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에 땅을 샀다. 엄마의 이 짧고 담백한 고백은 도시의 즐거움에 빠져있던 20대의 나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생동감 넘치는 공연과 축제가 매일 열리고, 밤늦게까지 귀갓길을 지켜주는 버스와 지하철이 있는 반짝이는 도시.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강남역의 오피스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 저 불빛의 하나가 되어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겠다 다짐했었다. 늙을 때까지 화려한 불빛이 되어 도시에서 살고 싶었다.
회사생활을 한지 어느덧 7년이 다돼가는 지금. 다행히 그때 꿈꾸던 어른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남들이 우와하는 회사, 오랫동안 원해온 업무를 하며, 토끼 같은 자식과 늘 노력하는 자세가 멋진 남편과 사는 도시의 삶은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처럼 어딘가 모르게 허기가 진다. 그래서 주말 문경으로 향한다.
친구들이 오면 소환되는 문경가이드
문경 워터파크
고무신 아가
문경에서의 일상은 참으로 단조롭다. 아침에는 가마솥에 몇 시간을 진득하게 고아낸 끓인 황태해장국을 먹는다. 집 앞 산을 풍경삼아 지나치게 다디단 믹스커피를 마신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낮잠을 자고 나면 밭에서 막 딴 채소를 기름에 볶아 점심을 먹는다. 아이와 함께 밭에서 방울토마토를 따먹고, 고구마를 캔다. 그럼 어느덧 저녁, 문경의 자랑 약돌돼지를 쏘맥과 함께 구워 먹고 치운다. 그리고 새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진다.
하루의 루틴은 생각보다 빠르게 흐르고, 삼시세끼 해 먹는 것만으로도 할 일은 넘쳐난다. 가끔은 도시의 음식이 당기기도 해 한 시간을 걸려 읍내로 향해 치킨을 튀겨오기도 하고, 관광객이 자주 가는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와 마들렌을 먹는다. 음식을 고르고 결제하는데 일분도 걸리지 않고, 번쩍하고 배달 오는 시대에 맞지 않는 삶의 템포. 하지만 그 느리게 흘러가는 문경의 시간이 참으로 좋다.
아이에게 시골의 할머니가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흙으로 채운 가짜 밭. 당근 인형을 뽑으며 자연을 배우게 하고 싶지는 않다.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문경에서 봄의 싱그러움을, 여름의 초록함을, 가을 하늘을, 코 끝이 시려오는 겨울날 먹는 핫초코의 맛을 자연스럽게 가르치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을 옆에서 늘 함께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제야 엄마의 결정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됐다. 나도 엄마의 나이가 되면, 시골 할머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