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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ffer Aug 16. 2022

종이 나라에서 온 성실한 박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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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많은 아티클은 <differ>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탐스러운 토마토, 향기가 날 것 같은 동백꽃. 페이퍼 아티스트 박혜윤은 색색의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국내에는 낯선 장르인 페이퍼 아트를 알리는 역할을 한 그의 성장 비결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반복하기!



직업
페이퍼 아티스트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
Q. 어떻게 나를 알릴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한 2016년 당시에는 국내에 페이퍼 아티스트가 없었어요. 낯선 직업이기에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중요했어요.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매주 한 번씩 작업물을 올렸습니다. 꾸준히 업로드한 덕분인지 2년 만에 브랜드에서 먼저 협업 제안을 해 왔어요.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도전하는 마음. 지금은 노하우가 쌓여 쉽게 시작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많아졌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형식, 장르, 재료에 도전하고자 한다.



‘좋아하는 일’이 곧 ‘잘하는 일’


페이퍼 아트는 정확히 무엇인가요?
종이를 활용한 모든 작업을 말하는데요. 팝업 북이나 카드를 만드는 팝업 아트, 컴퓨터 디자인 프로그램과 기계를 활용한 폴리곤 아트도 포함돼요. 제 작업은 전 과정을 100%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게 차별점이에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는 제가 눈으로 보고 느낀 사물을 잘 표현할 수 없었어요. 반드시 손의 터치를 거쳐야만 그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 있죠.

2016년부터 페이퍼 아티스트로 활동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과를 전공했어요. 디자인 프로그램을 다루는 일이 많았는데, 제가 컴퓨터와 도통 친해지지 않더라고요. 졸업을 앞두고 ‘내가 200% 이상 능력 발휘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어요. 개인적인 성향상 좋아하는 일을 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그때 페이퍼 아트가 떠올랐어요. 어린 시절부터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거든요.

손으로 만드는 장르 중 페이퍼 아트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
대학교 3학년 때 팝업 아트를 하는 작가의 작업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종이의 매력을 처음 마주했어요. 다채로운 색감과 질감에 반했어요. 평면적인 소재인데 어떻게 만드는지에 따라 입체적으로 변신하는 게 흥미로웠죠. 국내에는 페이퍼 아트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없어 준비 과정이 쉽지는 않았어요.

국내에서는 선례가 없는 직업이라 미래가 걱정되지 않았나요?
해외에는 페이퍼 아티스트가 존재했기에, 제가 국내 최초가 된다면 이 일로 먹고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미래에 대해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대신 준비 과정이 어려웠어요. 해외 자료를 찾아 독학을 하면서도 ‘이 방법이 맞는 걸까?’ 하고 매순간 고민했어요. 방황할 때마다 아이돌 연습생처럼 최소 5년은 준비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어요(웃음).

5년이란 시간은 굉장히 길어요. 마음이 흔들렸던 적은 없나요?
수입 없이 버텨야 했기에 준비 기간이 2년 정도 되었을 때 위기가 찾아왔어요. 실제로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이력서를 쓰기도 했고요. 그때 문득 ‘내가 최선을 다한 게 맞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죠. 마지막으로 노력해 보자는 마음으로 나만의 시리즈를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사물을 하나씩 만들어 SNS에 업로드했다면, 문어숙회, 토마토솥밥 등 요리 레시피를 함께 소개하는 작품을 선보인 거죠. 영상 촬영까지 해서 매주 1회씩 업로드하다 보니 어느새 브랜드에서 협업을 제안하는 연락이 왔어요.



성실하고 집요하게


작품을 위해 보통 어떤 종이를 사용하나요?
국내에 수입 종이를 취급하는 회사가 두 곳 있는데,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방문해 종이를 골라요. 요즘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제품은 ‘키칼라’입니다. 자연을 모티프 삼아 만든 컬러가 특징인 종이인데, 제가 만드는 소재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해요. 첫 개인전인 <페이퍼 테일>(5월 19일~7월 8일)을 마친 후엔 종이와 결합해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재료도 찾고 있어요. 돌, 세라믹, 유리 등을 함께 사용해 작업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기 때문이죠. 진짜 돌멩이 사이에 종이로 만든 돌을 숨겨두거나, 종이로 나무 질감을 표현하는 등 사람들에게 ‘이것까지 종이로 만든 거야!’라는 놀라움을 주고 싶어요.

종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물들이 생각보다 무궁무진하네요. 한계를 느낀 적은 없나요?
아무래도 종이는 직선적이고 평면적인 재료이기 때문에 곡선 형태를 만들기가 어려워요.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에 따라 그에 적합한 제작 방식을 각각 찾아야 하죠. 닭을 만들 때는 부피가 있는 곡선이 필요해 종이를 얇게 켜서 돌돌 말아 뼈대를 만들었고, 문어의 유연한 곡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관절 하나하나를 제작해 이어 붙였어요.

진짜 같아 보이는 섬세한 표현이 특징이에요. 자신만의 비법은 무엇인가요?
별다른 비법은 없어요. 될 때까지 반복할 뿐이죠.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이를 비슷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질감과 컬러의 종이를 찾아내 도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한 반복하는 수밖에는 답이 없어요. 어떤 작품은 10번 이상 샘플 제작에 실패했을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도전 정신이 활활 불타오릅니다(웃음).

그간 과일, 채소, 꽃 등 자연물을 많이 만들었어요. 일상적인 소재를 주로 만드는 이유가 있나요?
평소 생활하면서 인테리어, 자연, 음식 등 소재를 가리지 않고 예쁜 색감의 사진들을 수집해요.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소재를 주로 만들게 된 거죠. 친숙한 물건을 종이로 표현했을 때 오는 친근하면서 낯선 느낌도 좋고요. 개인전을 진행한 후에는 생활 사물보다 머릿속 상상을 현실로 꺼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숲속 아지트처럼 누구나 한 번쯤 꿈처럼 그려본 순간들을 표현하고 싶어요.



음악처럼 즐기는 미술


‘박종이’이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우선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습으로 시작했어요. 평소 긍정적인 마음은 표현을 잘하는데 오히려 부정적인 마음은 표현하지 못하는 편이에요. 감정 표현도 많이 해봐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요. 또 다른 이유는 작업 과정을 기록하고 싶어서요.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페이퍼 아트를 알게 되고, 도전하는 분들도 생겼어요.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이 생겨서 반가워요. 올해 안에 작업 방법을 책으로도 출간해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생각이에요.

유튜브와 책 외에도 페이퍼 아트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법이 있나요?
이번 개인전에서 전개도를 바탕으로 한 만들기 키트를 제작해 굿즈로 판매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페이퍼 아트가 어렵지 않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슬프거나 기쁠 때 음악을 듣는 것처럼 미술 작품도 쉽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평소에 직접 만들어보기도 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미술을 어려워하지 않게 될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요?
가능한 한 오래 작업하고 싶어요.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도 내가 건강하기만 하면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매일 아침 1시간씩 운동을 반드시 하는 것도 오래 일하기 위해서죠. 할머니가 될 때까지 ‘박종이’로 살고 싶어요. 그때가 되면 제 작업뿐만 아니라 제 삶의 공간에도 작품의 색이 묻어나겠죠. 삶과 작업이 하나가 되었던 타샤 튜더처럼요.





Editor Kwon Areum

Photographer Lee Ju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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