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샛별의 스피카> 독후감을 빙자한 팬심 중간 점검
* 만화 <최애의 아이>와 소설 <최애의 아이: 샛별의 스피카>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열심히 칭찬하고 응원해 봤자 결국 자기가 무슨 득을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걸 하고 싶어지는 걸까?"
덕질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흔히 갖는 생각이다. 많은 경우 그 뒤에 옅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한심하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특히 연예인 덕질의 경우, "백날 쫓아다녀봐야 걔들은 네 존재도 모를 텐데..."라는 냉소적인 조언도 자주 따라붙는다.
10달 전까지의 내가 그랬다. 잠깐의 무대를 보려고 몇 시간씩 대기한다거나, 아이돌 굿즈에 몇 십만 원씩 쓴다거나, 앨범을 수십 장씩 사는 사람들의 심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쓰는 시간과 돈을 다른 곳에 훨씬 생산적으로 쓸 수 있을 텐데. 반감까지는 아니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제는 내가 QWER의 공연을 보려고 몇 시간 전부터 가서 대기하고, 팝업 스토어에서 50만 원 넘게 쓰며, 초동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돼보겠다고 앨범을 수십 장씩 사는 덕후가 됐으니까. 회사에서도 진작에 바(위게)밍아웃을 한 나는 매일 QWER 콜라보 의류를 입고 출근하기까지 한다.
아쉽게도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덕질 경험이 없다. 그래서 많이들 이해를 못 하는 눈치다. 최근에 QWER을 보러 태국까지 갔다 온 후 그 시선은 전보다도 심해졌다. 못 말린다는 반응과 함께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고민해 보라는 진지한 조언을 듣기도 한다.
이런 반응이 계속되다 보니 나도 자연스레 스스로의 ‘덕질’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나는 무엇을 위해,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덕질‘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정신 차리고’ 그만둔다면 새해를 시작하는 지금이 적기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던 중 미뤄두고 있던 만화 <최애의 아이> 소설판, <최애의 아이: 샛별의 스피카>를 보게 되었다. 종종 느끼지만, 독서는 필요한 순간에 고민하던 답을 알려주는 마법을 부릴 때가 있다.
이 글의 시작을 연 대사는 이 소설의 54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대사의 주인공은 <최애의 아이>의 그 ‘아이’, 궁극의 아이돌 ‘호시노 아이’다. 사랑을 받아본 적도, 해본 적도 없는 '호시노 아이'는 ‘팬’을 그저 자신의 끼와 재능에 대한 소비자 정도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팬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B코마치 동료들과의 불화에 쉽사리 아이돌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은 그런 초보 아이돌 ‘아이’가 팬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까지 사랑하는 궁극의 아이돌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여기까지가 1화의 내용이고, 2~3화는 갈등을 딛고 지하 아이돌에서 메이저로 성장해 가는 아이를 열렬히 ‘덕질’하는 12세 불치병 소녀 사리나와, 사리나에게 감화되어 아이에 빠져드는 전문의 고로의 입덕기를 다룬다. 이런 내용이다 보니, 현재진행형으로 ‘덕질’을 하고 있는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내가 QWER을 좋아하는 이유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덕질을 하기 전에 가장 이해할 수 없던 점은 그 소모성이었다. 시간과 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는 대상에 쓴다는 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덕질을 시작하고 깨달은 건, 그런 계산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밀어주는' 힘에는 가늠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59p)
이 책에서는 ‘팬심’을 ‘밀어주기’ 또는 ‘밀어주는 힘’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밀어주고 싶은’ 대상이 생기면 손익을 따지지 않게 된다. 보통의 관계에서는 내가 준 것에 상응하는 만큼 돌려받기를 기대하게 되지만, ‘밀어주는 마음’은 그런 계산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덕질’을 하게 되면, ‘평소에 안 하던 짓’까지 하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평소와 다른 시선을 받게 되기도 한다.
소설에서 B코마치 소속사의 사장 ‘이치고’는 그 마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소속사 사장인 자기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자기 아이돌들의 팬이라며, B코마치 굿즈를 만들어 보여주면서 하는 이야기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권하는 건 의외로 쉽지 않아. '나랑 안 맞아'라고 거절당하는 일은 다반사고, 심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중략)
"하지만 말이지, 그런 두려움을 넘어서면서까지 타인에게 권하고 싶은, 그런 절대적인 '좋아함'도 있어. '남들이 뭐라 하든 난 이걸 좋아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감정. 그게 바로 '밀어주기'인 거야." (중략)
"나도 너희들에게 내 인생을 바치고 있어. 단순한 일어어서 그런 게 아냐. 너희를 지켜보는 게 내 삶의 보람이 되었거든." (55p)
이 ‘가늠할 수 없는 무언가’는 여러모로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 기본적으로 ‘덕질’이라는 건, 의외로 많은 생산적인 활동을 파생시킨다. 아이돌이든, 만화든, 뮤지컬이든, 그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마찬가지다.
