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면죄부를 찾고 있었나?

심리지능

돈이 전부인 것 같은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판단하고, 너무나 빨리 미워합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건 우리가 악해서라기보다 너무 지쳐서일지도 모릅니다.


나 또한 그렇습니다. 복잡한 생각은 에너지가 많이 드니까요. 뇌는 생존을 위해 가장 편한 길을 찾습니다. 뉴스는 공포를 팔고, 우리는 그 자극에 반응하며 이분법이라는 아주 간편한 쉘터(Shelter)로 숨어버립니다. "내 편 아니면 적", "정상 아니면 비정상". 그렇게 생각해야만 복잡한 세상에서 내 정신을 지킬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선택지가 너무 많아 탈진해 버린 나는, 어느 순간부터 책 속으로 도망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철학책을 펴고, 종교에 기대고, 심리학 용어를 탐닉했습니다. 활자 속에서 위로를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꽤 괜찮은 지성인이 된 것 같은 착각에도 빠졌습니다.


그런데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봅니다. 내가 쌓은 그 지식들이, 혹시 내 이빨 안쪽에 낀 누런 치석 같은 것은 아닐까? '교만'은 충치처럼 한 번에 생기지 않더군요. 치석처럼 아주 천천히, 내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딱딱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나는 심리학을 배웠다는 핑계로, 인간의 본성을 안다는 이유로, 나의 차가운 말과 계산적인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았던가요? "인간은 원래 그래", "이건 심리학적으로 방어기제야"라며 나에게 상처받은 타인의 마음을 외면하고, 나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발급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나를 변호하기 위해 배운 지혜는 썩은 지혜입니다. 상대를 분석하고 재단하는 칼날로 쓰는 지식은 폭력입니다.


진정한 배움은 책상 위가 아니라, 누군가의 곁에 있을 때 증명된다고 믿습니다. 내가 겪은 고통의 깊이만큼 타인의 아픔을 알아봐 주는 것. "어쩔 수 없다"라며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끌어안기 위해 담대하게 한 걸음 내딛는 것.


그 행동만이 우리가 세상에 내밀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이자, 진정한 면죄부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나는, 책을 덮고 묻습니다. 지금 나의 지식은 우쭐한 방패인가, 아니면 누군가를 위한 손길인가?


결국 한 번의 삶의 가치는 돈이 아니라, 나눔이라는 진리를 서서히 체득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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