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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깅업 Jun 26. 2024

QWER은 글로벌로 가야 합니다

꿈과 낭만의 QWER 입덕기 #5

스밍 밖에 모르는 바보


4월 22일은 또 한 번 주말 내내 QWER 컨텐츠를 총 복습한 후에 맞는 월요일이었다.


QWER이 너무 좋고, 이들의 노래로 많은 위로를 받아 QWER을 더 널리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영상 편집도, 짤 생성도, 직캠 촬영도, 만화를 그리는 것도 모두 내 능력 밖의 일들이었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QWER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스트리밍뿐이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스밍을 열심히 돌렸다. 회사에 있을 때는 이어폰에 연결해 볼륨 1로 켜두고, 잘 때는 거실에 볼륨 1로 해두고, 중간에 멜론이 스밍임을 인식해서 일시정지가 되면 한 번씩 풀어주고. 그렇게 24시간 스밍을 돌리고,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한테 스밍을 독려하는 게시글을 올리는 식으로 내가 팬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5월 7일 기준 감상 횟수. 지금은 이 2배다.


찾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


그렇게 회사에서도 무한스밍을 하다가, 팬카페에서 내가 놓쳤던 게시글을 발견했다. "'고민중독' 커버[악기/보컬부문] 콘테스트". 제목 그대로 이번 앨범 타이틀곡인 <고민중독>을 악기나 보컬로 커버하는 콘테스트였다. 우승 상품으로는 멤버들의 친필 싸인이 담긴 각종 굿즈가 걸려 있었다.


기뻤다. 스트리밍 외에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겼고, 운이 좋으면 QWER 멤버들의 싸인이 담긴 굿즈까지 노려볼 수 있었으니까.


친필 싸인 굿즈를 팬으로서 어떻게 참는데!


"'고민중독' 댄스챌린지"도 있지만 갓 태어난 기린 같은 춤선을 가진 내가 도전할 분야는 아니었다. 멤버들이 보게 되면 웃음을 선사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혹했지만, 그런 모습을 박제당할 자신은 없었다. 그러므로 패스.


그래도 '고민중독' 보컬 커버 정도라면, 고음불가이기는 해도 노래방은 좀 가봤으니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다른 팬 분들이 올린 컨텐츠들을 살펴봤다.


다들 잘한다. 악기를 다루는 분들, 녹음 장비를 다 갖추고 계시는 분들, 그냥 목소리가 좋은 분들은 물론이고 유튜브에는 일인 아카펠라로 커버하거나 아예 프로 연주자인 분들도 계셨다.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나 정도의 실력으로 노래방에서 불러서 올려봐야 댓글 하나 못 받을 것 같았다.


그래도 기왕 하는 거, 무언가 족적이라도 남겨야 되지 않겠는가. 부족한 노래 실력을 커버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일은 안 하고. (이 모든 일은 회사 점심시간에 벌어졌다.)


진짜 찾았다, 나만 할 수 있는 거


점심이 끝나고 다시 스밍을 돌린 채로 업무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 앨범 수록곡 중 모든 멤버가 참여해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지구정복>이 흘러나왔다.



말했다시피 뭐! 우리 목표는 말야!
(지구 정복이다)


멤버들은 자신들의 최종 목표가 빌보드라고 여러 컨텐츠에서 자주 언급했다.


빌보드에 가려면 글로벌로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영리한 타마고 프로덕션은 그것을 알기에 기존의 <최애의 아이들> 컨텐츠에 4~5개 국어 자막을 달았다. 더욱 다양한 사람들이 언어의 장벽으로부터 자유로워질수록 QWER의 팬덤이 더욱 확대될 수 있으니까. 이들이 전하는 가치인 성장, 꿈, 노력 같은 것들은 언어가 없어도 통하지만, 언어의 벽을 허물면 더욱 널리 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실제로 위버스, 인스타 라이브, 유튜브 등 글로벌 접근이 쉬운 채널들에서는 외국인 팬도 이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고민중독> 뮤비도 영어 자막으로 번역이 잘 되어 있다. 하지만 의미상의 번역만 있고 멜로디와 박자에 맞지 않고, 라임도 갖추고 있지 않다.


