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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레미 작가 Dec 23. 2021

날 울린 새벽녘의 그림자.

서울로 간 대구여자


어느날 서울로 향했다. 눈 깜짝할 새 코베어간다는 서울말이다. 담배와 침냄새가 섞인 2평 남짓한 허름한 동전노래방에서 보아의 넘버원을 목이 째져라 부르던 친구와 함께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첫직장을 다닐 때 였다. 사회생활이 전무했던 나는 일머리는 있었지만 눈치는 밥말아 먹은 시절이었다. 눈치가 없으니 결국 일머리도 없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회사라는 곳은 적당히 농담도 할 줄 알아야 했고, 누구보다 바빠 보일 줄 알아야 했으며, 아는것도 어느정도 모른척 할 줄 알아야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내가 그런것들을 알고 있을리 만무했다.



스무살짜리 여직원이 탐탁지 않았던 사장은 매일 같이 괴롭혔다. 회사에 잘리기라도 하면 큰일날 줄 알았다. 6개월도 안돼 때려치면 의지박약인 줄 알았다. 울면서 버티는게 효도하는 건 줄 알았다. 주말에 골프채 심부름을 하면서 울었고, 여자가 나오는 술집에서 브루스를 추자고 했을때도 울었다. 사람들 앞에서 무시하는 말을 하면 화장실에서 울었고, 말도 안되는 업무로 야근을 시키면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울었다. 


회사는 그렇게 다녀야 하는 줄 알았다.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래도 내 앞의 여직원은 3개월만에 나갔다는데 1년이면 꽤나 버틴 셈이다. 버텼다는 것이 나름의 자랑으로 여겨졌다.



보아의 넘버원에 화음을 넣어주던 친구는 나에게 서울에 가서 가수가 되자는 제안을 했다.



두성에 자신 있는 편



사실, 누가 먼저 그 얘기를 껴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희망이라는 걸 가져봤던 순간이었다. 그때의 나는 도를 믿으세요 아줌마가 왔어도 정말 제 영혼이 맑은가요? 하며 따라갔을 것이다. 지긋지긋한 회사라도 스스로 그만둘 용기는 없었다. 가끔 복권에 당첨되거나, 이혼한 아빠가 부자가 되어 억만금을 들고 나타나 회사를 때려치는 상상을 할 뿐이었다. 그러니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가자는 친구의 말은 복권에 당첨된 것과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서울에 집을 계약했다는 내 말에 엄마는 니가 진짜 미쳤다며 펄쩍 뛰었다. 서울이 어떤 곳인지 아냐며, 여자는 절대 살 수 없는 무서운 곳임을 온간 사건 사고를 가져와 이야기 해주었다. 하지만 온갖 무서운 이야기로 겁을 주는 엄마 말에도 끄떡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서울에 가지 않으면 회사를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날로 점을 보러 나섰고 왜인지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점쟁이는 2년만 방황하면 알아서 내려올거니 가만 두라 했다고 한다. 훗날 점쟁이는 내려오는 건 맞췄지만 5년만이었다는 것은 틀렸다는 걸 알았다. 어쨌든, 무릎이 닿기도 전에 알아 맞춘다던 점쟁이 덕에 서울에 가는 것을 쉽게 허락받을 수 있었다.




고민~ 해결입니데이!



열 때마다 끼익끼익 소리가 나는 초록색 철문을 열고 들어선 첫번째 집은 주인집 아저씨 큰 딸이 살고 있었다. 친구가 있지 않았다면 절대 혼자 살 수 없던 그 집을 어떻게 여자 혼자 살 수 있는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주인집 아저씨 딸네 문을 지나치면 맨 안쪽에 철문 두개가 나왔다. 하나는 현관문이었고, 하나는 화장실이었다. 현관을 열면 바닥부터 벽까지 에메랄드 색 타일로 붙여진 부엌이 나왔고 문 하나를 더 열어서야 작은 방하나가 나왔다. 


여름에는 부엌에서 부터 하수구 냄새가 올라왔고, 아무리 약을 쳐도 어디서 그렇게 바락바락 기어나오는지 바퀴벌레로 그득했다. 맞은편 조선족 아줌마는 주말만 되면 새벽부터 부부싸움을 하고, 주인아저씨가 뜯겨진 방충망을 고쳐주지 않아 여름 내내 모기에 뜯겨야 했지만 첫 독립이라는 성취감과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그마저 행복해 했다.




