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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찬 Nov 18. 2024

애플은 노동을 성화한다

<브랜드는 종교다> 시리즈 3


‘나는 갤럭시를 씁니다’는 잘못되지 않았다


최근 삼성전자 갤럭시의 ’나는 갤럭시를 씁니다‘ 광고가 대중의 이슈였습니다. 갤럭시를 쓰는 실제 사용자 중 유명인을 내세워 진정성 있게 광고하고자 한 것인데요.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테크니컬한 부분에 있어서 호불호는 있을 수 있어도 광고의 메세지 자체는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나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들, 즉 나다움이 있는 사람들은 갤럭시를 쓴다는 메세지였죠. 특히 빠니보틀 편의 경우에는 여행을 다니며 실시간 AI 통역 기능을 사용하거나 플립을 활용해 사진을 찍는 등 빠니보틀다운 활용 모습을 보여주어서 대중의 반응도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성 갤럭시의 브랜딩을 꾸준히 지켜 본 사람으로서, 다소 아쉬운 점이 존재합니다. 특히 제가 브랜딩을 종교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에 더욱 그렇죠. 그 지점은 무엇일까요?


예술가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애플, 그저 유행하는 페르소나 브랜딩인가?


애플은 삼성과 무엇이 다를까요? 무엇이 다르기에, 브랜드마케팅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애플을 우러러볼까요? 무엇이 다르기에, 인터브랜드 <Best Global Brands>에서 약 400조에 육박하는 브랜드 가치를 보이며 12년째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을까요? 저도 현업에서 <Best Global Brands>의 평가에 작게 나마 참여하고 있는데요, 애플은 브랜드의 무형 가치 부분에서 매년 다른 브랜드보다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애플의 압도적 브랜드 가치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일관된 자아정체성 부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이제는 역사적 사건이 되어버린 코로나19가 처음 발생 했을 때, 애플은 인스타그램에 이런 피드를 남겼습니다.


”We always shined a light on artists, and we are committed to supporting then now, more than ever..”


사람은 위기가 오면 자기 정체성과 지향점을 더욱 명확히 하기 마련입니다. 애플은 자신의 정체성을 뭐라고 설명했을까요. 인류를 뒤흔드는 전염병 앞에서 애플은 우리가 언제나 예술가(Artists)들을 비추어 왔으며, 우리는 앞으로도 그들을 지원하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말합니다. 요즘 많은 브랜드들이 예술과 브랜딩의 접목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 그 자신부터 예술가였고, 애플은 예술가들을 이 시대의 영웅으로 진정성 있게 그려왔습니다. 즉 그들은 약 4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나의 지향점을 보여왔죠: “예술가들을 위한 무기를 만드는 브랜드”


그렇다면 애플의 브랜딩 사례에 대해 익히 알고 계신 분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거 그냥 페르소나 브랜딩 잘했다는 거 아니에요?”. 물론 페르소나 브랜딩의 힘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브랜드에 하나의 캐릭터, 인격을 부여하여 매력적으로 만드는 작업말이죠. 그런데 종교학적인 배경에서 애플을 바라본다면 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애플은 노동을 성화한다


종교적 인간은 두 가지 종류의 시간, 즉 세속적인 시간과 거룩한 시간을 경험한다. 전자는 덧 없는 지속이요, 후자는 거룩한 달력을 구성하는 축제들 가운데서 주기적으로 회복되는 ‘일련의 영원’이다.
(멀치아 엘리야데, <성과 속: 종교의 본질>, p.147)


엘리야데에 따르면 시간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일상과 비일상. 일상은 특별할 것 없는 시간입니다. 덧 없는 시간입니다. 방향성이 정립되지 않은 시간이죠. 반면 비일상의 시간에는 일상과 다른 특별함이 시간에 부여됩니다. 비일상의 시간은 ‘내가 살아 있는 기분’을 느끼는 시간입니다. 내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고 변화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시간입니다. 일상의 예시는 우리가 반복된 노동을 하는 시간입니다. 반면 비일상의 예시는 대표적으로 1월 1일이 있습니다. 모든 날은 반복되고 기억되지 않지만, 인간은 매년 1월 1일을 세상이 다시 한번 갱신 되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합니다. 즉 ‘시간의 성화’가 일어납니다.


