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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ffer Jun 20. 2023

모든 것은 땅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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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많은 아티클은 <differ>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파아프(PaAp) 라는 이름은 ‘Part is all, All is part’라는 뜻. 발효균이라는 부분이 번져 전체를 발효시키고, 이는 다시 새로운 하나의 생명을 싹틔우는 일부분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파아프 템페 대표 장홍석은 발효라는 키워드를 접하면서 인간의 행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 또한 자연의 부분으로서의 인간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됐다.



직업
템페 제작자.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
Q.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생각보다 먼저 행동으로 옮겨 부딪혀보는 타입이다. 그 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템페 만들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같았다. 사업으로 확장하면서 경영 부분은 공동대표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어떻게 하면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결국 순환의 이치에 따라 돌아간다. 발효를 삶에 가까이 두면 인간도 그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템페로 진로를 정하다



식품영양학으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연기 그리고 무용으로 진로를 바꿨어요. 그러던 중 템페를 접했다고요.
원래는 요리를 하고 싶었어요. 잘 알아보지도 않은 채 식품영양학을 택했는데, 제게 필요한 걸 가르쳐주지 않더라고요. 호기롭게 바로 자퇴를 하고 호텔 주방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했어요. 군대에 다녀와서 바로 본격적으로 일을 배울 생각이었는데, 우연히 〈날 보러와요〉라는 연극을 보고 갑자기 배우가 하고 싶어졌죠. 제대하고 연극영상학과를 다시 졸업했어요. 그러던 중 독일의 한 연출가가 내한해 워크숍 겸 오디션을 진행한다기에 참여했다가 또 운 좋게 합격했는데, 공연 후 뒷풀이에서 연기보다 무용이 어떻겠냐고 제안하더군요. 또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용을 공부했고, 그렇게 안무가 및 무용수로 활동을 하다가 인도네시아 공연이 잡힌 거예요.

거기에서 운명적으로 템페를 만났죠.
욕야카르타라는 구 도심이었는데, 저희를 인솔해 주던 현지 코디네이터가 간식으로 템페를 줬어요. 너무 맛있고 신기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니까 저를 현지 시장에 데려갔어요. 시장에 온통 흰 벽돌처럼 템페가 쌓여있었죠. 템페는 인도네시아 전통 발효 음식으로, 가정식에서 정말 많이 쓰여요. 우리나라 청국장이나 일본 낫또의 인도네시아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콩을 그냥 섭취할 때보다 발효시켜 섭취하면 단백질을 몇 배 더 흡수할 수 있어서 비건들도 대체육으로 많이 먹죠. 그 뒤에 한 번 더 인도네시아로 공연을 갈 기회가 생겼는데, 그땐 템페 생각을 먼저 하고 갔어요. 원래 요리에 관심이 있다 보니 호기심이 생겼죠.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국내에는 템페가 거의 알려지지 않아 일본에 거주하는 인도네시아 분에게 템페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그저 템페에 대한 흥미 하나만으로 움직인 건가요?
제가 원래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먼저 행동하는 성격이에요. 몸으로 부딪혀 가며 해보며 내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거죠. 템페 만들기는 제가 할 수 있는 영역 같았어요.



발효는 곧 순환






발효가 삶으로



템페를 혼자 만들기 시작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요.
한국에 돌아와서 하드보드랑 목재를 사용해 틀을 만들고, 전구를 달고, 온도계와 습도계를 설치한 뒤 혼자 발효 테스트를 해봤어요. 밤에 잠도 못 자면서 수시로 온도와 습도를 체크하고 신생아 돌보듯 신경 썼는데, 발효가 안 되는 거예요. 답답한 마음에 일본에 계신 스승님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웃으시면서 “잠자려 하는데 불 켜고, 밥 먹으려는데 말 걸고, 쉬려는데 놀자면 어떻겠냐”라고 물으시더라고요. 큰 깨달음을 얻고 이번에는 템페를 집에 두고 밖에 놀러 나갔어요. 집에 왔더니 발효가 돼 있더라고요. 신기했어요. 그전까지는 내가 템페를 발효시킨다는 생각이었다면, 템페가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거죠.