여기서 내가, 어쩌면 나만이 할 수 있는 빈틈을 찾았다. 원래 노래를 좋아하고, 어려서부터 영어를 많이 써와서 '번안'은 딱 그 접점에 있었다. 원래 취미로 혼자 개사를 해본 경험도 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처럼 노래 실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니, 이런 노력이 나를 차별화시켜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유튜브 캡쳐


사실 QWER에 빠지고 <고민중독>을 알게 된 외국인들은, 기본으로 있는 영어자막만 봐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다. 그래서 영어 번안 자체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래도 의미를 유지한 채로 영어로 라임까지 맞추면 외국 팬들이 노래를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요아소비 - IDOL>의 영어 버전이 3천만이 넘는 조회수를 자랑하는 것처럼, <고민중독>도 영어 버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QWER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고민중독 = To Be Honest


그래서 그날부터 퇴근하면 바로 집에 와서 번안 작업을 했다. 일과 중에도, 다른 일을 하다가도 가사가 떠오르면 틈틈이 메모해 두었다가 저녁에 합치는 식으로 계속 만들어갔다. 아쉬운 부분은 바꿔보고, 라임이 안 맞으면 아예 다른 라임을 짜보고. 그렇게 계속해서 수정하고 다듬어 갔다.


워낙에 소녀 감성의 노래이다 보니, 30대 아재가 번역하기에는 꽤나 까다로웠다. 나는 미국 십 대 소녀의 마음과, 그들이 쓰는 말을 모르니까. 그래도 일단 원곡 가사 자체가 워낙 좋으니, 최대한 의미를 유지해서 직역에 가까운 의역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쏟아지는 맘을 멈출 수가 없을까?'는 정말 소녀스럽고 순수한 가사라 특히 좋아하는 후렴 첫 부분이다.


직역하면 'pouring heart'인데 '쏟아지는 맘'의 귀여운 느낌 없이 피가 흐르는 심장이 연상됐다. 패스. 'pouring emotion'이 의미 전달은 되는데, 세 음절로 길고 라임 맞추기가 어려워 역시 패스. 비슷한 느낌이면서 어린 화자가 써도 어색하지 않은 표현을 고민하다 보니 'heart explode(심장이 터질 것 같다)'가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멈출 수 없을까'하고 혼자 의문을 던지는 표현을 어떻게 번역하는 게 좋을지도 문제였다. 'How can I', 'Can I'는 직역에 가까운데, 정말 누가 답변을 해줘야만 할 것 같은 의문사라 어울리지 않았다. 화자는 특정 대상한테 '멈추는 방법을 알려주세요'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누가 좀 알려줘요!'하고 누군가를 좋아하지만 어쩔 줄 몰라 답답한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거라고 느꼈다. 그래서 'Someone please tell me how('쏟아지는 맘을'와 음절이 같다)'로 바꿨다.


이런 고민을 거쳐 후렴의 첫 번째 문장은 아래와 같이 번역했다.



<고민중독>을 번역함에 있어 또 하나 중요한 건, 시연이의 안무와 챌린지 안무를 고려해야 한다는 거였다. '숨겨왔던 나의 맘 절반의 반도'를 살려야 했고, '요란해져서' 할 때 돌아야 했고, '비밀번호 눌러 열고 싶지만' 할 때 누를 대상이 있어야 했다. 그런 부분을 고려해서 아래와 같이 번역했다.


아래 영상과 맞춰서 보면 뭘 고민했는지는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걸 핑계로, 우리 큐떱이들을 보며 눈호강 할 수 있도록 하자.