뭘 해도 신난 과거의 나


그런데 그런 행복감도 잠시였다. 서울생활을 시작한지 3개월 쯤 동네에서 살인사건이 터졌다. 밤에는 엘레베이터도 혼자 못타는 겁쟁이라 그 후론 친구가 옆에 없으면 화장실도 혼자가지 못 했다. 쓸데없는 용기가 용솟음 치던 어느날 난 혼자 갈 수 있다며 새벽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1시간이나 친구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귀찮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게 화근이었다.


우리 방에는 내 허리만큼 내려오는 큰 사이즈의 창문이 있었는데, 혼자 있을 땐 절대 열지 안았다. 누가 방안을 들여다 볼까봐도 겁이 났고,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까봐 두려웠기때문이다.







겁을 상실한 어느날이었다. 나는 왜인지 창문이 열고 싶어졌다. 후덥찌근한 방안 공기를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만들려고 했을테지. 공포영화를 보면 안하던 행동을 하면 화를 당하는데 내가 딱 그 짝이었다.



그나마 겁대가리를 완전히 상실하지는 않은 덕에 창은 반만 열고, 밖이 안보이게 커튼도 쳐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럴거면 왜 문을 열었나 싶다. 가방 정리에 심취해 있을 때 였을까. 새벽녘이라 제법 차가운 바람이 방안으로 훅하고 들어왔다. 커튼에 가려쳐 창문이 열려있었다는 걸 잠시 잊고있었다. 그때 바람과 함께 커튼이 위로 뚱실 하고 떠올랐다.









골목길에 있는 주황생 가로등 불빛이 창문을 통과해 방 분위기를 스산하게 연출했다. 더욱이 난 혼자다. 무서운 생각이 들자 이제 그만 창문을 닫아야 될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졌다. 재빨리 창 쪽으로 걸음을 옮긴 순간이었다. 내 두눈으로 그 형제를 똑똑히 본 것 말이다. 가로등 불빛 덕에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진 듬직한 그림자는 우리방 창문 앞, 그러니까 나와 같은 높이로 우두커니 서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서있었던 거지?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심장박동이 이미 180은 충분히 찍었을 테다. 가위에 눌린 것 처럼 손 끝하나 움직이지 못할 때 맞은편 그림자의 팔이 내 방안으로 빠르고 무섭게 쳐들어왔다. 빛 보다 빠른 속도로 커튼을 휘어잡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커튼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려고 했었을 테지.



영화에서는 이런 순간에 여리여리한 여주인공이 앙칼진 목소리로 피아노 가장 높은 음을 정복해야 한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지 않는가? 그런데 그건 그냥 영화일 뿐이었다. 두려움이 나를 삼켜버린 것인지 목구멍에서 당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림자가 커튼을 정말 젖히면 난 그와 꼼짝없이 눈을 마주칠게 뻔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온 몸이 덜덜 떨리면서 웃기게도 으허허허헉 하는 아저씨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왜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우람한 아저씨 목소리였다.


그림자는 뭐에 쫓기기라도 하듯이 다다다닥 구두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도망을 갔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온 몸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그제야 내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림자가 갔다는 사실에 안도해서인지 나는 꺽꺽 소리를 내며 울어제꼈다.





5평 남짓한 방안에서 비련의 여주인공마냥.



덜덜 떨리는 손의 진동 때문에 창문도 덜덜 소리를 내며 겨우 닫혔다. 아마도 젖 먹던 힘은 그런거였을까. 그러고도 나는 한참을 울었다.



시간이 지나 공포심이 떠난 자리에는 서러움이 가득차기 시작했다. 어쩌자고 내가 여길 왔나, 이렇게 무서운 상황에 노출되어서 이제 나는 어떡하나,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에 내가 계속 사는게 맞나, 돈이 있었으면 당장 이사라도 갈텐데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니 어느새 나는 세상 불쌍한 여자가 되어있었다.



웃긴 일이었다. 공포심이 서러움으로 뒤바뀌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서울생활 내가 해주겠어!!!



그리고 곧 서울 생활에서의 서러움은 분노로 바뀌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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