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뒤늦은 AAA 2024 현장 직관 후기
유튜브 '무신사 TV' 채널 <덕통사고>에 나오는 질문이다. <덕통사고>는 QWER의 히나가 메인 MC로 나와 다양한 분야의 덕후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컨텐츠다. 여기서 히나는 매번 게스트들이 자신의 덕력을 자랑할 수 있게 이 질문을 던진다. 무언가에 진심으로 임할 때 "나는 덕후로서 ㅇㅇ까지 해봤다!"만큼 손쉽게 덕력을 가늠케 하는 한 마디도 없다.
2024년 12월 27일(금) 저녁, 태국 방콕의 임팩트 챌린저 홀. QWER이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 2024(이하 AAA)에 참여했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티켓을 예매해 시상식을 현장에서 보게 되었다. 이제 누군가 "QWER 덕후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QWER을 보러 태국까지 갔다."
사실 처음에는 AAA에 갈 생각이 없었다. 10월에 QWER의 참가 소식을 들었을 때도, 11월 티켓팅 일정이 다가왔을 때도 바쁜 현생에 휴가 계획조차 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QWER의 단독 공연이 아닌 시상식 참가라면 무대 시간이 짧을 텐데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관객이 많고 공연장이 크니, 멀리서 제대로 보지도 못할 거라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방구석 1열로 KGMA의 <가짜 아이돌>+<고민중독> 무대, 그리고 MMA의 낭만 가득한 오프닝 무대를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공연 시간이 짧더라도, 자리가 멀더라도, 멤버들이 이를 갈고 준비한 시상식 무대는 한 번쯤 꼭 직관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12월 초에 여유가 생기자마자,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새해까지 쭉 휴가를 냈다. 목적지는 고민할 것도 없이 태국 방콕이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뒤늦게 알아본 시상식 티켓값은 내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아티스트 대기석 바로 앞에 위치한 VVIP석 가격은 무려 8,000 바트였다. 요즘 환율 기준으로 티켓값만 34만 원인데, 여기에 예매 수수료까지 붙으면 최종 38만 원 수준이다.
그래도 비행기 표는 이미 끊었으니, 큰맘 먹고 좌석을 알아봤다. 하지만 VVIP 석은 이미 매진이었다. 기왕 가는 김에 좋은 자리에서 보고 싶어 태국에 도착해서도 취켓팅을 시도했지만, 끝내 취소표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시상식 전날 밤, 무대에서 40열 가까이 떨어진 자리를 30만 원 가까운 가격에 구매했다. 갑자기 걱정이 밀려왔다. '그 이상 즐길 수 있을까?'
AAA에서는 VVIP석 구매자 전원이, 그 외는 당첨된 일부만 레드카펫 행사에 초청받았다. 아티스트들의 화려한 레드카펫 의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그러나 시상식 전날 밤에야 티켓을 확보한 나는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레드카펫은 스킵할 생각으로 시상식 당일 아침 여유 있게 준비를 했다. 그러다 문득, 'QWER 보러 태국까지 왔는데, 레드카펫을 직접 못 봐도 스크린으로라도 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급하게 아점을 먹고 '임팩트 챌린저 홀'로 향했다. 레드카펫 행사는 2시 반 시작이지만, 택시가 생각보다 늦게 잡혀 2시 35분에 도착하고 말았다. QWER은 신인이라 앞에 나올 텐데 큰일이었다.
다행히 공연장에 들어선 후 금방 스크린에 레드카펫에 오른 QWER 멤버들의 모습이 잡혔다. 해외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여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헤메코에 상당히 힘을 준 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화면 너머지만, 벌써 레드카펫에 선 것도 여러 번이기에 한결 편안해 보였다. 공들인 헤메코에 멤버들의 편안한 분위기, 그만큼 무대 위에의 모습이 더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짧지만 강렬했던 QWER의 레드카펫을 다 보고 자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자리로 가는 길목에 갑자기 진행요원이 막아섰다. 쇼 퍼레이드가 시작되었으니 잠시 대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드카펫 후 스타들이 퍼레이드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별 관심이 없었다. 택시 잡다 진땀을 다 빼서 얼른 짐을 두고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길을 막아 대기해야 하니 짜증이 밀려왔다.
그런데, 바로 눈앞 2~3미터 거리를 두고 다른 아티스트들을 태운 버기카가 지나가는 게 아닌가. 이러면 혹시 QWER도? QWER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되는 건가? 자리로 가서 쉬겠다는 생각은 금세 사라지고, 오히려 제발 이 자리에 머물게 해달라고 바라게 됐다.
그리고 잠시 후, 레드카펫 행사를 마친 QWER 멤버들이 두 명씩 버기카를 타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거리에서 응원하러 가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보이기도 들리기도 하는 거리에서 무대에 오르기 전의 QWER을 직접 응원할 수 있게 되었다. 주변에 바위게로 보이는 사람도, 한국인도 없었지만, 혼자서라도 최선을 다해 응원하기로 했다.
