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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29. 2024

수필을 만났다

자유로우나 또한 외롭지 않은

수필은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그저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적어나갈 뿐이다.


그러나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하여 형식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형식이란 각각의 사물에게서 공통점을 찾아 하나의 이름을 부여하는 일이다. 꽃으로 따지자면 들에서 자유롭게 피어나는 꽃들을 야생화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남자와 여자, 한국인이나 미국인, 또 체육인과 문인이라는 형식이 있기도 하다. 수필이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하나의 이름을 부여받은 순간 형식이 주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필은 형식을 따르지 않으며 바로 이 점이 내가 수필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얽매임을 견디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자유롭게 살 길 바랬다. 그러나 스스로 얽매인 삶을 선택했다. 자유를 원하는 동시에 형식을 쫓아다녔던 다. 도대체 왜 나는 자유를 원하면서 동시에 형식에 얽매인 채 살아왔을까? 집단이 주는 안정감. 이 것이 원인이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 가면 자연스럽게 옆에 앉아 어울릴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다.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게 중요했는데 같은 운동을 좋아한다든지 출신학교가 같은 경우였다.


한 번은 키가 고만고만하여 뒷자리에 앉은 두 명의 친구와 어울린 적이 있었다. 우리는 적당히 운동을 좋아했고 적당히 장난을 쳤다. 때로는 그 장난이 지나치다 싶은 때가 있어도 적당히 어울리려고 애를 쓴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친구가 새로 나온 게임에 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 나는 도저히 끼어들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적절히 발견되던 공통분모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 게임은 초고속인터넷 설치와 정기결제가 필요한 온라인게임이었는데 나에게는 두 가지 조건 모두 갖추기 어려웠다. 집에 이야기할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때 나는 소외감을 느꼈고, 이는 일종의 위기감 같은 것이었다.


이후에도 이런 일들은 반복되었다. 마음이 원하는 곳을 찾아간 듯했지만 소속감을 유지하기 위해 원치 않는 일을 반복하기도 했다. 종교를 가지는 일, 정치진영을 정하는 일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치에 대해 깊게 고민하기보다 집단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쓸 때가 있었다. 내가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강하게 느낀 경우를 생각해 보면 나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거나 마음에 동의가 일어나지 않아도 행동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였다. 나는 자유롭고 싶었지만 결국 스스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든 자유를 원한다. 더 많은 자유. 그것이 인간의 소망이다. 그러나 또한 누구도 혼자 남겨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유롭고 싶지만 외롭지도 않은 상태. 그 마음의 충돌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나는 수필을 만나 그 혼란스러움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외로워 보이지 않으나 형식에 얽매이지도 않은 채 살아가는 존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 존재다. 자기의 생각을 말할 때 어떤 사상이나 틀에 구애받지 않으며 상대방의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수용하되 끌려가지는 않는 단단함이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수필 같은 사람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소설과 같은 사람을 만나도 시와 같은 사람을 만나도 어우러질 수 있으며 논설문과 같은 사람과도 맞부딪히지 않을 수 있는 유연함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고,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삶. 수필과 같은 사람들을 자주 만나기를 바란다.


그 만남을 통해 나의 삶도 그렇게 되어 가기를 또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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