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인문학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믿음'이라는 단어는 참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 자신을 믿어", "다 잘 될 거라고 믿어." 위로가 절실한 결핍의 시대이기에, 우리는 이 말을 마치 진통제처럼 서로에게 건네곤 합니다. 잠시의 통증은 줄여줄지 몰라도, 병의 근본은 건드리지 못하는 진통제 말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식의 말을 마법의 주문처럼 외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데이터를 다루고 사람의 가장 깊은 심리를 들여다보는 전략가로 살아가며, 그리고 제 삶의 수많은 시행착오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한 가지 냉정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종교의 신비 영역이 아니라, 철저한 <물리 법칙>의 영역이다.'
제가 발견한 믿음의 본질적 속성은 <에너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생각'이, 눈에 보이는 '현실'이라는 단단한 물질로 변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주의 법칙입니다. 물리학에서 불을 피우기 위해 산소와 연료가 격렬히 산화해야 하듯, 믿음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고통'이라는 연료가 필요합니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 타인에 대한 신뢰, 혹은 지금 추진하는 일의 성공 가능성. 이 모든 것을 "믿는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정작 그 과정에서 필수로 따라오는 심리적 불안, 뼈를 깎는 정신적 압박, 육체적 한계를 거부하고 있다면? 단언컨대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저 어린 투정과 같은 막연한 '바람'이거나, 대가 없이 결과를 탐하는 '욕심'일뿐입니다.
가만히 제 지난날을 복기해 봅니다. '나는 이 일이 무조건 될 거라고 믿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정작 그 일이 요구하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인내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던 순간들. 돌이켜보면 그때의 실패 확률은, 정확히 제가 회피했던 고통의 크기와 비례했습니다.
반면, 남들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인다고 했던 일이었음에도 기꺼이 그 힘겨움을 감내했던 순간들은 놀랍게도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고통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이야말로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이 현실로 바뀌고 있다는 <확실한 신호>라고 여겼기에 묵묵히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는 선물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기꺼이 고통 속에 온몸을 던질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작동하는 <실전적 전략 에너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함부로 "믿는다"라고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대신 저에게 먼저 묻습니다.
'너는 이 믿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오늘 어떤 고통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데?'
고통은 싫다고 손사래 치면서 믿음의 결과만을 바라는 것은, 자신에 대한 명백한 '기만'입니다. 기만 위에는 어떤 성취도 쌓을 수 없습니다. 우주는, 그리고 우리의 삶은 결코 속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에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믿음은 강력한 물리적 힘을 발휘하여 당신의 현실을 재배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믿음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 무게를 견디고, 기꺼이 그 값을 치르는 자만이 믿음이 주는 달콤한 열매를 맛볼 자격이 있습니다. 매우 단순하며 실전적입니다. 복잡할 것 없습니다. 겪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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