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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29. 2024

감사한 오후

함께 살아가기 위해 더 필요한 것

늦은 점심을 먹고 사람이 없는 작은 카페에 들어섰다.


때는 이미 뜨거워진 유월이었기 때문에 더웠지만 천천히 걸으면 땀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시원한 아이스카페라떼와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었다. 카페에 들어서자 직원 분이 나를 보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휴, 휴지 좀 드릴까요?”

“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땀을 너무 흘리셔가지구.”

“괜찮으세요?”

  

오늘 아침 로션을 많이 발라서 그런 것인지 기름이 번질 거려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나는 닦을 땀이 나지 않았으므로 괜찮다고 말했다. 도대체 나지도 않은 땀을 어디서 발견한 것인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주문한 음료가 나왔을 때 나는 자연스럽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웃음과 제스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일회용품이 담긴 박스들을 높이 세워놓고 그 뒤에 몸을 숨겨 앉아 있는 직원분의 모습도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잠시 후 나를 홀로 남겨둔 채 건너편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오던 모습도 의아했다. 걷는 내내 고개를 숙였고, 넓은 길을 피해 가로수와 벤치 사이의 좁은 공간을 통과하는 모습이 살짝 불안해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문득 사람을 어려워했던 한 친구가 떠올랐다.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녀서 어깨에 담이 걸려 힘들어했고,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또 어려워하여 괴로워했던 친구였다. 이후 시간이 지나 다른 손님들을 맞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자연스럽지 않은 친절을 또 발견하게 되었다. 간단한 메뉴를 주문하는 과정에서도 연신 고개를 숙이고 여러 번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매장을 나서는 손님을 위해서는 빠르게 따라 나와 문 앞에서 배웅을 하는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해 보였다.

  

그러나 자연스럽지는 않았더라도 그의 친절과 배려에는 어딘가 모를 힘이 느껴졌다. 최선을 다해 친절을 베풀고, 애를 써서 배려를 실천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그가 할 일을 마친 후에는 다시 박스 뒤로 몸을 숨기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의 열심인 모습이 더 도드라져 보였던 것 같다.  

  

사람들은 흔히 배려를 할 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타인이 원치 않는 친절과 도움은 오히려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가 나에게 휴지를 건넨 행동은 성급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었다. 찰나의 순간에 발견한 반짝임을 땀으로 해석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입장일 수가 있다.

  

그러나 타인의 입장을 생각한다는 게 결코 쉽지가 않다. 결국 나의 입장과 경험을 통해 돌이켜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금 더 정확히 타인의 입장에 가깝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통한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다. 그때까지는 많은 실수들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실수가 용인되지 않는 세상을 살고 있다면 어떨까? 이런 경우에는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는 게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 번의 실수로 냉혹한 평가를 받고 관계에 선이 그어진다면,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두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그의 배려가 자연스러워질 리 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초조해지고 부자연스러워지기가 쉬울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가버리면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일도, 배려를 실천하는 일도 묘연해질 수 있다. 반복되는 실패로 인해 위축된 삶을 살아가느니 차라리 뻔뻔해지기를 택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부담을 주고 애써 친절과 배려를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따지고 보면 배려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덕목일 뿐이다. 그렇다면 함께 살아가는데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배려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게 고찰해 보는 지성일까?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의지의 마음일까?

  

나는 문득 내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성숙한 배려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어느 정도 자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의 배려를 평가하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또한 그 평가 뒤에는 언제나 선이 그어졌다. 결국 나의 배려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추구하는 얄팍한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휴지를 건네준 직원 분의 배려를 불편해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가볍게 생각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 부끄러움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렇지만 그 부끄러움으로 인해 나는 서투른 배려에 더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오만한 자리에서 한 계단 내려올 수 있음에 참 감사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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