숨겨왔던 나의 맘 / 절반의 반도 / 주지를 못했어

I can't show you even one / quarter of my heart, / I've always kept inside


너의 작은 인사 / 한마디에 / 요란해져서

When you say hello I / feel like my whole / world is turning round


네 맘의 비밀번호 / 눌러 / 열고 싶지만

Wanna know the password to / your heart, / your secret code


출처: 유튜브 <QWER>


처음은 항상 아쉽다


취미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분 부분 개사해 본 경험은 있었지만, 곡 전체를 번안해 본 건 처음이었다. 마지막까지도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4월 30일(화)이 마감 기한이었기 때문에 일요일(28일)이 되자 일주일 간 씨름한 번안 상태 그대로 마무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챌린지는 결국 내가 녹음하고, 편집하고, 영상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녹음도, 편집도, 영상화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일요일에 녹음이라도 마무리 지어야, 29일(월)에 밤을 새워 빠르게 음악 편집과 영상 제작을 공부해서 미흡한 영상이라도 만들어서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29일(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전날 녹음한 걸로 갖은 애를 써서 음원화 했다. 안 올라가는 노래를 부르려다 보니 음도 하나도 안 맞아서 피치 맞추는 방법도 유튜브 검색으로 찾아서 적용하고, 리버브 넣는 법, 컴프레서, 리미터 등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처음 보는 용어와 개념들을 최대한 빠르게 익혀서 녹음본에 적용을 해나갔다. 물론 애초에 녹음부터 망한 거라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듣기가 너무 싫어서 그냥 이쯤 하고 개인소장할까 하다가 최초의 목적을 다시 떠올렸다. QWER의 느낌을 살린 영어 버전을 만들어서 외국인들한테 <고민중독>을 알리는 데 미약하게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 번역한 것만 가지고는 어떻게 박자를 맞춰야 하는지 알 수 없으니, 결국 내가 부른 버전을 써야만 했다. 여기서 멈출 수가 없었다.


마저 해야겠다고 나 자신과 원만한 합의를 마치고 났더니 자정이었다. ‘잠은 다 잤다’ 하고 영상 만드는 방법을 찾아봤다. 이 컨텐츠는 번안 가사 전달이 목적이니 Lyric Video 스타일로 제작해야 했다. 영상에 여러 효과를 넣으면 시선을 사로잡을 수도 있겠지만,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기에 그것까지 배워서 적용할 시간은 없었다.


결국 마니또 앨범을 흐리게 하여 가사만 잘 보이게 뒤에 깔고, 박자에 맞춰 가사를 입히는 것으로 컨텐츠를 마무리 지었다. 음원 작업에 비하면 간단해 보이지만, 모든 것이 처음인 입장에서는 이것도 못지않게 오래 걸려서 동이 트기 전에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나름 힘을 줬던, 영어 제목(T.B.H)을 담은 마지막 파트


노래도, 믹싱도, 편집도 아쉬운 퀄리티이기는 하지만, 원래 처음은 아쉬운 법 아니겠는가.


기승전, QWER 고마워요


나는 이것으로 또, QWER에 감사하게 됐다. 취미로 녹음해서 음원을 만들고 유튜브를 시작해 보겠다는 다짐으로 2019년에 맥북을 사고 로직이랑 프리미어까지 구매해서 깔았다. 유감스럽게도 그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를 실천해 본 적이 없었다.


근데 이번에 처음으로, 멤버들을 응원하는 마음에 번안도 해보고, 녹음도, 영상 제작도 해보게 됐다. 몇 년 간 계획만 했던, 내 생각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블로그도, 거기서 발전한 이 브런치도 QWER이 계기였다. 그렇게 내 맥북도, 내 품에 들어온 지 5년 만에, QWER 덕에 드디어 제 몫을 할 수 있게 됐다. 다시 한번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깨닫는다.


팬심으로 치열했던 4월의 마지막 한 주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느낀다.


'내 최애들이 열심히 사는 만큼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들어 준다는 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선한 영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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