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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ffer Aug 22. 2023

시간을 되돌리는 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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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많은 아티클은 <differ>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킨츠기 작가 김수미는 산산조각 난 시간을 이어 붙이는 사람이다. 좋은 걸 먹고 마시고, 목욕을 하면서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그렇게 쌓은 좋은 기운을 붓 끝에 그러모은다. 부서지고 깨진 도자기들을 이어 붙이는 건 옻이나 금이 아니라, 바로 그 붓 끝에서 나오는 힘이다.




직업
킨츠기 작가. 킨츠기는 도자, 유리, 목공예품 등의 깨어진 조각을 옻칠로 이어붙인 뒤 흙이나 밀가루 등으로 살을 붙이고 금으로 장식해 마무리하는 일본의 전통 수리 기법이다.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
없었다. 삶의 방향성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내가 지금 킨츠기에 대해 정직한가? 빨리, 대충 하려면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집중해야만 좋은 작품이 나오기 때문에 좋은 걸 먹고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컨디션일 때 작업하려고 한다.






불완전의 아름다움


킨츠기를 하기 전에는 도자 작업을 하셨다고요.
광고 쪽을 전공해 광고 대행사에서 오래 일했어요. 그러다가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수축률조차 몰라, 빚은 도자기를 다 말리지 않고 가마에 구웠어요. 전부 터져서 너무 안타까워하는 저를 보고 재일 교포인 친구가 “일본에 깨진 도자기들을 수리하는 기법이 있는데 가서 배워보지 않을래?” 하고 제안했어요. 그 말을 듣고 곧장 교토에서 킨츠키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마치 명상을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킨츠기의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짧고 굵게 말씀드리면, 옻으로 조각을 이어 붙인 뒤에 살을 만들어 입히는 작업이에요. 토분이나 밀가루, 목분 등 자연의 재료를 살려서 표면을 깎고 다듬고 옻칠을 다시 여러 번 해요. 적어도 다섯 번은 옻칠하고 긁어내는 과정을 반복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말만으로는 도저히 전달되지 않는 뭔가가 있어요. 해봐야지만 아는 것들이죠.

보통 하나를 수리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촬영하기 위해 가져온 손바닥의 반도 안 되는 크기의 잔도 5개월은 잡아요. 조각이 많을수록 오래 걸리고요. 비유를 하자면, 그림을 그릴 때 선 하나 긋는 데 엄청 오래 걸리는 작가들이 있잖아요. 킨츠기도 선을 잘 그어야 해요.

주어진 조각에 맞춰서 선을 긋는 게 아니었나요?
작가가 의도하는 방향에 따라 달라요. 기본적으로 ‘와비사비’라는 기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백의 미, 불완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게 킨츠기죠. 일부러 수선을 안 하는 부분도 있어요. 그 적절한 완성도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 수리된 그릇의 가치를 결정하죠.





내 손에 길든 도구


킨츠기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무엇인가요?
붓과 사포죠. 집중해서 선 하나하나 그을 때 붓 끝에 에너지가 정말 많이 들어가요.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완성도에서 바로 티가 나거든요. 하지만 모든 실수가 다 실수는 아니에요. 일부러 선을 굵게 그어 요철을 만드는 스타일의 작가도 있어요. 결국은 붓에 대한 터치감을 많이 연습해야 해요. 붓 터치를 수련하고, 수련된 상태에서 기물을 만났을 때 가장 결과물이 좋죠. 사포를 많이 쓰는 이유는 살을 붙인 뒤 매끈하게 깎아 모양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고요. 도자기나 금속 공예, 목공예에서도 마지막에 사포로 거의 다 작업을 하죠.

붓이 킨츠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네요.
붓을 정말 아껴요. 제 손에 익은 붓은 특히나요. 만약 제가 옻칠을 하고 나서 붓을 빨지 않고 오래 내버려두면 붓이 굳거든요. 그럴 때는 정말 눈물날 것 같아요. 새로 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요.

조금 전에 칼로 열심히 깎으신 대나무는 어디에 쓰는 건가요?
그건 헤라예요. 대나무라 유연하게 잘 구부러져서 재료를 뜨거나 밀어 넣을 때 써요.

직접 도구를 만들기도 하네요. 최근엔 어떤 작업을 했나요?
교토의 대표적인 전통 공예품 중 하나인 교야키라는 도자기가 있어요. 그중에서도 교토 도자기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닌세이의 술잔을 의뢰받았어요. 에도 시대 초기의 잔이니까 엄청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거죠. 한 점에 4천만~5천만 원 정도 하는 기물인데 처음에 수리 의뢰가 들어왔을 때는 부담이 커서 두 번이나 거절했어요. 세 번째 다시 "수미 님의 스타일이 좋다"며 부탁해 왔을 때, 마음이 무거웠지만 무언가 자신감을 가지고 차분한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부서진 마음을 위로하는 일


누군가에게 소중한 물건을 수리한 적도 있나요?
어머니의 유품인 옥반지를 들고 오신 분이 있었어요. 실수로 떨어뜨렸는데, 어머니와의 추억이 산산조각 난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즈음 저는 외할머니를 잃은 상태였기에 의뢰자분의 마음이 확 와닿았어요. 저 역시 외할머니의 사이가 애틋했거든요. 그 작업은 돈을 받지 않았어요. 그저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거든요.

작가님도 킨츠기로 수리한 물건을 직접 쓰시나요?
킨츠기로 수리한 그릇이나 잔을 많이 써요. 가끔은 새 잔을 쓰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을 정도로 수리된 그릇이 즐비하죠. 그래도 아끼는 그릇을 수리해서 다시 쓸 때 마음이 한결 더 애틋해져요.



한결 애틋한 마음




킨츠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킨츠기는 수리 작업이잖아요. 수선이기 때문에 티가 나지 않아야 하죠. 복원 쪽으로 가면 아예 티가 안 나는 기술도 있어요. 그러나 또 그런 완벽함보다도 제 기준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수리가 되었느냐가 중요해요. 제 스타일이 후대에 길이길이 남아서 ‘이 작가의 기법은 이러저러했다’ 하고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Editor Kim Yerin

Photographer Lee Woo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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