QWER은 아직 해외 활동을 본격화한 적이 없기 때문에 호응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레드카펫 행사 때도 앞뒤로 남자 아이돌이나 대기업 아이돌이 나오면 스크린으로만 보이고 레드카펫 행사장까지는 소리가 들릴 리가 없는데도 팬들이 공연장이 떠나갈 듯 환호를 한 것에 반해, QWER의 순서에는 상대적으로 조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일당백을 하자는 마음으로 QWER이 내 앞을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여느 대학 축제에서 그렇듯, 여느 페스티벌에서 그렇듯, QWER 멤버들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 실물에 놀란다. 처음에는 다른 유명 아이돌에 비해 조용한 것 같았지만 멤버들이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니 현지 팬들도 금세 놀람과 감탄이 섞인 함성을 내질렀다. '조선대 냥뇽녕냥 실문 반응' 영상이 떠오르는 반응이었다. 그래도 나는 한국에서도 바위게가 왔음을 알려야 했기에, 멤버들이 지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단전에서 끌어올린 에너지로 ’QWER 화이팅!‘을 외쳤다.
가까운 거리에서 힘껏 외치자, 먼저 지나간 쵸단과 히나가 내 소리를 듣고 화이팅 모션을 취하며 하트를 보내줬다. 뒤이어 마젠타와 시연도 웃으며 화이팅을 외쳐줬다. 현지 팬들에게 이미 큰 응원을 받았겠지만, 멤버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한국에서도 바위게들이 왔음을 알고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상상치도 못했던 리액션까지 받게 되었다. 처음의 '그 이상 즐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이 순간 모조리 사라졌다.
이제 할 건 하나뿐이었다. 이 자리에 목을 두고 가는 것. 무대 위의 멤버들에게 내가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응원과 함성을 보내주는 것.
시상식 직관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QWER에게는 데뷔 이래 네 번째 시상식 참가였다. KWDA, KGMA, MMA까지 3개의 행사를 방구석 1열에서 본 내가 기대한 이 날의 관전 포인트는 두 개였다. 첫 번째는 QWER의 2024년의 마지막 무대는 얼마나 멋질지, 두 번째는 이번 시상식에서의 수상 여부였다. 하지만 시상식 직관을 하면서 QWER을 보러 시상식에 가면 좋은 이유를 몇 가지 더 알게 됐다.
시상식에 가면 좋은 첫 번째 이유는 타 아티스트들의 무대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비싼 비행기와 티켓값을 감수하고 AAA 직관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뉴진스와 데이식스 같은 출연진 덕분이었다. 팬들조차 피켓팅으로도 보기 어려운 이들의 무대를 내가 언제 또 보겠는가? 왜 많은 연예인들의 아이돌일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듯 세련되고 카리스마 넘치는 뉴진스의 무대와, 관객석뿐 아니라 무대 위 아티스트들까지 모두 일어나 뛰어놀며 떼창을 부르게 한 데이식스의 무대를 직접 볼 수 있는 건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바위게로서 시상식 직관이 정말 재밌는, 위의 첫 번째 이유와 연결된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다른 아티스트의 무대를 즐기는 QWER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수십 미터는 떨어진 거리였지만 쌍안경을 챙겨간 덕분에 시상식 틈틈이 멤버들의 리액션과 멤버들끼리 꽁냥 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MMA에서도 요아소비의 <아이돌>에 맞춰 안무를 추며 공연을 즐기는 귀여운 모습이 잡힌 멤버들은, AAA에서도 자신들의 무대를 멋지게 마치고는 관객 모드로 돌아가 다른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즐겼다. 특히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는 모든 가수들과 관객들이 함께 떼창 하며 즐겼는데, 응원 단장이 된 시요밍과 함께 에어 기타를 연주하며 즐감 모드에 돌입한 멤버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시상식 직관의 꿀잼 포인트였다.
하지만 시상식을 직관하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현장에서 멤버들을 직접 응원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무대 자체는 위버스 라이브를 통해 방구석 1열에서 본 사람들이 현장에 있던 나보다 훨씬 잘 봤을 것이다. 시상식의 무대 영상은 출연진과 운영 측이 합을 맞춰 동선과 연출 모두를 고려한 최고의 결과물을 송출하기 때문이다. 덕질 초보인 나는 시상식 직관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응원하랴, 촬영하랴, 무대 보랴, 스크린 보랴, 정신없이 있다가 4마리 토끼를 다 놓칠 뻔했다. 특히나 AAA 버전으로 편곡된 <내 이름 맑음>에서 시연의 첫 소절 후 갑자기 쵸단 파트로 넘어가면서는 어떻게 응원해야 할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다른 건 다 놓고, 스크린을 보며 응원에만 집중했다.
일당백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내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닿길 바라며 열심히 응원했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멤버들이 화면에 비칠 때마다 예쁘다고 소리를 지르는 예비 ‘타(이 바)위게’들이 많이 보여 뿌듯한 한 편, <고민중독>이 시작될 때 "원! 투! 큐떱이알!"을, 시요밍의 확성기 퍼포먼스 후에 "좋아해!"를, 시연의 치어리딩 댄스에 맞춰 오른손을 내지르며 "어이! 어이!"를 함께 외칠 ‘토종 바위게’들이 없어 너무도 허전했다. 어디서든 서로 이 악물고 모른 척 하지만 오프에서는 공식 응원처럼 단합된 떼창을 하는 바위게 전우들이 이 순간만큼 그리울 수가 없었다.
