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라는 DNA

꾸준함

by 디기리

'끈기(끈氣)'


'쉽게 단념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견디어 나가는 기운.'


한글과 한자가 섞인 말로 몇 해 전부터 가장 많이 제가 되뇌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사실 살아오면서 평소에 끈기 있다는 말을 자주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스스로 평가해도 그리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기억들도 그다지 없습니다.


그래도 욕심은 있었는지 늘 '끈기'라는 DNA를 동경하고 어떻게든 키워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끈기'를 가진다는 것이 정말 쉽지는 않더군요.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저의 의사결정 방식과 '끈기'라는 DNA가 만들어지는 방식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과정보다 결과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끈기는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물려받을 수 있지만 후천적으로 키우는 것도 가능합니다.


한 해 농사를 일구는 농부의 마음처럼 씨앗을 뿌리고 잘 자라기를 기다리면 열매가 영글어가듯 끈기도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자라납니다.


한근태 작가님의 『고수의 일침』에 실린 '씨앗의 법칙'이라는 글에서 '끈기'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뿌리지 않으면 거둘 수 없다.

먼저 뿌리고 나중에 걷는다.

뿌리기 전에 밭을 갈아야 한다.

뿌릴 때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야 거둘 수 있다.

뿌린 씨가 전부 열매가 될 수는 없다.

아무것도 못 거둘 수도 있다.

뿌린 것보다 더 많이 거둘 수도 있다.

때로는 엉뚱한 곳에 뿌렸는데 거두는 경우도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언제 끈기가 생길까? 싶은 조급한 마음을 비워내는 훈련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끈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중간에 실패하고 좌절도 하면서 계속 나아가는 힘을 가져야 끈기도 더 멀리 도망가지 않습니다.


끈기란 이를 악물고 억지로 참는 게 아니라 뿌린 씨앗의 열매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며 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몇 개의 글을 쓰면 모둠이 되고 어느 시간이 지나면 책으로 엮어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으로 글을 쓰니 글쓰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재미 없어졌습니다.


멋진 글이라고 썼지만 돌아오는 반응이 냉담하면 의욕도 사라지고 지속하고 싶은 의지도 점점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누가 읽지 않더라도 내 생각을 담은 진솔한 글을 쓰자는 마음에 욕심과 부담을 내려놓으니 그때부터 글을 쓸 수 있는 글 근육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진리에 이르는 길은 의도를 갖지 않는 사람에게만 열려있다"라는 칼 구스타프 융의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 일정한 거리를 달리는 것도 처음엔 마라톤 대회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지만 이제는 달리는 것 자체가 재밌습니다.


그냥 뛸 수 있는 저를 만난 것 자체가 반갑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갖고 싶었던 '끈기'라는 DNA를 이제는 제 안에 담아볼 수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