갑자기 조금은 철학적인 이야기이죠? 이 이야기가 어떻게 애플과 관계가 있을까요.


“인간의 행위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행위는 신의 행위에 가장 근접하는 행위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7178 b, 21)


애플은 바로 노동 시간을 성화합니다. 우리를 지루하고 반복되는 노동에서 구해줍니다. 우리를 노동자가 아닌 아티스트라고 불러줍니다. 그리고 창조적 삶을 위한 다양한 무기로서 아이패드, 맥, 비전 프로 등을 만드는 것이죠. 이렇게 애플은 사용자로 하여금 카오스가 아닌 코스모스의 시간으로 이동하게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맥으로 작업하는 디자이너를요. 우리는 그가 노동자라고 생각하기보다 예술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도 지금 아이패드로 글을 쓰고 있는데요, 아이패드는 제가 마치 작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한 숟가락 정도 더 얹어줍니다. 제 마음에. 이 모든 것은 노동을 자기의 발 아래에 굴복시키려는 시도입니다.


브랜딩의 깊이는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갈린다


“삶은 두 개의 지평 위에서 살아진다”  
(멀치아 엘리야데, <성과 속: 종교의 본질>, p.147)


사실 오늘 애플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현재 ‘브랜드 컨설턴트의 생각’​을 함께 연재하고 있는 느낀표 컨설턴트의 조언에 따라 애플 분량을 늘려보았는데요. “너무 종교적인 서론보다는 실제 예시의 분량이 두꺼워져야할 것 같다”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받았지요. 저도 공감이 되었고 글 구성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그래도 오늘 여러분이 더 주목하면 좋겠는 한 단어는 애플이 아니라 ‘성화’입니다. 인간의 ‘성화 능력’에 말이죠. 앞서 살펴보았듯 성화란 일상을 변화시켜 비일상의 시간으로 만드는 능력입니다. 이 지구 상에 인간에게만 그러한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은 지극히 땅에 가까운 삶을 살아나갑니다.

동시에, 인간은 지극히 하늘에 가까운 삶을 살아나갑니다.


지극히 생존하기 위해 살아가며,

지극히 신이 되기 위해 살아가죠.


우리는 그것을 일상과 비일상,

카오스와 코스모스라고 부릅니다.


비일상은 결국 자아 실현의 순간, 신적 속성에 가까워진 시간들입니다. 내가 손 뻗으면 꼭 신의 옷자락에 닿을 것만 같은 시간들. 내가 신이 된 것과 같은 시간들. 즉, 모든 것을 발 아래 두고 내려다 볼 수 있는 신처럼, 오늘의 예처럼 노동도 내 발 아래 둘 수 있는 시간들.


삼성은 어떤 브랜드 포탈을 열 수 있나


서문을 삼성 갤럭시로 열었으니, 에필로그도 삼성 이야기로 맺을게요.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에는 영혼이 없다”. 스티브 잡스가 지금의 삼성을 보고도 같은 말을 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삼성 브랜딩은 분명 기능적 가치를 넘어 감성적 가치(Emotional Value) 수준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요즘은 애플 광고보다 더 은유적이고 감각적으로 그들의 브랜드를 이야기할 때도 있어요.


그러나 오늘 글의 결에서 걷자면, 삼성 역시 일관된 자아정체성 부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애플이 아티스트를 섬기고 그들의 무기를 만들어준다는 뿌리부터의 신념이 있듯이, 삼성 갤럭시 역시 그들만의 자아정체성이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아니, 오히려 자아정체성은 내부에서 만들든 컨설팅을 받든 만들 수 있죠. 그런데 그것을 길게, 오래, 변함없이 지켜나가는 것. 하나의 믿음을 믿는 부족이 되는 것. 그런 인터널 브랜딩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결국 애플은 이 덧 없는 일상에서 예술가로 살 수 있는 차원문을 열어주는 브랜드입니다. 저는 그것을 이 시대의 브랜드의 역할, ’Brand Portal’이라고 부르고 싶은데요, 삼성 갤럭시는 우리에게 어떤 브랜드 포탈을 열어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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