그 인식의 전환이 환경 문제에 대한 더 큰 관심으로 이어지던가요?
발효와 균에 대해 더 공부했어요. 결국 발효는 순환이라는 순기능을 내포하고 있어요. 나뭇잎이 죽어 떨어지면 땅속의 수많은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고 부패해 다시 생명을 싹 틔우는 하나의 에너지가 되잖아요. 발효와 부패는 한 끗 차이고, 그 차이는 결국 인간이 정해놓은 관념이죠. 자연 안에서는 발효도 없고 부패도 없어요. 발효는 곧 순환이라는 맥락이 제 철학으로 자리 잡았어요. 발효라는 키워드가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되었죠. 예를 들면 제가 템페를 처음 만난 순간, 템페 균이 나한테 하나 묻어 내 안에서 나를 발효시켜 지금 템페를 만드는 나를 만들었구나 하는 재미있는 생각도 해봤어요.




그렇다면 파아프 템페에는 어떤 철학이 깃들어 있나요?
저희 브랜딩에는 네 가지 키워드가 있어요. 템페, 발효, 순환, 지속하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용어는 정확하지 않은 맥락에서 남용되는 경우가 많아 다소 의미가 퇴색됐다고 생각해요. 무엇을 위한 지속 가능성인지 불분명하달까요? 대신에 ‘지속하는’이라는 동사를 택했어요. 결국에는 꾸준히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죠.



우리는 순환한다



파아프 템페에서는 세미 서클이라는 이름으로 농가 일손 돕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방금 말씀하신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일까요?
순환이라는 개념을 다양한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일단 땅을 다시 보자고 생각했어요. 저와 저희 팀은 먹거리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땅이 잘 순환하려면 다양한 농작물이 자라야 해요. 그런데 지금 대규모 농가에서는 엄청난 양의 화학 비료를 사용해 가며 소품종을 대량 생산하는 게 보편화돼 있죠. 화학 비료는 분해가 안 되니 지하수로 스며들고, 땅에는 여러 영양 성분이 골고루 자라지 못해 금방 황폐해져요. 그래서 자연 농법이나 바이오다이내믹 농법 등 대안적인 방식을 택한 작은 농가에 가서 일손을 돕고 있어요. 화학 비료나 기계를 쓰지 않고 다양한 품종을 소량 생산하는 농가다 보니 일손이 더 많이 필요하거든요. 완전한 서클을 이루진 못했지만 반 정도의 순환이라도 실천하자는 의미에서 ‘세미 서클’이라고 이름 지었어요.

얼마 전 새로 생긴 광주 제2공장에서는 순환 시스템을 설비에 적용하고 싶다는 계획을 얘기하셨더군요.
발효와 순환을 생각하다 보니 바이오 가스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어요. 음식물을 탱크에서 균이랑 발효시키면 가스가 발생하고, 그 가스를 전기로 전환시켜 공장을 돌리는 거죠. 그런데 생각보다 엄청난 규모의 시설이 필요해서, 일단은 공장에 적용하지 못한 상황이에요. 냄새 문제도 있고요. 그렇지만 전에 테스트했을 때, 어떤 점에서 성공했고 어떤 점에서 실패했는지 알기 때문에 언제든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 실천하는 또 다른 프로그램이나 사업이 있나요?

서울 망원동에 위치한 알맹상점이라는 제로 웨이스트 숍에서 템페 정육점을 진행한 적 있어요. 플라스틱 포장재에 템페를 배송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손님들이 용기를 가지고 와서 원하는 만큼 템페를 잘라 가는 경험이 재미도 있고 반응도 좋았죠. 이후로 여기저기 제로 웨이스트 숍에서 많은 문의가 왔어요. 그래서 아예 TV 프로그램 <구해줘! 홈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불러줘 템페’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발효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며 일상생활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180도 바뀌었죠. 이전에는 인간과 자연을 수직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수평적 구조로 사유하도록 전환하는 계기가 됐어요. 이런 태도는 행동의 변화를 만들었고요. 예를 들어 저희 집에는 플라스틱 통에 담긴 보디 워시 제품이 없고 샴푸 바, 린스 바 등 전부 비누 형태로 사용해요. 배달 음식도 거의 시키지 않고, 마트에 갈 때는 용기를 가져가서 담아 온다든지 하는 작은 실천을 하고 있죠.

결국 그렇게 작은 행동들이 모여 큰 변화가 되죠.
삶에 발효를 가까이 두면 조금 다른 관점이 보여요. 저는 발효된 인간이 된 거죠.









Editor Kim Yerin

Photographer Lee Woo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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