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의 소문난 연애 리얼리티 <환승연애>의 인기 요인 분석
'환승'과 '연애'를 함께 쓰는 것은 금기다. 헤어지기 이전에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었다는 것을 내포하고, 그것은 일종의 바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만큼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연애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맺고 끊음이 분명해야 하고 지난 사랑에 대한 애도 기간도 필요하다. 헤어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연애를 시작하는 것도 그 순수성을 의심받기 십상이다.
'환승연애'라는 이름을 보고 마라맛 리얼리티를 생각했다. 세상이 말세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웬걸, 금요일 업데이트를 기다렸다가 단톡방에 달려가게 만드는 티빙의 킬러 콘텐츠가 되었다. (환승연애 이번 화 봤어?) 환승연애는 어떻게 여론을 반전시켰나.
멜로드라마에서 그려내는 이야기와 비슷한 서사를 담고 있다. 삼각, 사각 관계를 딛고 주변 상황들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뤄내는 이야기들. 이들이 가진 차이점은 현실의 시간이 흐르는 진짜 연애를 했다는 것이다. 특별하다고 믿었지만 남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연애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연애였을 것이고, 아름답지만은 않은 연애였을 것이다. 어쨌든 이별을 맞이했으니 말이다. 지나간 기억들을 가지고 전 연인과 마주한다는 것은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진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연기를 잘하더라도 남녀 배우가 돌아서면 연락을 하지 않을 것을 아는 드라마와 사람들의 진짜 감정을 마주하는 리얼리티는 다르다. 환승연애에는 온갖 감정이 가득하다. 지나간 연애에 대한 아쉬움, 미안함, 고마움 그리고 미련과 다른 이에게 향하는 설렘과 죄책감 같은 것들이 표정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그들의 눈길을 살피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청자들은 자신의 과거 연애의 한 조각씩을 발견하고는 한다. 리얼리티가 주는 공감의 정서는 드라마보다 강력하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잘생겼고, 예쁘다. 말 그대로 선남선녀들이 그림 같은 집에 모여 산다. 한남동 소재의 집과 동거라는 형식, 출연자들의 화려한 외모는 하트시그널을 떠올리게 한다. 하트시그널의 출연자들은 방송이 끝난 후 일반인과 셀럽의 사이 어느 중간쯤의 존재가 되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상을 공유하고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들 사이에 그려지는 연애 감정은 대리 만족감을 불러일으킨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연예계 또는 셀럽으로 가는 등용문이 되었다)
하트시그널을 연상하게 하는 감성적인 분위기지만 환승연애는 결정적으로 하트시그널과는 다르다. 헤어진 연인들을 모아두었으니 말이다. 헤어진 연인과 다시 만나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한 공간에 있다. 썸을 타려고 해도 나의 X가, 상대의 X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리가 없다.
이것은 오래된 질문 중에 하나다. 전 연인과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X가 보는 앞에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가. 서로의 새로운 사랑을 응원할 수 있는가.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다. 7화 예고는 아직도 혼란과 눈물이 가득하다.
환승연애는 X를 전면에 내세운다. 자기소개를 "전 연인이 쓴 나의 X 설명서"로 대신했고, 공식적인 첫 데이트는 X와의 추억이 담긴 장소로 선정했다. 데이트를 나가기 전에는 익명 채팅을 통해 X에 대한 정보를 묻고 답했다. 매일 밤, 문자로 하는 투표는 익명이지만 하나만 공개한다. "당신의 X는 당신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전 연인과 새로운 만남을 한꺼번에 올려두고 본다는 건 분명히 금기다. 출연자들도 혼란스러워한다. 나를 바라볼 줄 알았던 X는 프로그램이 시작하자 변했고, 다른 사람에게 눈길이 가면서도 X가 다른 사람과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빼앗긴 기분"이 드니까 말이다. 이 금기의 영역을 건드리는 환승연애는 새롭고 자극적이다. 위태로운 선을 넘나드는 환승연애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들이 이미 헤어졌고, 서로 동의 하에 출연했다는 것을 명분이자 정당성으로 삼는다. (금기의 영역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는 이 정당성이 중요하다)
OTT 시대에 걸맞게 각 플랫폼마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선보여지고 있다. 왓챠에는 유튜버 '엔조이 커플'과 손잡고 제작한 '러브&조이'가, 카카오TV와 넷플릭스에는 '체인지 데이즈'가 대표적이다. 마찬가지로 충분히 자극적인 설정이지만 화제성, 선호도 면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우선 티빙은 유튜브에 1화를 무료로 공개했다. 무려 1시간 25분이다. 제목만 보고 고개를 젓던 사람들도, 알고리즘에 무심코 뜨게 된 사람들도, '무료' 공개를 보고 모여들었다.
‘꽃청춘’ ‘윤식당’ 시리즈를 만든 이진주 PD의 신작답게 그려진 감성적인 분위기는 사람들에게 반전 매력으로 작용했다. 하트시그널에서 이미 검증된 바 있었던 공식을 사용한 것이다. 거기다가 연예인 패널들은 출연자들을 지나치게 분석하려고 하지 않았다. 또 그들의 현재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 지를 추리하지 않았다. 그저 공감했을 뿐이다. 1화에서 중점이 된 것은 "누가 누구의 X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눈치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누가 누구랑 사귄 걸까? 8인도 모르고, 우리도 몰랐다. 사람들의 관심이 '환승'이 아닌 추리로 모아졌다. 그리고 질질 끌지 않았다. 1화 만에 한 커플이 공개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서사에 몰입했고, 다시 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다시 보이는 X의 표정과 말들을.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에 티빙 이용권이 추가된 것도 시너지를 냈다. 원래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에 추가된 티빙은 기본 상품인 '방송 무제한'으로 티빙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티빙은 앞서 공지사항을 통해 6월까지, 또 한 번 기간을 연장해 오는 9월 30일까지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를 볼 수 있다고 알렸다. 네이버가 최근 티빙에 400억 원 지분 투자를 하며 협력을 강화한 결과로 분석된다. 네이버의 유료 멤버십 혜택과 티빙의 콘텐츠를 함께 볼 수 있게 됨으로써 결제까지의 진입 장벽이 낮아질 수 있었다.
환승연애는 하트시그널의 감성으로 포장한 떡볶이다. 맵고, 달다. 우리는 이 자극적인 맛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가 없다. 건강식을 먹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떡볶이는 먹고 싶다. 맛있으니까.
* 티빙은 지난해 10월 CJ ENM으로부터 분할해 독립법인으로 출범했다. 올 1분기 유료 가입자 수는 그 전분기 대비 30%가량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과의 제휴도 이 증가세에 영향을 미친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 티빙은 출범 후부터 꾸준히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이미 포화된 국내 OTT 시장은 결국 콘텐츠의 힘이 중요하다. 티빙은 2023년까지 오리지널 100여 편 제작, 유료 가입자 800만 명을 확보하고 2022년에는 해외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올 한 해만 오리지널 콘텐츠 30여 편을 선보일 예정이다. 앞으로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