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인문학
누군가를 온전히 믿어주는 것이야말로 그 사람에 대한 최고의 예우이자, 내가 베풀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사랑이라 여겼습니다. "나는 너를 믿어." 이 달콤한 말은 얼마나 위대해 보입니까. 하지만 나는 그 믿음의 대가로 자주 실망했고, 때로는 배신감에 잠 못 이루며 상대방을 원망했습니다.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어?"라며 울분을 토해내던 밤들이 있었습니다.
그 실망의 진짜 원인은 상대방의 변심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을 완벽한 존재로 착각했던 나의 '오만함'에 있었다는 것을요.
"나는 이제 인간을 믿지 않습니다. 다만,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갈 뿐입니다."
과거의 나는 '믿음'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상대를 관찰하고, 이해하고, 검증하는 그 치열하고 번거로운 과정을 생략한 채, 그저 '믿는다'는 말 한마디로 퉁치려 했던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겠다는 나의 욕심이자 '편향(Bias)'이었습니다. 데이터 하나 없이 내리는 결론을 우리는 망상이라 부르지 않던가요? 불완전한 원죄를 가진 인간에게 신에게나 바랄법한 완벽함을 기대하는 것. 그것만큼 상대에게 가혹한 폭력이 또 있을까요?
데이터를 다루며 나는 배웠습니다. 하나의 데이터 포인트가 전체를 설명할 수 없듯, 한 번의 호의나 한 번의 실수가 그 사람의 전부가 될 수 없음을요.
'신뢰를 쌓는다'는 것은 통계학의 '베이지안 추론'과 닮았습니다. 처음 만난 당신에 대한 나의 신뢰도는 0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며, 당신이 보여주는 행동 하나하나가 '데이터 포인트'가 되어 나의 판단을 수정해 나갑니다.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당신이 보여준 태도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대하는 눈빛
말과 행동이 일치했던 순간들
이 작은 데이터들이 모여 '이 사람은 안전하다'라는 예측 확률을 높여가는 과정. 이것이 바로 내가 정의하는 <건강한 신뢰>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그렇게 검증하고 분석하면 너무 계산적이지 않나요? 너무 차갑지 않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이제 '믿음'이라는 도박 대신 '검증'이라는 투자를 시작하려 합니다. 이것은 상대를 의심하겠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이라는 사람을 오독하지 않기 위해,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데이터처럼 소중히 모으겠다는 가장 '뜨거운 관심'의 표현입니다.
나는 당신이 완벽해서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유혹 속에서도, 끝내 약속을 지키려 애쓰는 그 '불완전한 노력의 과정'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믿음(Faith)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Love)의 대상일 뿐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유일한 진실은, '인간은 누구나 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약함을 알기에 우리는 서로를 더 면밀히 살피고, 기다려주고, 켜켜이 신뢰의 데이터를 쌓아 올려야 합니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에게 막연한 기대를 거는 대신,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의 무게를 조용히 달아봅니다. '믿음'이라는 환상이 걷힌 자리에, 비로소 <진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꾸밈없는 실체가 내 눈에 들어옵니다.
나는 그렇게, 진짜 관계를 시작합니다. 당신을 믿지 않기에, 나는 당신을 더 잘 사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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