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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28. 2024

타이어 아끼기

마음도 충전이 필요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운전을 얌전하고 부드럽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혼자서 운전을 할 땐 급출발, 급정거, 급커브를 할 때가 많았다.


왜 이런 차이가 났냐면 운전자와 동승자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운전자는 미리 예상을 해 큰 불편을 겪지 않을 수 있지만 동승자는 과격한 운전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나 역시 과격한 운전자와 동승을 하게 되면 속이 울렁거릴 때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있을 땐 마음대로 운전을 해도 누군가 동승을 하면 그 사람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운전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이 달라지는 계기가 있었다. 생각보다 타이어를 일찍 갈게 되었기 때문이다. 보통 타이어를 4만 km 정도 주행하고 간다고 알고 있었는데, 3만 km가 조금 넘자 타이어를 갈아야 했다. 원인은 당연히 급출발과 급정거, 급커브였다. 타이어 값은 생각보다 비쌌다. 12만 원 정도를 예상했는데, 16만 원이 나왔다. 1만 km나 일찍 타이어를 교체하고 예상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출하니 속이 제법 쓰라렸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다잡고 운전 습관을 바꾸려고 애썼다. 혼자 있을 때도 옆에 동승자가 있는 듯이 운전을 하려고 했다. 습관을 쉽게 고치긴 어려웠지만 그래도 동승자가 있을 때 얌전히 운전하던 가락이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웬만하면 추월차선을 이용하지 않고, 안전거리도 넉넉히 유지했다. 속도에 큰 변화를 주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자 많은 차들이 나를 앞질러 가려고 했다. 뒤에서 바짝 쫓아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속도를 유지했고, 천천히 출발하고, 얌전히 멈췄다.


어느 날 한 번은 2차선에서 1차선을 넘어 좌회전 차선으로 차선변경을 시도하는 차를 보게 되었다. 빨리 차선을 넘어가야 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차들이 쏜살같이 달려가 급정거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차들이 한 대 한 대 쌓일수록 기회는 사라져 갔다. 어느새 두 대 정도만 더 서게 되면 다음 신호를 기다려야 할 판이다. 그런데 그 차는 직진차선에 서서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있었으니 기다림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 사람은 갈팡질팡하여 과감히 넘어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 수도 있고, 어쩔 줄 몰라 초조한 마음으로 백미러만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다음 차는 급정거를 하지 않았다. 타이어를 아끼기 위해 천천히 정거하던 내 차례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가 안도를 느끼길 바랐다. 얼른 넘어가기를 바라며 아주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긴장을 해서인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나는 거의 멈추다 시피해서 그의 길을 열어주었다. 대견하게도 그는 용기를 내어 1차선을 무사히 건너갔다. 그 후에야 나는 그 차의 후미를 바라보며 아주 천천히 차를 멈추었다.

 

안타깝게도 비상깜빡이는 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경황이 없었을 수도 있고, 비상깜빡이가 감사의 표현인지 알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 잠깐 아주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었으나, 이내 그 마음은 수그러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순간 누군가에게 안도의 마음을 선물할 수 있어서 그저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하루, 건조한 마음, 단조로운 일상에 이 정도 선물이면 감사했다.

  

타인을 위한 배려는 마음의 공간을 채운다. 바쁘게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헛헛함과 공허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배려를 받은 사람은 고마움으로 배려를 실천한 사람은 기특함으로 각자의 공간에 에너지를 충전시킨다. 슈퍼마리오가 여행을 떠나면서 다치고 힘들 때마다 버섯을 먹고 힘을 내듯 배려는 지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나에게 배려의 순간이 소중했던 이유는 힘이 났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힘. 자기의 삶을 더 사랑할 수 있는 힘 말이다.

  

신호가 바뀌고 천천히 차를 출발시키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타이어를 아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오늘의 이 기분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타이어를 아끼기 위해 천천히 또 얌전히 운전을 했던 나는 오늘의 일로 마음이 바뀌었다. 급히 갔다면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았고, 누군가의 초조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얻게 되었음을 새삼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주변을 살피고, 누군가의 하루에 좋은 기억을 선물하기 위해 얌전히 차를 몬다.


나는 그렇게 경제적 인간에서 존엄한 인간으로 한 걸음 다가선다. 타이어를 아끼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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