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진심人
어쩐지 속이 허하고 뒤틀리는 날이 있습니다. 오래된 서류 뭉치처럼 해결되지 않은 고민들이 마음속에서 소화불량을 일으키고, 이유 모를 분노가 명치끝에 턱 걸린 듯한 그런 날 말입니다. 옛 어른들이 '애간장이 탄다', '창자가 끊어진다'라고 표현했던 그 감각이, 수백 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 오늘 나의 것이 되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죠.
그럴 때면 저는 뜨끈한 내장탕 한 그릇을 찾곤 합니다.
누군가는 숙취 해소를 위해, 다른 누군가는 든든한 한 끼를 위해 찾을 이 음식이, 제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 음식을 통해 제가 얻는 것이 비단 영양분만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거든요. 그것은 어쩌면 '시간'과 '과정'에 대한 위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참 빠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버튼 하나면 원하는 것을 얻고, 메시지를 보내면 1초 만에 답이 오길 기대하죠. '하면 바로 된다'는 즉시성의 신화는 우리를 유능하고 효율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듯했지만, 정작 내 마음 하나 다스리는 데는 왜 이리 서툴게 만들었을까요?
뚝배기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내장 한 점이 제게 말을 거는 듯합니다. 소 한 마리가 도축되어, 그 안에 감춰졌던 내장이 조심스럽게 꺼내지고, 수없이 씻기고 다듬어져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그 지난한 과정을요. 그 어떤 단계도 건너뛸 수 없고, 서두르면 기어이 탈이 나고야 마는 정직한 시간.
문득 제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나의 감정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꺼내어 본 적이 있던가? 타인의 시선이라는 불필요한 기름기를 걷어내고, 내 마음의 민낯을 얼마나 정성껏 씻어주었던가? 인정받고 싶은 부질없는 욕심과 진짜 나의 것을 구분하려는 노력은 해 보았던가?
그렇게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다 숟가락을 듭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맛,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 복잡했던 생각의 실타래가 뜨거운 김과 함께 스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입니다. 정직한 시간과 정성이 만들어낸 이 깊은 맛 앞에서, 저는 제 안의 복잡함과 조급함을 기꺼이 인정하게 됩니다.
혼자 뚝배기를 비우는 날은 고요한 자기 성찰의 시간이지만, 가끔은 누군가와 함께 마주 앉아 먹고 싶어 집니다. 굳이 내 속이 얼마나 복잡한지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땀 흘리며 뚝배기를 비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될 테니까요. 꾸밈없는 음식 앞에서 서로의 '날것'을 말없이 응원해 주는 시간이 될 테지요.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니, 든든해진 배만큼이나 마음에도 묵직한 질문 하나가 남습니다.
"나의 내장은, 지금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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