우선 덕질의 대상을 남들에게 알려야 한다. 소위 말하는 ‘영업’을 해야 한다. 그것도, 최대한 널리 알려야 한다. 그래서 아이돌의 경우에는 그들의 매력적인 모습을 재밌게 편집한 팬튜브나 직접 찍은 사진을 예쁘게 보정해 올리는 팬계정이 다수 생긴다. 팬들끼리 팬심을 공고히 하기 위해 굿즈를 만들어 나눔 하거나, 만화나 팬아트를 그리거나, 커버를 하거나 글을 쓰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으로 자신만의 ‘영업’을 한다. 남들이 볼 때는 재능낭비일 수도 있지만, 덕후한테는 그저 행복한 취미생활의 연장이다.
나 역시도 QWER이 첫 덕질이다 보니, 넘치는 열정으로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들을 홍보하고 덕질의 이점에 대해 알리겠다는 당찬 포부로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다. 원래 글이라면 혼자 일기장에 끄적이는 게 전부였지만, QWER 덕분에 처음으로 ‘독자’라는 것을 염두한 글을 써보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MANITO> 활동 당시 <‘고민중독’ 커버 콘테스트>를 기회 삼아 QWER의 노래를 외국에 알려보자는 취지로, 영어로 번역하고 커버해서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스스로도 아쉬운 결과물이었지만, QWER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시작해 처음으로 제대로 번역/녹음/영상 제작까지 해본 점이 뿌듯하고 감사했다.
때로는 덕질의 대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공부를 하게 되기도 한다. 만화나 애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일본어 마스터가 되기도 하고, 뮤지컬이 좋아서 실제로 아마추어 배우에 도전하는 경우도 있다. 공부가 아니더라도, 최애가 이야기한 것에 관심이 생겨 새로운 취미가 되는 경우도 있다.
QWER은 워낙 취미 부자에 관심사 부자라, 바위게가 되면 관심사가 다양해진다. QWER 덕분에 뒤늦게 위스키에 입문하게 됐고, 애니메이션을 전보다 많이 보면서 일본어 공부도 시작하게 됐다. 멤버들이 즐기는 게임을 따라 하면서 게임 업계로의 이직도 고려해보게 됐다. 최애들의 관심사들을 따라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의 세계가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뭐가 됐든, ‘덕질’이라는 것은 덕질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만큼 소모적이고 낭비인 취미가 아니다.
물론, 덕질 과정에서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만이 장점은 아니다. ‘생산적’이라는 것 자체도 워낙 주관적이고, 덕질을 하는 방식은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식의 덕질을 하든 공통적으로 느끼는 행복은, 타인의 성공과 행복을 바라고 응원하는 기쁨 자체에서 온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최애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은, 팬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과 벅차오름을 준다.
덕질을 하기 전까지는 몰랐던 감정이다. 이전까지는 아이의 첫 대사처럼, 타인을, 그것도 알아주지도 못할 누군가를 덕질하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작년 4월 중순, 느닷없이 QWER의 탄생기를 다룬 <최애의 아이들> EP.7을 보고 덕통사고를 당했다. 누군가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먼발치에서 '행복해야 돼!' 하는 정도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금세 이들의 성공을 보다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발전하게 됐다. 알고리즘에서 태어난 QWER의 알고리즘에 빠져 여러 컨텐츠들을 보면서, 이들이 얼마나 진심인지를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인생의 정체기를 겪던 시기에 이들의 노력을 동경하게 되었고, 꿈을 향해 가는 모습을 응원하면서 나도 모르게 힘이 났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함께 성장하고 싶게 만드는 QWER만의 선한 영향력'이라고 보았다.
<최애의 아이: 샛별의 스피카>에서도 내가 느낀 감정과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마찬가지로 B코마치의 소속사 사장 '이치고'가 아이돌을 그만두려는 '아이'를 설득하면서 하는 말이다.