AAA는 QWER의 첫 번째 해외 시상식이었다. QWER은 이렇게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 겨울이라는 컨셉에 맞춰, 레드카펫의 올블랙과는 반대되는 올화이트 무대 의상을 입고 멋진 무대를 선보이며 자신들을 알렸다. 최근의 QWER 자컨 영상들을 보면 MMA를 보고 팬이 되었다는 외국 바위게들의 댓글도 많이 보이는데, 이번 AAA 무대 역시 QWER이 해외 진출을 하는 데 토대가 될 것 같아 팬으로서 뿌듯했다. 하지만 이 날의 뿌듯함은 멋진 무대로 끝이 아니었다.
먼 타국까지 왔으니 QWER이 어떤 상이라도 받기를 바랐다. ‘포텐셜’ 상, ‘뉴웨이브’ 상, 그리고 MMA에서 수상한 ‘핫트렌드’ 상까지. 올 한 해 대세였던 QWER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이름의 상들에 설레발을 쳤지만 모두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돌아갔다.
그렇게 무대만 하고 가나 싶던 와중, ‘AAA 신인상’ 시상 차례가 왔다. ‘평생 한 번 밖에 받을 수 없는 상’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데뷔하는 모든 신인 아티스트들이 받고 싶어 하는 상이다. 한 해에 수십 팀이 데뷔하지만 극소수만이 받을 수 있는 이 상의 수상자로 QWER이 호명되는 순간, 팬으로서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바위게가 된 후 97F가 돼버린 나는 여느 때보다 울먹이는 쵸리더의 수상 소감과 마지막 시연의 "앞으로도 진심으로 노래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덩달아 울컥해질 수밖에 없었다.
QWER은 데뷔 1년 차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화려한 한 해를 보내며 여태까지 총 4개의 시상식에서 수상을 했다. KWDA에서 ‘베스트 밴드상’과 ‘본상’ 2관왕, KGMA에서 ‘베스트 밴드상’, 시상식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MAMA에서 ‘베스트 밴드 퍼포먼스 상’, 그리고 MMA에서 ‘핫트렌드상’을 수상하며 존재감을 입증했다. 거기에 올해를 마무리하며 유튜브 뮤직에서 내놓은 ‘한국 인기곡 1위’도 QWER의 <고민중독>이었다. 유력 신문지에 실린 기사와 같이, QWER은 ‘반박불가한 최애 걸밴드’로서 한 해를 보냈다. 그 덕분에 올해를 갈무리하는 대부분의 유튜브 컨텐츠들에서도 QWER이 하나의 신드롬으로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어떤 시상식에서도 ‘신인상’을 받은 적은 없었다.
QWER이 받은 모든 상들이 대단히 영광스러운 업적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신인상’은 그 의미가 다르다. 지금까지 받은 상들은 장르 개척자로서, 또는 ‘아이돌 걸밴드’라는 참신한 기획의 성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신인상’은 데뷔하는 수십 팀 중 단 몇 팀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상이다. 이 상은 단순한 장르의 성공이 아니라, 진정한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는 증표다. QWER은 AAA에서 ‘신인상’이라는 마지막 한 조각(Last Piece)을 수상하며, 2024년을 단순히 ‘최애 아이돌 걸밴드’가 아닌, ‘올해의 신인 아티스트’로 완벽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2024년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맞춘 QWER은, 2025년의 시작에 자신들의 마지막 한 조각이 될 바위게들을 초대하는 팬 콘서트 준비로 분주하다.
<최애의 아이들> 시즌 1 당시만 해도, 뚱땅 거리며 준비하다 연말에 게릴라 콘서트를 한 번 하고 끝낼 프로젝트 그룹이었다. 라이브 방송을 통해 멤버들의 숙소도 실제로 2024년 1월까지만 계약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QWER은, 해외에서 진행된 굴지의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고, 4천 석 규모로 진행되는 첫 번째 팬 콘서트를 1분 만에 매진시키는 대세 걸밴드로 성장했다.
2024년은 QWER과 바위게들에게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단발성 프로젝트 그룹에서 1년 만에 정통 신인상을 수상하는 걸밴드가 되기까지 멤버들과 제작진, 스태프들이 들인 노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바위게로서는 그 일부밖에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항상 이들을 응원하고, 그러면서 나 자신을 응원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독특한 그룹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매사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QWER의 2025년은 작년보다도 더 밝을 것이고 더더욱 높이 날아오를 것이다. 올해 말에 진행하는 시상식에서는 세계 각국의 바위게들과 함께 응원하기를 바라며 올해도 그들의 행보를 응원하려고 한다. 이 좋은 그룹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응원하고,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삶의 소중한 한 조각이 되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바위게’ 임이 벅차오를 때마다 묻는 질문을, 외국 바위게들에게 물어보며 오늘도 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