데 실이 자꾸 풀려 잔뜩 짜증이 났어요. 한데 가만히 바라보니 실이 풀린 모양이 스커트처럼 보이더라고요. 실패한 작업이 도리어 새로운 디자인이 되는 경험을 했어요.




디자인은 가치관을 파는 일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디자인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브랜드를 이끄는 만큼 환경을 위해 실천하는 게 있나요?
텀블러와 장바구니 사용 같은 기본적인 제로 웨이스트 실천법은 습관화되어 있어요. 그보다 우선해서 물건을 최대한 안 사요. 꼭 사야 할 게 있다면 정말 필요한지, 오래 사용할 수 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져요.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람으로서 참 아이러니하죠. 하지만 결국 모든 물건은 쓰임을 다하면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잖아요. 때때로 나 역시 쓰레기로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해요.

자기 의심을 물리쳐야 작업을 이어갈 수 있잖아요. 해결책을 찾았나요?

앞으로의 디자인은 가치관을 파는 일’이란 말을 좋아해요. 언젠가 쓰레기가 될 물건 대신 제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을 찾고 있어요. 우선 그 시작으로 클래스를 열었어요. 각자 집에 모아둔 비닐봉지를 가져와 천으로 만들어보는 수업으로 그간 내가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발생시켰는지 점검하고, 쓰레기의 쓸모를 발견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클래스 말고도 플로깅처럼 사람들과 어울려 할 수 있는 이벤트를 열고 싶어요.

사람들과 가치관을 나누고자 하네요. 브랜드를 넘어 작가님의 앞으로가 궁금해요.
제 꿈은 환경 운동가예요. 메브의 제품을 보면 알 수 있듯 저는 디자이너와 공예가 사이에 있어요. 디자인 제품이라기엔 대량 생산이 안 되고, 공예품이라기엔 너무 캐주얼한 일상 용품이죠. 그렇다면 ‘둘 사이에 자리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사람들과 직접 만나 생각을 나누고 무언가를 만들어보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Editor Kwon Areum

Photographer Lee Woo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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