"노래도 춤도 처음에는 무척 서툴렀던 너희가 매일 땀과 눈물을 흘리며 점점 진정한 아이돌로 성장해 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뜨거운 감동이야. 만화나 영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진짜 이야기가 거기 있는 거지. 스타덤을 향해 달려가는 너희를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고." (53p)
QWER의 데뷔 과정을 다룬 <최애의 아이들>을 정주행 한 후 <고민중독>으로 컴백하기까지의 발자취를 보면서 뜨거운 감동을 느꼈다. 각 멤버들의 서사도 좋고, 전체 팀으로서의 이야기도 좋았다. 4월 13일에 입덕했으니, 그 이후 이들이 대학축제와 페스티벌을 거치며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감동은 날로 커졌다. 더 많은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고, 음악방송 출연 없이 음악방송 1위를 하고, 2024년의 마지막까지 여러 개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성장형 아이돌' 답게, 정말 응원할 맛 나게 남다른 보폭으로 성장해 팬들에게 ‘밀어주는 기쁨‘ 이상을 선물해줬다.
덕질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은 여전히 '걔들이 잘 나가는 거랑 너랑 무슨 상관인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덕질을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감정이다. 남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순간 자체에서 느껴지는 만족감이 있다. 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감정을 공유하는 과정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유대감이 있다. 최애들의 성장을 보면서 느끼는, 개인적인 '대리만족'이라고 하기에는 이타적인, 벅차오르는 감정이 있다. 특히 아이돌이고 밴드라면, 한 공간에서 팬과 아티스트로서 에너지를 주고받는 정말 특별한 행복이 있다. 이런 감정을 책에 나온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건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 (110p)
1월 25일(토) 어제, QWER의 첫 번째 단독 팬 콘서트가 예스 24 라이브홀에서 열렸다.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QWER은 팬들을 위해 시작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15곡에 달하는 세트 리스트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개인적으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알고리즘블라썸 쇼케이스’, 그리고 단콘에 가까웠던 ‘다빈치 모텔’ 공연을 최고로 꼽아왔다. 하지만 첫 3곡부터 QWER 최고의 콘서트는 이번 팬 콘서트가 될 것이 분명해졌다. 너무도 기다렸던 공연에 바위게들 역시 폭발적인 응원으로 화답하며 공연의 컨셉에 맞게, QWER의 마지막 한 조각을 멋지게 완성했다.
처음에는 2023년 연말,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소규모의 길거리 게릴라 콘서트로 기획된 공연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너무 잘 된 QWER은, 정신없던 2024년을 거쳐 2025년에 와서 2천 석 규모의 공연장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수많은 랜선 바위게들과 함께 하는 단독 콘서트를 열게 되었다. 마무리가 아닌 시작을 의미하는, ‘첫 번째’ 팬 콘서트를 말이다.
QWER 덕질을 왜 하는지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내가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안 하던 짓을 많이 하게 되지만, 그런 스스로의 모습이 좋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과 감동이 이전에 경험해 본 적 없던 새로운 만족감을 준다. 그러니 혹여라도 남들의 눈치를 보며 덕질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마음껏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덕질을 안 하는 사람들도, 덕후들을 말리려고 하기보다는 두고 봐줬으면 좋겠다.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르지만, 본인은 정말 행복해서 하는 거니까.
팬 콘서트 막바지 즈음에 나온 VCR에 퍼즐을 맞추는 리더 쵸단의 모습이 나온다. 그런 그녀의 옆에 계속 비치는 책 한 권이 있다. 그 책의 표지에는 ‘The best is yet to come’이라는 글귀가 쓰여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로도 유명한, 영어권에서 자주 쓰이는 이 표현은 직역하자면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팬들에게 최고의 순간인, 기다리고 기다리던 단독 콘서트에서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니… 성장형 밴드 QWER은 누군가는 장대한 이야기의 결말이라고 볼 수 있는 팬 콘서트에도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이렇게 숨겨두었다.
QWER의 음악 프로듀서, 바위게들의 ‘동동’, 이동혁 프로듀서는 자신의 인스타 스토리에 QWER의 팬 콘서트 포스터 사진을 올리며 “1st”를 강조해서 표시했다. 이 팬 콘서트는 말 그대로 앞으로 다가올 여러 번의 콘서트 중 이제 시작하는 첫 번째일 뿐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QWER의 최고의 콘서트’는 아마도 계속해서 갱신될 것이다. 첫 번째 콘서트보다 두 번째 콘서트가 더 화려할 것이고, 첫 번째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그만의 의미가 있지만 두 번째 출연은 또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는 장이 될 것이다. “The Best is yet to come.” 이 말만큼 성장형 밴드 QWER을 잘 나타내는 표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 무대도 더더욱 기대된다. 첫 공은 설렘이 있다면, 막공은 감동이 있다. 어제 충분히 멋진 모습을 보여줬지만, QWER 답게 오늘은 어제보다도 더 완벽해진 무대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오늘도 가서 목이 터져라 외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