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진이 주는 메시지
사진의 메시지는 사진사가 의도하는 바의 전달이다.
사진사가 두 발로 서 있는 그 시대의, 현장의 기록이기도 하다.
역사적 현장을 찍은 사진은 정치를, 사회를 변하게 하였다.
최루탄과 얽힌, 민주화 운동 사진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사진은 생생한 역사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정치적 메시를 담는다.
물론, 메시지는 의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진에 담긴 메시지는 오롯이 작가의 몫은 아니다.
사진을 보는 대중의 몫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사진은 공평하다.
사진은 또한 자유롭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은 왜곡될 수 있다.
사진가의 손을 떠난 경우에 그 사진이 갖는 메시지는 누군가에 의해 변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처음부터 왜곡된 메시지를 담는 사진가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사진은 중립적인 가치재라고 보기 어려운 것은 아닐까?
물론 그런 생각도 틀리지는 않다.
다만, 사진이라는 그 자체가 갖는 속성은 사실을 담/는/다/에 있다.
사진의 한자 뜻은 다음과 같다.
베끼다의 寫
생긴 그대로의 眞
사진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사진(寫眞)
1.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 물체로부터 오는 광선을 사진기 렌즈로 모아 필름, 건판 따위에 결상(結像)을 시킨 뒤에, 이것을 현상액으로 처리하여 음화(陰畫)를 만들고 다시 인화지로 양화(陽畫)를 만든다.
2. 물체를 있는 모양 그대로 그려 냄. 또는 그렇게 그려 낸 형상.
사진은 우리에게 주는 일관된 메시지가 있다.
사/실/을 담는다는 것이다.
사실 자체가 왜곡되었다면, 그것 또한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
그 왜곡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훗날, 왜곡된 그 사실에 대해 역사가 다시 평가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사진은 사실의 기록이다.
아니, 그 자체가 역사이다.
2. 다큐멘터리 사진, 사실을 기록하다.
사진으로 문제를 고발할 수 있다.
사진으로 사회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사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신문에 담긴 작은 사진 한 장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기록사진이라고도 한다.
현실을 충실하게 담는 사진인 다큐멘타리 사진은 사실이다.
과장되거나 연출되지 않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고, 그것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사실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사진의 일반적인 기능과 같다.
사건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보도사진과 유사하다.
다만, 보도사진은 언론인으로서 작가의 직업적 성격이 반영된 것이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은 단편적인 것이 아닌 다양한 예술적 사상과 가치가 반영된다.
이런 면에서 예술로서 사진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기본적으로 예술이기 때문에 의미 부여는 나름대로 다큐멘터리 사진의 예술성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둘의 구분은 자의적일 수 있다.
객관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는 구분이다.
그렇다고, 보도사진이 예술이 아니라고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진작가의 다큐멘터리는 예술이 있고, 삶이 있다.
기본적인 자질인 것이다.
루이스 하인(Lewis Wickes Hine)은 사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좋은 사진이란 대상의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해석이며 사진가가 다른 사람들에게 반복해 보여주기를 원하는 그런 인상을 복제해 낸 것이다”
그리고, 그가 찍은 방직공작에서 일하는 소녀 사진은 세상을 변화시켰다.
1908년 촬영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면방직 공장에서 일하는 사디 페이퍼(Sadie Pfeifer)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 사진은 미국 정부를 움직여 아동보호법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때로는 사진의 연출이 필요할 때도 있다.
보다 적극적인 메시지를 만들기 위한 의도이다.
물론, 왜곡이라기 보다는 메시지의 과장이나 직설적인 전달을 위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사진은 왜곡되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3. 퓰리처상, 역사를 바꾸다.
퓰리처상(Pulitzer Prize)은 매년 4월 미국의 신문 저널리즘, 문학적 업적과 명예, 음악적 구성에서 가장 높은 기여자로 꼽히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1917년, 미국의 언론인이자 경영인이었던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의 유언에 따라 제정되었다.
그의 유언대로, 컬럼비아 대학교 언론대학원 퓰리처상 선정위원회에 의해 관리된다.
사진 부문은 흑백이나 컬러, 단일이나 복수의 사진으로 구성된 뛰어난 특종사진에 수여하는 퓰리처상의 한 부문이다.
1942년부터 시작했다.
퓰리처상은 역사적인 사건을 담은 사진기자에게 부여한다.
사진이 역사적인 사건을 만들기도 했다.
베트남전쟁은 누구나 기억하는 비극적인 전쟁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파병도 있었다.
1973년, 현 콩 닉 웃(Huynh Cong Nich Ut)의 퓰리처상 사진이다.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사진이다.
사진으로 봐서는 우는 아이들이 뛰고, 군인들이 뒤를 따른다.
1972년, 네이팜 탄 폭격에 <판 티 킴 퍽(Phan Thị Kim Phúc)>이라는 소녀가 불바다가 되어버린 곳을 피해 도망치고 있다.
전쟁의 끔찍한 순간을 포착한 이 사진의 전후사정을 알면, 비극의 한 장면임을 알 수 있다.
베트남전쟁의 종전을 이끌어낸 의미있는 사진이기도 하다.
먹고사는 일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우리도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던 날들이 있었다.
굶고있는 모습은 우리 역사에서도 비극이었지만, 오래지 않은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94년 수상작이다.
1993년 2월, 케빈 카터(Kevin Carter)는 수단에서 어린아이를 찍었다.
그 뒤로는 독수리가 지켜보고 있다.
사진을 찍은 후, 케빈 카터는 독수리를 쫓아내고 아이를 구호소로 데려다주었다.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지만 어떻게 사진부터 촬영할 생각을 했냐는 비난여론에 그는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어쨌건, 이 사진 한 장으로 수단이나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를 국제적으로 알리게 되었다.
관찰자인 사진가의 현실적인 행동에 대한 고뇌를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